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통신] ① 만화리 통신이 시작되는 곳, 비조마을회관 가는 길

집을 나서 마을회관까지 가는 길에 만나는 마을사람들과 마을풍경입니다.

현관문을 열면 마당입니다. 대문 없는 대문을 나서면, 앞집은 계촌 할머니댁입니다. 아주 용감한 할머니입니다. 제가 이 마을에 이사 오고 한 달도 되지 않았을 때, 열어둔 현관으로 뱀이 들어온 적이 있습니다. 뱀을 보고는 놀라서 정신없이 거실 창문으로 뛰쳐나가 맨발로 앞집으로 갔습니다. 평상에 앉아계신 할머니한테 큰일 났다고 얘기했더니 쫓아주셨어요. 그날 한참동안 집에 들어갈 생각도 못하고 할머니네 평상에 앉아 엉엉 울었더랬습니다. (지금은 길고양이가 거의 집고양이가 되어서 지켜줘서 안 나와요)

마당에 살면서 파수꾼 역할을 해주는 길고양이가 올 봄 아기를 낳았습니다. by 김진희 (2020.6.18.)
마당에 살면서 파수꾼 역할을 해주는 길고양이가 올 봄 아기를 낳았습니다.
사진 출처 :김진희 (2020.6.18.)

담장을 따라 몇 걸음 가면 본동 할머니가 깨밭에서 깻잎을 따고 계십니다. 깨밭 한가운데 파라솔을 펼치고 썬캡에 긴팔 옷을 입고 낮은 의자에 앉아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면 어디가? 하고 물으십니다. 마을회관에 청소하러 가요.(사실 5년째 청소 중) 하고 답하며 가는데, 가끔은 비가 제법 오는데도 밭일을 계속 하셔서 옆에 앉아 우산을 씌워드립니다. 그러면, 요것만 따고 갈 거다. 니 일봐라. 하십니다.

또 몇 걸음 가면 석순아지매네 백구가 짖습니다. 자주 보니 이젠 낯이 익을 만한데도 짖는 걸 보면, 집을 잘 지키나봅니다. 골목이 꺾어지는 곳에 전에는 큰 감나무가 있어서 감꽃이 떨어지면 어릴 적 생각이 나곤 했는데, 지난 해 무너진 담장을 수리하고 창고를 손보면서 없어졌습니다. 지금도 하늘을 올려다보면 여름 햇살에 반질반질 윤이 나면서 푸릇푸릇하던 잎들과 늦가을 홍시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조심해서 내리막길을 가면 작은 오거리가 나옵니다. 동쪽으로 가면 개울을 따라 조리대가 있던 길(아! 키가 작던 조리대는 사방공사를 하던 어느 날 이후 찾아볼 수 없습니다)은 산으로 이어집니다. 북쪽으로 가면 3년 전 이사 온 개구장이형제 정후・정민이네 집과 그 위 언덕으로는 대추할아버지, 벌할아버지댁입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댁에서 본 걸로 별명을 짓습니다) 남쪽은 축대가 쌓인 길인데, 올해 여름이 되기 전만 해도 하늘높이 자란 키 큰 대나무가 터널을 만들어주던 길이었습니다. 마을회관으로 가는 길은 서쪽입니다. 그곳엔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 한 채 있습니다. 대문자리에 엄나무가 자라고 마당엔 풀이 우거져 있습니다. 지난해엔 초등학생 아이들과 마을탐험을 할 때 빈집탐험을 하고 싶다고 해서 간 적이 있습니다.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도시에 사는 자녀들은 집 관리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젠 오르막길입니다. 제법 가파르지만 길진 않습니다. 시멘트마당에 큰 화분을 놓아두시고 상추, 고추, 가지 같은 야채를 기르시는 부천 할머니댁과, 집 앞을 접시꽃, 금잔화, 봉숭아 솔잎국화 길로 만들어두신 (은퇴하신) 목사님댁을 지나면, 지금은 마을창고로 쓰이는 옛날 마을회관입니다.

밤만디 풍경. by 김진희 (2020.9.16.)
밤만디 풍경.
사진 출처 : 김진희 (2020.9.16.)

파란 스레트 지붕, 연한 옥색 시멘트벽은 여기저기 페인트칠이 벗겨져 빈티지한 멋이 납니다. 이 건물이 너무 예뻐서 재작년에는 마을어른들의 창고에 있는 옛날 농기구나 생활용품 같은 물건들을 모아 작은 전시를 했습니다. 어른들이 니 눈엔 이게 이뻐 보이나?고 하셨습니다. 네! 제 눈엔 이뻐요.

이제 (거짓말 좀 많이 보태) 하늘이 바로 닿을 듯한 언덕빼기에 도착합니다. 밤만디입니다. 밤나무가 많은 만디(언덕)라는 뜻인데, 지금은 1그루만 남아 있습니다. 언덕 옆엔 2층짜리 마을회관이 있습니다.

이곳이 만화리 통신이 시작되는 비조마을회관입니다. 1층은 경로당인데 요즘은 코로나 19로 문을 닫아 조용합니다. 평소에는 할머니들이 모여서 TV도 보고 윷놀이, 화투놀이, 맨손체조를 하시고 점심으로 콩국수, 칼국수를 해드십니다.

2층은 마을회관입니다. 하지만 마을회의 참가자가 대부분 노인회 회원들이라 1층 경로당에서 마을일을 의논하는 일이 많아 2층은 한참을 비어있었습니다. 2016년부터 울주군 마을공동체만들기 사업을 하며 조금 씩 주민공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비조마을회관 전경. 만화리(법정동)의 자연마을 중 옻밭(漆田)마을과 비조(飛鳥)마을을 합쳐 칠조(행정동)라고 부릅니다. by 김진희 (2016.9.6.)
비조마을회관 전경. 만화리(법정동)의 자연마을 중 옻밭(漆田)마을과 비조(飛鳥)마을을 합쳐 칠조(행정동)라고 부릅니다.
사진 출처 :김진희 (2016.9.6.)

처음으로 사업신청서를 쓸 때 주민모임의 이름이 있어야 된다고 해서 별 생각 없이 만화리니까 ‘만화공감’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만화리라고 들었을 때는 만화책을 떠올렸는데, 몇 년 살다보니 만물이 조화로운 이룬다는 뜻이겠구나 했고, 마을공동체를 하려고보니 만 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요즘은 만 가지 꽃이 있는 마을인 것 같습니다.

만화리 통신에서는 만 가지 꽃 같은 이야기들을 전하겠습니다.

김진희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며 만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