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들이 16길을 공간1616으로 만들다

노숙 유경험자들이 모여서 경제적・정신적인 자립을 꿈꾸며 만든 마을기업이자 협동조합 노느매기가 ‘공간1616’이라는 이름으로 당산로 16길 16번지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진정 사람답게 돌봄을 받는 길은 바로 다른 이들을 삶을 돌보고 세우는 일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사람人’ 간판을 보며 공동체의 돌봄에 대해 생각해본다.

밤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사무실이 위치한 당산로 16길 16번지에는 나의 일터이자 조합인 사회적 협동조합 노느매기(노숙 유경험자들이 모여서 경제적・정신적인 자립을 꿈꾸며 만든 마을기업이자 협동조합)의 사무실 간판이 빛나고 있습니다. 그 간판에는 ‘공간1616’이라고 쓰여 있고, 사람 인(人)자가 크게 새겨져 있습니다.

당산로 16길 16번지 ‘공간1616’ 전경. 노느매기 제공.
당산로 16길 16번지 ‘공간1616’ 전경. 노느매기 제공.

어두컴컴한 골목길에 작은 상자 모양의 등불에 새겨진 큰 사람 ‘인’자는 아주 멀리서도 보여서 바둑판같은 골목길을 헤매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쇠락한 유흥가 모퉁이로 불리던 16길에 큰 청사초롱만한 등불은 늦은 밤 집으로 가는 걸음을 불안하게 걷던 이들에게 안전함을 선사해주는 안전판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본래 이 간판은 단지 우리가 무엇을 하는 단체인지를 알리기 위한 도구였다면, 이제는 연대하고 있는 마을 갤러리에서 비추는 고흐의 그림으로, 집 처마 밑에 달리는 과일등으로 사람들에게 동네가 밝아지고 있다는 새로움을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혼자서는 서지 못하는 두 개의 획이 서로 만나는 사람人. 그 글자 안에는 두 개의 획이 서로 만나 서로를 세워가는 것. 서로를 돌보고 세워가는 일은 우리 사람됨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상에 더욱 더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나요? 저는 지금 동참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들을 보고 있습니다. 노느매기가 그 일을 하고 있고요, 저는 인생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돌봄이란, 누군가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누군가에게 기대어 사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담은 ‘공간1616’의 사람人 간판. 노느매기 제공.
돌봄이란, 누군가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누군가에게 기대어 사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담은 ‘공간1616’의 사람人 간판. 노느매기 제공.

그동안 돌봄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노느매기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2020년 말부터 새롭게 돌봄의 주체로 서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본 적이 없었던 새로운 세계를 보는 듯한 조합원분은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올려놓았습니다. 돌봄이라는 말이 본래 ‘돌아보다’라는 말의 명사형이라고 하는데, 이제 홀로 힘들게 버티고 서 있는 분들을 돌아보면서 사람됨의 ‘인’자의 획처럼 기대고 세워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사회적 협동조합 노느매기의 정관에는, 우리가 하는 일 중에 ‘일자리 창출’이라는 큰 목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애초 노느매기 창립 시 우리 중 대부분은 사회복지서비스의 대상자였습니다. 돌봄을 받는 대신 거주지부터 일의 종류까지 제한적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유의지로 선택하며 안정된 경제활동을 하고자 노느매기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지난 7년여의 과정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진정 사람답게 돌봄을 받는 길은 바로 다른 이들을 삶을 돌보고 세우는 일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요즘 그 누구보다 노느매기사회적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느끼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누군가에게 기대어 사는 삶 속에서 참된 사람됨의 돌봄을 주고받으며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신정동에서 작은 텃밭을 일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노작을 하며 막걸리와 김치전을 나누고 《형 어디가》라는 제목의 텃밭 활동 영상을 찍었습니다. ‘이름없는 나’에서 형이 되는 경험과 동생이 되는 경험을 통해 관계의 호칭을 얻게 되고 핸드폰에 전화번호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노숙경험자들을 대상으로 한 매입임대주택 관리자로 근무하던 때, 겨울철 보일러가 동파되었다고 연락이 와서 현장에 가보면 이미 그의 형과 동생들이 걱정되어 와있더군요.(화곡동=임대주택 다수 분포 지역) 먼 친척보다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우리에게 형동생은 이웃이자 동료이자 기쁨과 걱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을 갤러리에서 당산로 16길을 환하게 비추는 고흐의 그림등, 집 처마 밑에 달리는 과일등. 노느매기 제공.
마을 갤러리에서 당산로 16길을 환하게 비추는 고흐의 그림등, 집 처마 밑에 달리는 과일등. 노느매기 제공.

사실 돌봄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할 때는 서로가 서로에게 돌봄을 주기가 오히려 쉽지 않았습니다. 간단한 일자리나 주거와 의료 서비스를 받을 때에도 조합원들끼리 물질적, 정서적 자원을 서로 나누는 일이 일어나기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어려운 이들의 집을 찾아가 부서진 수도꼭지, 찢어진 벽지, 비가 새는 처마를 고치며 땀을 흘리고 있는 우리 조합원들은 오히려 그 안에서 물질적, 정서적으로 더욱 재충전되는 일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돌봄의 대상이 될 때에는 취약계층인 우리 조합원들은 ‘약한 존재’입니다.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돌봄을 받지만, 알게 모르게 돌봄을 받아야 하는 약한 존재로 머물러 있게 됩니다. 기초수급자는 수입원이 없어야 수급급여를 받을 수 있기에 노동의 기회가 거세됩니다.

만65세가 넘어서 노동을 하지 않고 기초생활수급 급여를 받고 계시는 나00 조합원은 “거리 청소라도 하고 수급비 받을 때가 좋았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소일거리를 통해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갖고 깨끗해지는 거리를 보며 보람을 느끼고, 빗자루질을 하는 자신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음료수를 건네는 동네 사람들이 마냥 그립다는 것입니다. 단순 노동이 아니라 그 노동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고 그에 대한 감사가 때로는 목례로, 더운 여름날 냉수 한 잔으로 표현되는 인정받음이 나00조합원은 좋았던 것이 아닐까요?

내가 나 스스로를 사람 ‘인’의 한 대들보의 역할로써 누군가의 무게를 감당하고 일어서게 되야 비로소 우리는 전인격적인 돌봄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삶으로 깨어나게 됨을 요즘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에게 가장 필요한 돌봄은 나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에너지가 나와 이웃들을 일으킨다는 자각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일률적으로 무기력한 하나의 ‘복지 대상’으로 여겨졌던 개인은 협동조합을 통하여 누군가의 삶을 일으키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고, 결국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서로의 자아가 확장되어 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 놀라운 경험입니다.

그래서 노느매기 조합원들은 오늘도 공구를 챙기고 도배지를 들고, 더 낮은 곳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던 곳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이전에 만나보지 못했던 나입니다. 함께 땀 흘리면서 어느새 사람 ‘인’을 세워가는 것이지요. 대상이 사람이 되는 돌봄을 반복하면서 노느매기 협동조합은 그저 지나가는 16길을 ‘사람이 사는 공간1616’으로 만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박상호

사회적협동조합 노느매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노느매기는 경제적취약계층 남성 독신가구들이 모여 사회적 관계망을 만들고 스스로 돕고 성장하며 마을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창립된 협동조합입니다.
영등포구 주민이 되고 싶은 강서구민이며 새로운 탐험을 좋아하고 매사에 열정적으로 임하며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에너지를 찾아내는 것을 활력으로 여기며 즐겁게 살아가는 중년입니다.

댓글 2

  1. 힘들고 어려웠던 지난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돌봄을 주고 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간 1616이 되었군요. 노느매기 조합원들의 활동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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