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통신] ⑥ 삶이 예술이 되는 마을

정월대보름날 비조마을에서는 동제를 지냅니다.

비조마을의 새해맞이는 동제

새해 첫날도 있고 세배 드리는 설날도 있지만, 비조마을의 새해맞이는 정월대보름 아침 일찍 동제를 지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비조마을 동제(2020.2.8.). by 김진희
비조마을 동제(2020.2.8.). by 김진희

마을 동쪽 끝자락에 당산나무가 있습니다. 당산으로 가는 길 왼편으로는 자그마한 개울이 흐르고 앞으로는 논이 펼쳐져 있습니다. 논물이 고여 있어 차가운 날씨에 살얼음이 끼어있습니다. 당산나무 근처에는 동제를 지내기 얼마 전부터 새끼줄을 쳐서 출입을 금합니다. 평소에도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한적한 곳이지만 표시를 해두고 마음을 가다듬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사당이 있었는데 어느 날 화재에 소실되었습니다. 지금은 제단만 마련되어 있습니다.

마을아저씨들이 장을 보고 제수를 장만해 제단에 제상을 차립니다. 촛대에 불을 밝히고 촛불이 꺼지지 않게 종이컵을 씌워둡니다. 절을 올리고 술을 올리고 축문을 읽고 다시 절을 올립니다. 마을사람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소지를 합니다. 소원을 담은 얇은 종이가 훨훨 타올라 재가 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서우규 님이 들려주신 마을동제 이야기

2017년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삼색산책길’이 비조마을에서 진행되었을 때, 마을 어르신 서우규 님이 참가자들에게 마을을 안내해주면서 당산나무에서 동제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비조마을 당산나무 by 김진희
비조마을 당산나무 by 김진희

동제를 지낸 것은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릅니다. 제가 어릴 때도 지냈고 윗대 어른들께 물어봐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도 지냈다고 하셨습니다. 옛날에 토속신앙이었을 것입니다. 바다에 가면 풍어신이 있듯이 여기에 사람이 정착하면서 나무를 수호신으로 모셔 제를 지냈을 것입니다.

제사를 모시기 전에 금줄을 쳐서 잡신이 못 오게 막고 제주의 집에도 금줄을 쳐서 매사 조심하게 했습니다. 저희 집에도 아버지가 제주로 동제를 모실 때 보면 밤중에 일어나서 정월 보름날 굉장히 추운데 찬물에 목욕을 하시고 정성을 다했습니다. 동네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수호신을 잘못 모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을의 수호신

마을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서우규님(2017.9.9.) 
by 김진희
마을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서우규님(2017.9.9.)
by 김진희

그러다 한 40년 전부터 15년간은 동제를 지내지 않았습니다. 사회가 바뀌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따라 바뀌어 전통을 지키려는 생각도 사라져갔습니다. 그런데 오비이락(烏飛梨落)일지 모르겠지만, 동제를 지내지 않고부터 마을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죽는 일이 생겼습니다. 비명횡사였습니다. 처음에는 사고가 그저 안타까웠지만, 제가 알기로 15명 정도가 죽고 집집마다 피해를 안 본 데가 없을 정도가 되니, 젊은 사람들에게는 혹시 다음은 내 차례일까 두려운 마음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의논을 해 수호신이 있다고 믿지 않더라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해서 다시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 다시 모시고부터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어요. 나이 순서대로 돌아가실 분은 돌아가시고… 그래서 이 당산나무는 상당히 정신적인 우리 마을의 수호신입니다.

묵은 것은 소멸되고 새로운 것으로 바뀌니 당제를 모시는 것도 현실에 맞게

전에는 정월 대보름날 밤중에 제사를 모셨는데 요새는 아침 8시나 9시 되어 해가 뜨고 모십니다. 혹시라도 와서 참배하실 분은 비조마을 사람이 아니어도 누구나 오시면 됩니다. 묵은 것은 소멸되고 새로운 것으로 바뀌니 동제를 모시는 것도 현실에 맞게 해야지요. 옛날에는 송아지를 낳아도 못 온다고 했지만, ‘송아지를 낳으면 돈이 되는데 왜 못 와? 더 좋지!’라고 생각이 바뀝니다.

달빛에 소망을…

글씨 서지우(두동초4)
글씨 서지우(두동초4)

내일이 정월 대보름이군요. 밤에는 밝은 달빛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월 대보름달을 바라보며 고요히 올해의 소망을 기원하고 싶군요.

새로운 해를 만나고 새로운 달을 만나고 새로운 나를 만나 만물이 조화를 이루는 삶은 예술이 됩니다.

삶이 예술이 되는 만화리 비조마을에서 달빛을 보내드립니다.

김진희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며 만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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