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통신] ⑤ 마을에서 노는 아이들

비조마을에서 아이들이 노는 이야기입니다.

목적 없이 나서는 산책

이전리 애지골에 사는 지우친구가 놀러왔습니다. 아이들과 산책을 하러 갑니다. 대문을 나서면 세 갈래길. 아이들이 왼쪽으로 가자고 합니다. 부지런한 농부가 있는 논은 벌써 일구어져 있고, 새들에게 먹이를 주고 싶은 마음씨 좋은 농부의 논에는 아직 벼밑둥과 볏짚이 보입니다. 고라니 들어가지 말라고 그물을 쳐놓은 밭에는 그물 아래로 비닐이 떨어져 있습니다. 밭에 멀칭해둔 까만 비닐이 찢어진 것과 포장지 비닐들입니다. 쓰레기 줍고 싶다고 아이들이 말합니다. 오늘은 쓰레기봉투가 없으니 다음에 가지고 와서 줍기로 하고 걸어갑니다.

여름 물놀이(2020.8.4.)
여름 물놀이(2020.8.4.)

지난 여름 물놀이를 하던 개울이 나옵니다. 얼음이 얼어있습니다. 개울을 거슬러 길 따라 갑니다. 물이 꽁꽁 언 곳이 있어 개울로 내려가 얼음 위를 걸어보고 살얼음이 낀 곳에서는 개울가 흙 위 마른풀을 디디며 갑니다. 하얀 얼음, 투명 얼음, 마블링 얼음, 눈 같은 얼음, 나뭇잎이 갇힌 얼음을 보고 손으로 만져봅니다. 장갑을 끼고 나왔는데 어느새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만집니다.

“정말 눈 같아. 이건 도끼같이 생겼다. 차가워.”

하며 어깨를 들썩이며 눈을 찡긋합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꼭 넣은 채 얼음을 만져볼 생각도 않고 아이들이 노는 모습만 흐뭇하게 봅니다.

당산나무는 노가수 아님

개울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당산나무가 있는 곳까지 왔습니다. 새해가 되고는 처음 왔네요. 아이들과 당산나무아래 나란히 서서 두 손 모아 인사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안녕하세요. 재미있게 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소리내어 인사를 합니다.

노거수 그림 by 김시언(두동초4)
노거수 그림 by 김시언(두동초4)

“저기 왜 노가수라고 써있어요?”

“응? 아! 노거수. ‘노’는 노인할 때 ‘노’자라서 오래되고 늙었다는 뜻이야. ‘거’는 거대하다할 때 ‘거’자고 크다는 뜻이고, ‘수’는 나무야. 그럼 노거수는?”

“오래되고 늙고 큰 나무? 아! 늙은 나무구나. 노가수가 아니네.”

쓰레기 원정대

쓰레기 줍는 아이들(2021.1.14.)
쓰레기 줍는 아이들(2021.1.14.)

이틀 뒤 똑같은 길을 산책하러 갔습니다. 아이들은 집게를 하나씩 들고 딸깍딸깍 소리를 냅니다. 나는 2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들고 갑니다. 납작해진 캔, 찌그러진 페트병, 스티로폼 조각, 비닐을 주워 담습니다. 논둑에 떨어져 있는 하얀 비닐을 주워 비닐쓰레기는 따로 담습니다. 마을에 폐비닐 수거하는 곳이 있습니다. (농사철이 끝나면 멀칭을 했던 비닐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제대로 버려지지도 않으니 흙이 묻었든 찢어졌든 비닐은 다 모아두면 수거해가는 곳이 생겼습니다.)

개울에는 농약인지 제초제인지 플라스틱 병이 버려져 있습니다. 위험할 수 있어 아이들은 못 줍게 했습니다. 어른들이 한번 모여서 청소를 해야겠어요. 당산나무에 가기 전에 쓰레기봉투가 가득합니다.

놀이터는 선물

날이 좀 풀렸지만 당산나무 앞 개울은 해가 많이 들지 않아 얼음이 거의 안 녹았습니다. 지난번보다 조금 더 위로 개울 따라 갑니다. 나무가 기울어져 있어 아지트 같은 곳도 있고 작은 웅덩이도 있습니다. 투명하게 언 얼음 밑으로 작은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도 보입니다.

얼음 위에서 실컷 놀고 집에 가려고 당산나무 옆 언덕으로 올라갑니다. 작은 숲이 있습니다. 큰 나무가 쓰러져 있어 아이들이 올라가 놀았습니다. 작은 나무들이 많고 바닥에 낙엽이 많이 쌓여있고 부러진 나뭇가지들도 있었지만 땅은 평평합니다. 요즘 트렌드라는 ‘모험놀이터’로 손색이 없습니다.

비조마을 모험놀이터(2021.1.14.)
비조마을 모험놀이터(2021.1.14.)

“여기에 나무의자랑 테이블이 있으면 좋겠어요. 나뭇가지를 주워놓고 던지기하며 놀고 싶어요. 나무그네가 있으면 좋겠어요. 나무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무한반복 놀이터면 좋겠어요.”

아이들은 저마다 놀고 싶은 것을 말하고 집에 와서는 놀이터디자인을 했습니다. 물론 당산나무에게 인사는 잊지 않았답니다.

“놀이터를 발견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저 마을을 산책했는데 아이들이 쓰레기를 줍자고 했지요. 재미있게 놀았다고 당산나무에 인사를 했는데 놀이터를 발견했습니다. 잘 노는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인 것 같습니다.

김진희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며 만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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