신체 수준에서 작동하는 지각-불가능한 강렬도

무엇-되기는 강렬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강렬도는 빅터 터너가 주창한 리미노이드, 즉 비반사적 상태에 가까우며 이러한 되기는 다른 이들을 전염시키고 기존 질서를 흐트러뜨려서 다양체를 만들어낸다.

초분. 전남 완도군 보길도. 시신을 풀로 덮어 무덤을 만든 후 1~3년 동안 두었다가 뼈만 다시 매장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유남해)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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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분. 전남 완도군 보길도. 시신을 풀로 덮어 무덤을 만든 후 1~3년 동안 두었다가 뼈만 다시 매장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유남해)
사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저는 서해 끄트머리에 있는 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지금이야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데다 시골의 어르신들도 나이를 많이 먹어서 한국 고유의 풍습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제가 어릴 때까지는 비교적 전통 풍습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하다 보니 또래들의 경험과는 결이 다소 다릅니다. 제 또래들이 맥도날드나 롯데리아 같은 곳을 다닐 때 저는 무를 깎아 먹고 두릅을 데쳐먹었으니깐요. 그래서 어린 시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저는 제 또래보다 연배가 많은 분들과 이야기가 더 잘 통할 때가 간혹 있습니다. “너네 이런 거 경험해봤어?” 하실 때 저만은 손을 번쩍 들 수 있거든요.

제가 태어난 곳에서 경험한 인상 깊은 한국 고유의 풍습 중 하나가 바로 장례 풍습입니다. 제가 살던 곳은 초분(草墳)이라고 하여 시신을 땅에 바로 묻지 않고 지푸라기 같은 것으로 덮어서 풍화시킨 후 유골을 매장하는 장례 풍습이 남아 있던 곳이었습니다. 지금도 흔하지는 않지만 산 깊숙한 곳에서 더러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이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르지도 않았습니다. 집안에서 치렀지요. 안방에 병풍을 두르고 그 뒤에는 돌아가신 분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마당에서는 천막을 치고 상을 놓아 문상객을 맞이하였고요. 문상객들의 옷도 지금처럼 검정색 정장을 갖춰 입지 않았습니다. 다들 깔끔하게 입고 가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정말 보기 어려운 꽃상여도 많이 보았습니다. 시신을 실은 꽃상여를 젊은 남성 여럿이 어깨에 메고 항구 쪽에서부터 동네 안쪽까지 누비다가 초분을 할 장소로 이동하곤 했지요. 그런데 그때의 분위기는 오늘날 장례식장에서 느끼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릅니다. 지금은 장례식장에서 문상하고 조의를 한 후 앉아서 밥 먹다가 더러는 살짝 울다가 오겠지만, 다시 말하면 고인에 대한 상실의 슬픔을 다같이 반쯤 미친 듯이 크게 터뜨리는 게 아니라 격식을 갖춰서 나 홀로 슬퍼하는 쪽에 더 가깝다면 그 시절 제가 본 장례는(특히 꽃상여를 매고 동구를 돌 때는) 약간은 엄숙하고 약간은 정신을 놓은 듯한 분위기에 더 가까웠습니다. 정말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서있는 것 같달까요? 그러한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분이 한 분 있었습니다. 꽃상여 맨 앞에서 장송곡을 목청껏 불러주는 사람이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줍니다.

전남 광양 꽃상여 장례식(1971년 03월 08일 촬영) 출처: e영상역사관
https://www.ehistory.go.kr/page/view/photo.jsp?photo_PhotoSrcGBN=BK&photo_PhotoID=17&detl_PhotoDTL=2820&gbn=BK)
전남 광양 꽃상여 장례식(1971년 03월 08일 촬영)
사진 출처: e영상역사관

인류학 연구들을 보면 장송곡을 불러주는 사람은 대개 무당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살고 있던 곳은 조그마한 섬이었고 무당 또한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동네에서 마음이 살짝 불안하신 분이 그러한 역할을 대신 해주었습니다. 항상 소주를 드시고 계셔서 맨정신일 때가 없던, 항상 취해있던 그런 분이었습니다. 약간 신경질적이었고 항상 위태하고 불안해보였던 분이었습니다. 일에 관한 약속도 자신의 기분에 따라서 어기는 경우가 태반이었고요. 그러다보니 동네에서는 그 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분이 술에 취해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으면 혀를 끌끌 차곤 했지요.

그러했던 사람이 꽃상여 앞에만 서면 달라졌습니다. 그 꽃상여 앞에서도 소주 한 병을 손에 쥐고 어떠한 소리를 내었습니다. 솔직히 그분이 부르는 장송곡은 장례 풍습에서 무당이 부르는 정식 장송곡은 아니었습니다. 음… 뭐랄까요. 노래도 아니고 악다구니도 아닌, 말 그대로 어떠한 소리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 소리는 사람의 소리도 아니고 짐승의 소리도 아닌 그 ‘무엇’이었습니다. 그러한 소리를 내면서 춤까지 덩실덩실 추었습니다.

춤도 기괴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흥에 겨워서 덩실덩실 추는 몸짓도 아니었고 전문 무용가들의 몸사위도 당연 아니었습니다. 눈은 허공을 향하고 있었지만 하늘을 바라보는 눈빛은 아니었습니다. 사지 관절을 흔들어대는 데도 관절이 없는 것처럼 흐느적거리다가 느닷없이 마구잡이로 떨며 흔들어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말해도 될런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모습은…, 마치 미친 사람 같았습니다. 혹은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겠지요. 무언가에 강렬하게 빠진 사람으로 보였다고요. 너무나도 강렬하게 빠져들어 있던 그 모습은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만 한켠으로는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온몸으로 몰입 그 자체를 보여주었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죠? 평소에는 개차반 취급받던 사람이 어떠한 자리에서는 역할을 부여받음으로써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다는 게 말입니다. 그런데 그분 덕분에 앞서 말한 것처럼 독특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승도 저승도 아닌 경계에 선 듯한 분위기 말입니다. 일종의 전염입니다. 누군가의 강렬도를 통한 지각불가능한 무엇인가의 되기에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이 전염되는 것입니다. 정동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11월 17일, 생태적지혜 연구소의 매거진에 글을 발표하신 김미정 선생님은 「정동의 다른 회로 만들기에 대해」에서 정동은 일상적 리듬이나 지각에 균열을 가하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일상생활의 암묵적 질서가 깨지고 특이한 시공간을 열어젖힌다고 설명해주십니다. 꽃상여 앞에서 춤을 추신 분이 주변사람을 전염시켜서 만들어냈던 분위기는, 그날 제가 느꼈던 장례식은 이승도 저승도 아닌 다른 차원의 공간이었습니다. 강렬도를 통해서 말이죠.

정동은 늘 개체를 가로지르는 어떤 배치로부터 발생한다. 이제는 많이 알려졌지만 그것은 특정 정서(emotion)로 포착(표상)되기 이전의 힘이다. 내가 ‘자각’하는 어떤 정서란, 부지불식중 늘 이루어지고 있는 무언가와의 마주침(정동)의 흔적이다. 정동은 재현되고 개념화되기 이전에 신체 수준에서 작동하는 강렬도이고, 나아가 신체의 일정한 상태와 사유의 일정한 양태를 함께 표현한다. 정동은 객관적 실재인 무언가를 재현하는 관념(idea)과 달리, 재현될 수 없는 사유양식이며, 일종의 내적에너지가 연속적으로 변이함으로써만 포착될 수 있는 것이다.

김미정, 《생태적지혜》, 2021.11.17.

아마도 김미정 선생님께서 설명하시려는 강렬도는 이러한 것인 듯합니다. ‘개념화되기 이전에 신체 수준에서 작동’하는 것이라고요. 그럼으로써 ‘내적 에너지가 연속적으로 변이함으로써만 포착’될 수 있는 것이라고요. 그런데 신체 수준에서 작동하는 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들뢰즈와 가타리가 쓴 『천개의 고원』의 제10장에서는 통과제의에 관한 부분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통과제의는 “생성 자신이 생성되는, 그리고 등급들, 형식들, 외침들을 변주시키는 세계의 “시간들”, 지옥의 원들 또는 여행의 단계들에 따라 사람들이 생성을 바꾸는 이런 문턱들과 이런 문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들뢰즈‧가타리, 473, 2001.). 여기서 말하는 통과제의, 문턱 등은 빅터 터너가 주창하는 리미노이드(Liminoid)입니다. 리미노이드는 마치 마약에 취한 듯한 비반사적 상태를 일컫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수렵채취를 주 생계수단으로 삼은 부족이 있다고 칩시다. 이들은 부족이 살아남기 위한 양의 식량을 조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적정한 수의 전사들을 길러내야 합니다. 즉 부족의 소년들을 전사로 탈바꿈시켜야만 하는 것이지요.1 그런데 수렵하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일입니다. 언제든 짐승에게 물어뜯기거나 독충에게 쏘여서 죽을 수 있죠. 전사로 변신해야 하는 소년은 자신이 전사가 되어야 하는 일에 의심을 품고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의심을 하고 해당 사실에 거리를 두면, 즉 전사로 변신시키지 못하면 부족은 식량을 조달하지 못하고 곧 생존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성년식이라는 의례를 치룹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년식은 칼 한 자루만 쥐어주고 겨울철에 밖으로 내모는 것입니다. 짐승을 잡아야만 부족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제약을 걸고요. 그런데 왜 이런 극한에 치닫게 하는 성년식을 치르는 걸까요?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자신이 전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지 못하게 하는 것이죠. 사람이 극한의 상황에 치닫게 되면 반쯤은 미쳐서 온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로고스가 아닌 파토스의 논리와 흡사합니다. 로고스는 언어를 기반으로 한 논리입니다. 즉 로고스는 해당 사실을 배우고 분석하여 검토해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파토스는 두뇌로 해당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살에 닿는 듯한 느낌의 논리입니다. 여기에는 의심을 할 여력도 없이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러해야 하는 일들이 당연해집니다. 온전하게 빠져드는 것이지요. 어찌 보면 로고스보다 강력합니다. 그래서 자기 확신에 찬 광신도들의 연설이 어떤 때는 매혹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김미정 선생님이 설명하시는 신체 수준에서 작동하는 강렬도는 이런 것인 듯 싶습니다. 강렬도는 “들을 수 없는 것을 듣게 하고 지각 불가능한 것을 나타나게 하는 일종의 우주적인 찰랑거림 소리 속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들뢰즈‧가타리, 472, 2001.)

『천개의 고원』의 제10장 제목은 「강렬하게-되기, 동물-되기, 지각-불가능하게 되기」입니다. 이것인지 저것인지 로고스의 논리로 따져 묻기 전에, 아니 그것을 따질 여력조차 잃은 채 빠져드는 것이 강렬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다른 무엇인가가 되고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 역시 저것이 무엇인지 의심하고 회의할 새 없이, 즉 부지불식간에 전염되어 위계적 질서를 흐트러뜨려 버리고 그것이 어떠한 방향성을 띠든 지각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라고요. 그렇지만 『천개의 고원』에서의 되기는 동물-되기, 여성-되기, 아이-되기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분자-되기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왜 무엇-되기가 아니라 형상도 없는 입자인 분자가 되라고 하는 것일까요? 저는 분자-되기가 끊임없는 연결접속을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분자는 다른 분자와 언제고 결합되어 다른 형상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깐요.

그래서 광신도의 되기는 되기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광신도도 강렬도에 빠져서 광신도가 되지만 이들은 광신도에서 다른 무엇으로 또다시 되기를 시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광신도의 되기는 되기가 아닙니다. 결국 되기는 지속적이고 끝이 없는 과정인 겁니다. 언제든 누구와 연결접속하여 되기를 멈춘다면 그것은 되기가 아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물어보아야 합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 라고요. 외부적 억압이나 강박에 의해서가 아니라 쾌락에 의해서 말입니다. 저는 언젠가 꽃상여 앞에서 장송곡을 한번 불러보고 싶습니다.


  1. 소년에서 전사로 ‘문턱’을 넘어서게 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빅터 터너의 역치성(Liminality)는 라틴어 Limen(문턱)에서 따온 개념입니다. 즉 문지방을 넘어서서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정혜인

안녕하십니까. 저는 정혜인이라고 합니다. 주 전공은 사회학이지만 저는 제가 하는 공부를 세상살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고양이를 좋아하고 가만히 오래도록 들여봐야 아름다움을 깨달을 수 있는 잡초풀꽃들도 좋아합니다. 또 각 개인들의 얼굴 모양새와 눈 매음새를 좋아합니다. 결국 궁극적으로 관심있는 건 개인화가 극화되는 시대의 연대와 조직화이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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