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빌 이야기] ③ 개미집에서 살게 된 거죠

전세계 80여개 국의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남인도 생태공동체 마을 오로빌에서 본격적으로 뉴커머 생활이 시작되었다. 게스트하우스 생활을 정리하고 운 좋게 한 집에서 하우스시팅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비인간 이웃들을 통해 공동체의 삶이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결코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춤추는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이리저리 분주하게 땅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흩날린 나뭇잎들이 고요히 내려앉은 길에 아이도 어느새 자리를 잡고 흙놀이를 하고 있었다. 닭들이 지나가며 요란스럽게 인사해도, 개와 고양이는 명상하듯 꼼짝도 않고 평화롭게 졸고 있다. 산책을 하다 보면 도로에 고슴도치나 뱀 심지어 작은 곤충이 지나가니 밟지 않게 천천히 가라는 동물 그림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오로빌에는 나비가 많이 사니까 그만큼 애벌레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꽃들이 땅에 떨어진 갯수 만큼 하루가 지나면 또 피어나 있었다. 하나 둘 지나가는 개미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종류와 크기도 재각기 다양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만나는 생명들을 보며 살아있는 땅 위에서 살고 있구나 감탄했다. 몽구스 가족을 마주치고 온 날은, 아이와 괜히 들떠서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숲으로 둘러싸인 작은 생태 마을에서 나는 임신기간 내내 뉴커머의 딱지를 붙이고 살고 있었다. 뉴커머의 의무 중에 공동체를 위해서 하루에 4~5시간 정도 각자가 정한 일터에서 노동으로 봉사해야 하는 일이 내게는 미뤄졌다. 그 덕분에 내 일상은 더 조용하고 단조로워졌다. 아침을 먹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산책도 하고, 도서관에 가거나, 카페에서 여유를 찾거나, 요가를 하고, 집안을 정돈하고, 저녁을 먹고 잠을 자는 단순한 삶이 나의 현실이었다. 물론 그 사이 고된 육아나 집안 살림이 있었지만, 한국에서와는 다르게 남편이 살림을 하는 비중이 더 커지게 되었고, 주방 일을 시작한 이후로, 집에서도 자신 있게 요리에 손을 대기 시작하자 일이 덜어졌다. 아이는 자연에서 많이 노는 만큼 손이 조금 덜 가게 되었다. 더운 날씨는 멍 때리고 있기 좋은 환경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대체로 느리고 움직임도 급할 게 없었다. 그럼에도 어느덧 뉴커머들에게는 앞으로 살 집을 마련해야 되는 급박함이 슬슬 밀려왔다.

오로빌리언이 되려면, 앞으로 자신이 살 장소를 마련해야만 한다. 오로빌에서 집은 공동체의 공유 재산에 속한다. 결국 오로빌에서 내 돈을 들여 살 곳을 매입하더래도, 개인의 점유권을 인정하되, 그 집에 대한 개인의 재산권은 없다. 오로빌에서 계속 산다면, 이건 어떠한 문제도 되지 않는다. 오로빌에서 내 집이란 개인적 거처가 되지만 내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이번 생을 지구라는 별에서 잠시 빌려 쓰고 간다는 생각을 해보면 지구상의 것을 내 것으로 하려고 아등바등거릴 이유가 없다. 이 세상에 소유권 없는 집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멀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우리도 게스트하우스 생활을 정리하고 다음 스텝을 밟아 나가야 했다. 우리에겐 당장 아기를 낳아야 하는 시간이 찾아오고 있었고, 보다 안정감 느껴지는 편안한 집이 필요했다.

아이들이 있는 가족들은 아마 우리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무렵, 대부분의 뉴커머들은 집을 아예 구매하거나 혹은 집을 짓는 프로젝트에 대기를 걸거나, 땅을 보러 다녔다. 그에 비해 우리는 탄생을 앞두고 있는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수월하게 집을 얻게 되었다. 때마침, 본국으로 돌아간 한국인 오로빌리언의 집이 나와서 그곳에서 하우스시팅1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그분과 개인적 인연도 있었고, 마냥 운이 따랐다고 생각이 들지만, 여전히 오로빌공동체 사람들의 진심 어린 배려를 받았다고 본다. 뱃속의 아기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과분한 집이 생겼다.

오로빌에서 내 집이란 개인적 거처가 되지만 내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 가족은 뱃속에 아기 덕분에 집주인이 장기 부재중인 집을 쉽게 빌려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오로빌공동체 사람들의 진심 어린 배려를 받은 것이다. 사진제공 : 윤경
오로빌에서 내 집이란 개인적 거처가 되지만 내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 가족은 뱃속의 아기 덕분에 집주인이 장기 부재중인 집을 쉽게 빌려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오로빌공동체 사람들의 진심 어린 배려를 받은 것이다. 사진제공 : 윤경

어느 날,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테이블을 보자 화들짝 놀랬다. 접시 위에도, 싱크대 위에도 개미들로 뒤덮여 있었다. 이건 내가 한국에서 알고 있던 개미 수준이 아니었다! 심지어 주방 벽면에 검은 줄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 깨알같이 작은 개미들이 줄지어 대이동하는 모습을 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선 접시에 빵이 들어있는 봉투를 잽싸게 치우고 행주를 들고 테이블을 몇 번이고 닦았다. 개미가 주방을 침범한 죄는 컸다. 빗자루, 청소기, 개미 약 모두 동원해서 개미를 밖으로 치우고 깨끗하게 학살했다. 그날 밤, 난 개미지옥으로 빨려갔던 것 같다. 머릿속은 온통 개미들로 가득했다. 어느 구멍에서 나오는지 알고 싶었다.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고민을 하다가 끝도 없이 나오는 개미들 숫자에 짓눌려 잠이 들었다. 그러다 다음 날이 되자, 그 많고 많았던 개미가 죽었다 되살아난 건지 태연하게 집안을 또다시 활보하고 있었다.

나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 평화로운 집에서 매일 개미와 사투를 벌여야 한다는 건 너무 괴로웠다. 동네 주민들에게 지혜를 빌렸다. 그들에게도 개미는 여전히 살면서 겪는 골칫거리 중 하나이긴 했다. 예를 들면, 주방에 먹을 것을 무조건 남기지 않을 것, 접시에 음식을 둘 때는 대접에 물을 넣고 그 안에 작은 접시를 두고 올려놓을 것, 바닥 청소를 자주 할 것, 집 주변 둘레를 수로로 만드는 방법, 땅콩버터 한 숟가락을 테레스 문밖에 두고 개미의 경로를 바깥으로 유인하는 것 등이 있었다. 그리고 감히 도달하기 어려운 의식 수준의 것도 있었다. 바로 “개미와 함께 사는 것”. 개미들을 처단하고 나면 일단 마음이 몹시 언짢았다. 내 일부가 죽어나가는 것 같았다. 개미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솔직히 개미가 뭘 잘못했길래 내가 이렇게까지 개미를 집 밖으로 몰아내고 대학살을 벌이려고 하는지 한심해서 울고 싶었다.

생각해 보니, 이 집의 침입자는 개미가 아니라 우리였다. 애초에 여기서 거주하고 있던 개미들에게 우리가 허락도 없이 침범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개미들이 살고 있는 땅 위에 우리는 어떠한 배려 없이 집을 올려 짓고 사람 중심으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생명의 땅을 운운하며, 개미는 당연히 집 밖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나 자신이 어쩐지 우스웠다. 우리가 이 집에 이사 들어올 때, 눈앞에 보이지 않는 생명들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던가 되묻게 되었다. 집 안의 모든 것이 내가 정한 대로 클린하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기준이 무너졌다. 그동안 내 속에 물들어 있던 깨끗함의 기준이 해체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개미와 함께 동침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그들의 영역과 삶의 리듬을 존중하고 싶었다. 더이상 개미를 죽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 개미굴까지 전해지길 바랐다.

사진제공 : 윤경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만나는 생명들을 보며 살아있는 땅 위에서 살고 있구나 감탄했다. 사진제공 : 윤경

자신의 몸집보다 몇십 배나 더 큰 벌레 시체를 끌고 가는 개미들을 보았다. 이웃집에서 개미들이 갉아먹어 놓은 나무 문지방을 넘었다. 이 세상을 인간 중심으로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저속한 마음인지 느끼게 되었다. 도시의 문명이 선사하는 통제되고 규격화된 것만이 내 삶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저 내 삶에 연결되어 있는 나 아닌 생명들에 대해 함부로 행동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공동체의 삶이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결코 아님을 내 작은 삶 속에서 직접 맞닥뜨리게 되었다. 가끔 지붕의 기와를 떨어뜨리는 공작이 테라스로 자주 찾아왔다. 낮에는 이웃집 개가 와서 자기 집처럼 늘어져 쉬다 간다. 어떨 땐, 고양이가 현관문을 기대어 졸고 있기도 했다. 집 안을 가만히 보니, 이른 아침에는 발이 많이 달린 빨간색 애벌레가 거실을 산책하고 밖으로 나갔다. 제법 큰 거미도 잠시 모습을 보였다가 재빨리 사라졌다. 밤에는 작은 게코 도마뱀들이 높은 천정에 붙어서 친구와 장난을 쳤다.

오로빌에서 이 집은, 나의 집이 아니라 개미까지 포함한 뭇 생명의 집이기도 했다. 나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내가 몸집이 더 크다는 이유로 약자를 몰아내는 권력 다툼을 벌인 것이다. 개미 여왕에게 내 마음이 전해진 걸까, 어느덧 개미들의 행렬이 잠잠해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이어지다가 다시 개미떼가 나타날 때면, 나도 모르게 살짝 반가운 마음이 일기도 했다. 언젠가 한 번은 화장실 하얀 천정이 새카맣게 개미 떼들로 덮여 있었다. 놀라움 그 자체였다. 정말로 개미집에 우리가 들어온 게 맞았다. 하얀색 알을 물고 열심히 이동하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지만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잠시 지나갈 뿐이었다.


  1. 하우스시팅(house sitting) : 주인의 장기 부재중 그 집에 살며 집을 지키다.

윤경

시골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작은 농사를 시작한 초보 농부입니다. 마음을 어루만지며, 보다 나답게 사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댓글 3

  1.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의 모든 나라가 그랬으면 좋겠어요. 죽거나 집을 떠나면 그 집이 공유로 바뀌는. 살 때만 내 집인.
    개미를 비롯한 동물 이야기도 재밌네요.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져요.^^

  2. 글이 점점 재밌어지네요. 저도 며칠 놀러갔던 기분이 들 정도예요. 그나저나 그 경계가 사라질 때 진정한 해방이긴 할텐데 상상이 잘 가질 않네요. 저도 반려동물과 잠시잠시 그 경계없이 지내는 시간이 있으나 늘 그러긴 아직 한참 ……. 이번 생엔 경계선을 조금 옮겨 긋는 것으로 자족해볼까해요.

  3. 땅과 집을 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점유만 할 수 있다면 세상이 많이 다르게 느껴질 것 같아요. 소소하고 잔잔한, 소중하고 가치있는 오로빌의 일상이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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