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수행일기] ③ 짓다가 만 집

산책에서 만난 새집을 통해 떠올려보는 부처님 말씀에 대하여.

나만의 루틴 만들기 같은 것에 꽤 약한 편인데, 그나마 빼먹지 않고 하는 게 있다면 바로 천천히 걷는 산책이다. 거의 매일 아파트 주변을 산책한다. 이 시간은 나에게 특별한 명상의 시간이다. 혼자 천천히 걷다 보면 주로 건물 안에서 생활하는, 도시인이 쉽게 만나지 못할 작은 존재들을 만난다. 낮은 산을 깎아 만든 오래된 아파트라 그런지 오래된 유실수들이 꽤 있고, 덕분에 다양한 생명체들이 이들에 깃들어 산다. 요란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직박구리, 순진하게 아장거리며 걷는 비둘기, 깡충거리며 토끼처럼 뛰는 까치, 그밖에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이 저마다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꾸려가겠지.

새들은 어떻게 집 짓는 법을 배우는 걸까. 인간의 입장에서는 의식주(衣食住) 중에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것이 바로 ‘住’인데 말이다. 높은 곳에 있어서 자세히 볼 순 없지만 새집이 꽤 정교해 보인다. 비교적 큰 나뭇가지는 아래 주춧돌로 사용하고, 중간중간에 깃털이나 잔가지들로 틈을 메운다. 인간은 알아채지 못할 수 있지만 새들이 자신만의 취향을 가지고 집을 지으리라 생각하니 좀 귀엽다.

오늘 눈에 띄는 새집은 누가 봐도 실패작이다. 새들이 좋아할 법한 새집의 구조를 결코 알 수 없겠지만, 그 어떤 새도 “저 집 참 잘 지었네!”라고 말하지 않을 그런 집이다.

바로 이 집!​ (사진)

오늘 눈에 띄는 새집은 누가 봐도 실패작인 건축이다. 바로 이 집! 사진제공 : 벌똥
오늘 눈에 띄는 새집은 누가 봐도 실패작인 건축이다. 바로 이 집! 사진제공 : 벌똥

풍수지리상 터가 안 좋은가? 건축 재료비가 상승해 중도 포기한 건가? 집 짓다가 고약한 집주인한테 쫓겨난 건가? 셋 중 그 어느 것도 아니겠지만 괜스레 인간의 마음을 투영해 본다. 집을 짓다가 중도 포기한 그 새의 마음은 어땠을까? 조금은 속상했을지 모르지만, 자기 능력을 탓하면서 “이제 그만할래!” 같은 자포자기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심리학에서는 게으름의 주된 이유 중 하나로 완벽주의를 꼽는다. 사실 이 세계와 모든 존재들에게 완성된 하나의 ‘상’이란 것은 허상일 뿐인데, 인간만이 자신이 만든 그 상을 완성하기 위해 집착한다. 완벽한 이상, 절대적인 존재를 추구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어느 정도 적당한 선에서 열심을 내보면 어떨까. 짓다 만 새집에 슬퍼하지도 낙담하지 않고. 훌훌 털어내고 “다시 집을 지어보자”란 마음을 갖는다면 좀 더 편하지 않을까. 모든 괴로움은 집착에서 나온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떠올려보며, 오늘도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나선다.

[법구경]

집착하는 마음으로
욕망의 꽃을 따는 사람을
홍수가 잠든 마을을 휩쓸듯
죽음은 잡아간다.

집착하는 마음으로
꽃을 따는 사람은
욕망에 결코 만족이 없이
죽음으로 끝이 난다.

한글번역: 뉴욕정명사 도신스님

벌똥

하고 싶은 것을 미루며 살고 싶지 않아 5평짜리 생태인문 서점 에코슬로우를 열었다. 책방에서 따뜻하고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은 낙관적인 시선을 갖게 되었다. 산책하고, 텃밭을 가꾸고,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고, 읽고 쓰는 삶을 계속하고 싶다. 최근에 불교를 만나고 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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