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빌 이야기] ② 이 신성한 도서관에서

남인도의 생태공동체 마을 오로빌. 전세계 80여개 국의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속에서 한국에서 온 초보 뉴커머가 주민의 한사람으로 자리잡기까지 이웃과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을 담은 좌충우돌 에피소드이다.

“오 마이 갓!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예요? 이 신성한 도서관에서!” 마리아 할머니가 소리쳤다. 파란 눈동자가 흔들리며 본인의 영역이 침범 당한 것 마냥 역정을 냈다. 화들짝 놀란 우리들은 열 명도 더 되는 아이들과 음식들을 황급히 챙겨서 1층으로 이동했다. 창피하기도 하고 그래도 호통은 너무했다 싶어, 게스트 하우스 운영자인 할머니에게 억울한 마음을 뭐라도 항변해야 할 것만 같았다. 어눌한 영어로 그러나 다급한 어조로, 공동 식당이 오늘 문이 잠겨 있고, 점심을 나눠 먹을 큰 테이블이 필요했던 차에, 2층 공간이 항상 비어 있어서 테이블을 좀 사용했다고 변명했다. 게다가 뜨거운 햇볕도 피하고,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는 야외 테라스 같은 장소라서 음식 냄새 피울 걱정도 없고, 물론 잘 정돈된 책장이 몇 개 서 있긴 했지만, 이게 신성한 도서관인 줄은 몰랐다고 말을 흐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그러게 확실히 도서관스럽지 않아도 도서관이라 적힌 이곳에서, 과연 다섯 가족이 우르르 식사를 해도 될까’ 하고 의문이 들긴 했었다.

잘 정돈된 책장이 몇 개 서 있긴 했지만, 이게 신성한 도서관인 줄은 몰랐다. 사진 제공 : 윤경
잘 정돈된 책장이 몇 개 서 있긴 했지만, 이게 신성한 도서관인 줄은 몰랐다. 사진 제공 : 윤경

믿기 어렵지만, 아르카 게스트 하우스에 한국인 다섯 가족이 함께 지내고 있었다. 우리를 포함한 이 다섯 가족들은 오로빌에서 살아보겠다고 아이들과 함께 이 먼 곳까지 날아온 사람들이다. 한국에서도 서로 알지 못했던 우리들이, 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그것도 같은 시기에 이렇게 모이게 되다니, 이런 우연이 또 어디 있을까 싶었다. 오로빌 역사상, 이례적인 일이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여기 다 있다고 느낀 만큼,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기가 그만큼 고달파진 건가 싶어 서글픈 마음이 일기도 했다.

이 작은 시골 마을이 아무리 남인도에 있다고 해도, 나름 80여 개국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계적인 생태공동체 마을이다. 규모로는 면 단위 정도인데, 그 안에 또 백여 개의 작은 커뮤니티가 있다. 게스트 하우스가 있는 커뮤니티들이 여럿 있지만, 단연 아르카만큼 저렴하고, 아침 식사도 제공해 주고, 룸 컨디션이 웬만한 곳은 없다고 소개 받았다. 게다가 솔라키친, 비지터센터, 타운홀, 마트리만드리 등이 가까운 오로빌 센터 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니 노약자나 아이들이 있는 가족, 특히 오로빌 초심자에게는 여러모로 편리한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다. 마리아 할머니는 우리에게 특별히 1층 식당 문을 일시적으로 열어 주었다. 뭐든 제발 먼저 물어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이웃과 함께한 음식들. 사진 제공 : 윤경
이웃과 함께한 음식들. 사진 제공 : 윤경

우리는 아무도 모르게, 하지만 조금은 요란스럽게 이 작은 게스트하우스에서부터 오로빌에 코리안 붐을 일으키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매일같이 모여서 밥을 나눠 먹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날은 서로의 아이들에게 김밥을 비롯한 한국 특별식을 만들어 주고픈 마음에 열었던 작은 포트락1이었다. 비록 야단을 먹었지만 장소만 바뀌었을 뿐, 우리는 결코 포트락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종종 이렇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이들의 친화력과 추진력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이들은 한국에서도 공동육아, 마을살이, 대안 공동체 삶을 살다가 오로빌로 넘어 온 가족들이라 서로 어울려 함께 먹고, 아이들이 이집 저집을 오가며 놀고, 뭐든 함께 나누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반면, 나는 이들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렸고, 솔직히 그다지 사교적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대한민국에 뿌리박혀 있는 집단주의, 무리 문화에 질겁을 하는 사람이었다.

오로빌에서 무작정 살겠다고 떠나왔지만, 오로빌리언이 바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뉴커머(newcomer)기간을 거치게 된다. 뉴커머의 신분도 바로 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전 단계인, 프리뉴커머(pre-newcomer)라는 기간이 요구된다. 이미 결심이 선 사람에게는 이 기간이 답답할 수도 있겠으나, 우선 3개월 정도를 살아보면서 정말로 이곳에서의 생활이 자신에게 맞는지, 정착해서 살지에 대해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할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느리게 돌아가는 오로빌 시스템이 마음에 들었다. 인도의 날씨, 음식, 언어, 문화, 대인관계 등 여러 방면으로 직접 경험해 보고 판단해 보는 좋은 기회라고 본다. 게스트 신분으로 살 때와 여기서 살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보이는 풍경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보통 이 기간 동안은 임시적이기 때문에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내게 된다.

생각보다 오로빌리언이 되는 절차는 까다롭다면 까다롭다. 오로빌에는 몇 가지 신분이 존재한다. 게스트, 뉴커머, 오로빌리언이다. 그리고 오로빌의 초창기 멤버라 할 수 있는, 이곳을 지키고 있는 올드 오로빌리언이 있다. 이 밖에도 로컬 사람들과 자원봉사자인 볼런티어, 오로빌에서 거주하지는 않지만, 이곳과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프렌드 오브 오로빌’도 있다. 오로빌리언인 마리아에게 야단이나 맞고 나자, 내가 이러려고 오로빌에 왔나 싶기도 했다. 생태적 삶과 인간의 영적 진화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산다는 곳에는 화내는 사람은 없을 거라 여긴 내가 순진하기까지 했다. 오로빌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당연히 화내는 사람, 싸우고 다투는 사람,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 서로 피하는 사람, 별별 사람이 다 있다!

이곳은 전반적인 삶 자체가 영혼의 성장과 의식 진화의 실험장임은 분명했다. 사진 제공 : 윤경
이곳은 전반적인 삶 자체가 영혼의 성장과 의식 진화의 실험장임은 분명했다. 사진 제공 : 윤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빌에는 “All life is yoga”라는 말을 중시 여긴다. 이곳은 전반적인 삶 자체가 영혼의 성장과 의식 진화의 실험장임은 분명했다. 때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갈등을 빚는 일들도 있지만, 각자의 존재 자체를 서로 존중하려는 마음을 기본적으로 지녔다고 본다. 우리는 마리아 할머니에게 전을 구워들고 가서 정식으로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할머니는 우리나라 같은 다혈질의 이탈리아 억양이 섞여 도무지 잘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로 자신을 설명했다. 우리 사이의 오해가 없기를 바랐다. 나는 언어로 이해하기보다는 그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모두가 이곳에 온 이유가 서로에게 진실되고 온기 있는 존재로 남고 싶었던 것이다. 비록 실수투성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프리뉴커머 시즌, 남편은 오로빌 공동부엌의 주방 보조로 먼저 뛰어들었다. 내가 매일 하는 일이라곤 집안 살림이었다. 아이를 돌보며 요리하고 청소하다 보면 하루가 다 지나갔다. 이것이 영적 성장과 자아실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자연 아래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뱃속의 아기와 조용히 녹아들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이곳이 한국과 다르게 사람들 사이에 별다른 간섭도 없고 서로 간의 생활이 존중되는 점이 자유롭고 좋았다. 이곳에서라면, 온전한 개인으로 보다 나답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오로빌은 한국에 비해 모든 시설이 열악하고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것도 힘겨운 곳이다. 여기서는 가진 게 부족해서 서로 얼굴을 더 보게 된다. 돈이 있으면 택시를 함께 탈 일이 없고, 냉장고가 있으면 빌려 쓸 일도 없고, 시간이 많으면 장을 보러 가는 이웃에게 빵을 좀 사달라고 부탁할 일도 없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아이들은 서로 잘 어울려 놀았고 우리는 서로의 반찬을 나누며, 어려울 때 돕고 사는 형제 같은 이웃이 되어 있었다. 한국처럼 모든 생활이 개별화되어 있고 집도 따로 살면서, 뭐든 함께 하자는 데 의욕을 불태우게 되면 오히려 개인적 삶이 더 부담스럽게 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저 서로 가진 걸 조금이라도 나누려고, 정을 나눌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었다. 나의 다정한 이웃들은 물 흐르듯 한 개인을 존중하며 공동체적 삶이 이미 몸에 밴 사람들이었다. 다섯 가족들 사이에서 나는 바람에 흔들리듯 개인주의 문화와 공동체적 삶의 균형대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어쩌다 내가 오로빌에 와서 살려고 했는가 생각해 보았다. 영감적 에너지로 가득한 이곳은, 높은 이상과 뚜렷한 비전이 있으나 그걸 종교적 신념처럼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돈을 최우선시 하지 않고, 그것으로 한 인간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보다 의식의 진화, 영적인 성장을 제일 중요시 하는 곳이다. 공동체 규모가 작으면, 개인의 삶이 잘 보장되지 않고, 갈등 상황에서는 의도치 않게 서로의 상처가 쉽게 회복되기가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이곳은 갈등조차도 이 안에서 수용되는 폭과 품이 넓다. 나는 그것이 단지 규모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느꼈다. 모든 게 느리게 돌아가는 환경 속에서 타인을 향한 시선들을 거두어 내고 자기 내면으로 향하게 만드는 느슨하지만 가혹한 수련의 장이기 때문이다. 마리아 할머니는 또 다른 내 모습이기도 했다.


  1. 포트락 : potluck (여러 사람들이) 각자 음식을 조금씩 가져 와서 나눠 먹는 식사.

윤경

시골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작은 농사를 시작한 초보 농부입니다. 마음을 어루만지며, 보다 나답게 사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댓글 3

  1. 오로빌의 생활 궁금했는데 자세히 알려주시니 그림이 조금 그려집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부족함이 서로의 관계를 더 긴밀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잘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그곳에서 말하는 의식의 진화라는 게 어떤 방향 어떤 지점을 향하고 있는지도 궁굼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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