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개의 고원』의 ‘리좀’ 개념과 연결해본 한새봉 개구리논에 대한 단상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마을에 유일하게 남은 생태적 공간인 한새봉 개구리논에서 논농사를 지으며 다양한 활동이 시작되었다. 한새봉 개구리논에서 일어나고 있는 활동을 들뢰즈 가타리가 『천개의 고원』에서 제안한 리좀의 개념과 연결시켜 보았다.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에 있는 한새봉 개구리논1은 도시농업의 한 형태로 생태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한새봉두레2 회원들은 한새봉 개구리논 농사를 시작하며 도시 내에서 지속가능한 생태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새봉 개구리논 농사를 중심으로 한 한새봉두레 회원들의 활동은 한새봉 숲을 보존하고 관찰하는 활동으로 이어졌다. 이런 활동들이 지속되어감에 따라 농약, 비료 기계를 사용하여 관행농법으로 농사를 지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풍년새우, 도룡뇽 등의 생물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생물들이 돌아오니 이를 먹이로 삼는 원앙새도 돌아와 지속적인 생태계가 유지되고 있다.

한새봉두레에서 개구리논 농사를 시작으로 확장해오고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천개의 고원』 들뢰즈(Deleuze)와 가타리(Guattari)의 ‘리좀(rhizome)’ 개념과 연관지어 살펴보고자 한다. 이들이 제안한 ‘리좀(rhizome)’은 비위계적인 틀 속에서 어떠한 이질적인 존재와도 접속할 수 있는 연결접속의 원리와 다질성(多質性)의 원리, 이질적인 요소들이 접속하여 또 다른 이질적인 요소가 창출되며 모두를 설명가능한 단 하나의 이론이나 척도가 존재하지 않는 다양체의 원리, 단 하나의 이론 및 척도가 존재하지 않고 위계가 없어 이질적인 것을 창출할 뿐이라는 점에서 탈기표적인 단절의 원리, 접속을 통해 이질적인 변화가 창출된다는 점에서 모방에 반대되는 지도제작(製圖), 모든 것이 이질적인 존재이기에 재현과 대비되는 전사(轉寫)의 원리 등 여섯 가지 원리로 설명된다(『천개의고원』, 19-35쪽).

개구리논을 지키기 위한 다양체들의 결합

한새봉 개구리논. by 초록나무
한새봉 개구리논. by 초록나무

한새봉 개구리논을 지키기 위해 모인 여러 단체들의 결합을 들뢰즈(Deleuze)와 가타리(Guattari)가 제시한 ‘리좀(rhizome)’의 특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 리좀이란, 땅속 줄기식물의 ‘뿌리줄기’라는 의미로 뿌리가 없이 저희들끼리 연결되어 있는 ‘다양체들의 체계’를 의미한다(『천개의고원』, 19-35쪽). 이러한 리좀은 마치 인터넷 연결망과 같으며, 겉으로 볼 때에는 단순하게 두 개의 줄기가 접속되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무한한 복잡성을 가지고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어간다는 점이다.

일곡동에 위치한 한새봉은 무등산을 모산으로 군황봉을 이어 삼각산에서 흘러나온 산줄기이다. 산줄기 전체 모습이 소가 누워있는 것과 닮았다고 하여 ‘황쇠봉’이라 불리다 ‘한새봉’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새봉 주변에는 ‘샘’이 많았는데 소가 누워서 되새김질하면서 뿜어낸 것이라 전해진다. 이외에도 일곡동에는 여물봉, 소정재(소죽 쑤는 부엌), 소소리(소가 있는 골짜기) 등 소와 관련된 지명이 많았다. 이곳에 살고 있었던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었다(박영미, 2011).

그런데 1996년 일곡동 일대는 택지개발이 시작된다. 주거단지 조성을 위한 택지개발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큰 도로가 만들어지며 일곡동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었다. 샘도 사라지고 여물봉과 농토도 없어지고, 농사를 짓던 마을사람들도 사라졌다. 흙과 물과 식물과 동물, 그리고 사람을 연계시키는 것은 한새봉에 남아있는 네 마지기의 천수답(이하 개구리논)이 유일한 곳이었다. 그런데 2008년 한새봉에 마지막 남은 논의 주인인 (고)노현채 농부도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을 한새봉에서 숲의 생태를 모니터링하고 숲해설을 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모임인 한새봉숲사랑이가 알게 되었다. 한새봉숲사랑이 회원들은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인 일곡마을에 유일하게 남은 생태적 공간인 한새봉과 함께 개구리논을 꼭 지키고 싶었다. 개구리논을 지키기 위해서는 논농사를 지어야 했다. 하지만 논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 소수의 도시인들이 농사를 지을 수는 없었다. 이에 한새봉숲사랑이, 광주전남녹색연합, 광주한살림생협, 틔움복지재단이 함께 논의해 ‘두레’를 만들어 마을주민들과 공동으로 논농사를 지어보자는 의견을 냈다. 한새봉숲사랑이, 광주전남녹색연합, 광주한살림생협, 틔움복지재단 네 단체의 논의를 통해 지난 2009년부터 한새봉논두레(이후 한새봉두레)가 만들어졌다. 한새봉두레 회원들은 단순히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한새봉에 있는 개구리논을 공동경작하며 일곡마을 사람들과 함께 물과 흙, 동물과 식물, 햇빛과 바람이 숨 쉬는 공동체 마을을 만들어 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개구리논 농사를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한 한새봉두레 회원들은 2009년 봄 마을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했다. 한새봉두레는 더불어 일하고 놀이하는 생활공동체로서 세 가지 철학을 가지고 있다. 첫째, 건강한 자는 약한 자와 함께 나눈다. 둘째, 자식있는 자는 없는 자와 함께 나눈다. 셋째, 재물이 있는 자는 없는 자와 함께 나눈다. 한새봉두레는 모내기, 김매기, 벼베기 등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벼농사를 함께 짓기 위한 공동노동조직이며 놀이 공동체라 할 수 있다. 모내기와 추수 등 공동으로 개구리논 농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여 술과 음식을 먹고 여러 가지 연희를 곁들여 뛰고 놀면서 농사로 인한 노고를 잊고 결속을 다진다. 한새봉두레는 농업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공동체로 아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과 농업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환경을 살리는 커뮤니티로 역할을 해오고 있다.

논농사에서 자연학교, 꿈틀이농장, 텃밭가게로 재영토화

들뢰즈(Deleuze)와 가타리(Guattari)에 의하면, 우리는 하나의 영토에 살고 활동하지만 가끔씩 현재 살고 있는 영토를 벗어나 새로운 영토를 만든다. 리좀을 이루는 선들은 때로 탈주하며 새로운 선과 연결되고 접속되어 뻗어 나간다. 이때 리좀에서 분할되는 선들은 지층화 되고, 영토화 되며 다시 탈영토화 되어가기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천개의고원』, 22-25쪽). 이러한 영토화, 탈영토화 그리고 재영토화의 과정은 들뢰즈의 ‘노마드(nomad)’적인 사유체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노마드(nomad)’는 떠나는 자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해 나가는 존재’이다(최근정, 2018).

한새봉 개구리논에서의 활동들. by 초록나무
한새봉 개구리논에서의 활동들. by 초록나무

한새봉 숲과 개구리논은 사계절 내내 사람들의 놀이터이자 배움터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논둑길을 걸어가고,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뛰어놀고, 둠벙에 들어가서 멱도 감는다고 한다. 흙으로 물을 막아 미꾸라지를 잡고, 감자와 옥수수 고구마를 구워먹기도 한다. 한새봉두레 회원들은 한새봉 숲과 개구리논의 생물들과 생태변화를 보며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학교를 운영한다. 여름엔 텃밭에서 먹을거리를 구해 직접 요리도 하고 밤에 만나는 곤충과 별도 함께 보는 한새봉 1박 2일 어린이 캠프도 진행했다. 2010년에는 7살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 아이들을 위해 ‘한새봉 개구리교실’을 열었다. ‘한새봉 개구리교실’에 참여한 아이들은 한새봉 숲에 가서 식물, 곤충도 관찰하고 그림도 그리기도 하고, 한새봉 논두렁도 걷고 논에 거름도 줬다. 아이들은 논 옆 작은 텃밭에 오이고추, 참외 모종도 심었다. 한새봉 개구리 교실 엄마들의 모임인 ‘아랫목’은 아이들의 공부와 놀이를 지원하고 품앗이 강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밖에서 놀 때 관찰도구들을 넣고 다닐 수 있는 가방을 만들어 주기도 했고, 각자의 재능을 살려 요리, 요가, 바느질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엄마들이 어린 시절 놀았던 놀이를 전수해주기도 했다. 또 엄마들은 모임을 통해 교류하면서 아이를 좀 더 객관적으로 알아갈 수 있었다. 한새봉두레 논생물 조사팀 회원들은 전문가들과 함께 개구리논에서 사는 다양한 생물들을 조사하면서 다양한 생물종이 건강한 지구를 만들 듯이, 다양한 사람들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공동경작 시기에 맞춰 열리는 한새봉두레의 다양한 마을잔치는 주민들과 함께 마을 공동체의 의미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봄에는 한새봉두레 회원들은 한새봉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에게 경작의 시작을 알리는 ‘고천체(告天祭:하느님께 일이나 행사 따위의 시작을 아뢰는 제사의식)’를 지낸다. 모내기, 김매기, 벼베기를 하면서도 공동경작 마을잔치를 한다. 2010년 10월에는 앞산뒷산지킴이 들의 어울림마당에서 한새봉 바람소리 음악회를 열었다. 12월 두레 성원들에게 쌀 한포대씩 나눠주면서 마을운동회를 개최했다.

한새봉두레 회원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공동경작을 하면서 마을공동체생활을 경험하고 확산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2010년 2월에 꿈틀이농장과 텃밭가게로 광주 마을기업1호점 운영을 시작했다. 마을주민들에게 개구리논 주변 밭을 평당 1만원에 농사지을 수 있도록 텃밭으로 분양했다. 텃밭 운영에는 환경을 생각한 ‘3무 규칙’이 있다. 첫째, 비닐 멀칭 안하기, 둘째 화학비료 안하기, 셋째, 농약 안하기. 직접 사람들이 모를 심고, 김을 매고, 가을걷이도 함께 하는 것이다. 텃밭가게에서는 이 텃밭이나 마을 곳곳에 노는 땅과 옥상, 베란다, 가정에서 주민들이 농사를 짓도록 각종 씨앗, 모종삽, 부엽토, 울타리화분을 판매한다. 꿈틀이농장에서는 밭, 비닐하우스, 상자에서 지렁이를 키우고, 조그만 텃밭에서 어린아이들의 텃밭농사 체험도 하게 한다(박영미, 2011).


  1. 한새봉에 남아있는 네 마지기의 천수답을 이후 개구리논이라 부르게 되었다. 개구리논에서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니 개구리, 도룡뇽, 풍년새우 등 다양한 생물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따라서 한새봉두레 회원들은 논습지에서 함께 살아갈 생물들의 생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논생물 중의 하나인 개구리를 대표로 내세워 ‘개구리논’이라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2. 한새봉숲사랑이, 광주전남녹색연합, 광주한살림생협, 틔움복지재단이 함께 논의해 ‘두레’를 만들어 마을주민들과 공동으로 논농사를 지어보자는 의견을 내어 논의를 통해 한새봉논두레(이후 한새봉두레)가 만들어졌다.

초록나무

다양한 사람을 만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 담긴 삶을 기록해보며 또 다른 삶을 배워가는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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