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마주보기] ④ 함께 핵 없는 세상으로

새미(솔빈)는 숲정이의 딸이다. 숲정이는 새미의 엄마이다. 엄마는 딸이 살아가는 세상을 자연답게 가꾸기 위해 시민운동을 하였다. 정성스럽게 ‘선과 정의’를 지키려 노력하지만 좌절과 허탈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의지를 잃은 엄마가 그동안의 경험과 생각들을 딸에게 이야기한다. 딸 새미는 고단한 엄마, ‘숲정이’를 위로하고 ‘엄마’를 바라본다. 이것은 주고받는 “마주보기 이야기 글”이다. 숲정이와 새미는 탈핵을 이야기한다.

탈핵은 생명입니다

탈핵은 생명입니다.
탈핵은 평화입니다.

후쿠시마 핵사고 12년 ‘안전한 세상, 고리2호기 폐쇄부터’ 탈핵 행진에 새미와 함께여서 어미새는 기쁨이지. 위풍당당 사회인으로서 성큼 다가오신 새미님, 멋지더라. 어미는 새미 나이 때, 어땠을까? 엄마는 말이야. 그때, 스며드는 역할을 선택했단다. 엄마는 참교육 1세대라 지칭되는 전교조 1세대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태동과 함께 십대의 엄마도 곤란한 상황을 맞아 경찰서를 들락거렸던 기억이 있구나. 이십대의 엄마는 치열한 고민과 좌절,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단다. 사회적 역할 중에서 평범함이 가장 아름답다란 확신을 얻었지. 아름다움의 난이도가 높은 아내라는 지위, 엄마라는 역할을 선택했단다. 엄마는 아름다운 이웃들을 알아채서 그분들이 계속 아름다울 수 있도록 지켜주는 그림자가 되고 싶었어. 엄마로서 삼십 대를 만난 엄마는 더욱더 자연을 사랑하는 한 사람이 되었지. 너희들도 자연이었단다.

수요일에는 빨강 장미 대신 탈핵 피켓팅 ‘수탈핵’으로 이웃 사촌들에게 탈핵의 절실함을 호소했다. 사진제공 : 숲정이
수요일에는 빨강 장미 대신 탈핵 피켓팅 ‘수탈핵’으로 이웃 사촌들에게 탈핵의 절실함을 호소했다. 사진제공 : 숲정이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에서 핵사고가 일어나자 ‘핵’이란 존재에 공포를 느꼈지. 일순간에 모든 것을 파괴하며 생명을 앗아가는 핵! 재생조차 불가능한 지구로 한방에 날려 버리는 핵! 알면서 어떻게 가만히 멸망을 기다릴 수 있겠니? 어미로서 멸종이 두려웠단다. 다음 생이 주어진다면 ‘산에 사는 작은 새’로 태어나기를 소망하는 엄마로서, 나무를 사랑하는 엄마로서, 새미의 엄마로서 핵은 뻔뻔한 재앙이었지.

엄마는 움직였단다. 작은 도서관을 빌려 이웃들에게 핵의 위험성을 알렸어. 수요일에는 빨강 장미 대신 탈핵 피켓팅 ‘수탈핵’으로 이웃 사촌들에게 탈핵의 절실함을 호소했단다.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에 몇차례 참여하면서 엄마 자신을 더욱 성찰하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었지. 중학생이었던 너와도 삼랑진에서 밀양구간을 같이 걸었던 기억이 있구나. 그때 우연히 핵발전소에서 근무하시는 분을 만났는데, 교통사고보다 확률이 낮은 핵사고를 아이들까지 선동한다는 비난을 받았었단다. 교통사고와 핵사고는 발생의 확률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발생 후 결과에 대한 재앙으로 우리는 절실하다 아무리 토론해도 설득이 되지 않더구나. 엄마는 미래 세대를 위해 ‘탈핵은 유산이다’란 굳은 의지가 있어. 의지는 표현을 해야만 빛난단다. 지역의 반경을 넓히며 ‘탈핵 김해 길 걷기’에서 ‘탈핵 경남 길 걷기’를 의도하며 힘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단다. 지리적으로 우리 동네 김해는 고리 핵발전소로부터 약 50km 안팎에 위치해. 핵사고가 난다면 아찔하지.

지리적으로 우리 동네 김해는 고리 핵발전소로부터 약 50km 안팎에 위치해서 핵사고가 난다면 아찔하다. 사진제공 : 숲정이
지리적으로 우리 동네 김해는 고리 핵발전소로부터 약 50km 안팎에 위치해서 핵사고가 난다면 아찔하다. 사진제공 : 숲정이

어떻게 모르쇠로 태연하게 일상을 할 수가 있겠니? 새미의 들꽃인 ‘꽃마리’가 피었겠구나. 핵이 터지면 꽃마리 연하늘빛은 안전하겠니? 알록달록 혼인색으로 유혹하는 피라미들의 해반천(경남 김해 소재)은 평온할 수 없지. 노랑발, 쇠백로는 여여하게 날아다니며 노닐 수 있겠니? 핵발전소의 공포로 만든 전기를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세워져야 하는 송전탑은 생명들에게 얼마나 큰 아픔을 주니? 밀양 765kw 송전탑 경과지의 갈등은 또 얼마나 큰 두려움이니? 밀양 할매(할머니의 경상도 사투리), 할배(할아버지의 경상도 사투리)들이 목에 쇠사슬을 두르고 움막을 파서 기름통을 놓아두며 공사를 강행하는 국가폭력에 처절하게 저항하지 않았니? 새미에게 정말 미안했던 순간은 밀양희망버스 때, 엄마가 경찰선 안으로 딸려 들어간 세 명 중 한 명이 되었을 때란다. 한 시간 동안 대치 상황에서 너는 밖에서 내내 오열을 하였다고 들었지. 너의 공포가 얼마나 컸을까 엄마로서 지금도 가슴이 아프구나.

생명의 의지를 탈핵으로 불태워 나가며 엄마는 무척 힘들었단다. 탈핵, 송전탑 반대 피켓팅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 엄마 혼자서라도 성실하게 자리를 지킬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이웃들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어렵더구나. 잔잔하게, 꾸준하게, 일관성 있는 시간은 분명 감동으로 공감이 되어 기회를 만든다는 것을 엄마는 안단다. 정성과 진심을 다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지. 그러나 당장 고리1호기 폐쇄란 눈앞의 과제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설득이 필요했단다. 사교적이지 못한 엄마는 이웃들을 만나며 시민단체를 만들기 위해 확신에 찬 말들과 흔들림 없는 결단과 꼿꼿한 실천이 필요했지. 그 과정에서 늘 온 몸과 마음이 팽창하여 터질락 말락 위태로웠어. 가느다랗게 간신히 버티며 이웃들의 힘으로 고리1호기 폐쇄를 드디어 만났단다.

탈핵은 생명입니다.
탈핵은 평화입니다.

잔잔하게, 꾸준하게, 일관성 있는 시간은 분명 감동으로 공감이 되어 이웃들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기회를 만든다는 것을 엄마는 안단다. 사진제공 : 숲정이
잔잔하게, 꾸준하게, 일관성 있는 시간은 분명 감동으로 공감이 되어 이웃들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기회를 만든다는 것을 엄마는 안단다. 사진제공 : 숲정이

기대와는 아주 다르게 정부는 신고리 5,6호기1 를 건설 중단하지 않았단다. 과학적 사실과 미래 지향적인 탈핵정책을 국가권력으로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했어. 생존 조건을 숙의 민주주의란 허울을 덧하며 탈핵의 의지를 꺾었단다. 물론 이유는 자본의 논리였지. 정부의 탈핵정책은 희망고문을 하며 탈핵진영을 갈라치기까지 하였단다. 정부를 신뢰하며 ‘기다리자’와 ‘믿을 수 없다’ 양 갈래로 나뉘어져 흐지부지 너덜너덜해졌지. 엄마도 판단이 있었지만 동요는 없었단다. 생명은 안전해야 아름다울 수 있지. 또 생명은 사람만 개입하지 않으면 저절로 조화롭게 평화로워진단다. 사랑을 기도하며 동무들을 기다렸어. 자연은 어김없이 겨울 다음 봄이란다. 탈핵은 갈 수밖에 없는 생명의 길이지.

노후 핵발전소 폐쇄와 신규 핵발전소 건설중단은 탈핵의 큰 쟁점이야. 고리2・3・4호기, 한빛1・2호기, 한울1・2호기, 월성2・3・4호기는 2030년까지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핵발전소란다. 위태로운 노후 원전 수명연장을 시도하는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재물로만 생각하는 걸까. 핵발전소의 핵폐기물 처리 문제는 아직 정답이 없단다. 핵발전소 부지 내 저장도 곧 포화상태라니 죽음의 그 쓰레기를 어떻게 하면 좋겠니? 일본의 반인류적 행태인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를 반대하고 있지만, 일본만의 문제일까? 대한민국의 핵오염수는 어디로 버려지고 있을까? 대한민국은 30기의 핵발전소가 있고 2기가 폐쇄되었으며 3기가 건설 중이란다.

새미와 함께 ‘고리2호기 폐쇄부터 안전한 세상으로’ 탈핵행진을 한 다음 날, 엄마는 기장군에 있는 고리 핵발전소를 찾았단다. 핵무기를 다닥다닥 붙여놓은 바닷가는 미세먼지가 희뿌옇더구나. 미세먼지의 주범을 화학 연료 때문이라며 핵에너지를 깨끗한 에너지로 왕왕 선전하는 광고에 엄마는 경악한단다. 애정하는 탈핵신문에 이런 문구가 있더구나. ‘파멸에 앞서 교만이 있고 멸망에 앞서 오만한 정신이 있다.’

탈핵은 생명입니다.
탈핵은 평화입니다.

당신이 누구든, 내가 누구든

권력이 내 엄마를 꿀꺽 삼켜버렸어. 눈앞이 캄캄해지고 심장이 요동치더라. 소용돌이 안으로 휩쓸려 간 엄마를 영영 보지 못하는 줄 알았지. 눈물을 머금은 채 열중쉬어 하고 버티고 있는 젊은 의경들을 노려봤어. 그들은 당혹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지. 지금 내 나이보다 어렸을 그 청년들도 손 쓸 수 있는 게 없었을 테야. 노려봐도 달라지는 게 없자, 기어코 눈물이 떨어졌어. 그때부턴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 엄마 뱉어내라. 내 엄마 내놓아라. 목 놓아 울었어. 언니 유소2 가 울지도 않고 가만히 내 손을 잡아줬다. 그가 흥얼흥얼 콧노랠 불러줬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았어. 상황이 정리된 후 숲정이 당신이 풀려나왔지. 놀란 얼굴로 새빨갛게 울고 있는 날 향해 달려왔지만 그런 너조차 미웠어. 당신 누구야. 숲정이야, 내 엄마야.

핵이 꽂힌 이 세상에서 내가 걸어갈 미래가 존재할까? 사진제공 : 숲정이
핵이 꽂힌 이 세상에서 내가 걸어갈 미래가 존재할까? 사진제공 : 숲정이

당신은 자주 날 사회 현장에 데려갔어. 어린 새미는 그곳에 가길 귀찮아하거나 피곤해하기도 했지. 근데 밀양으로 향하는 건 언제나 순전히 내 의지였어. 희망하며 연대하는 순간 한 가운데 서 있으면 왠지 온 세포가 깨어나는 듯했거든. 뭘 몰랐지만 폭력을 용인할 수 없는 건 확실했거든. 눈 마주친 경찰한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거나, 소녀를 무서워하지 않는 건방진 세상 덕에 최전선 대열에 껴 송전탑 앞으로 가장 먼저 도착하거나, ‘피가 모자라’ 예술로 노래했던 찰나. 난 늘 진심을 다해 함께했다.

그럼에도 송전탑은 기어코 세워졌고, 핵은 여전히 곳곳에 박히고 있지. 냉각수가 필요한 핵은 반드시 바다를 껴야 해. 해녀의 삶을 품고 사는 나에게 핵이란 부풀 만큼 부풀어서 터지기 일보 직전인 풍선과 같지. 0.1초 뒤 터질 듯 아슬한 풍선이 펑하고 폭발한다면 검은 피가 바다로 흘러나갈 거야. 검게 물든 바다엔 어떠한 생명도 보이지 않을 테지. 숨을 꾹 참고 바다로 들어가면 다그닥다그닥 소리가 선명히 들려와. 그 속에 사는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야. “너도 여기 있구나.” 혼자가 아님에 무섭지 않아. 핵은 바닷세상의 입을 틀어막고 적막하게 만들 거야. 검고 적막한 바닷세상은 상상만 해도 끔찍해.

퇴근 후 지치고 긴장한 몸과 마음을 씻어 봐. 그러곤 거울 속 비친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난 내 얼굴을 쳐다보는 걸 좋아해. 거울에 있는 낯선 그 사람을 살피며 안부를 묻곤 하지. 요즘은 거울 속 저 사람이 참 못나 보여. 초점 없는 눈빛, 복잡한 표정. 당신 누구야. 새미야, 솔빈이야. 숲정이와 함께 ‘고리2호기 폐쇄부터 안전한 세상으로’ 탈핵행진 할 때도 엉켜버린 솔빈을 끌고 갔어. 한걸음씩 떼다 보니 실타래가 풀리더라. 이렇게 함께 사회로 나아가면 되겠구나. 뚜벅 걸어온 내 걸음걸이 그대로 나아가면 되겠구나. 근데 핵이 꽂힌 이 세상에서 내가 걸어갈 미래가 존재할까?

‘파멸에 앞서 교만이 있고 멸망에 앞서 오만한 정신이 있다’ 녹색 앞에 교만과 오만은 파멸과 멸망을 만들지. 새미의 엄마야. 밀양희망버스에서 경찰선 안으로 딸려간 숲정이야. 당신이 누구든 난 이제 널 미워하지 않아. 교만과 오만을 경계하는 당신이기에 네가 누구든 난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 미안해 하지마. 난 내가 누구든 네 옆에 서서 핵 없는 세상으로 함께 걸어갈래.


  1. 새울3.4호기, 울산광역시 울주군 소재

  2. 유소, 미소 지은 얼굴.

숲정이

우리 동네를 낮게 아우르는 숲

솔빈

그 순간, 녹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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