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는 것이 우리를 만든다” – 『휴먼카인드』를 읽고

인간 본성에 대한 새 관점으로 ‘새로운 현실주의’를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을 의심이 아닌 긍정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사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 밝히는 책이다.

뤼트허르 브레흐만 저 『휴먼카인드』 (인플루엔셜, 2021년)
뤼트허르 브레흐만 저 『휴먼카인드』 (인플루엔셜, 2021년)

『휴먼카인드』의 저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사상가이다. 유럽 전역을 뒤흔든 혁신적인 대안 언론 《드 코레스폰던트》의 창립 멤버이자 전속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유럽 언론인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르는 등 뛰어난 저널리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책을 통해 실제 상황에서 인간의 악함과 선함이 동시에 발현되는 모순된 사례를 제시하며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탐구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새로운 현실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비관주의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증거를 제시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는 역사가 깊다. 고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학설을 주장하였다. 성선설은 공자와 더불어 유가의 대표적 사상가인 맹자가 주장한 인간의 심성에 대한 학설이다. 성선설의 주된 내용은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하고, 누구나 측은(惻隱)·수오(羞惡)·사양(辭讓)·시비(是非)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이 능력들은 수양을 통해 각각 인(仁)·의(義)·예(禮)·지(知)의 덕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순자의 성악설도 있다. 공자 · 맹자와 더불어 유가의 대표적 사상가 중 한 명인 순자는 인간의 심성에 대해,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하였다. 사람의 본성은 악하여, 날 때부터 이익을 구하고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그대로 놔두면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예의를 배우고 정신을 수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미 오래전부터 인류는 고민해왔다. 특히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는 이러한 험악한 상황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 깊이 있는 사유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동양의 이런 철학을 현대의 상황에 바로 적용하기엔 초보적인 논의가 아닐까. 그만큼 현대사회는 복잡다단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의 고민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인간 본성의 사악함을 믿게 하는 비관론자인 토머스 홉스의 성악설과 우리 모두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선함이 자리 잡고 있다고 선언한 루소의 성선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모두 소박한 관념론에 불과하다. 20세기 들어 인류는 세계대전을 치르는 가운데 홀로코스트나 난징대학살, 위안부 등 인류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미증유의 사태에 직면했었다. 그런 상황에 대해 지성인들은 왜 저런 심각한 “악행”이 벌어졌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과거의 소박한 인간본성론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기준을 주지 못했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런던 대공습을 인용하였다. 히틀러는 공습을 하면 할수록 공포가 커져 인간들이 복종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런던 시민들은 그 속에서도 서로 도우며 연대했다. 즉 인간의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저자는 인간본성에 대한 새로운 탐구 방향으로 “새로운 현실주의”를 제시한다. 『휴먼카인드』는 성선설과 성악설의 두 주장에서 단순하게 고르자면 성선설에 가깝다. 저자는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론이 속에 품고 있는 계략을 폭로하고 인간의 선함을 옹호하는 주장을 한다. 그러면서 인간 본성의 선함을 옹호하는 일이 관념적인 것이 아닌 인간적 삶을 영위해 가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주의에 맞서는 실천적 지침과 사례를 제공한다. 첫째로 냉소주의와의 싸움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염세적인 주장을 하나 쳐 낼 때마다 그 자리에 냉소주의가 2개씩 자란다는 것이다. 둘째로 인간의 선함을 옹호한다는 것은 존재하는 권력에 대해 대항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란 점이다. 이는 성선설이 권력자들에게 곧바로 위험이 되고 파괴적이며 선동적인 것이 된다는 것이다. 셋째로 언론의 상업적인 태도로 인한 정보의 왜곡을 경고한다. 언론의 보도는 선정성이 너무 강하기에 인간 본성의 악함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그 안에 숨어있는 인간의 선함을 가린다.

저자는 윌리엄 골딩의 장편소설 『파리대왕』 이야기의 진실을 전하면서 ‘휴먼카인드’의 본성은 선하며, 서로 돕는 이타심을 발휘하였기 때문에 전 지구적으로 승리한 것이지 유발 하라리의 주장처럼 이기심을 전적으로 발휘했기에 승리한 것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인간은 이타심을 발휘하였기에 전 지구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사진출처 : mohamed_has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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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타심을 발휘하였기에 전 지구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사진출처 : mohamed_hassan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인간의 잔인함과 폭력성은 왜 발생하는가? 이는 “후천적 반사회화” 과정을 걸은 히틀러 같은 사이코패스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행한 “후천적 학습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저자는 아이히만의 재판이나 사회심리학자들의 유명한 실험인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 같은 과학적인 실험의 내막을 폭로함으로서 입증한다. 이 실험들은 연구책임자가 부정적인 결과를 유도하기도 하고 교묘히 조작한 것이다. 특히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의 진실은 충격적이다. 연구책임자가 피실험자들을 권력과 세뇌를 통해 후천적으로 반사회화시킨 증거가 밝혀졌고 그럼에도 저자는 결국에는 실험참가자들이 연구책임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연대의 정신으로 인간 본성의 선함을 보여줬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준다. 또한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뉴스와 언론이 확증편향을 일으키고, 가용성 편향의 사고로 인해 부정 편향이라는 비관적인 인간관이 더욱 강하게 형성시켰다고 주장한다. 뉴욕의 살인사건을 예로 들면서 언론들은 목격자들이 여성이 살해당하는 광경을 방관했으며 살인자는 유유히 도주했다는 식으로 보도하였다. 그러나 저자가 밝힌 진실은 피해자는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지 않았으며 친구의 품속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또 이틀 뒤 목격자 중 한 명이 다시 절도를 저지르던 범인을 기억하여 경찰에 신고하여 범인은 체포되고 범행 일체를 자백하였다. 그러나 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인간의 본성은 우리가 생각하고 믿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견해만큼 세상을 만드는 커다란 힘을 가진 아이디어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이 기대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 시대의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나선다면 우리가 출발해야 할 지점은 어디일까. 이 책의 옮긴이 조현욱의 글을 인용해 본다.

우리가 믿는 것이 우리를 만든다. 우리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고, 우리가 예측하는 일은 일어나게 된다. 만일 우리가 대부분의 사람을 믿을 수 없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우리의 진정한 본성은 친절하고 배려심이 있으며 협력적이다. 우리는 과거에도 그래왔고 앞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

즉 보이는 것, 알려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내가 믿고, 생각하고,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인간의 본성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한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 사회에 더 도움이 될 것이고, 그 선한 영향력은 전염되어 모든 사람들이 “인간 본성은 선하다.”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지점에서 출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함께 시작된다. (중략) 인간 본성에 대한 현실적 견해는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반드시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삶에서 지켜야 할 규칙 열 가지를 제시한다.

  1. 의심이 드는 경우 최선을 상정하라.
  2. 윈-윈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생각하라.
  3. 더 많은 질문을 제기하라.
  4. 공감을 누그러뜨리고 연민을 훈련하라.
  5.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비록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할 지라도.
  6.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당신 역시 스스로 가진 것을 사랑하라.
  7. 뉴스를 멀리하라.
  8. 나치에 펀치를 가하지 마라.
  9. 벽장에서 나오라. 선행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10. 현실주의자가 되라.

​이 책을 읽고 나니 인간 본성의 선함을 옹호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은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라는 단순 이분법적인 관념론에서 벗어나 지금의 ‘휴먼카인드’가 호모사피엔스로서 성공해 온 이유를 선명하게 밝혀준다. 그것이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도킨스가 말하는 것처럼 이기심의 극대화와 경쟁, 지배와 복속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타심’이라는 선천적 자양분 위에 협력, 공감, 연대라는 주장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인류 역사의 권력자들이 권력의 쟁취와 유지 확대를 위해 인류에게 ‘후천적 반사회화’를 강요했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악하다는 생각을 온갖 방법을 동원해 학습시킨 결과물이란 것은 놀라운 주장이다.

이 책은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심정적 동조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자신들부터 “후천적 반사회화”가 되지 않았는지 서로 검토하고 확인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자신들의 사회운동에 가해질 권력자들의 억압과 냉소주의와 조롱을 극복하고 언론의 “사회적 매도” 공작을 이겨낼 “공감과 연대”의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그런 체크리스트를 제공하는 데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김용화

동작구 마을활동가로 팟캐스트 방송 제작과 매거진 편집장을 맡고 있다. 마을의 여성의 삶을 조명하고 마을의 사건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시민으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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