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農) 가치 위에서 누리는 더불어 가난
2023년에 출판된 글 「탈성장 전환에서의 토지개혁과 토지공유제」1 속에 신승철은 다음과 같은 글귀들을 남겼다.
“탈성장은 화폐의 풍요로부터 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불온한 ‘더불어 가난’ · ‘함께 가난’ 속에서의 커먼즈 운동으로부터 올 것이다. 이에 따라 토지공유제라는 하나의 단상이 설립된다.”2
신승철은 ‘더불어 가난’을 탈성장의 기반인 동시에 목표로 본 듯하다.
같은 글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도 들어있다.
“탈성장 전환사회를 위해서는 농업 중심사회로의 이행과 수많은 농(農)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유명무실화되고 있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넘어 ‘토지공유제’라는 획기적인 정책으로 이행을 논의하기 시작해야 한다.”3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신승철은 농사와 그에 연관된 행위들이 가치의 궁극적 원천이라고 생각한 듯하고, 가치들의 부침 속에서도 농업과 그에 연관된 행위들이 부침의 진폭이 가장 무의미해지는 가치창출 분야로 지속되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예측한 듯하다.
2022년 봄에 열린 《요산문화축전》에서 했던 강연과 2023년에 출판된 글 「탈성장 전환에서의 토지개혁과 토지공유제」 속에 신승철이 ‘농(農) 가치 위에서 누리는 더불어 가난’을 성장 신화 종말 이후 시대 인류의 살림살이로 제시한 후, 2026년이 되기까지, 시간은 겨우 4년여가 흘렀지만, 그 사이 일어난 변화는 전에 없이 빠르고 강하였다. 한 달 뒤를 예견하기 어려워진 2026년 봄이다. 이런 시간 속에서도 ‘농(農) 가치 위에서 누리는 더불어 가난’은 생각해 볼 만한 살림살이 모습으로 남아있다.
빌려주기[rent]

사진출처 : Photos of Korea
신승철은 성장을 낙관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려고 한 주장인 현대화폐이론[MMT: Modern Monetary Theory]을 검토한다. MMT는 정부가 재정 적자나 국가 부채에 구애받지 않고 화폐를 대대적으로 풀어서 완전고용·그린뉴딜·기본소득 등 대안적이라고 볼 수 있는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는 주장이다. 이는 비주류 경제 이론으로 분류된다.4 신승철은 MMT가, 자본이나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에게 유리한 화폐 질서가 아니라, 시민자산으로 직접 쓰일 수 있는 화폐 질서를 구상한 것이라는 점에서 대안운동 세력의 여러 가지 상상력을 자극하지만5, 통화량 급증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옴을 지적했다.6
나아가 신승철은 현 단계의 자본주의가, 생산활동을 통하여 이윤(interest)을 창출하는 것으로부터, 토지·부동산·공간(Space) 등을 장소(Place)로 만들거나 인식시킨 후 그것을 빌려주는 대가로 지대(地代)[rent]를 취하는 것으로, 자기보존동력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고 본다. 신승철은 이 변화와 관련하여, MMT를 전환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이는, 체제와 시스템 전반을 바꾸는 능동적 전환(transformation)이 아니라, 이를테면 위치 이동이나 자리바꿈 수준에 지나지 않는 수동적 전환(transition)인데다가, 부동산 가격의 가파른 상승이라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수반하는 단기적 처방이라고 보았다.
신승철은 자본주의가 인지자본주의[Cognitive Capitalism] 단계를 거쳐 정동자본주의[Affective Capitalism]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 또한 빌려주기[rent]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인지자본주의는 지식·감정·소통·정보 등을 주요 생산 요소로 삼아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플랫폼 기업들이 사용자의 활동과 데이터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정동자본주의는 플랫폼 기업이 사용자의 자발적인 데이터 생성과 경험 공유의 동력인 동시에 결과이기도 한 감정·욕망·기쁨 등 정동[Affect]을 활용해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신승철은, 플랫폼에서 웃고 즐기고 향유하다 보면 그 이득은 모두 플랫폼이 가져가는 시스템으로, 정동자본주의를 설명하고, 정동자본주의는 곧 플랫폼자본주의[Platform Capitalism]라고 고쳐 부르면서, 전 존재의 연관 속에서 발생하는 생명력·활력·힘의 흐름인 정동[Affect]을 플랫폼이 볼모로 잡고 있는 모습으로 플랫폼자본주의를 상상하도록 하였다.7
신승철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코드의 잉여가치가 아닌 흐름의 잉여가치(surplus of flux)가 핵심적인 작동원리가 된다. 흐름의 잉여가치는 정동의 흐름 자체가 권력이자 자본이기 때문에, 흐름이 형성되는 판의 주도권을 자본이 가지려는 상황을 의미한다. 원래 흐름의 잉여가치는 대안운동 세력의 것이었지만, 플랫폼은 버젓이 공동체와 유사한 판을 깔면서 영업을 하기 시작한다.”8
달리 말하자면, 플랫폼 기업은, 모아 쌓아놓은 코드로 장사를 하는 것에 더하여, 흐름이 만나고 스쳐가고 판을 벌리고 그것을 빌려주기[rent]를 통하여 장사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더하여 상상하여 볼 만한 것은, ‘판과 마당을 제공하는 자’에게는 물적 세계와 활력을 교환하는 노동을 할 기회가 극히 적다. 그는 물적 세계를 이해할 능력이 심하게 약화된 자일 수 있다. 물적 세계의 변화에는 기후위기도 포함된다. 플랫폼 기업은 기후위기를 애써 숨길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였다고 볼 수 있다. 플랫폼 기업은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사용하지만 에너지 생산이 물적 세계를 변형시킨 결과라는 것은 추상적으로만 이해하는 위치에 있으며 그 추상적 이해조차 플랫폼 사용자들에게 가 닿게 하는데 시간과 능력을 할애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 2026년의 어느 ‘오늘’, 나날이 성능이 향상된 AI가 나오고 있는 급변 속에서, AI 기업들이 처한 위치는 바로 ‘어제’의 플랫폼 기업들의 위치와 다를 바 없다.
빌려쓰기[rent]
2022년, 판 빌려주기[rent]를 통한 장사로 요약되는 플랫폼 자본주의가 이미 다 익었을 때, 요산문화축전의 강연에서 신승철은 빌려쓰기[rent]를 제안했다. 신승철은 “토지는 만인을 위한 공동 자원[commons]”9이라고 단언한다. commons(커먼즈)는 공유지·공동자원·공통장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커먼즈 개념은 자본주의 본격화 이전에도 있었으나, 특히 15세기 말~19세기 영국에서 공유지나 농지에 울타리를 쳐 사유지화한 ‘울타리 치기’ 즉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에 맞서 삼림·하천·갯벌·우물 등을 공유자산으로 보존하기 위한 저항운동을 설명하는 데 동원되면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말이 되었다.10 역사 속에서 토지가 인간 문화의 번영과 삶의 양식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11 그런데 역사는 토지를 인간에서 떼어내고 사회 전체를 부동산 시장의 작동 조건을 충족하는 방식으로 조직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칼 폴라니12는 이 과정이 시장경제라는 유토피아적 아이디어의 절대적 핵심이라고 하였다.13 그 러던 땅·토지·부동산이 21세기 남한에서는 “사회계급의 상승을 위한 위치재(位置財)[Positional Goods]14”가 되어 그것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를 급격히 벌려왔다. 또한 21세기 남한에서는, 짓기·사고 팔기·빌려주기 등 땅·토지·부동산을 가지고 하는 장사의 몇 가지 유형 가운데 하나인 빌려주기의 얼개가 플랫폼 기업의 판 빌려주기에서 답습되는 것을 넘어 더 정교하고 광범위하게 행하여지고 있다.
이러한 부동산 분야의 빌려주기에 잠복한 인화성을 제거하기 위하여 신승철이 제안한 것이 공유(公有)아닌 공유(共有)이다. 신승철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공유(公有)는 국가 소유로서의 사회주의 사상에 따른 개념으로서 엄밀한 의미에서 공동체의 자율적인 규칙 하에 있는 공유(共有) 질서에 따르는 개념인 커먼즈와는 다르다.”15
“여기서 커먼즈는 공동이용(sharing)의 원리보다는 공동소유(commoning)의 원리에 따라 공동의 규칙을 공유하고 공동 관리하던 공유지라고 할 수 있다.”16
“특히 국가 소유로서의 공유(公有)의 폐해는 사회주의 국가의 모습이 산업 사회와도, 또 성장주의와도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보여주었으며, 관료제 지배층(官僚制 支配層)의 사적 소유의 또 다른 버전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17
위의 인용문들에 보이는 신승철의 생각은 먼저 공유(公有)와 공유(共有)를 다음과 같이 대비시켜 봄으로써 정리하여 볼 수 있다.
공유(共有) – 공동이용[sharing]이 아닌 공동소유[commoning] / 토지공유제(土地共有制)
공유(公有) – 국가 독점 / 토지공개념(土地公槪念)
신승철은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공유(共有)의 가능성을 믿은 듯하고, 공유(公有)는 결국 국가 독점이며 그마저 실제적으로는 지배집단의 사적 소유로 귀결되는 것이라고 추정한 듯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공유(共有)를 일종의 빌려쓰기[rent]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발상은 미래의 후손을 공유(共有)의 당사자에 편입시키는 생각에 다름 아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이 공유의 당사자라면 지금 실물 땅·토지·부동산을 사용하는 것은 후손에게 빌려쓰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왕토(王土)·정전(井田)·총유(總有)·경자유전(耕者有田)

사진출처: insung yoon
신승철이 제안한 공유(共有) 혹은 빌려쓰기[rent]가 남북한을 망라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완전히 낯설거나 거부감을 유발하는 것은 분명 아닐 듯하다. 왜냐하면, 조선의 지배이념이었던 유교의 경전에 공유(共有) 혹은 빌려쓰기[rent]를 연상하게 하는 토지 관리의 방식과 대전제가 명시되어 있어서, 유교문화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 어려운 한국인들은 부지불식간에 공유(共有) 혹은 빌려쓰기[rent]를 친근하게 느낄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교문화 속 토지제도가 공유(共有)를 본질로 한 것인지는 좀 더 세밀하게 따져보아야 할런지도 모른다.
유교 경전이자 시집인 『시경(詩經)』에 실려있는 주나라 초기의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데가 없다[普天之下 莫非王土]”
이는 문자 그대로 세상의 모든 땅은 왕의 것이라는 뜻이다. 이 구철이 보여주는 것을 왕토(王土) 관념이라고 한다. 이 관념은 오랫동안 중국에서 이상적 토지 제도론을 뒷받침하여왔다. 또한 민국 이전 역대 왕조에서 왕은 곧 국가였으므로, 왕토(王土)는 국유(國有)로 볼 수도 있었고, 공유(公有)라고 할 수도 있었다.
또한 유교 경전 『맹자(孟子)』와 『주례(周禮)』에 정전제(井田制)라는 토지제도가 언급되어있다. 한국 역사에서는, 조선조가 건국될 때 정전제가 토지제도 개혁의 명분으로 들먹여지면서 모형으로 참고되기도 하였고, 임진 병자 양대 전쟁 이후 토지제도 개혁론이 논의될 때 명분으로 동원되었다. 이 토지제도는, 토지를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9등분하여 가운데를 공전(公田) 나머지 8개 구역을 사전(私田)이라고 하고, 8가구가 각각 사전을 받아 경작하여 그 수확물은 농민이 소유하고, 공전은 8가구가 공동으로 경작하여 그 소출을 모두 세금으로 국가에 바치기로 한 것으로 경전에 묘사되어있다. 이는 농민이 농사를 짓고 상당량의 소출을 사유하는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여주는 제도처럼 보인다.
유교가 국교였던 조선의 경우, 정전제는 건국 시기의 정치가들이 전 토지를 국유화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사람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주는 제도를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실상에 있어서 조선의 토지제도는, 국가가 수조권(收租權) 즉 토지에 대한 조세 징수권을 가지고, 농민은 경작권을 보장받는 체제로 출발하였음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서 토지의 사적 소유과 세습 그리고 소작 관행이 발생하여 장기간 고착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위와 같은 조세 이외에도, 조선에서는 조세에 공납과 역[군역/요역]이 더하여져서, 수취체제(收取體制) 즉 국가가 재정 확보를 위해 사람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체제가 형성되어 작동하였다. 그래서 조선에서 사람들이 책임져야하는 조세 부담은 농지와 관련된 조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과중한 것이 되어갔다. 소작농들은 수확물의 절반 이상을 지주와 관아에 바치고 공물을 부담하고 부역까지 지는 것이 실상이었다고 하기도 한다.
이제까지의 설명만을 보더라도 왕토(王土)·정전(井田)과 신승철이 제안하는 공유(共有)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공유(共有)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변화를 꾀하려면, 그런 지향성과 왕토(王土)·정전(井田)이 상징하는 유교문화 속의 토지관념 사이의 차이점을 가급적 섬세하게 다뤄야 할듯하다. 이렇듯 신승철은 차이점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유교문화와 연관된 전통 속에서 자신이 제안하는 공유(共有)와 미약하나마 공통성을 가진 총유(總有)를 찾아내기도 하였다. 신승철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한국 전통에서 동유재산 혹은 총유(總有)는 문중자산을 의미하며, 공동의 관리와 공동의 규칙에 따라 운영되어 온 관습법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커먼즈로서의 토지공유제에 대한 역사적인 상상력을 발동시킨다.”18
총유(總有)[Collective Ownership of Property]는 교회·종중·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등 법인격이 없는 사단의 구성원들이 집합체로서 물건을 소유하는 공동소유 형태이다. 각 구성원[사원]의 지분이 인정되지 않아 분할 청구가 불가하며, 총유물의 관리·처분은 정관이나 사원총회 결의를 따라야 하도록 되어있다. 총유는 개인의 권리보다 단체의 목적이 최우선되는 공동소유 형태라 볼 수 있다. 신승철은 분할처분이 불가능한 총유의 성격과 공유(共有) 사이의 공통성을 인식하고 총유가 커먼즈로서의 토지공유제에 대한 역사적인 상상력을 발동시킨다는 점 또한 지적하였다.
지대 추구 추세를 멈추게 할 수 있는 전통적 문화 기반으로 왕토(王土)·정전(井田)보다 더 많이 언급되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출처는 유교 경전이나 동북아시아 고전이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이다. 1948년 제정된 대한민국 제헌헌법은 제86조에 농지의 농민 분배와 소작 제도 금지를 명시하였다. ‘경자유전(耕者有田)’ 즉 농사짓는 사람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음이 원칙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1949년에는 농지개혁법이 제정되고 유상매입-유상분배 방식을 통해 농지를 실제 농민에게 이전하여, 대지주 중심의 토지 구조를 해체하였다. 이후 경자유전은 대한민국 헌법 제121조 1항에 명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한국전쟁과 산업화 등 급격한 변화를 거치면서 경자유전 원칙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한국사회의 성격을 한 번 크게 바꾼 원칙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신승철은 경자유전 원칙이 사유(私有)에 기반한 토지정책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이미 드러냈음을 지적한다.19 신승철은 사유(私有)와 공동소유[commoning] 사이의 차이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데에는 미치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경자유전 원칙과 왕토(王土)·정전(井田)으로 구성되는 토지관념을 구분해서 이해하면서 경자유전 원칙의 한계뿐만 아니라 의의 또한 시사하였다.
정리하여 보자면, 신승철은 공유(共有)를 제안하는 과정에서, 유교문화 전통 속 토지관념을 대표하는 왕토(王土)·정전(井田) 관념의 한계와 오류를 명확히 지적하지는 않았으나, 총유(總有)·경자유전(耕者有田)과 공유(共有)사이의 미세한 접점을 찾아내어 탈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공유(共有)로 한발짝 더 다가가는 길을 열고자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서구 근대문명을 추격하여 온 남한 사람들이, 서구문명의 연장선상에 있는 성장주의에서 벗어나 탈성장의 길을 간다는 것은, 가혹한 자기성찰과 발상의 대전환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때 성찰의 최우선 대상의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남한 사람들의 내면에 무의식처럼 침착(沈着)되어있는 전통적 사고 특히 유교적 무의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승철의 글 「탈성장 전환에서의 토지개혁과 토지공유제」는, 토지에 대한 애정과 정동(affect)에서 돌봄과 살림이 발현할 수 있음을 주장20하고, 탈성장이 ‘농(農) 가치 위에서 누리는 더불어 가난’을 지향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누구도 함부로 상품화할 수 없는 커먼즈로서의 토지를 공유(共有)할 수 있는 권리의 향유를 보장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비록 그것들이 실낱 같은 것들임에도, 찾아내서 부각시키려 한 글이다. 이에 더하여, 이러한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남한 사람들의 무의식에 쌓여있는 듯한 유교와 전통문화의 유산들이 신승철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부딪치거나 어우러지는 양상을 파악하려는 긴장을 늦추지 않은 것 또한 의미 있을 것이다.
신승철, 「탈성장 전환에서의 토지개혁과 토지공유제」,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기획), 『탈성장을 상상하라: 성장 신화의 종말과 이후 시대』, 서울: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2023-06-05, 31~60쪽. 「탈성장 전환에서의 토지개혁과 토지공유제」는 2022년 봄에 열린 《요산문화축전》에서 신승철이 했던 강연을 글로 정리한 것이다. 위와 같은 책 31쪽 참조.↩
위의 책. 45쪽. ↩
위의 책. 32쪽. ↩
위의 책. 40쪽 참조. ↩
위의 책. 41쪽 참조. ↩
위의 책. 42쪽 참조. ↩
위의 책. 46쪽 참조. ↩
위의 책. 47~48쪽. ↩
위의 책. 34쪽. ↩
위의 책. 34쪽 참조. ↩
위의 책. 34쪽 참조. ↩
Polányi Károly(폴라니 카로이)[헝가리어] / Karl Polanyi(칼 폴라니)(1886~1964). 《위키백과》, ‘칼 폴라니’ 참조.↩
칼 폴라니, 홍기빈 (옮김), 『거대한 전환』, 길, 2009, 465쪽 ; 신승철, 「탈성장 전환에서의 토지개혁과 토지공유제」, 33~34쪽 참조.↩
신승철, 「탈성장 전환에서의 토지개혁과 토지공유제」, 33쪽. ↩
위의 책, 37쪽. ↩
위의 책, 36쪽. ↩
위의 책, 37쪽. ↩
위의 책, 54~55쪽. ↩
위의 책, 58쪽 참조. ↩
위의 책, 5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