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에너지 절주’의 시사점 – 현재의 위기에서 탈성장의 실마리 찾기

프랑스 정부는 2024년까지 에너지 소비를 10%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에너지 절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마크롱이 생태 파시스트가 된 것일까? 또는 탈성장론자로 전향을 한 것일까? 그러나 성장과 진보를 기반으로 하는 마크롱 정부에게 ‘탈성장’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금기시된다. 그럼에도 프랑스의 사례는 지금 한국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 그리고 특히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지난 해 여름 이후, 유럽 여러 나라들은 에너지 위기를 현실로 맞이했다. 많은 정부가 에너지 긴축에 돌입했는데, 그중에서도 프랑스는 두드러졌다. 핵발전에 전력 공급의 80% 이상을 의존하는 가운데 몇 가지 이유로 56기의 핵발전소 중 절반이 이상이 가동을 못했고 수입 천연가스 가격은 치솟았다. 가스 비용을 감당 못하는 수영장이 임시 폐쇄되었고 도시의 공공 건물과 기념물의 조명을 제한했다. 겨울이 되자 프랑스 서부 도시 투르에서는 아이스링크를 롤러스케이트장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의 수도로 유명한 스크라스부르의 성탄절 조명도 어두워졌다.

프랑스 정부는 2024년까지 에너지 소비를 10%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에너지 절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사진 출처: Alice Triqu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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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는 2024년까지 에너지 소비를 10%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에너지 절주’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사진 출처: Alice Triquet

에너지 절약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분명한 발언들이 이런 분위기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프랑스 정부가 작년 10월 6일, 2024년까지 에너지 소비를 10%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에너지 절주(sobriété enégetique)’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와인 없이는 못 사는 나라여서일까, 어쨌든 마크롱 대통령과 주요 장관은 두꺼운 코트를 입고 미디어 앞에 나타나서 진지한 표정으로 절주를 요청했다.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은 이를 마리 앙투아네트와 비교하면서 조롱했지만, 그러나 정부의 결심은 얄팍하지 않아 보였다. 사실 2년 사이에 에너지 소비 10% 감축은 만만한 목표가 아니다. 프랑스 정부는 공공건물의 온수를 끊고 난방은 19도 이하로 제한하며, 공무원은 여행시 기차를 타거나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시속 110킬로미터 이하로 운전해야 한다.

지난 여름 극심한 가뭄 이후 물 소비를 줄이는 정책 이름도 ‘일상적 절주 계획’이다. 환경 및 전환부 장관은 물을 1인당 하루 평균 150리터의 물 소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물을 ‘에코와트(ecowatts)’로 측정하고 국가 수처리 시스템을 점검하겠다고 발표했다. 엘리자베스 보른 총리는 온도를 감시하는 ‘경찰’ 같은 것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가정과 기업에도 적극적인 에너지 행동을 요청했다. 기업들은 난방이나 환기 제한, 빈 건물의 조명 끄기, 직원들에게 친환경 실천 교육, 지속가능한 운송 등 16가지의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보른 총리 역시 가스 또는 전기 차단을 겪는 대신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절주’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정부, 특히 마크롱 대통령의 태도 변화에 당황한 것 같다. 마크롱은 2020년에 아미쉬 교도와 같은 생태 모델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조롱했고 가급적 자유 시장을 건드리지 않으려 했던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지난 여름 직후 인플레이션이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하고 많은 사람들이 천정부지의 에너지 요금을 지불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시점에 소비자들이 풍요로운 생활을 중단해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풍요의 종말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마크롱이 생태 파시스트가 된 것일까? 또는 탈성장론자로 전향을 한 것일까? 그런데 잘 살펴보면 그런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일단 최근 프랑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들의 일련의 조치들은 불가피한 대증 요법에 가깝다. 실제로 자원 수급이 어려워지고 가격을 감당할 수 없게 된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슈퍼마켓에서는 겨자소스를 1인당 1병만 구입하도록 권고했는데, 이는 캐나다의 가뭄과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겨자가 품귀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와인 판매가 제한된 것 역시 유럽 유리병 생산의 75%를 담당하는 우크라이나 공장들이 가동을 못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수영장과 아이스링크의 운영 중단은 치솟은 에너지 가격 때문이다.

마크롱 정부에게 ‘탈성장’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금기시된다. 그러한 점에서 ‘절주’는 적게 생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진 출처: Klara Kulikova
마크롱 정부에게 ‘탈성장’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금기시된다. 그러한 점에서 ‘절주’는 적게 생산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진 출처: Klara Kulikova

마크롱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여전하다. 녹색당 의원 산드린느 루소는 미디어에 나와 마크롱이 재임 기간 동안 사실 환경을 위해 한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무작위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 기후 회의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149개 제안을 제출했지만 정부가 수용한 것은 아주 일부뿐이었다. 그리고 프랑스 남서부를 황폐화시킨 산불 동안 마크롱은 제트스키를 탔으니 그는 위선자라는 것이다. 더욱이 성장과 진보를 기반으로 하는 마크롱 정부에게 ‘탈성장’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금기시된다. 그 점을 유의한 보른 총리는 ‘절주’는 적게 생산한다는 의미가 아니며, 난방을 조금 낮추고 불필요한 소비를 피하는 것일 뿐이라고 오해를 정리했다.

때문에 마크롱 정부의 태도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거나 해석을 끌어내는 것은 곤란해 보인다. 북미의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 죠프 만과 조엘 웨인라이트는 『기후 리바이어던(Climate Leviathan)』(2020)이라는 저서에서 자본주의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전체주의적 기후 해법을 추진하는 이념형적 정치 모델을 ‘기후 마오’라고 명명했다. 코로나-19 초기에 중국 우한에서 놀랄만한 속도로 공공 병원이 지어진 사례나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는 중국의 재생에너지와 과감한 기후 조치를 지켜보면 정말 중국의 방식이 기후위기를 해결할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봄직도 하다. 중국이 내건 2060년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는 그야말로 중국이니까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후 리바이어던』의 저자들은 기후 마오의 모델은 집단적 벼농사의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는 동아시아에서만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프랑스뿐 아니라 에너지 위기에 직격탄을 맞은 유럽 각국에서 자본주의 경제와 실용주의 정부에 의해 펼쳐지고 있는 일련의 에너지 긴축과 계획들은 현실의 정부와 정책에서 탈성장의 경로가 부지불식간에 탐색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게 아닐까? 과도한 성장의 문제를 조심스레 지적하지만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정치적 반대파가 공격할만한 과감하고 체계적인 이야기는 회피하는 태도가 바뀌기는 어렵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산업과 부문이 성장하거나 제약되고 대체되어야 하는지, 기후위기와 에너지 위기 속에서 실제로 물질과 에너지의 처리량이 감소하는 경험과 적응이 가능한지를 따져보는 시험대가 되고 있는 게 유럽의 상황이다.

탈성장은 현재에서 발견하고 미래로 이어가야 하는 실마리이자 실뭉치이다. 사진 출처: Lukáš Lehotský
탈성장은 현재에서 발견하고 미래로 이어가야 하는 실마리이자 실뭉치이다.
사진 출처: Lukáš Lehotský

즉 위기가 곧 전환과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더 나은 논의와 실험의 기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비교한다면 한국에서 이번 겨울의 가스 요금 인상을 ‘난방비 폭탄’이라 명명하고 전기 요금 인상을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탓이라고 공격하거나 이를 방어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모습은 상당히 안타깝다. 무엇을 줄여야 하고 바꿔야 하며 그럴 경우 어떤 대책이 필요하고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그야말로 실사구시의 자세로 이야기를 펼쳐가야 한다. 탈성장은 현재에서 발견하고 미래로 이어가야 하는 실마리이자 실뭉치이기 때문이다.

김현우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서 활동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서 10년간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에너지체제의 정의로운 전환과 에너지 민주주의를 연구했으며, 에너지 전환, 도시 정치, 대중교통, 거버넌스의 민주화 등에 관심을 갖고 글을 썼다. 지금은 탈핵신문 운영위원장으로 신문 발간을 돕고, 기후위기를 알리는 교육과 탈성장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안토니오 그람시』, 『정의로운 전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를 되찾자』, 『GDP의 정치학』, 『녹색 노동조합은 가능하다』, 『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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