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씨앗의 철학 “씨앗! 나는 너다. 너는 나다”

지속가능한 삶을 고민하며 도시 내에서 작은 실천을 시도하고 있는 도시농부들을 만나며 토종씨드림 변현단 대표를 알게 되었다. 변현단 대표는 전남 곡성으로 귀농하여 토종씨앗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이며, 토종씨앗조사와 수집, 특성 연구는 물론 토종씨앗 나눔을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그의 토종씨앗에 대한 철학에 매료되어, 책을 읽고 강의를 찾아다니며 기록한 내용을 공유한다.

토종씨드림1 변현단 대표는 최근에 발간된 그의 저서 『씨앗, 깊게 심은 미래』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씨앗은 식량만이 아니다. 그 이상이다. 의식주 해결을 넘어서 질병 치료제이며, 바이오산업에서도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여겨지는 중요자원이다. 더 나아가 씨앗에는 근본적인 것이 있다. 씨앗은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토대를 이루며, 생명체의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제공하는 식물을 존재하게 한다. 곧 씨앗은 만물의 생명유지 그 자체이다.

『씨앗, 깊게 심은 미래』, p3

이 책에는 변현단 대표가 토종씨앗을 수집하고 농민에게 보급하기 위한 연구와 증식을 하며, 한편으로는 본인이 먹기 위한 농사를 지으며 얻은 경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씨앗을 지속적으로 자가 채종하면서 토양과 기후에 적응하고, 농부에 의해 선택된 씨앗이 다양해지고 풍성해지는 이야기이다. 그가 토종씨앗을 채집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만난 어른들은 바로 나의 어머니였다.

어린 시절 우리 집 마당 옆 광(庫房)에는 다음 해에 심을 씨앗이 있었다. 지금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쪼글쪼글한 감자이다. 감자 외에도 많은 씨앗들이 있었지만 그 이름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엄마가 먼지 가득한 광에 보관한 씨앗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셨다는 것. 하지만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대를 이어 왔을 씨앗에 대해 엄마는 굳이 가르쳐 주지 않았다. 시골에서 벗어나 도시에서 살기를 바라셨던 엄마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그래서 가르쳐주지 않으셨고 나도 굳이 묻지 않았다. 어린 나는 그저 지저분하게만 느껴지는 광 문이 열릴 때마다 먼지 냄새가 싫어 코를 움켜지곤 했었다.

씨앗은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토대를 이루며, 생명체의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제공하는 식물을 존재하게 한다. 곧 씨앗은 만물의 생명 유지 그 자체이다.
사진출처 : Daniel Haaf
씨앗은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는 토대를 이루며, 생명체의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제공하는 식물을 존재하게 한다. 곧 씨앗은 만물의 생명 유지 그 자체이다.
사진출처 : Daniel Haaf

엄마가 어린 조카를 돌봐주기 위해 언니집으로 거처를 옮겨 가시면서 우리집 광은 점점 비어가기 시작했다. 소중하게 생각하시며 보관하셨던 씨앗들은 이미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씨앗 옆에 놓여 있었던 낡은 괭이, 호미, 삽, 대바구니…도 이제는 없다. 가득한 먼지와 함께 있었던 씨앗들이 언제든지 살 수 있는 공산품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았다.

지속가능한 삶을 고민하며 도시 내에서 작은 실천을 시도하고 있는 도시농부들을 만나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소중하게 보관했던 씨앗들의 의미를… 그 씨앗들은 단순한 씨앗이 아니었음을… 씨 하나가 심어져 여러 씨앗을 낳고 그 씨앗은 계속 이 땅에 심어진다. 씨앗은 씨앗을 낳는다.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이다. 오로지 한 씨앗이 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여러 씨앗으로 이어진다. 점점 다양해지는 것이다. 씨앗은 다양하고 다양할 때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다양성과 지속성은 모든 생명의 본성이고 본능이다.

까만서리태를 계속 심었더니 갑자기 파란콩이 나오고. 밤색콩도 나오고, 노란콩도 나와요. 한번도 씨앗을 계속 심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뭐야 이거’ 할 거예요. 그러나 계속 심으면 땅의 기운과 공기의 기운과 바람의 기운이 모여서 그 안에 검정색에 응축되어 있던 것들을 펼치기 시작해요. 그래서 거기서 파란콩도 나오고 밤콩도 나오고 수많은 흰콩이 나와요. 여러분이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 그런 방식으로 존재해왔어요. 씨앗 하나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다양함들이 펼쳐지고 있지요.

변현단 대표 강의 내용 중

그런데 씨앗이 사라지고 있다. 60년대 70년대 있었던 그 수많은 씨앗들이, 심으면 계속 더 많이 생명으로 이어지던 씨앗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토종씨드림 변현단 대표는 대부분의 씨앗들을 돈을 목적으로 ‘불임’을 시켜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변현단 대표의 씨앗에 대한 이야기를 열심히 찾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광주에 온다는 소식을 접하면 열심히 달려가곤 했다. 맑고 청량한 목소리로 전하는 그의 강의가 좋았다. 아니 그의 씨앗에 대한 철학에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는 곡성에서 토종씨앗으로만 4천여 평에 농사를 짓고 있으며, 직접 손으로 씨앗을 가꾸고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질문을 한다.

“볍씨 하나를 심으면 한 가락에 몇 개가 나올까요?”

강의실이 순간 조용해진다. 한 알의 볍씨를 심으면 벼 1가락에 120개가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벼는 한 가락만 나오는 게 아니다. 최대 20가락이 나온다고 한다. 논에 볍씨 한 알을 심으면 밥 한 공기가 나온다. 우리는 그 씨앗을 먹고 산다.

그는 또 질문한다.

“이 세상에 씨앗 아닌 게 있을까요?”

엄마 젖도 씨앗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씨앗은 식물 씨앗 동물 씨앗만 있을까? 사람도 씨앗이라고 한다. 김씨….박씨…이씨… 모두 씨앗이다. 이 세상은 온통 씨앗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도 씨앗이고 너도 씨앗’이라고 한다. 그런데 씨앗에 붙은 ‘토종’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는 이 땅에서 자라나는 것을 ‘토종’이라 정의한다.

씨앗을 받아서 15년 이상을 연구하고 보고 먹어가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어요. GMO씨앗도 우리 땅에 계속 심다보면 본래의 본성을 찾아갈 수 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씨앗 받는 농사를 짓는 것이에요. 씨앗 하나에서 시작한 다양성이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변현단 대표 강의 내용 중

그는 토종씨앗을 찾고 심고 나눔하는 과정은 자유로운 삶을 찾아가는 명상의 과정이었다고 한다. 토종씨앗 운동은 생물자원으로, 식량 자급을 위한 식량권이나 종자권 이상이기 때문에 생명과 유기체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바꿔야 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생활과 의식의 변화를 꾀할 것이다. 나아가 생태적 유기순환적 관점 속에서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삶의 철학으로 자리잡아 개인의 삶에 깊숙이 뿌리를 내려야 사회문화적으로도 한층 풍부한 씨앗 운동으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씨앗, 깊게 심은 미래』, p8

“씨앗! 너도 씨앗, 나도 씨앗, 너는 나다.” 이것이 토종씨앗이 찾아가는 삶이며 철학임을 강조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강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옆 사람들을 바라보며 읆조린다. 우리 모두는 씨앗이라고….

초록나무

다양한 사람을 만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 담긴 삶을 기록해보며 또 다른 삶을 배워가는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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