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전 대구에서 일어난 항쟁을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예술무리 별난은 이 질문을 가지고 지난해 참여형 작품 《고소합니다》를 선보였다. 시민들이 직접 고발장을 작성하고 영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1946년의 국가폭력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폭력의 문제를 각자의 경험에서 이야기해보려는 시도였다.
올해는 같은 역사를 다른 방식으로 만나보고 싶었다. 우리가 주목한 것은 쌀이었다. 1946년 대구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민들의 저항이 이어졌다. 해방 이후 식량 부족과 미군정의 쌀 수집 및 배급 정책으로 사람들의 생존이 위협받던 시기였다. 항쟁에는 여러 정치적, 사회적 배경이 있었지만, 쌀은 당시 사람들의 삶과 밀접하게 얽혀 있었다.

생존의 기억에서 관계의 매개로
1946년의 쌀과 오늘의 쌀은 과연 다른가. 우리는 이 질문에서 출발해 대구 10월항쟁 80주년 전시 《살아지고, 살아지는》에서 《쌀의 행방: 1946》을 선보였다.
쌀을 선택한 데에는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도 있었다. 쌀은 오랫동안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해 왔다. 우리는 쌀을 씻고 밥을 짓고, 누군가와 나누어 먹는다.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알아가기도 한다. 요리를 하고 음식을 나누는 경험에서 우리는 식재료를 통해서도 사람들 사이에 관계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음식을 만들거나 함께 먹지 않더라도 쌀 한 줌을 건네고 받는 과정에서 이미 관계가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예술무리 별난
우리는 조합원과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 쌀 한 줌씩을 나눠달라고 부탁했다. 만나기로 한 사람에게 오는 길에 쌀을 조금 가져다 달라고 하기도 했고,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우편으로 받기도 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가 많은 양의 쌀을 연구소 문 앞에 두고 간 일도 있었다. 쌀이 어디에서 왔는지 기록하려 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쌀을 건네준 사람을 안다고 해도 그 쌀을 누가, 어디에서 농사지었는지까지 알 수는 없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경로로 모인 쌀을 한데 섞었다.
한 줌의 쌀이 만난 서로 다른 몸과 감각들
예술무리 별난은 쌀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정했지만 작업의 형식이나 결과를 미리 정하지 않았다. 남미자는 도자기 작품 《용기》를 제작하고, 캐런 바라드의 행위적 실재론을 통해 전시를 해석한 글 「쌀은 무엇이 되는가」1도 선보였다. 신동석은 소리 작업 《싸운드》를 선보였고, 임지연과 유승협은 각각 《한 줌 걷다》와 《쌀이 머무는 몸》을 통해 함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유승협의 작업에는 쌀과 누룩, 물을 이용한 설치도 포함되었다.2

구성원들은 도자기와 퍼포먼스, 소리와 발효, 글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쌀을 만났다. 같은 쌀에서 출발했지만 서로 다른 작품이 만들어졌다. 우리는 작업을 하나의 형식으로 맞추기보다 각자의 방식과 차이를 살리면서 함께 전시를 만들고자 했다.
전시장 벽에는 관람객이 쌀을 담아갈 수 있도록 작은 종이봉투들을 붙여두었다. 바닥에는 쌀독이 놓였고, 한쪽 전시대에는 그릇 밖으로 쌀이 흩어져 있었다. 관람객은 벽에서 빈 봉투를 하나씩 떼어 직접 쌀을 담아갈 수 있었다. 가져간 쌀로 밥을 짓거나 떡을 만들 수도 있고, 그대로 간직해도 좋았다. 우리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쌀의 행방을 알려달라고 안내했지만, 이후 쌀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가져간 사람에게 맡겼다.
쌀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관계

사진 제공 : 예술무리 별난
전시장에는 “이 쌀은 10월 항쟁의 기억을 담은 행위자입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였다. 우리가 쌀을 행위자라고 부른 것은 쌀에 인간과 같은 의지가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쌀을 단순히 항쟁의 역사를 설명하는 상징이나 작품을 만드는 재료로만 다루지 않고, 쌀이 사람들과 다른 물질을 만나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쌀은 도자기에 담기거나 바닥에 흩어졌고, 누룩과 물을 만나 발효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쌀을 모으고 옮기고 담고 나누면서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쌀과 관계를 맺었다. 조합원과 가족, 지인들에게 쌀을 나눠달라고 부탁하는 과정에서 평소의 관계가 전시 작업으로 이어졌고,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직접 쌀을 담아가는 과정에 참여했다. 우리가 쌀을 다루는 동안 쌀 역시 우리의 행동과 관계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모은 쌀의 일부로 연구소에서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다. 전시를 위해 모은 쌀이 작품의 재료가 되기도 하고, 함께 먹는 음식이 되기도 한 것이다. 쌀을 어떻게 사용하고 나눌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쌀을 바라보는 방식도 조금씩 달라졌다.
쌀 한 줌으로 잇는 1946년과 오늘

1946년 대구에서 쌀은 생존을 둘러싼 절박한 문제였다. 8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그때와 다른 조건에서 쌀을 먹고 있지만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식량을 구하지 못해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들이 있다. 전쟁과 기후위기, 불평등한 분배는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우리가 매일 먹는 쌀 역시 땅과 물, 기후, 농사를 짓는 사람들, 유통과 분배의 과정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우리는 쌀 한 줌을 통해 80년 전 대구에서 일어난 항쟁이 오늘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느껴보기를 바랐다. 당시에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저항했고, 오늘도 우리는 기후위기와 생태위기, 전쟁, 혐오와 차별에 맞서 행동하고 있다. 모두가 같은 일을 하지는 않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참여하고 때로는 함께 싸우기도 한다. 80년이 지난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항쟁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쌀을 통해 항쟁을 다시 기억하고자 했다. 그러나 쌀을 모으고 작품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나누는 과정에서 우리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경험들도 생겨났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식재료였던 쌀이 다른 사람에게는 항쟁의 역사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새로운 작업의 재료가 되었다.
전시장을 떠난 쌀이 어디에서 무엇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1946년의 항쟁을 기억하는 방식 역시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 쌀을 가져간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상에서 쌀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항쟁의 기억도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모습으로 달라질 수 있다. 쌀이 전시장에 머물지 않듯, 항쟁의 기억도 우리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글 | 김은제(예술무리 별난)
전시 《쌀의 행방: 1946》
⦁ 기획: 김은제
⦁ 전시 구성 및 설치: 김신윤주, 최대주
⦁ 참여 작가: 남미자, 임지연, 신동석, 유승협, 예술무리 별난
예술무리 별난
예술가, 철학자, 연구자, 기획자, 활동가, 생활인 등 서로 다른 삶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예술 공동체다. 그림, 음악, 퍼포먼스, 요리 등 각자의 방식으로 작업하며 공동의 주제를 함께 탐구한다. 정해진 장르나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의 차이를 살리며,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우리의 것’인 예술을 만들어간다. ‘별난’이라는 이름은 신승철·이윤경이 문래동에서 시작한 철학공방 별난에서 가져왔으며, 욕망(désir)의 어원에 대한 해석인 ‘별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전시 영상 기록
■《고소합니다》 프로젝트 소개 영상 (2025)
■《한 줌 걷다》 · 《쌀이 머무는 몸》 (2026) — 임지연·유승협 퍼포먼스 기록
■《싸운드》 (2026) — 신동석 사운드 작품 듣기
남미자, 「쌀은 무엇이 되는가: 행위적 실재론으로 읽는 《쌀의 행방: 1946》」 , 2026. 전시장 벽면에 게시된 텍스트 작품. ↩
《싸운드》와 퍼포먼스 《한 줌 걷다》·《쌀이 머무는 몸》의 영상은 글 하단에서 감상할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