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재조직화와 재생산노동, 『혁명의 영점』을 읽고

여전히 자본축적의 자양분 역할을 하고 있는 ‘여성의’ 재생산노동은 현대 생산의 새로운 특질이라고 일컬어지는 정동노동의 부상과 새로운 형태의 노동가치 이행 속에서도, 모티브적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고 타자화된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제까지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은 없지만, 오히려 그 이유 때문에, 모든 노동의 재구조화는 재생산 노동의 재구조화라는 큰 축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불확정성 시대와 행정의 전환

우발적인 상황은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무조건 피해야 하는지 아니면 때로는 무릅써야 하는지,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성질의 것인지에 대한 의문과 갈등을 끊임없이 품게 한다. 내일이 오늘만 같을 것 같고, 아니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것 같고, 그 다음날도 크게 다르지 않은 속도와 양상으로 펼쳐질 것 같은 기대를 점차 줄여가야 하는 시대를 맞고 있는 것 같다.

가속주의와 탈자본주의

가속주의는 편협한 상상력으로 일관하며 스스로의 모순 이상의 문제들을 만들어낸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하여,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동력을 자본주의 안에서 추출해내며 그 동력들의 변화 양상을 포착하고 그를 위한 새로운 계급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가속주의를 실행하는 동력학적 요소들과 작동형태를 짚어낸다.

피켓을 든 멸종위기종

기후변화에 대한 현실 밀접성은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 않는 기성세대보다 스스로를 멸종 위기종이라 자처하는 청소년들에게 더 강하게 다가올 수 있다. 눈앞의 이익밖에 보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외면당하는 이슈들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해 청소년들이 직접 거리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환경교육에 대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학교에 왜 가야하냐며 등교를 거부하고,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신속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정부와 정치인들의 각성을 요구한다.

한 끼의 음식에 담긴 세계

음식이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먹는 행위가 ‘우리가 좇는 중요한 즐거움 중의 하나’라는 것 이상임을 경험하게 된다. 음식은 생태계의 순환원리, 기후 변화, 자본의 지배와 부의 불균형, 조상의 지혜, 신화와 전설 등 무수히 많은 요소들의 총화이다.

생태계의 신호와 커뮤니케이션

셀 수 없이 많은 기후변화의 신호들이 쌓여가고 있지만, 그 속에서 실제 일어나는 인식의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하다. 기후 변화라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너무나 많고, 또 그 시스템적인 성격으로 인해서 요소들 간의 관계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탈정상과학의 시대에 점점 그 영역이 늘어나는 과학적 불확실성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가 될 것이다.

『마음의 생태학』 표지(부분). 사이버네틱스적 순환성을 표현한 이미지.

생태학적 지혜와 마음

베이트슨은 생태학, 인류학 등을 통해 마음의 본성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정신적 과정은 항상 물질적 표현을 가지고 있으며 신경계의 복잡성은 마음의 복잡성과 관계있다는 것이다. 목적적 사고는 매우 제한된 의식을 설정하는 것에서 비롯되므로, 목적을 설정하는 ‘제한적’ 의식에는 상호의존에 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환경 위기와 관계의 위기

구경꾼과 사건 사이에는 일정하게 왜곡된 거리(관계)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사건과 구경꾼화된 대상 사이에 소외를 만들고 구경꾼이 계속 구경꾼인 한에서 사건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관계에 대한 직시와 회복이 전지구적인 위기상황에 직면해서 마지노선에 이른 것이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