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되기

들뢰즈와 가타리의 ‘아이되기’ 개념은, 우리 모두가 고정관념을 버리고 아이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호기심으로 돌아가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이것은 퇴행이라기보다는 역행(involution)이다. 아이로 돌아간다는 것은 유치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다채로운 상상력과 영감, 창조성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아이되기’ 개념은, 우리 모두가 고정관념을 버리고 아이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호기심으로 돌아가자는 제안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퇴행이라기보다는 역행(involution)입니다. 아이로 돌아간다는 것은 유치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다채로운 상상력과 영감, 창조성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들뢰즈와 가타리보다 무려 400년 먼저 아이되기를 주장했던 중국의 철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명나라 때 양명학자 이탁오(李卓吾)입니다. 그의 본명은 이지(李贄)로, 오랫동안 관직에 몸담고 살다가 어느 순간 이를 그만두고 유불선의 경계를 넘나들며 도를 찾는 학문 활동에 전념합니다. 당대의 유교적 관습과 도덕에 맞선 이단적인 사상을 전개한 결과 그의 책은 모두 금서가 되었으며 결국 그는 감옥에 갇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합니다. 특히 그의 저서 《분서(焚書)》는 당시 지배적이었던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을 정면으로 부정함으로써 이단적 사상으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명분(名分)을 중시하는 정명론이 아닌 마음을 중시하는 양명학(陽明學) 그 중에서도 아이의 마음을 중시하는 동심설(童心說)로 이행한 것이지요.

당대 주류사상인 유교는 아이들의 마음을 동물과 같은 것으로 바라보고 혹독한 배움의 과정을 통해 성인이 되도록 만들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탁오는 이에 맞서 아이들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배움이라는 점을 주장했습니다. 즉, 문명은 동심의 상실을 초래했고 동심 회복을 통해서 문명의 병리적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지요. 2세부터 6세까지의 아동을 살펴보면, “~은 ~이다”라고 단정내리지 않고 “~은 ~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고정관념이 아니라, 호기심, 문제제기, 횡단의 능력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이탁오의 동심설에 영향을 받은 인물이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니, 조선 후기의 문필가 허균입니다. 중국에서도 금서로 취급받던 이탁오의 책을 몰래 조선으로 가져와서 이를 바탕으로 소설을 씁니다. 문제의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홍길동전》입니다. 허균은 여기에서 마치 ADHD(과잉행동장애)처럼 이리저리 놀이를 바꾸는 아이의 모습을 도술을 부리는 것이라고 했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아이’ 즉 기존질서에 포섭되지 않는 아이를 등장시켰으며, 동심으로 돌아간 이상향으로서의 아이들의 나라 율도국을 상상했습니다. 아이되기는 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린 문명과 문화로부터 벗어나 아이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즉, ‘아버지의 세계’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기존 질서가 아닌 ‘아이의 세계’인 놀이, 활동, 재미, 활력과 생명에너지의 질서로 나아가자고 제안하는 셈입니다.

여기서 아이되기의 지평을 살짝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나지금이나 아이들이 나서면 세상이 바뀐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아이들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배워야 하는 것이지요. 동심의 순수함을 상실한 현존 문명에 아이되기는 세상을 달리 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을 만들어냅니다.

이 글은 이윤경, 신승철 共著, 『체게바라와 여행하는 법』(2017, 사계절)에 수록된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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