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자가 되다

코로나 확진의 경험에서 얻은 몇 가지 생각을 나눠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고 용기를 내어 글을 써봅니다.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라서 좀 민망합니다.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다 보니 경어를 사용하지 못한 점 이해 부탁드립니다.

감염이 우려되니 컵은 각자 써야 합니다

머리를 빡빡 깎은 20대 남자들을 잔뜩 모아놓은 곳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본격적인 생활을 시작하기 전 신병교육대라는 곳에서 4-5주간 훈련을 받는데, 이를 위해 간단한 호구조사와 더불어 생활에 관련된 보급품들을 나눠주는 시간이 있다. 강당에 사람을 모아놓고 잔뜩 긴장감을 준 다음 간부가 묻는 질문의 해당사항에 손을 든다거나 하는 식으로 의사표현을 할 수 있었다. 겨울이라 감기가 걸리니 마스크를 준다고 한다. 또 뭔가를 사준다고 한다. 3만원에 가까운 첫 달치 월급을 받았지만 마음대로 쓸 수는 없는 상황에서 우리 봉급의 일부를 가지고 대신해서 사다주는 것이라고 한다. 믿을 수 없었지만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등산용 스댕컵을 사준다고 한다. 감기가 전염될 수 있으니 각자 컵이 필요하다고 했다. 물을 마실 시간도 없어 보였고 식당에서 물을 마시면 될 것 같았다. 더군다나 스댕컵은 평소에도 쇠 맛이 나서 싫었다. 그래서 스댕컵이 필요 없는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손을 들었다. 그 순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모두의 의아한 눈빛은 덤이었다. 이 모든 것은 국가가 정해서 사주는(삥 뜯는) 것이며 그것에 의견을 더할 수 없었음을. 우리 모두는 그러한 제도에 놀랍도록 빠르게 적응했다. 각자 스댕컵을 잘 쓰지 않아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모두 누런 콧물을 흘리고 있었다.

백신을 빨리 맞아야 합니다

코로나 위기가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이었다. 백신 수급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외교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였다.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과, 국군 종사자들을 위해 미국에서 백신을 보내준다고 했다. 스댕컵 이야기를 하며 객쩍은 군대이야기를 하던 시절이 한참 지난 민방위 대원들에게도 얀센 백신을 제공한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동료 민방위 대원에게서 온 카톡을 받고도 반신반의하며 접속링크에 들어가 날짜를 찍고 근처 병원을 누르니 예약이 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애국심이 고취되기 시작했다. 이제 방역된 인간으로 살 수 있었다. 이제 다시 국가의 훌륭한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할 수 있었다.

한동안은 정말 편하게 살 수 있었다. 식당에 들어가 QR코드를 찍을 때 나오는 소리 “접종 완료 후 14일이 경과했습니다” 이 한 마디로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식당의 뉴스에서는 상대적으로 외교력이 부족하고 기초자본이 부족한 나라에 백신 수급이 어렵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한 친구의 학교에 코로나가 돌았지만 막을 방법이 없어서 계속 격리와 치료만 반복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 나부터 살고 볼 일이었다.

열이 나면 PCR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퇴근 무렵 몸에서 열 기운이 느껴졌다. 일 년에 두어 번 몸살을 앓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고열도 아니었고 기침이 나거나 콧물이 흐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검사를 했다. 백신도 맞았고 당연히 음성이라 생각했다. 경망스럽게도 검사 후 몇 군데를 돌아다니기까지 했다. (다행히 모두 음성 판정을 받으셨지만, 그 일들이 수습되는 데는 며칠이 더 걸려야 했다.) 같이 검사를 받은 지인에게는 문자로 음성판정이 왔지만 왜인지 나에게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도 잠시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그렇게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고 확진자가 되었다. 돌파감염자라는 사실에 한층 더 자괴감을 느꼈다.

그때부터 모든 것들이 정지되기 시작했다. 판단력이 흐려지고 심장이 두근댔다. 모르는 번호로 계속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확진일로부터 3일 전까지의 카드사용내역을 모두 알려야 했고 마스크를 쓴 얼굴사진, 마스크를 벗은 얼굴사진을 보내야 했다. 만난 사람의 연락처와 들린 곳의 주소를 모두 알려주었다. 누구랑 회의를 했는지 사무실 사진은 어떤지 모두 보내야 했다. 일터에서 있었던 모든 일과 동선들을 정리해서 보내줘야 했다. 동료들 역시 혼란스러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명의 확진자가 더 나오고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사람은 14일간 자가격리에 들어가고 나서야 감염이 멈췄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습니다

백신과 방역에 잃어버린 수많은 것들을 되찾을 수 있을까? by Tumisu 출처 : https://pixabay.com/images/id-4994442/
백신과 방역에 잃어버린 수많은 것들을 되찾을 수 있을까?
사진 출처 : Tumisu

주변에 확진 소식을 알리고, 보건소 등으로부터 수 차례 연락을 받은 탓에 몸과 마음은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가 되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계속되는 보건소의 심층 파악 전화에 대응하여 직장 동료들과 함께 며칠간의 동선을 확인해내야 했다. 마음이 약해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이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다. 기침이 나기도 하고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감염자가 급증한 까닭에 집에서 2시간 넘게 떨어진 다른 지역에 있는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게 되었다. 호송되어 가는 앰뷸런스 안에서는 작은 환자의 공동체가 이루어진다. 돌도 채 지나지 않은 아기 때문에 어떻게든 조심하고 친구도 만나지 않고 자차로 출퇴근 했지만 딱 한번 대중교통을 이용한 탓에 무증상 감염자가 된 사람, 몸살인줄 알고 참다가 상태가 악화된 사람, 가족에게 감염된 사람 등이 모여 서로의 딱한 사정을 헤아려 주는 방법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감염자는 생활치료센터에서 격리조치 합니다.

센터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확진자의 경우 증상이 완화되기까지 대략 7-10일간의 격리를 하게 된다. 확진자들 모두 따로 격리되어야 하지만 병동과 수용시설이 부족한 까닭에 2인 1실 형태의 기숙사나 숙소가 제공된다. 간단한 방역조치와 검사를 받고 입소를 하게 된다. 받아온 감기약과 해열제, 그리고 과도한 스트레스 탓에 피곤하기도 하지만 일상을 벗어난 통제가 사람의 정신을 순식간에 옥죄어 오는 것을 느낀다.

생활치료시설 후기를 보니 해외에서 입국한 어떤 한 종교 수행자 분은 격리기간 동안 편안한 시간을 가졌다는 글을 보았다. 지인들이 격려 삼아 말해주던 푹 쉬고 오라는 말이 고맙게 들리면서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기도 하였다. 일단 텅 빈 방에 갇혀 전혀 모르는 사람과 10일을 지내야 한다. 방 밖으로 나가면 방송에서 바로 들어가라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방 안에서는 하루 100걸음도 채 걷기가 어렵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밥이 배달되었다는 방송을 들으며 잠이 깬다. 오후 4시에는 폐기물을 상자에 담아 방 밖으로 버려야 했다.

언젠가 모르게 사라진 후각과 미각 탓에 밥은 맛이 없었고, 운동량도 적어졌기에 소화력도 현저히 떨어져 버렸다. 도시락 사진을 찍어 보내드리면 부모님은 국가가 참 잘해주는구나~! 우리나라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씀해주셨고, 곳곳에서 K-방역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지만 정작 10일간 국가의 강력한 통제를 온몸으로 경험한 확진 당사자로서는 혀를 내두를 만큼 고통스러운 순간의 연속이었다.

당신의 몸은 이제 국가가 관리합니다

체력은 약해지고 집중력과 정신력이 약해졌다. 무엇보다 나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끼친 피해를 감당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격리기간에도 업무를 모두 쉴 수는 없기에 줌으로 회의를 하고 수시로 카톡방으로 업무를 체크한다. 생활치료센터 입소 전부터 계속해서 전화와 카톡을 받아야 했던 터라 작은 진동 소리에도 수시로 잠이 깼다. 일주일쯤 지나고 격리생활이 익숙해지고 견디기 어려울 때 쯤 입소해제가 된다. 다행히 입맛은 조금 돌아오고 그렇다 할 증세는 거의 없어진다.

생활치료센터에서 대중교통으로 귀가하는데도 혹시나 감염될까 지하철 한 구석에 서 있게 된다. 같이 먹는 식사가 부담스러워 따로 먹게 된다. 두 사람만 있다가 많은 사람을 보게 되니 정신이 아득해 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지금 이렇게 확진자가 고속터미널 역을 활보하고 있는데 어느 누구라고 코로나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맴돈다. 열흘간의 통제가 사람의 정신과 육체를 이렇게 만든다면, 오래 지속된 통제와 교육, 길들임에 익숙해진 신체는 어떠할까 상상을 해본다.

방역엔 누구도 질문할 수 없습니다

다시 스댕컵 이야기를 꺼내어 보자면, 그 원인도 방역을 위함이었다. 삼만원도 안되는 월급을 갈취해 스댕컵을 하나 사는 방법으로는 방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동안 4중대 3소대 전원은 한 달 내내 코를 훌쩍이고 살아야 했다. K-방역은 너무나도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섣불리 이의제기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완벽하고 성공적인 시스템이 사회라는 몸에 익숙해져 갔을 때, 누가 하나 스댕컵을 하나 사는 대신에 조금 더 안전한 시설을 만들자는 의견에 동의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초유의 전염병 사태에 백신산업은 재빨리 대응했고, 국가는 그 일에 최선을 다했다. 확진자들은 모든 정보를 국가에 제공하였고 개인의 신체는 더 이상 개인의 것이 될 수 없었다. 그렇게 모든 군인에게 얀센 백신을 맞췄지만 돌파감염이 가장 많은 백신이 되었다. 뒤늦게 발표되는 부스터 샷 연락에 코웃음만 쳐질 뿐이었다. 델타 변이에 이어서 오미크론 변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렇게 계속 변이가 이어진다면 정말 그 끝은 ‘오메가’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백신과 방역에 잃어버린 수많은 것들을 되찾을 수 있을까? 스댕컵을 안사겠다고 손을 들었던 철없는 20대 청년의 질문에 조금만 더 섬세하게 대답해 줬더라면 그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송기훈

예수의 십자가를 우연히 졌던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우연히 만난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일하며 고민하고 있다.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