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가까이] ③ 선물과 상품은 어떻게 다를까?

[지금 여기 가까이] 시리즈는 단행본 『저성장 시대의 행복사회』(삼인, 2017)의 내용을 나누어 연재하고 있다. ‘저성장을 넘어 탈성장을 바라보는 시대에,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 여기, 가까이’에서 찾고자 하는 이야기다.

기억이 가물가물 친구에게 선물을 주었던가?

어느 날 고향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네가 준 선물은 잊을 수 없어”라고 말하였습니다. 제 기억에는 분명 선물을 준 기억이 없고, 어릴 적 저는 동네에서 유명한 먹보요 욕심쟁이였던 터라 신빙성이 없지 않나 싶었지요. 그리고 동창회에서 고향 친구에게 자초지종을 듣게 됩니다. 그 친구의 기억에 의하면 매일 점심을 수돗물로 대신해야 했던 불우한 초등학교 시절 제가 그 친구에게 선뜻 도시락을 내밀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설마…” 그러다가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 보니 분명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매일 화려한 도시락 반찬을 자랑하던 제가 그날따라 김치와 깍두기 반찬만 놓인 도시락이 먹기 싫어졌지요. 그래서 옆 친구에게 먹으라고 주고 저는 축구를 하러 나갔지요. 그게 그 친구였던 겁니다. 저는 진상규명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그 친구의 추억을 지켜주기로 했습니다.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 하나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집에 오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친구가 어릴 적 저를 집에 초대해서 팽이를 깎아주고, 썰매를 만들어주었던 기억이 언뜻 나는 것입니다. 그때 저는 엄청난 선물에 그만 흥분과 감동의 도가니에 휩싸였지요. 그것이 저의 도시락에 대한 보답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도 그 친구는 이따금 수줍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리고 침을 약간 꿀꺽 삼키면서 그 당시 어린이들이라면 다 먹었을 쫄쫄이와 맛땅, 깨독과자 등을 조심스레 내밀곤 했습니다. 그때 저는 입에 넣고 너무도 달달한 느낌에 빠져들면서 그 친구와 함께 들이며 산이며 바다를 돌아다녔지요. 산에 올라 바위 위에 앉아서 제가 가지고 간 『소년중앙』이며, 『보물섬』이며 어린이 만화잡지를 그 친구와 함께 읽었습니다. 당시에는 산이며 들이며 바다는 온통 선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바다에 나가 석화를 캐먹고, 들에서 삘기, 정금, 산딸기 등을 따먹고, 산에서는 칡을 캐다가 씹어댔습니다.

우리는 선물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성숙시켰다

어릴 적에는 세상이 전부 선물로 가득 찬 것만 같았습니다. 제 친구처럼 누군가 어느 순간 불쑥 선물을 내밀 것만 같은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제가 그 후로 경험한 ‘선물을 주고받는 호혜적인 관계’는 대학 동아리 생활할 때, 선배, 친구, 후배들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동아리에서 자신이 읽은 책 중에서 감명을 받은 책이 있으면, 다른 친구나 후배들에게 주곤 했습니다.

사실 그 당시 기억을 하면 재미있는 사건 하나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책을 선물하면, 그것을 받은 누군가가 또 다른 이에게 선물하는 방식으로 선물이 순환되어 가는 과정이 동아리에서 분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물의 주고받는 흐름이 딱 멈추는 곳이 한 군데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건 바로 저였습니다. 2학년에 막 들어간 저는 선배들에게 받을 줄만 알았지, 1학년 후배들에게 주고 것에 익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물이 돌고 돌아 딱 저를 종착지로 끝나곤 했습니다. 그걸 깨달은 것은 동아리에서 MT를 갔을 때, 같은 학번 친구가 “넌 선배에게 많은 걸 받았는데, 왜 후배한테는 인색하냐”라고 말했을 때였습니다. 그후로 저는 과외를 하고, 알바를 해서 후배들에게 밥도 사주고 시집이나 소설책을 선물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만, 받는 습관에만 익숙해서 잘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때문에 제가 대학 때 읽었던 책은 현재 한권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학원에 들어가서는 책을 제가 소장하는 버릇을 갖게 되었습니다. 즉, 책은 선물이 아니라, 나의 소유물이 된 셈이지요. 책에 대한 소유가 생기자, 나만이 알고 있는 것이 생겼습니다. 전에는 책을 돌려 읽고 함께 토론하던 것이, 이제는 책을 혼자 읽는 저만의 독백이 강해졌지요.

그 당시 깨달은 것은 선물이 돌고 도는 과정에서 관계가 성숙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받는 것만 해서도 안 되고, 일방적으로 주는 것만 해서도 안 된다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고받는 과정이 시간 간격을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도요. 사실 부모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용돈을 받고 4일 만에 대부분 술집에 헌납하고 그 나머지 시간 동안은 밥을 얻어먹는 과정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래도 대부분의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그 속사정을 알기 때문에, 재미있고 흥미롭게 마치 선물을 주듯 제게 밥을 사주곤 했습니다.

대학 졸업 직전에 그 많던 동아리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밤은 깊어가고 우리는 소주에 해물탕을 먹고 있었습니다. 어떤 친구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형제보다 끈끈했던 우리 관계에 마침표를 찍고 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예감하듯 어떤 친구는 술에 취해 울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합창을 끝도 없이 불러대기도 했지요. 그리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취업한 친구, 공무원이 된 친구, 농부가 된 친구, 고시 공부를 시작한 친구 모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침 10시까지도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고 있었습니다. 다시 만난다는 기약이 없다는 것, 그토록 서로에게 책 선물을 했던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 둥그런 원형을 그리듯 모여 앉아 세미나를 할 수 없다는 것, 그게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순간의 정적을 깨고 한 친구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불렀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흐느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불렀습니다. 우리는 마침표를 참 아름답게 찍었습니다. 관계가 성숙된 공동체였고, 선물이 오가던 공동체였으니까요.

책 한 권에서 공동체의 추억과 사랑을 느꼈던 시절

군대를 갔다 와서 바쁘게 모색하고 방황하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떤 선배가 동아리 방에 꽂혀 있는 책 한 권을 제게 건네주었습니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많던 친구들 사이를 돌고 돌아 이제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동아리방에 동아리 마크가 꽝 찍혀 있는 책이 되었지요. 그 책은 고인이 되신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이 사형수였던 시절 가족과 동생, 형제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된 그 책이었습니다. 그 책을 건넨 선배는 “네가 가장 필요할 거야, 이제부터 네가 갖고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그저 받아만 놓고 책꽂이에 꽂혀 있던 이 책이 처음으로 눈이 갔던 것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내려가 공부할 때였지요. 대학원에 대한 막연한 전망밖에 없었던 저로서는 사형수로서 죄수로서 메인 몸이 된 신영복 선생님의 처지와 공명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아리에서 책 선물을 주고받던 예전으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비 내리던 저녁때 술을 마시던 친구들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연락처도 없고 초라한 저의 모습을 보이기에도 어렵고 완전히 연락이 끊겨 저 혼자 덩그러니 고향 집에서 독서할 뿐이었죠. 그때는 보기에 좋았던 책은 모두 선물의 대상이 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자기가 읽어보고 좋았던 책은 친구나 후배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죠, 그리고 지금 손에 손을 거쳐 낡은 한 권의 책이 저의 손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축제와 환희, 기쁨의 공동체는 이 낡은 책 한 권에 아로새겨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이후 그 책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학원을 다니면서, 까만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제 책장에서 여러 번 제게 문장의 힘을 선물했습니다. 조용히 읽고 삶의 소중함, 일상의 가치, 사랑의 절절함을 느꼈지요. 그리고 때가 된다면 이 책을 선물할 사람이 등장하리라는 것을 예감하였습니다. 그리고 책장 한 켠에서 10년 동안 아주 낡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책을 주고 싶은 사람이 15년 만에 등장했습니다.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서 채무를 짊어지게 된 B씨가 저의 연구실에서 잠시 머물렀습니다. 그에게 읽으라고 그 책을 건네주었습니다. “왜 감옥이에요?” 약간 놀라면서 B씨는 얘기했습니다. “사연이 있는 책이라, 아마 나중에 힘이 될 거예요”라고 말하며 저는 건네주었습니다. 그 책이 원래 선물이었듯이 다시 선물이 되어 순환하는 것이 아주 기뻤습니다. 아마도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책장에 꽂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도 이 책이 감내해야 할 운명이고, 끝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책 대부분의 내용을 외우거나 느끼고 있는 상황이고, 더욱이 이 책이 처음부터 동아리원들 사이에서 오갔던 선물이었다는 것을 아는 터라 크게 아쉽지 않았습니다. B씨는 쾌활하게 웃으면서 책을 받아서 홀연히 떠나갔습니다. 그가 저를 떠올리며 그 책을 보게 될 순간이 오리라는 가냘픈 낙관이 싹트는 것을 느꼈습니다.

달시장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있다

오래된 물건들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숨어있다. 사진출처 : Paula
오래된 물건들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숨어있다.
사진출처 : Paula

지금은 없어졌지만, 몇 년 전까지 영등포구 하자센터 앞마당에서 달마다 열리는 ‘영등포 달시장’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자신이 가진 낡은 물건들을 내다 파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습니다. 제가 갔을 때 어떤 분이 집에 안 쓰던 물건들을 다 500원을 받고 팔고 있었습니다. 사실 너무 적은 금액이라 혹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제가 궁금했던 것은 이 물건들의 사연이었습니다. 저는 독일어 사전 하나를 집어 들었지요. 그리고 대뜸 “이거 어떻게 쓰신 거예요?”라고 물었지요. 그분은 고등학생 아들이 샀다가 대학교 가면서 쓰지 않아서 내놓았다고 말해 주셨습니다. 책을 뒤져보니 샤프펜으로 직직 그은 부분도 있고, 마카펜으로 표시해 좋은 것도 있고, 여러 번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친 부분도 있었습니다. 제가 추측건대 꽤 독일어에 대해서 흥미가 있었음에 분명하고, 단어를 외우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습니다. 500원이라서 싸서 재미있다가 아니라, 달시장에서 이 사전을 팔던 분이 아들 얘기할 때 지었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못 말린다는 듯한’ 표정이 재미있었습니다.

또 1000원의 가격으로 자신의 아이가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인형을 판매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인형들이었는데, 이제는 아이가 커서 짐만 될 뿐이라고 했지요. 한참 아내가 고르다가 인형 몇 개를 샀습니다. 이유인즉슨 집에 들어온 아기냥이에게 주고 싶어서라는 것입니다. 아이의 인형이라면 추억과 의미가 아로새겨져 있을 법한데, 저희에게 넘겨주면서 찬찬히 저희 됨됨이와 모양새를 탐색하는 파는 분의 눈빛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마치 자녀의 이성 친구를 처음 만난 부모처럼 자신의 정성과 인격, 사랑이 담긴 물건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사실 상품이라고 생각하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랑, 정성, 인격 등과 물건이 아무런 관련도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분명 달시장에서는 옛 선조들처럼 물건을 대하는 것이 참 재미있는 관찰의 포인트이지요.

아기냥이의 인형 사용법은 참 남다릅니다. 앞발로 움켜쥔 채 뒷발로 팍팍 쳐 대서 솜이 나올 지경입니다. 분명 인형에게 스토리와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만 같습니다. 아기냥이가 그런 태도를 취할 때면 가끔 달시장의 달무리라는 판매자들이 떠오릅니다. 물건에 생명력을 부여하던 오래된 원형 공동체의 사람들과 유사한 별종 사람들이라서 말입니다. 오래돼서 좋은 물건이 있습니다. 스토리와 의미, 추억, 사랑, 정성, 인격 등이 담겨 있어서 뻔하게 보지 않게 되는 물건 또한 있습니다. 선물과도 같은 이러한 물건이 우리 사회의 공동체를 순환시키고 재생시키는 소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동체가 살아 있다는 것은 바로 선물이 오고 가서 관계가 성숙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테니까요.

흰 코끼리 나눔의 약속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경제의 영역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사회적 경제의 영역처럼 선물을 주고받는 호혜와 증여의 경제도 우리 사회에서 작동 중입니다. 과거에는 공동체는 판을 짜거나 실천하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들만 모이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공동체는 선물을 순환시키고, 사랑과 돌봄의 흐름을 재생시키고, 배치와 판을 짜는 각고의 노력으로도 만들어지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선물이라는 사소하게만 느껴졌던 물건 하나가 인류재건, 공동체 구성의 원천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어떤 사람은 김영란법을 들먹이며 뇌물이다 뭐다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해관계 없이 사랑과 정동, 돌봄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선물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사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화려한 상품을 사는 이유가 아내에게 애인에게 부모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상품과 선물은 서로 겹쳐 있는 영역을 그려낼 것입니다. 물론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는 분명 시장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1인 가구가 증가하고, 혼자서 놀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고, 우주선 유형의 삶이 자리 잡은 상황에서 공동체를 만들어내야 한다면 선물이 주는 힌트와 단서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릴 적 친구들에게 내밀었던 조립로봇, 그리고 친구가 만들어주었던 팽이, 동네 형이 내밀었던 칡뿌리, 산과 들과 바다가 선물했던 먹거리들 그 모든 것들이 세상에 선물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지요. 지금도 집을 잘 뒤져보면 많은 사람에게 줄 오래된 선물이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벼룩시장에 좌판을 깔고 한 판 선물 주듯 팔아보는 것도 재미일 것입니다. 흰 코끼리 나누기라는 행사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흰 코끼리는 인도에서 신성한 동물이지만, 동시에 아무 쓸모없는 골칫거리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집에서 숨어 있는 애물단지와 같은 물건들은 오래되어서 보관할 장소조차 마땅치 않은 흰 코끼리와 같습니다. 이걸 선물로 나눈다면 어떨까요? 오늘 한번 서랍이며 다락, 창고를 뒤져보세요.

이 글은 『저성장시대의 행복사회』(삼인, 2017) 단행본에도 실렸습니다.

故신승철

1971.7.20~2023.7.2 / 평생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 마지막 4년 동안 사람들 속에서 '연결자'로 살다 가다. 스스로를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라고 소개했다.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