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빌 이야기] ④ 신의 버블

오로빌 마을의 주요 교통수단은 오토바이다. 하지만 겁쟁이인 나는 스쿠터를 배울 생각도 못한 채 처음 얼마간은 아이를 데리고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다니곤 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용기를 내어 스쿠터 운전을 배우고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처음으로 장거리를 운전해서 돌아오는 길, 서서히 오로빌의 흐름 속으로 합류해가는 나를 발견한다.

오로빌에 처음 왔을 때 내가 반했던 장면이 하나 있었다. 태양이 유난히 낮게 떠 있는 남인도 마을에서 인도인을 먼저 만난 게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금발 소년들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인 듯했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에 붉게 흙물이 배인 맨발에서 원시적인 느낌이 확 들었다. 분명 자전거를 타고 가는 문명인 같은데 발을 보는 순간 그들이 야생에서 곧바로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숲길 사이로 고운 흰 모래 같은 햇살이 느린 공기 중에 무대 조명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쌔앵 하고 스쿠터 몇 대가 지나가고 이어서 바이크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오로빌 마을의 주요 교통수단은 오토바이이다. 생태마을이라고 하면 모두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야 할 것만 같은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 사진제공: 윤경

오로빌 마을의 주요 교통수단은 오토바이 같았다. 생태마을이라고 하면 모두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야 할 것만 같은데 꼭 그렇지는 않았다. 오로빌은 규모가 생각보다 커서 어딜 가려고 해도 집에서 이동거리가 꽤나 되었다. 오로빌에 오면 제일 먼저 필요한 건 탈것을 빌리는 일이다. 우리도 이곳에서 살기로 마음먹은 이상 뚜벅이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처음엔 남편이 스쿠터를 운전하고, 그 뒤로 세 살 아이가 타고, 또 그 뒤에 임신한 내가 앉았다. 네 명이서 좁은 숲길을 가로지르며 라이딩하는 건 분명 신나는 일이기도 했지만, 이따금 오로빌 정서가 아닌 한국 정서로 돌아오면 위험천만하고 미친 짓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뉴커머(new comer, 오로빌리언이 되기 전 단계) 과정 동안 남편이 스쿠터를 타고 출근을 했다. 나도 자전거가 있긴 했지만 아이와 주로 걸어 다녔다. 어느덧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자, 매일 등하원 시키는 일이 내게도 주어졌다. 처음엔 산책 겸 걸어 다니면 되겠다 싶었는데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체력적으로도 쉽지는 않았다. 다른 엄마들이 하나둘 아이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등원하는 모습을 보자 어딘지 모르게 부럽고 멋져 보였다. 심지어 어떤 엄마는 임신한 채로 바이크 앞뒤로 아이들을 태우고 가는 게 아닌가. 맙소사, 이 엄마들은 도대체 뭘 믿고 오토바이에 아이들을 태우고 돌아다니는 걸까? 마을 안에서는 빠르게 운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차선도 하나 없이 바퀴 달린 것이란 뭐든 흙길을 지나다녔다. 전기스쿠터가 땅에 미끄러지듯 소리없이 지나가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염소떼와 소도 같이 지나가는 장면은 평화롭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나는 둘째 출산 전까지는, 스쿠터를 배울 생각도 못하고 걸어서 등하원을 했다. 겁쟁이 쫄보가 따로 없었다.

그래도 장을 보러 가거나 빵집, 식당, 카페 앞 어디서나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는 자유분방한 오토바이들을 보면서 나도 괜히 기분이 들떴다. 자연스레 그 대열에 속하고 싶은 마음이 넘실댔다. 주말에 축제가 열리는 날이면 주차되어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오토바이들을 보면서, 마치 숲속에 도깨비 잔치라도 온 듯한 흥분에 휩싸였다. 이 많은 사람들이 오로빌 어디서 숨어 살고 있었는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캄캄한 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오토바이 불빛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우리도 집으로 향하는 이 길이 더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밤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넷이서 작은 스쿠터에 꼭 붙어앉아 함께 노래도 부르며 달리는 순간은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어둠 속에서 달의 수호를 받는 것만 같았다.

이젠 더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어느덧 둘째 아이도 출산했겠다, 나도 드디어 스쿠터 연습에 돌입했다. 오토바이를 처음 타는 사람들이 연습하는 공터가 있었다. 가끔 검은 소떼들이 와서 노닐다 가는 드넓은 곳이다. 자전거를 탈 줄 안다면 마을에서 스쿠터 정도는 누구나 금방 탄다고 했다. 하지만 홀로 타는 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스쿠터가 이렇게 무거웠었나? 몇 번이나 넘어지고 다치기도 했다. 다시는 타고 싶지 않은 좌절감도 들었다. 이렇게 미끄러운 흙길을 저렇게 자신감 넘치게 달리는 오로빌리언들은 뭐지? 나는 평균 시속 15킬로로 달렸다. 그렇게 덜덜거리며 차라리 걷는 게 더 빠를 것만 같은 속도로 마을을 활보하게 되었다.

주말에 축제가 열리는 날이면 주차되어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오토바이들을 보면서, 마치 숲속에 도깨비 잔치라도 온 듯한 흥분에 휩싸였다. 사진제공: 윤경

아이를 태우고 다닐 때는 속도가 더 느려졌다. 그래도 오로빌의 교통 흐름에 나 또한 포함이 되어 무언의 질서를 배워간다는 것이 뿌듯하기도 했다. 스쿠터를 달리다 아는 이가 지나갈 때면 서로 눈인사를 나누는 미묘한 즐거움도 있었다. 흙먼지가 일기 때문에 스카프로 얼굴이나 입을 감싸고 달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와 함께 달릴 때면, 스카프로 허리에 아이를 질끈 묶어서 떨어지지 않게 하는 이곳만의 방식이 신기했다. 서서히 오로빌 문화를 익혀가는 것이 왠지 소속감을 느끼게 했다. 이젠 익숙하게 스쿠터로 아이를 태워서 다니는 나를 발견한 사람들은 드디어 라이더가 된 것을 축하하고 놀라워했다.

오로빌에서의 생활권은 결코 마을 안에서만 이뤄지지는 않는다. 살다 보면 근처 로컬 마을에 나가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주말이 되면 오로빌리언들은 근처 바닷가로 놀러 가기도 했다. 오로빌 밖의 도로는 인도의 일반 도로와 형편이 다르지 않았다. 집채만 한 트럭도 마구 지나다니고, 차선이 필요 없는 운전법으로 무법자 같은 자동차들과 바이크는 또 어찌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무서웠다. 암만 라이더가 되었다고 해도 나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오로빌 밖으로 나갈 때는 안전하게 릭샤나 택시를 이용하거나 아님 남편이 운전해서 다녔다. 나의 한계를 알고 위험한 순간은 결코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로컬 마을 도로에는 오로빌리언 천지였다. 그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내게는 넘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아기가 곤히 잠들어 있던 평온한 일요일 아침, 첫째 아이와 어디든 나가야만 했다. 스쿠터에 앉아 주말엔 바다로 가면 딱인데, 바다를 혼자 어떻게 가나 망설이고 있었다. 그때 바이크에 스윽 올라탄 옆집 이조라가 뜬금없이 말을 걸어왔다. “아기를 태우고 겁이 나면, 네가 신의 버블 속에 있다고 느껴봐! 두려운 게 아니라 신나게 둥둥 떠다니는 거지! 넌 강한 엄마니까 아기를 지킬 수 있어. 두려움에 휩싸이지 마!” 난데없이 그 말에 홀려, 아니 나도 모르게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아스팔트 도로가 새삼 부드럽게 느껴졌다. 눈이 번쩍 떠지는 것 같았다.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맙소사, 우리 귀 옆으로 괴물같은 큰 버스도 지나갔다. 내 허리를 꼭 잡고 있는 아이의 작은 손이 느껴졌다. 미친 짓이 따로 없었다. 무서워 죽겠는데 이 아찔한 해방감이란! 이 맛에 오로빌리언들이 죄다 밖에 나와 있었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만 했다. 30분 정도 달렸을까? 결코 내 힘으로는 절대로 혼자서 못 올 것 같았던 바다에 도착해 버렸다. 두 팔이 얼얼한 것도 잊은 채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바다 앞에 철퍼덕 주저 앉았다. 해변엔 아는 얼굴들이 제법 보였다. 그런데 물속에서 불쑥 아까 그 이조라가 나오는 게 아닌가.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씽끗 눈인사를 했다.

용기를 내어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고 이겨낼 때, 내 삶은 더 확장되고 풍성해지는 것 같다. 사진제공: 윤경

신나게 한바탕 놀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자, 나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야만 했다. 두려움이 엄습해 왔지만 몸은 이미 일자 도로 위에 있었다. 80킬로가 넘는 차들이 내 옆으로 휙휙 지나갔다. 한참 정주행을 하다가 오로빌로 들어가는 길이 헷갈리는 순간, 때마침 스쿠터를 대여해 준 마니아저씨와 마주쳤다. 깜짝 놀라며 네가 어쩐 일로 이 길 위에 있냐며 신호도 없는 6차선 대로를 건너는 걸 도와주었다. 구불구불한 로컬 마을로 진입해 드디어 내가 아는 길로 들어서자, 등 뒤에 매달려 졸고 있는 아이를 보고, 지나가던 릭샤아저씨가 날 불러 세웠다. 스카프로 아이를 앞으로 매고 달려야 안전하다며 아이를 직접 안아 옮겨 주기까지 했다.

어느새 땅에 내려앉은 넉넉한 태양이 내 검은 머리 위로 붉게 물들었다. 초행길을 이렇게 도움 한가득 받으며 돌아오다니! 과연 신의 버블 속에서 집까지 무사히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빌의 평범한 일상이 어쩜 이리도 야생의 날것같이 느껴지는 걸까. 이 자유로운 영혼들은 신의 보호 아래 살고 있다 느껴졌다. 오로빌은 의식 진화의 실험장이다. 의식의 진화는 결국 나의 한계를 돌파하는 데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살면서 위험은 늘 존재한다. 두려운 마음은 아무 위험이 없는 곳에서도 일어난다고 한다. 용기를 내어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하고 이겨낼 때, 내 삶은 더 확장되고 풍성해지는 것 같다. 일상에서 도전의 손을 내밀 때 미지의 세계는 나의 현실이 되고, 보이지 않는 힘과 더 깊이 연결되는 것 같다. 잠에서 깬 아이가 다음 주에는 꼭 수영복을 가지고 바다에 또 가자고 말했다.

윤경

시골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작은 농사를 시작한 초보 농부입니다. 마음을 어루만지며, 보다 나답게 사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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