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켓을 든 멸종위기종

기후변화에 대한 현실 밀접성은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 않는 기성세대보다 스스로를 멸종 위기종이라 자처하는 청소년들에게 더 강하게 다가올 수 있다. 눈앞의 이익밖에 보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외면당하는 이슈들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해 청소년들이 직접 거리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환경교육에 대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학교에 왜 가야하냐며 등교를 거부하고,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신속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정부와 정치인들의 각성을 요구한다.

이슈의 현실 밀접성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이슈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사람들은 어떤 일에 대해 주로 관심을 갖고 이야기하기 좋아하는가? 일반적으로 미디어 노출 빈도, 스토리의 다양성, 실생활과의 밀접성, 화제 자체가 갖고 있는 오락성 등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실생활과의 밀접성 같이 자신과 직접 관련된 이슈는 그 영향력이 명료하게 가시화될 수 있는 경우, 풍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방향으로 발전되기보다 크게 찬반논쟁으로 갈라져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쪽으로 흐르기 쉽다. 왜냐하면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입장에 이슈의 구체화된 내용을 대입해보면 실익 여부가 금방 판가름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 밀접성이 높은 이슈라 하더라도 자신의 행동이 수반되어야 하는, 즉 그 행동을 실제로 옮기기 위한 일정 정도의 수고와 희생이 따르는 이슈의 경우 아무리 생활 혹은 생존과 직접 관련된 일이라 하더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이슈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지는 않지만 크게 관련되지도 않은 곳에서 거리낌 없이 찬반양론이든, 다양한 의견이든 펼쳐지며 풍성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과열되기도 한다.

그러한 이슈의 생성과 소멸에 따라 누군가는 자기 역할을 할당받고, 누군가는 은밀한 이익을 가져가고, 누군가는 알게 모르게 손해를 보기도 한다. 또, 하나의 이슈가 부각되는 사이, 정작 실생활과 관련된 더 중요한 이슈가 덮여지기도 하고, 정작 들춰내야할 현실적이고 무거운 이슈들이 자의반 타의반 정체되거나 지연되기도 한다.

아마존 산불 이슈의 거리감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의 정치인사에 관한 이슈가 역사상 유래 없는 미디어의 폭발적 관심을 받으며 회자되고 있는 사이, 지구 반대편 전 세계 생물종의 3분의 1 이상이 서식하고 있는 아마존강 유역에서는 올해 들어 약 10만 건의 산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구 산소의 20% 이상을 생성하는 세계 최대 열대우림 아마존에서는 4주째 초대형 산불이 계속되면서 9천5백㎢ 규모(서울 면적의 15배가 넘는 지역)가 잿더미가 됐고, 그 면적은 아마존 열대우림 생태계의 15~17%에 해당한다. 그 불은 현재까지도 진화되지 않고 1분당 축구장 1.5개 크기에 해당하는 아마존 밀림이 잿더미로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이르 볼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아마존 개발은 브라질의 주권 사항인데도 선진국들이 이를 방해해 국가 발전이 저해돼 왔다”며 산불진화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CNN News “기록적인 속도로 타오르는 아마존 열대우림“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수도인 상파울로뿐 아니라 브라질 전역에서 일어났다. 상파울로에서 시위대는 “파시스트에게 불을”, “볼소나루에게 전쟁을”, “볼소나루 퇴진하라” 등의 구호를 밤늦게까지 외쳤다.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 주요 도시에 있는 브라질 대사관과 영사관 앞에서도 시위와 집회가 이어졌다. 그들은 ‘SOS 아마존’이라는 모토를 내걸면서 “우리의 집이 불타고 있고 지구의 허파가 재로 변하고 있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한 달 째 지속되고 있고, 완전 진화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어도, 우리에겐 말 그대로 며칠에 한 번 정도 잠깐 나오는 짤막한 해외 소식으로 접해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먼 나라, 불구경’ 정도의 이슈거리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피켓을 드는 사람들

지구 생태계 보호를 위해 피켓을 드는 사람들은 굳이 먼 나라까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15부터 전 세계 가톨릭교회는 9월 1일부터 한 달여 기간 동안 생태계 보호와 회복을 지향하며 기도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기간에 관련 행사를 진행되고 있다. 지난 9월 4일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성당에서는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미사가 열렸다.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 강우일 주교 주례로 봉헌된 이 미사에는 남녀 수도회와 각 교구 생태, 환경위원회,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천주교창조보전연대 등 25개 단체가 참여했다.

미사에 앞서 강우일 주교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누이인 지구가 울부짖고 있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호소에 한국 교회도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피조물 위에 폭군으로 군림하는 우리 각자의 삶을 성찰하며, 특히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되기 위한 예언자적 행동에 나서라”고 촉구하고 “환경과 자연 파괴의 가장 큰 피해자는 가난한 이들이므로, 교회가 방관할 것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생태계 현실을 깊이 깨닫고 회심하며, 공동행동의 촉진자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사가 끝난 후 그들 가두행진은 비오는 거리를 가득 메웠다.

피조물 보호를 위한 미사. 가톨릭기후행동 제공

다음 세대의 목소리

종교인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도 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5월 청소년 100여 명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자신을 10년 후 자취를 감추게 될지도 모를 청소년이라고 소개한 한 학생은 “우리나라가 ‘2019 국가별 기후변화 대응지수’에서 100점 만점에 29점으로 조사대상 60개 국가 중 57위를 차지했다”며 “‘기후악당국가’라는 오명을 씻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후변화를 가르치는 환경교육이야말로 입시교육보다 중요한 ‘생존교육’이므로 청소년 환경교육을 필수로 하고, 전문적인 교육이 가능한 환경교사도 늘려달라”고 주장했다.

https://www.facebook.com/SchoolStrike.kr/videos/1221338811370406/
School Strike in Republic of Korea-청소년기후행동 페이스북 페이지

청소년의 기후변화 시위는 이미 유럽 등 전 세계 40여 개 나라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스웨덴의 16살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변화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등교거부 시위를 해온 것이 이슈가 되어 지난해 12월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연설을 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레타 툰베리의 영향은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뉴욕에 거주하는 9살 자이네 코위는 뉴스를 통해 툰베리를 목격한 후, 뉴욕 시청으로 가서 툰베리처럼 계단에서 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하고 실제로 무려 26번이나 시청에서 시위를 벌였는데, 그에 대한 목적도 어느 정도 달성했다. 시의회 의원인 브래드 랜더로부터, 코위의 시위에 대한 대응으로 기후비상법안을 지지했다는 내용의 트위터 멘션을 받은 것이다.

영국에 거주하는 7살의 브리시티 엘라 턴즈는 보다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바로 부모에게 환경친화적인 삶을 살도록 촉구하는 것이었다. 그는 현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를 통해 “어른들은 여전히 음식을 포장할 때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한다며, 재활용이 가능한 재질로 전환해 쓰레기를 덜 배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턴즈의 어머니 안나는 “실제로 이러한 노력이 빛을 보고 있다며, 114개 지역 사회 사업체 중 68곳을 설득, 일회용 비닐봉투와 병, 빨대, 뚜껑이 달린 컵 사용을 중단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전 세계적인 청소년들의 움직임은 특히 유럽에서 활발한데, 독일에서는 지난 2월부터 매주 금요일에 청소년과 청년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거리 시위를 벌여왔다. 또, 지난 6월 21일에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도시 아헨에서 국제적인 시위가 열려 16개국의 청소년과 청년 약 1만 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독일 언론은 이러한 움직임을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정치권의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데, 지난 유럽의회 선거에서 녹색당은 20.5%를 득표해 기사당(기독사회당)·기민당 연합(28.9%)에 이어 2위로 올라서며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슈의 소비에서 생산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현실 밀접성은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 않는 기성세대보다, 스스로를 멸종 위기종이라 자처하는 청소년들에게 더 강하게 다가올 수 있다. 눈앞의 이익 밖에 보지 못하는 어른들 때문에 외면당하는 이슈들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해 청소년들이 직접 거리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환경교육에 대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학교에 왜 가야 하냐며 등교를 거부하면서,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신속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정부와 정치인들의 각성을 요구한다.

다음 세대의 절박한 외침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산적해 있다는 핑계로 가십과 이슈의 모호한 경계를 오가며, 분주해 보이는 현재의 화제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중요한 이슈이긴 하지만 아직 나에게는 직면하지 않았다는 막연한 비현실감은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진실과 허위를 구분하지 못하고 믿고 싶은 것만, 선호하는 것만 취사선택하는 빈약한 정보 선택능력에 기인한 것은 아닌지. 그것은 다양하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패턴화된 이슈 소비자로서의 발상이며 위에서 살펴본 여러 이슈 생산자들, 자신에게 닥친 현실에 대해 주변의 평가나 효과를 두려워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들의 행동과는 거리가 멀다. 고단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위해 이야기꺼리로 소비되는 것은 진정한 이슈가 아닐 것이다. 비록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그닥 선호하지 않더라도 관련도가 매우 높고, 때로는 강력한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이슈이며 바로 이러한 곳에 귀기울여 달라고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특히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종용하고 있다.

참고

노마드

혼자 또는 같이 공부하고 토론하고 소소하게 실천하는,
평범하게 살지만 주변에서 잘 볼 수 없는,
색깔이 분명해 보이지만 무엇보다도 투명함을 지향하는,
분자적 노마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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