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토론회 특집] ③ 오래된 미래의 삶, 부엔비비르 –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을 읽고

이 글은 2022년 12월 22일에 '탈성장 전환에서의 생태헌법정신'을 주제로 한 [탈성장 대토론회] 발제문으로 발표된 내용이다. ‘좋은 삶’이란 뜻을 가진 ‘부엔 비비르’는 탈성장 사회를 상상할 때,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구성한다. 자연의 권리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한다. 부엔비비르에 대해 알아보자.

1. 부엔 비비르(Buen Vivir)의 정의1

부엔 비비르는, 안데스 선주민2이 추구하는 삶, 케추아어로 수막 카우사이(Sumak Kawsay)의 스페인어 표현이다. ‘좋은 삶,’ ‘충만한 삶,’ ‘조화로운 삶’을 의미한다. 부엔 비비르와 유사한 개념으로는, 과라니족의 냔데 레코, 에콰도르 아슈야족의 시르 와라스, 칠레 남부 마푸체족의 퀘메 몬젠 등이 있다. 에드아르도 구디나스에 의하면, 부엔 비비르는 개발과 성장을 비판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의미하는 남아메리카의 개념이다. 기원은 안데스 일부 토착 집단의 다양한 개념에서 비롯되었고, 오늘날과 유사한 의미로 쓰인 것은 1990년대로서, 페루에서 관련된 언급을 찾을 수 있다. 이후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에서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구디나스에 의하면 부엔 비비르는 다음의 세 가지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첫째 ‘일반적 사용’으로, 개발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비판에 쓰인다. 기업 행태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진보적 정부의 대안 프로젝트를 대표하는 구호로 쓰였다. 일례로, 에콰도르 키토 시내의 보행자 구역 설치나 베네수엘라의 빈곤층에 대한 현금 지원 등 사회 지원 정책이 부엔 비비르로 분류됐다.

둘째, ‘제한적 사용’으로,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관련된다. 이 경우 대체로 사회주의와 연계되고,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며, 개발에 대한 토론을 동반한다. 자원의 소유권, 자원분배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고유의 견해를 담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가장 잘 알려진 표현은 에콰도르의 ‘공화주의적 생물사회주의’ 또는 볼리비아의 ‘통합 개발’이다.

셋째, ‘실질적 사용’으로, 모든 종류의 개발에 대한 급진적 비판과 연관되며, 탈자본주의 또는 탈사회주의 대안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다. 이들 대안은 토속 지식과 감성에서 유래하며, 다원적·다문화적인 아이디어의 모음으로, 현재 계속 형성되는 중이다. 일반적 사용과 제한적 사용이 최근에 나온 것인 반면, 실질적 사용은 부엔 비비르의 본래 형태이다.

이 중 부엔 비비르의 ‘실질적 사용’이 탈성장 개념과 가장 가깝다. 다른 사용들은 ‘대안적 개발’의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용들은 산업화, 진보, 자연-사회의 이분법이란 아이디어에 의심을 품지 않는다. 이에 비해 실질적 사용은 ‘개발 자체에 대한 대안’을 의미한다. 실질적 사용의 부엔 비비르는 여전히 ‘형성 중’인 다원적 용어이지만, 핵심적인 기초 요소들이 있으며, 그것은 관례적 개발, 개발의 기초, 개발의 제도와 정당화 담론을 급진적으로 비판한다는 것이다. 특히, 모든 국가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개발의 단계가 있다는 사고, 예를 들면 ‘투자하고 생산하는 만큼 성장한다는 믿음’ 등을 거부하며, 역사적 과정의 다양성을 옹호한다. 진보나 복지가 물질 소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생각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한 ‘실질적 사용’의 부엔 비비르는 지식의 다양성을 옹호한다. 단순히 서구 아이디어를 거부하는 것에서 벗어나, 서구 아이디어를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로 여기는 ‘상호문화성’을 지지한다. 또한, 사회와 자연은 분리되지 않으며 다른 생명체와 요소들을 아우르는, ‘확장된 공동체’라는 개념을 내포한다. 즉 부엔 비비르는 확장된 공동체, 상대적인 존재론의 공동체에서만 가능하다. 자연의 고유 가치를 인식하며, ‘인간만이 가치있는 주체’라는 서구의 인간중심적 관점을 무너뜨린다. 띠라서 인류가 자연을 도구화하는 것을 거부한다.

2. 부엔 비비르의 등장과 형성과정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
파블로 솔론 외,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 (착한책가게, 2018)

파블로 솔론에 의하면 부엔 비비르는 아직 확실히 정립되지 않은 개념으로, 많은 과정을 거치며 논의되어 왔지만 아직 하나로 정의된 바는 없으며 지금도 많은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공적 제도에서 언급되는 부엔 비비르는 10여 년 전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며 싸운 부엔 비비르 활동가들이 상상했던 것과 거리가 멀다. 부엔 비비르는 토론과 논란의 장으로, 거기에 하나의 절대적 진리란 있을 수 없다. 또한 부엔 비비르라는 이름으로 진실뿐 아니라 많은 거짓말이 공인되고 있다.

부엔 비비르는 여러 단계를 거쳐 왔다. 30년 전에는 남미에서 그 누구도 이러한 비전을 얘기한 적이 없었다. 당시 남미 안데스 산맥에 사는 선주민의 지식, 실천, 조직을 아우르는 사상체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볼리비아 아이마라족의 수마 카마나, 에콰도르 케추아족의 수막 카우사이 등이 존재했는데, 이는 몇 세기 전에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유사한 개념으로, 과라니족의 ‘훌륭한 삶,’ ‘조화로운 삶’, 에콰도르 슈아르족의 ‘내적 평화와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있는 마푸체족의 ‘조화로운 삶’ 등이 있다. 수마 카마나와 수막 카우사이는 안데스공동체들의 삶의 현실이었고 아이마라족과 케추아족은 인류학자와 지식인들의 연구대상이었다. 한편, 20세기 동안은 이러한 비전이 좌파나 노동운동 조직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부엔 비비르는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에 등장하여 이론화되기 시작했다. 남미에 확산된 미국식 경제체제에 대한 반발로, 수마 카마나, 수막 카우사이가 ‘부엔 비비르’라는 용어로 새롭게 탄생했다. 소련식 사회주의의 실패와 대안 패러다임의 부재, 민영화의 진전, 자연의 상품화로 이루어진 자본주의적 근대화로 인해, 오랫동안 폄하되었던 선주민의 실천과 전망에서 다시 배워야 한다는 각성이 일어난 것이다. 안데스 국가에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적용되어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되었고 그 결과 사회의 계층구조가 변했다. 볼리비아의 경우 한 세기 동안 모든 사회운동 부문의 전위부대 역할을 했던 탄광노동자들이 주변으로 밀려나게 되고, 대신 선주민과 농민들이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고자 한 선주민 부족들의 투쟁은 연대의 물결을 만들어냈고 자신의 영토를 스스로 관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사회주의 붕괴를 목격한 좌파 지식인들은 이 선주민 세계관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부엔 비비르 개념이 탄생한 것이다.

부엔 비비르는 수마 카마나, 수막 카우사이의 의미를 온전히 살린 번역이라 할 수는 없다. 수마 카마나, 수막 카우사이는 자아가 실현된 삶, 온화한 삶, 조화로운 삶, 숭고한 삶, 포용하는 삶, 삶의 지혜와 같은 복합적인 의미를 갖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 용어의 번역어인 부엔 비비르는, 2006년 볼리비아에서 모랄레스3 정부가, 2007년 에콰도르에서 코레아4 정부가 집권할 무렵에도 그 의미가 아직 온전히 정립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 두 나라에서 부엔 비비르가 국가의 새로운 헌법으로 제도화되었고 다양한 규범적 제도적 근거의 축이 되었다. 부엔 비비르는 점차 공식적인 담화의 중심이 되었고 두 나라의 국가발전계획은 이 모델에 따라 만들어졌다.

부엔 비비르가 제도적 차원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토마스 베리의 ‘지구법’과 같은, 다른 비전과 보완적인 대안 개념들이 잇달아 등장했다. 지구법으로 인해, 애초에 부엔 비비르에 없던 개념인 ‘어머니지구의 권리’와 ‘자연의 권리’와 같은 제안들로 발전할 수 있었다. 부엔 비비르의 영향력은 매우 커서 국제적 차원에서는 탈성장, 커먼즈, 생태사회주의 등 일련의 시스템 대안이 이 새로운 비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구디나스에 의하면 부엔 비비르의 가장 중요한 두가지 원천은, 자연의 권리를 옹호하는 환경주의와, 가부장적 중심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돌봄의 윤리를 주장하는 신페미니즘이다.5 즉 부엔 비비르는 서로 다른 유래를 가진 지식의 융합을 대표하며, 단지 ‘토속적’ 아이디어로 한절될 수 없다. 식민주의 분류법에서처럼 하나의 토속 지식이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아이마라 공동체들의 수마 카마나는 에콰도르 키츠바스의 수막 카우사이와 다르다. 이들은 각각의 사회·환경적 맥락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좋은 삶’6이나 다른 서구 아이디어와 관련이 없긴 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근현대적 사고의 영향을 받았으며 새로운 지식과 만나고 교류한다. 따라서 부엔 비비르는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눈으로 현재를 직면하는 것이다. 즉 상호문화적 맥락에서 바라보고 도전을 부추긴다.

구디나스에 의하면, 부엔 비비르는 여러 가지 다양한 입장이, 개발과 근대성에 대한 비판에서 만나는 공통의 플렛폼 또는 분야로 해석되어야 한다. 부엔 비비르는 상호 보완적인 대안들을 제시하므로, 하나의 단위, 학문 분야, 행동 계획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며, 서로 다른 차원에 있는 아이디어와 감수성의 결합으로 봐야 한다. 또한 부엔 비비르는 참여, 평등과 같은 사상과 함께 하기 때문에 서구 용어로 표현한다면 ‘정치 철학’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7

부엔 비비르는 볼리비아, 에콰도르의 새로운 헌법을 만드는데 형향을 미쳤다. 그러나 동시에 개발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을 제한하는 법, 결의안, 정치적 결정이 뒤따랐다. 결국 볼리비아에서는 수용가능한 개발이라는 새로운 형태 즉 ‘통합 개발’로, 에콰도르에서는 독자적인 사회주의적 선택지로 대체됐다.

부엔 비비르가 헌법적 승리를 거둔 순간, 각 나라마다 다른 상황에 구체적으로 적용되면서 새로운 논쟁이 시작되었다. 희망의 원천이었던 부엔 비비르는 논쟁에 들어가며 심각한 견해 차이에 봉착했다. 무엇보다 부엔 비비르가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에 진실로 적용되었는지 의문시되었다. 부엔 비비르는 다양하게 해석되었으며 공식 버전, 재야 버전으로 나뉘기도 했다. 세계은행에서도 통과될 수 있는 온건한 버전과, 반체제적이고 전복적인 버전으로 나뉠 수 있다. 시기가 흐를수록 입장 차이는 더 벌어졌고 현재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의 부엔 비비르 지지자들은 정부가 부엔 비비르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부엔 비비르의 본질은 아직 남아있고 세계에서 다양한 성찰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고 평가된다.

3. 부엔 비비르의 핵심 요소

1) 전체(파차)

파차는 ‘전체’를 일컫는다. 안데스인이 사용하는 이 개념은 종종 ‘지구’라는 단어로 단순하게 번역된다. 그래서 ‘파차마마’를 ‘어머니지구’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파차는 시공간이 분리되지 않고 결합된 훨씬 더 넓은 개념이다. 파차는 끊임없이 운동하는 전체이며, 지속적으로 변화를 거듭하는 우주이다. 파차는 인간, 동물, 식물의 세계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태양, 달, 별이 사는 ‘위 세상’과 죽음, 영혼이 머무는 ‘아래 세상’까지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부엔 비비르에서 전체는 연결되어 있고 전체는 하나이다.

파차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역동적으로 공존하고 상호작용한다. 시간은 공간과 분리된 좌표이며 모든 관찰자에게 똑같이 인식된다는 뉴턴의 역학이 적용되지 않는다. 파차의 세계관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차이는 허상이다. 그런데 그 허상은 아주 끈질기다”라고 한 아인슈타인의 관점과 유사하다. 파차의 관념에서 과거는 항상 현존하고 미래에 의해 재탄생된다.

부엔 비비르의 시간과 공간은 단선적이지 않고 순환적이다. 그래서 성장과 진보라는 단선적인 개념은 부엔 비비르와 양립할 수 없다. 시간의 곡선은 나선형이며 미래는 과거에 포개진다. 모든 진전은 뒤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고 뒤로 돌아가는 길이 진전이기도 하다. 아이마라족의 표현대로 “앞서가고자 하는 이는 늘 뒤돌아본다.” 이런 시간관이 ‘발전’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부엔 비비르에서, 올라가는 운명이란 허상이며 모든 진전은 선회로 이루어진다.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고 모든 것은 변화하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데 모은다.

파치는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지 않는다. 모든 것에 생명이 깃들어 있다고 본다. 생명은 전체를 이루는 서로 다른 것들이 상호작용함으로써만 설명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과 자연의 분리도 없다. 우리는 모두 자연의 일부이며, 전체로서의 파차는 생명을 담고 있다. 인간의 소명은 자연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돌보는 것이다. 어머니지구라는 표현은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사회란 단지 사람들 간의 관계가 아니라 자연과 전체를 중심에 두는 공동체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전체의 공동체 즉 파차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안데스인의 세계관은 ‘전체’의 원칙을 존재의 중심에 둔다.

부엔 비비르는 생명의 모든 측면에 집중한다. 물질적 삶은 생명의 한 측면일 뿐으로, 생명의 본질이 재화와 물건을 축적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우리는 잘 먹고, 잘 자고, 개인적인 믿음을 실천하고, 공동체를 위해 일하고, 자연을 돌보고, 연장자를 공경하고, 우리를 둘러싼 것들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도 삶의 순환이라는 전체의 한 부분이므로, 잘 죽는 법도 배워야 한다. 아이마라족은 사람이 죽은 후 지옥이나 천국으로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죽음은 삶의 한 단면으로, 산맥, 호수, 강물 속에서 생명이 다시 나타난다고 본다. 따라서 전체는 영적인 차원이다. 거기에서 나, 공동체, 자연이 서로 뒤섞이고 시공간 속에서 순환하며 조우한다. 전체를 안으며 사는 것은 온화함과 존중과 자기이해와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 사는 것이다.

파차의 세계관은 다양하고 구체적인 함의를 지닌다. 파차에 따르면 좋은 정책이란 전체를 고려해야지 특정한 구성원이나 요소만 고려해서는 안 된다. 즉 사람, 북부의 부유한 국가들, 엘리트, 물질의 축적 등 어느 한 가지의 이해를 위해 배타적으로 행동하면 전체의 불균형을 불러오게 된다. 모든 정책은 다양한 차원과 서로 다른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고려해서 수립되어야 한다.

2) 다름 속에서 공존

부엔 비비르에서 만물은 반대되는 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원성에 바탕을 둔다. 선과 악은 필연적으로 공존한다. 만물은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한다.8 개인과 공동체는 단일한 실체의 두 축이다. ‘개인들’이 공동체의 공동선을 위해 일하는 조건 하에서 ‘사람들’이 된다. 공동체가 없으면 개인들도 없고, 개별적 존재가 없으면 공동체도 없다. 또한 공동체는 인간 아닌 것으로도 이루어져 있다. 부엔 비비르는 이러한 양극성 속에서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전체 안에서 모순된 다른 요소들과 상호작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존재는 이미 정해진 조건이 아니라 관계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안데스 공동체에서는 사적 소유와 집단적 소유가 공존한다. 이로 인해 차이와 갈등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이러한 긴장 상태를 관리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적 실천을 함으로써 재분배를 이루어왔다. 예를 들면 가장 부유한 이들이 공동체 전체를 위한 축제를 여는 데 돈을 대거나, 때로는 모든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의식이나 서비스를 책임지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협동의 실천도 다양하다. ‘민카’는, 모든 사람들이 공동체를 위하여 협동하며 일하는 것이다. ‘아이니’는, 공동체 일부 구성원들이 다른 구성원들을 도와주고, 대신 도움을 받은 이들은 파종 때나 수확할 때 혹은 다른 방법으로 도와줌으로써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9 안데스공동체에서 큰 행사는 한 개인이나 가족에 한정되지 않고 공동체 전체와 함께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공동체 전체가 축하한다. 결혼은 두 사람만의 결합이 아니라 두 가족 또는 두 공동체의 결합이다. 공동체에서 추방되는 것은 가장 가혹한 징벌이다. 그것은 그 자신의 소속감, 본질, 정체성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부엔 비비르는 무조건적 평등주의가 아니다.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차이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다만 그 차이가 너무 심화되지 않도록 하고 전체가 둘로 나뉘어 불안정하게 되지 않도록 한다. 그리고 그 핵심은 만물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3) 성장이 아닌 균형 추구

부엔 비비르의 목표는 전체 구성원들 간의 균형을 찾는 것이고, 인간들 사이의 조화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물질과 영혼, 지식과 지혜, 다른 문화, 다른 정체성과 현실 사이의 조화를 찾는다. 또한 성장이 아닌, 균형을 추구한다. 균형은 영원하지도 지속적이지도 않은 것으로, 계속 새로운 모순과 이견이 생기고 다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새로운 행동이 필요하다. 균형을 이루는 과정은 역동적이며, 이것이 시공간에서 순환되는 변화와 운동의 주요 원천이다. 인간과 어머니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은 목가적인 생활을 추구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바로 전체의 존재 이유이다. 이 균형은 자본주의가 지속적 성장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안정과 다르다.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안정은 관념적인 것일 뿐으로, 무한한 성장은 오히려 피차를 심하게 흔들어놓을 것이다.

안데스인들은 인간을 소유자, 생산자가 아니라 ‘돌보는 자’, ‘경작자’, ‘촉진자’로 본다. 순전한 생산력을 가진 힘은 자연에서 비롯되며 인간은 어떤 것도 생산하지 않고 창조하지 않는다고 본다. 인간은 어머지자연이 주는 것을 경작하고 기를 뿐으로, 어머니자연이 생명을 주도록 돕는다. 즉 인간은 가교, 매개자 역할을 하며 자연이 준 것을 지혜롭게 경작함으로써 균형을 찾는데 기여하는 존재이다.

4) 다양한 주체들 사이의 상호보완

전체를 구성하는 모순된 요소들 사이의 균형은 상호보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상호보완이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채워주는 것이다. 또한 상호보완은 차이를 전체의 부분으로 보는 것이다. 어떤 구성요소들은 서로 대립할 수 있지만 각각의 존재이유는 전체를 보완하는 데 있다. 차이와 개성은 모두 자연과 생명의 부분이다. 우리 모두는 절대로 같아질 수 없다.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경험과 지식과 생태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본주의는 경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상호보완성에서 경쟁은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누군가 이기고 누군가 진다면 전체의 균형이 깨어지기 때문이다. 상호보완성은 힘의 결합을 통한 최적화를 찾는다. 이 힘이 서로서로 잘 조율될수록 부분과 전체의 회복력은 커진다. 상호보완성은 반대되는 것 사이의 중립이 아니라 전체의 균형을 찾기 위해 다양성이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어떤 집단에 공통의 규칙을 적용함으로써 효율성을 추구하는 대신, 모든 이들의 성공을 위해 가장 불이익을 받는 이들에게 혜택을 주는 비대칭적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5) 탈식민지화

부엔 비비르는 탈식민지화를 위한 끊임없는 투쟁을 지향한다. 식민지는 종지부를 찍지 않았으며 아직도 다른 형태와 지배구조를 통해 식민지화가 계속되고 있다. 탈식민지화란 오늘날까지도 지배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정신적 체제를 해체한다는 뜻이다. ‘영토의 탈식민지화’는 모든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결정함을 의미하고, ‘존재의 탈식민지화’는 우리가 파차와 조우하는 데 방해가 되는 신앙과 가치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엔 비비르를 향한 첫걸음은 우리 자신의 눈으로 보고, 스스로 생각하고, 우리만의 꿈을 꾸는 것이다. 핵심은 우리의 뿌리,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역사와 존엄성을 재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즉 탈식민지화한다는 것은 우리 삶을 되찾고 우리의 지평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현재로 가져와 기억을 역사의 주체로 변화시키자는 것이다.

탈식민지화는 불의로 가득 찬 현 상태를 거부하고, 우리의 상상력을 저해하는 식민지 사고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사물을 깊이 보는 능력을 다시 찾는 것이다. 탈식민지화는 다른 존재(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에게 저질러지는 불의에 대응하는 것이며, 인간과 자연세계에 놓인 상상의 장벽을 허무는 것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바를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며, 다름으로 인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고, 지배적인 시스템과 사고방식이 망가뜨린 역동적이고 모순된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다.

4. 에콰도르 헌법에서의 부엔 비비르10

어떤 세계관을 제도화, 형식화하면 대체로 그것이 담고 있던 비전이 훼손되기 마련이다. 어떤 것은 강조되고 어떤 것은 버려진다.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정부와 에콰도르의 코레아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마카마나, 수막 카우사이는 공식적 담론의 주요 준거 모델이 되었다. 차이를 들자면 에콰도르에서는 권리의 측면에서, 볼리비아는 윤리적 개념으로 부엔비비르를 다루었다. 그런데 두 헌법 모두 부엔 비비르는 개발주의, 생산주의와 공존하며 이것과 연계되어 도구화되어 있다. 자본주의 개발모델의 변곡점이 되지 못한 채 단지 상징적인 의미만을 담았다.

에콰도르의 경우를 보자. 2008년 9월 에콰도르는 자연의 권리 조항을 담은 헌법개정안을 국민투표로 통과시킴으로써 헌법에 자연의 권리를 인정한 첫 번째 나라가 되었다. 2011년에는 에콰도르에서 헌법 조항에 따른 최초의 자연의 권리 소송에서 생태계의 권리를 지지하는 판결이 내려졌다.11

인간들 사이의 조화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물질과 영혼, 지식과 지혜, 다른 문화와 다른 정체성과 현실 사이의 조화를 찾는다.
사진출처 : bri vos
인간들 사이의 조화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물질과 영혼, 지식과 지혜, 다른 문화와 다른 정체성과 현실 사이의 조화를 찾는다.
사진출처 : bri vos

그러기까지의 과정을 보자. 10년간의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을 겪고 난 후 2006년에 코레아(Rafael Correa)가 좌파 지식인, 선주민, 사회운동단체들의 연대에 힘입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대체할 발전 방안을 내놓고자 했고 이를 위해 헌법을 개정하고자 했다. 헌법 개정은 새로운 제정이라고 할 정도의 개정 작업이었고 또한 매우 참여적인 과정이었다. 의회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제출한 3,000건 이상의 제안들을 검토했고, 이러한 참여적 과정은 ‘자연의 권리’ 운동가들에게도 입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자연의 권리’ 지지자들은 주로 선주민, 환경운동가, 환경법률가로서, 이들은 환경 전문변호사로 구성된 단체인 환경보호기금과 협력하여 자연의 권리 조항의 초안을 작성했다.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전 에너지장관인 의회 의장 아코스타가 이 아이디어에 공감하여, 의회 내에서 많은 지지를 받지 않았음에도 최종 헌법개정안에 ‘자연의 권리’ 조항이 포함될 수 있도록 지원하였고, 마침내 2008년 에콰도르 국민이 이를 승인했다. 이로써 2008년 9월 에콰도르는 세계 최초로 헌법전에 ‘자연의 권리’조항을 둔 나라가 되었다.

에콰도르 헌법은 국가와 시민들에게 “자연과 조화하면서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안녕(well-being)을 추구할 것을 명하고 있다. 헌법 전문에서 “자연의 다양성과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시민들을 위한 새로운 양식의 공존질서”를 정립함으로써, 부엔 비비르 즉 ‘좋은 삶의 방식(the good way of living)’을 성취하고자 하는 에콰도르 국민의 의도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자연의 권리’는 독립된 장(헌법 제7장)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다음의 조항을 갖고 있다.

  • 제71조: 생명이 재창조되고 존재하는 곳인 자연 또는 파차마마12는 존재와 생명의 순환과 구조, 기능 및 진화 과정을 유지하고 재생을 존중받을 불가결한 권리를 가진다. 모든 개인과 공동체, 인민들과 민족은 당국에 청원을 통해 자연의 권리를 집행할 수 있다.
  • 제72조: 자연환경이 침해된 경우 그 침해된 자연에 의지해 살아가는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보상의무와는 별도로 자연 자체도 원상회복될 권리를 갖는다.
  • 제73조: 국가는 종의 절멸이나 생태계 훼손 또는 자연 순환의 영구적 변경을 초래할 수 있는 활동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제한조치를 취해야 한다.
  • 제74조: 개인과 공동체, 인민과 민족은 환경으로부터 혜택과 좋은 삶의 방식(the good way of living)의 향유를 가능케 하는 자연의 부에 대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에콰도르 헌법에 따르면 자연은 크게 두 가지의 권리를 갖는다. 하나는, “존재 자체와 생명의 순환과 구조, 기능 및 진화 과정을 유지하고 재생을 존중받을 권리”이고, 나머지 하나는 “회복될 권리”이다.

이러한 에콰도르 헌법에서 주목되는 점은 단순히 자연의 권리를 명문으로 인정하였다는 점을 넘어서, 자연의 보호, 자연의 권리 인정, 자연과 조화하는 삶을 부엔 비비르 즉 인간의 ‘좋은 삶의 방식’으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과 조화하는 삶이 좋은 삶의 방식이라는, 선조들로부터 전승되어온 관념을 에콰도르 헌법이 선언한 것이다.13

이러한 개정 작업이 이뤄지기까지 의회에서 자연권을 둘러싼 논쟁은 치열했다. 인격과 이성이 없는 자연에 권리주체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견해에 따르면 인간만이 권리나 가치의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고, 자연을 보호하는 것은 그것이 주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인간에 이롭고 옳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환경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확대하고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자연권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인간이 상정하는 유용성과 가치에 종속되지 않는 자연의 본원적 가치를 인정하고 여기에서 권리를 가질 권리를 연역해내었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천부적 가치를 가진다면, 인간 이외의 존재들도 그러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또한 에콰도르 선주민들은 인간중심적 관점이 아닌 생명・생태중심의 관점에서 사유했다는 것으로, 수막 카우사이를 말하는 학자들은 인간중심적 권리인 인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권도 존재하며, 이제는 그것이 요청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헌법의 ‘자연의 권리’ 조항은 재판정에서의 승소로 이어졌다. 자연의 권리 조항을 원용한 원고가 승소한 최초의 사례는 빌카밤바 강 사건이다. 로야 지방정부는 환경영향평가를 하지 않고 도로 건설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하천에 버렸는데, 이로 인해 하천 유량이 증가했고 홍수가 발생해 지역 생태계 및 원고의 재산을 침해했다. 이에 원고는 강과 주변 생태계를 원상회복하라며 강의 이익을 위한 소(보호조치 청구)를 제기했다. 2010년 1심 법원은 원고에게 원고적격이 없다며 보호조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은 헌법에 자연의 권리 조항이 있으므로 원고는 자연의 권리를 위하여 제소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원고는 자신의 손상이 아니라 자연의 손상을 증명하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리고 지방정부에 환경부가 특정하는 조치를 통해 생태계를 회복할 것을 명하며 강의 이익을 위한 원고의 보호조치 청구를 인용했다.

또한 메탄가스의 처리설비 설치금지청구 사건이 있다. 2009년 원고들은 양돈시설에서 배출하는 메탄가스의 처리 설비가 헌법상 건강권과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에 대한 권리를 침해한다고 설비의 설치 금지를 요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이 사건에서 원고들이 자연의 권리 조항을 원용하지 않았음에도 법원은 자연의 권리 조항을 직권으로 원용해, 설비 운용을 감시하는 위원회 설치를 명했다. 즉 회사는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는 권리의 보호 차원에서뿐 아니라 회사가 이 지역에 입지하기 전의 상태로 자연이 회복될 권리를 포함한 자연의 권리를 보호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 밖에도 산타 크루즈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자연의 권리 조항을 인용했다.

카야파스 새우 사건은 ‘부엔 비비르’에 초점이 맞춰진 사건이다. 에콰도르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새우생산국으로 사업자들은 강력한 이익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에스메랄다스 지역 내 새우 양식장의 확장은 맹그로브 숲의 상당 부분을 파괴했으므로 1995년 정부는 이곳을 카야파스 생태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보호지역에서 이미 영업 중인 42곳의 회사들의 양식장은 계속 존치를 허용하였다. 이에 따라 새우양식회사와 맹그로브 숲에 생계를 의존하는 지역공동체 간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2008년 정부는 새우양식장을 규제하고 보호지역에서 퇴거조치를 내릴 수 있는 행정명령을 발동하였다. 이에 2011년 한 양식업자가 행정명령의 효력정지를 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원고는 개인의 경제적 이익이 자연에 우선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개인의 재산권의 보호에 관한 헌법을 인용하며, 환경부의 조치는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과 직업의 자유의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항소도 기각되자 환경부는 하급심 법원의 판결은 헌법상 자연의 권리 조항에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헌법재판소에 상고했다. 헌법소송에서 환경부는 개인의 경제적 이익이 자연의 이익에 우선한다고 본 법원의 결정은 헌법 위반이라며, 전체 공동체와 관련되고 또 전국적으로 관련된 현안으로 다루어지는 이 사건에서, 자연의 권리와 부엔 비비르 즉 좋은 삶에 대한 존중의 행사인 행정조치가 허용되는 선례를 확립해줄 것을 요구했다. 2015년 5월 20일 헌법재판소는 자연의 권리와 부엔 비비르는 헌법의 중핵에 해당하므로 재산권을 비롯한 그 밖의 모든 다른 권리의 해석・적용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헌법재판소는 그러한 의미에서 자연의 권리 조항은 ‘횡단적(transversal)’이라고 했다. 특히 이 조항은 인간 존재가 모든 것의 중심이자 척도이고 자연은 단순히 자원의 공급자로 여기는 고전적인 인간중심주의와 대비되는, 자연을 우선하는 생명 중심적 시각을 반영한다고 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하급심 판결을 파기, 환송하며 이번에는 자연의 권리를 고려할 것을 주문했다.

5. 부엔 비비르에 대한 위협들

1) 에콰도르의 Condor-Mirador 노천 채광 사건14

Condor-Mirador 노천 채광 사건에서는 자연을 보호하고자 하는 원고의 청구가 기각되었다. 그 논거를 보면, 하나는 자연의 권리 조항은 보호지역에 미치거나 미칠 수 있는 환경영향과 관련해서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광산회사의 개발이익은 공익이고, 시민사회의 자연보호 노력은 사익이라는 전제에서 전자의 이익이 우선한다는 것이다. 항소심에서도 1심의 결론이 그대로 유지되었는데, 원고들은 자신들이 패소한 이유가 사법부의 독립성 결여에 있다고 보았다. 2010년 대통령의 직속기구인 국가사법비서실에서 작성된 메모가 판사들 사이에 회람된 사실이 폭로된 것이다. 이 메모에 따르면, 헌법에 규정된 보호조치 청구(소송)를 부당하게 남용해 공공사업에 도전하는 것은 특정 이익에 우선하는 일반 이익에 심대한 타격을 의미하는 것으로 국가에 막대한 기회비용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의 개발사업에 반대하는 예방소송을 인용하는 판사는 개발사업의 중단에 따라 초래될 피해를 개인적으로 국가에 배상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지시가 적혀 있었다.

에콰도르는 OPEC의 회원국으로 원유 수출이 전체 수출의 50%대에 육박한다. 따라서 사회 발전을 성취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석유 등 자연자원의 채굴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코레아 정부는 처음에는, 자연을 보전하면서 동시에 사회 발전의 동력을 확보하려는 발전 전략을 시도했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야수니-ITT 구상”으로, 야수니 국립공원의 석유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적 보상을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이 모금되었고, 이에 코레아 대통령은 2013년 공식적으로 이 구상을 포기했다. 그 이후 2016년 에콰도르 정부는 이 지역 일부에 대한 채굴권을 중국 자본에 양도했다. 이 지역은 아마존 선주민들의 거주지와 중첩되는 곳인데 에콰도르 정부는 석유개발지역을 점점 확대하며 주민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자연의 권리와 관련된 소송에서 패소하는 또 다른 요인은 변호사와 판사의 지식 부족이라고 지적된다. 카우프만과 마틴은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대부분 변호사와 판사에게 자연의 권리와 그것의 실현방법에 관한 지식이 결여되었다. 자연의 권리를 유지하려면 일부 사건에서 개인과 기업의 재산권이 제한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대부분의 판사에게 낯선 것으로, 자신들이 지금까지 받은 법 교육에 반한다. 그 결과 시민사회가 제기한 소송에서 판사는 일반적으로 경제개발행위는 자연의 권리에 우선하는 개별적 권리(가령 재산권이나 직업 수행의 자유 따위)에 의해 보호되어야 한다고 판결하고 있다.”

2) 멕시코의 마야철도 사례15

마야인들에게 인간은 불완전하며, 따라서 신을 도우면서 동시에 신의 도움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이다. 신과 인간의 긴밀한 상호 관계는 이 세상의 지속과 인간의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그러한 상호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인간의 노동이다. 마야인들에게 노동은 인간이 신을 위해서 해야 하는 본질적인 행위이다. 이러한 점에서 토지는 마야 선주민에게 신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인간은 토지에서의 노동을 통해서 신과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인간은 땅을 경작할 수 있고, 신은 햇빛과 물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토지에서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일은 신과 인간과 자연의 공동 작업이다. 더구나 마야인은 신이 스스로 음식물을 생산하지 못하며, 인간은 신에게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창조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땅은 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며 인간에게는 존재 이유가 된다. 따라서 마야인들이 토지를 잃는다는 것은 그들이 믿는 신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가 파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주의 질서가 파괴되는 것이고 그들의 존재 자체가 위협당하는 것이다.

마야인에게 있어 개발을 위한 강제이주란, 그들이 유지해온 생명 공동체가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눈앞에 보이는 물질적 혜택보다는 자신들의 정체성이 존중되고 삶의 방식이 유지되기를 원했다. 마야 공동체의 한 주민은 마야철도 건설을 스페인의 정복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외부인들이 자신들의 공동체들의 토지를 침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말하는 마야철도 개발의 혜택이라고 강조하는 일자리들도 그들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철도건설로 그들에게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이 주로 호텔, 식당, 가게 등에서 종업원으로 고용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들의 삶을 개선해주는 것이 아니라, 마야인으로서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상실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서비스업계 종업원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마야인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오는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일에 종사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주변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한 주민이 엘 빠이스지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은 이를 잘 말해준다.

“결국 우리는 항상 그들의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으로 끝난다….왜 우리는 항상 여행자들을 위해서 벽돌공이나 웨이터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철도가 아니라 좋은 대학이나 의료장비가 잘 갖춰진 병원을 원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활동가가 한 말은 마야철도 건설이 궁극적으로 선주민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요약해준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러한 메가 프로젝트가 있다. 우리에게는 심지어 ‘마야’라는 이름을 붙여 우리를 속이기까지 한 이 기차가 있다. … 그것은 우리 자신의 정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훨씬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식민지화이다. 그것을 주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정부이다. 지금 그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선주민을 정복하고 있다.”

철도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마야철도 건설을 마야인에 대한 재정복, 식민화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던 좌파 성향의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2021년 정부 명령으로 미국이 수출하는 GMO 옥수수 수입을 금지시켜 2024년부터 효력을 발휘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미국은 이것뿐 아니라 에너지 문제에 대해서도 반발하고 있다. 멕시코의 에너지 정책이 멕시코 국립 석유사, 전력회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어 미국 회사가 손해를 입고 있다고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16

이러한 상황에서 멕시코는 경제성장을 위해 관광산업을 개발하고자 한 것이다. 관광은 멕시코의 주요 외화소득원으로, 석유 수출, 이주노동자의 송금 다음으로 크다. 그러한 가운데 추진된 마야철도 프로젝트는 주민 의견을 수렴하지도 않았고 경제적 효과도 의심스럽다고 평가된다. 다국적 기업의 참여로 이들 기업만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철도가 지나는 지역의 열대우림과 마야유적이 심각하게 파괴된다고 우려되고 있다.


  1. 부엔 비비르의 정의와 관련하여 다음의 글을 주로 참고했다. 에드아르도 구디나스, “부엔 비비르”, 『탈성장 개념어 사전』, 그물코, 2018.

  2. 지금종은, 언제부터 ‘원래’로 볼 것인지가 애매하므로 ‘원주민’이 아닌 ‘선주민’이란 표현을 쓴다고 한다(“이주민, 이민자, 정착주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제주의 소리』 2015.9.19.) 또한 최형규에 의하면, ‘본래 살고 있던 사람’이란 원주민의 의미는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다. “‘본래’와 ‘새로운’이란 구분으로 인해 원주민과 이주민은 가치관이나 행동에서 뭔가 차이가 날거라 생각”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선주민(先住民)은 먼저 살고 있는 사람”을 뜻하므로 “새로 이주한 사람보다 조금 먼저 살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갈등의 여지가 적고, 차별적인 의미도 없다.” (최형규 『양평시민의소리』 2018.7.27.). 또한 원주민이란 말이 ‘원시인’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선주민’이란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송지용, “대만 청년문화공동체, 능성싱 팩토리 방문기” 『원불교신문』 2018.3.2.).

  3. 2005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인 사회주의 운동당 후보로 출마해 선주민으로는 처음으로 볼리비아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19년까지 집권하여 볼리비아 역사상 최장 집권한 대통령이 되었다.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이뤘다고 평가되지만 무리한 장기집권 시도로 지지율이 떨어지고 결국 2019년 사임한다.

  4. 경제학자 출신으로 2005년 팔라시오 정부에서 경제·재무장관으로 재직하다 세계은행을 격렬히 비판하고 사임한다. 이후 조국주권고양운동을 창당하여 2006년 바나나 재벌로 알려진 에콰도르 최고 갑부 노보아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17년까지 집권했다.

  5.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시민의 덕목, 시민-국가 관계, 시민-시민 관계, 시민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구되었다. 돕슨에 의하면, 세계화와 페미니즘이 자유주의나 공화주의 입장에 포함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시민성을 요청했으며 그것이 바로 생태시민성이다(김병연, 2022, “생태시민성과 생태시민성 교육,” 『생태전환시대 생태시민성 교육』, 푸른길).

  6.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좋은 삶’이란 폴리스(정치공동체)에 속한 삶이다. 인간은 자연상, 본성상 정치적 동물로서 정치공동체에 속해 있을 때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기능과 목적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능이 잘 수행된 삶이 좋은 삶이며 이러한 좋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정치공동체 안에 속해 있어야 한다. 정치공동체는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탁월성을 발휘할 수 있는 필수 요건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윤리학』에서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야기하는 자족성은 자기 혼자만을 위한 자족성,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위한 자족성이 아니다. 부모, 자식, 아내와 일반적으로 친구들과 동료 시민들을 위한 자족성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영혼의 탁월성이 좋은 삶의 핵심적 요소인데, 탁월한 영혼이란, 이성이 욕구를 잘 지배하는 것이다. 이때 이성은 실천적 이성과 지적 이성으로 나뉜다. 실천적 이성의 발휘는 정치공동체에서 공동선과 정의를 찾아내고 이를 추구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지적 이성의 발휘는 전 우주적 원리와 조화를 관조하는 활동을 의미한다(박성우, 2011, “국익 추구의 도덕적 한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좋은 삶의 정치” 『21세기정치학회보』 21집 2호). 고대 그리스 정치철학이 공동체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근대 자유주의와 다르지만, 근대 철학으로 이어진 점은 ‘이성이 욕망을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구의 근대 철학은 이성이 욕망(감각)을, 인간이 자연을, 문명이 야만을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따라서 자연과 조화하는 삶을 좋은 삶으로 보는 부엔 비비르는 이런 점에서 서구 철학과 근본적으로 다르며, 개발과 근대성을 비판하게 되는 것이다.

  7. 구디나스에 의하면, 탈성장은 부엔 비비르의 실현으로 가능한 결과 중 하나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부엔 비비르는 성장에 대한 토론을 사회와 환경적 충만에 대한 토론으로 대체한다. 소비주의를 거부하는 대신 교육, 보건 등 다른 분야의 발전이 경제성장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본다. 탈성장과 달리, 부엔 비비르는 상호문화적 관점으로, 인간, 사회 자연에 대한 현대의 세계관을 바꾼다는 더 야심찬 목적에 따른다.

  8. 동학의 불연기연을 연상시킨다.

  9. 이는 우리의 두레, 품앗이와 유사하다.

  10. 이 장은 박태현의 2019년 논문 “에콰도르 헌법상 자연의 권리, 그 이상과 현실”(『환경법연구』 41권 2호)을 참조했다.

  11. 그 외, 멕시코 Guerrero주도 2014년 헌법을 개정하여 “자연의 권리의 보장과 보호”를 규정했다. 헌법에서 모든 형태의 생명 존중은 자유, 민주주의, 평등 및 사회정의와 더불어 헌법의 근본가치로 언급되고 있다. 또한 2017년 멕시코시티는 자연의 권리에 관한 법의 입법을 명하는 조항을 포함하는 새로운 헌법을 통과시켰다. 법원에서도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2016년 콜롬비아의 헌법재판소는, 아트라토 강이 “보호, 보전, 유지 및 복원”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며, 선주민과 정부로 구성되는 ‘강을 위한 공동 보호기구’를 설치할 것을 명했다. 2017년 인도 우타르칸트 고등법원은 ‘강가’와 ‘야무나’ 강. 빙하 및 그 밖의 생태계를. 특정한 권리를 갖는 법인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2017년 미국에서. 특정 생태계가 자신의 법적 권리에 대한 인정을 구하는 최초의 소송인 콜로라도 강 소송이 미 연방법원에 제기되었다. 뉴질랜드 의회는 2014년 ‘테 우레웨라 법’을 제정했는데 이 법에 따라 테 우레웨라 삼림지역은 법인으로서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갖는 ‘법적 실체’가 되었다. 이어 2017년 제정된 ‘테 아와 투푸아 법’은 황거누이 강에게 법인격의 지위를 부여했다.

  12. 안데스 원주민들에게 신앙의 대상인 영적 존재로 ‘어머니 대지’로 번역된다.

  13. 홍성태・최현・박태현, 2017, 『공동자원론, 생태헌법을 제안한다』, 진인진,

  14. 박태현, “에콰도르 헌법상 자연의 권리, 그 이상과 현실”(『환경법연구』 41권 2호, 2019) 참조

  15. 김윤경, “유까딴반도 원주민 공동체에 대한 마야철도의 영향 분석” 『중남미연구』 41권 4호. 2022

  16. 한국무역신문 “멕시코, 식용 GMO옥수수 수입금지에 미국과 갈등” 2022.11.30.

이나미

한국의 정치이념과 정치사를 주로 연구해왔다. 정의가 구현되고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해법은 무엇인지가 주요 관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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