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로컬경제는 없었다

“과연 우리에게 지금 지역경제가 있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지면서 이 글은 시작합니다. 지역은, 성장을 놓지 못한 채 끊임없이 규모를 키우고 모든 것을 중심으로 빨아들이는 고장난 문명을 바꿀 수평적인 대안입니다. 익숙하지만 지속될 수 없는 불편한 문명을 바꿀 수 있는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해야 ‘소비되는 문명’이 아니라 ‘순환되는 문명’을 만들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더믹은 지금까지의 시장의 기준을 해체하고, 생태적 소비, 취향과 개성, 홈 이코노미, 커뮤니티, 인간애, 안심, 공정성 등의 새로운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by NeONBRAND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sEwtU-qy06c
코로나19 팬더믹은 지금까지의 시장의 기준을 해체하고, 생태적 소비, 취향과 개성, 홈 이코노미, 커뮤니티, 인간애, 안심, 공정성 등의 새로운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출처 : NeONBRAND

지역(로컬)이라는 말이 코로나19로 인해서 더 자주 들리고 정부의 정책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지역은, 성장을 놓지 못한 채 끊임없이 규모를 키우고 모든 것을 중심으로 빨아들이는 고장난 문명을 바꿀 수평적인 대안임이 분명합니다. 익숙하지만 지속될 수 없는 불편한 문명을 바꿀 수 있는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역에는 집에서부터 먹거리, 서점까지 모든 걸 독점하는 대기업이 틀어쥔 시장을 바꿀 수 있는 배려하는 마음이 깃든 시장이 있고, 틀에 맞춰 찍어낸 문화를 대신할 색색의 문화를 가지고 있고, 고립된 상태에서 안전과 돌봄까지 시장에서 거래해야 하는 불안한 생활을 멈출 수 있는 안심이 있습니다. 지역을 기반으로 해야 소비되는 문명이 아니라 순환되는 문명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가깝게는 코로나19로 가파르게 늘어나는 택배물량에 치어 죽어가는 택배노동자의 죽음을 지역배달(사회적 배달)로 끝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지역이, 함께 살아가는 지역(로컬)경제가 있었을까요? ‘지역경제’라는 이름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우선 연결됨을 원칙으로 합니다. 연결되지 않으면 ‘지역경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역이 가진 자산을 다시 공통적인 자산으로 전유하고 지금 살고 있는 주민들의 계속되는 욕망을 해결할 수 있는 발명이 있어야 합니다. 또, 있는 그대로의 생명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민이 주인공이고 당사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최소한 여기 적힌 5가지의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지역경제라고 할 수 있고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을 일굴 수 있습니다.

밴쿠버 대학생들에 의해 설립되어 40년 동안 전 세계 협동조합의 자랑거리였던 캐나다의 MEC(Mountain Equipment Coop)협동조합이 얼마 전 미국 기업에게 인수되었는데 그 이유가 지역에서 연대와 신뢰,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히로타 야스유키(廣田裕之) 님의 분석은, 지역에 발붙이지 못한 우리의 사회적 경제를 돌아보게 합니다.

이러한 지역경제를 회복하려면 우선 근대산업주의가 세워놓은 기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코로나19 팬더믹은 지금까지의 기준을 해체하고 새로운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회일 수 있습니다. 다행히 지금 그런 흐름들이 시장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생태적 소비, 취향과 개성, 홈 이코노미, 커뮤니티, 인간애, 안심, 공정성들이 이런 징후들입니다. 이런 흐름들을 지역에서 어떻게 발명할 수 있을 지가 지역경제를 계획하는 사람들의 고민입니다. 이 고민을 풀려면 습관적으로 들이대는 규모와 중심, 경쟁, 성장의 잣대를 버려야 합니다. 규모는 경쟁을 불러오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있을 수 없는 지속성장으로 지탱될 수 있습니다. 중심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의 기준에 맞춰 세우려 합니다. 경쟁은 배타적으로 이웃을 밀어내고 스스로를 고립시킵니다. 성장은 삶을 돌아볼 틈도 없이, 쓰러지기 전까지 앞으로만 내달리게 합니다.

탈규모, 탈중심, 탈성장, 탈경쟁, 탈종속을 앞에 두고 지역경제를 세우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늦지 않게 계획해야 합니다. 여기에 종속은 기존 시스템이 대안이 될 지역과 사회적 경제를 흡수하고 순치시키는 방법으로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 지역경제의 더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국가에 의해 관리되는 지역과 사회적 경제 경영에서 벗어나야 민관의 건강한 거버넌스가 가능할 수 있고 자립할 수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새로이 강조되는 시장 경향과 오래된 사회적 경제 가치가 만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는 우리의 지역경제활동의 기준이 되는 지역경제평가지표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밸류체인(value chain)이라고 부르는 생산과정에 지역은 얼마나 연결되었는지, 지역의 인적 자원은 들어가 있는지, 생산물은 지역으로 가고 있는지, 지역의 자산으로 축적되고 있는지, 공통적인 성과가 되고 있는지 등의 평가를 통해 지역경제가 지역을 촘촘하게 연결하고 공통의 자산을 쌓아가는 과정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사회도 지역도 끊임없이 변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지역주민들의 욕망도 끊임없이 달라집니다. 이런 주민들의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지역 내외의 자원을 재배치하고 재구성해서 지역을 발명하는 경제조직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경제조직이라고 해서 직접적인 경제조직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의 생활을 구성하는 문화, 예술, 교육, 돌봄, 의료 등 다양한 부분이 통합적으로 융합되어야 합니다.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국민국가를 벗어나는 지역의 창조성을 강조한 『창조도시를 디자인하라』의 저자 사사키 마사유키 교수의 ‘내발적 발전 모델’은 창조적 발상으로 지역에서의 생산이 지역으로 도는 유기적 통합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때마침 2020년 10월부터 시행된 개정 협동조합법에 이종협동조합연합회가 다양한 업종의 통합적 사업의 가능성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지역의 다양한 사회적 경제 조직이 분리되지 않고 주민들의 생활을 중심에 놓고 통합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일 것 같습니다.

광역단위와 별도로 지역단위에서도 주민들이 생산하는 지역데이터를 집적하고 관리하는 아카이빙이 있었으면 합니다. 아카이빙으로 지역사회와 경제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기록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에 눈높이에 맞춰 지역에서의 경제순환과 연결이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교육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끝으로 지역경제는 지역정치와 다름 아니기에 지역정치가 필요합니다.

지역경제 없이 전환은 없습니다.

이무열

지역브랜딩 디자이너. (사)밝은마을_전환스튜디오 와월당·臥月堂 대표로 달에 누워 구름을 보는 삶을 꿈꾼다. 『지역의 발명』, 『예술로 지역활력』 책을 내고는 근대산업문명이 일으킨 기후변화와 불평등시대에 ‘지역이 답이다’라는 생각으로 지역발명을 위한 연구와 실천을 하며 곧 지역브랜딩학교 ‘윤슬’을 시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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