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응집도와 미래세대

때는 바야흐로 춘추기후시대다. 생태적 감수성과 환경 마인드 장착이 국룰인 세상이 되었다. 안데스산맥 지역의 케추아족 원주민들이 애용한다는 용어 ‘수막 카우사이’ 정신과 같이 다양성 속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좋은 삶의 길이 우리의 미래세대들에게도 인디언 춤을 추고 뛰어 노는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얼마 전 한 여행 관련 업체가 실시한 ‘백 투 트래블’ 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인 응답자의 70% 이상이 연애나 승진보다도 여행을 원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고, 다수의 언론이 이를 보도했다. 일도 사랑도 다 필요 없고 오직 여행뿐이라는 갈급하고도 웃픈 결과는 1년 반 이상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로 인해 발목이 묶인 사람들의 피로감과 갈증이 폭파 직전에 이르렀다는 방증일 것이다. 오죽하면!

최근 백신 접종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여행 재개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홈쇼핑을 비롯한 여행업계에서는 초특가 파격 프로모션을 앞 다퉈 내놓았고 연이은 마감행렬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언론은 이를 ‘백신이 쏘아올린 희망’이라고 표현했다. 코로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여행 산업의 회복을 위해서는 국가적 지원책과 안전한 여행을 위한 대비책이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이제 주변에서도 심심치 않게 여행 계획과 예약 소식이 들리는 것을 보면 백 미터 달리기 출발선에 무더기로 나온 사람들처럼 언제든 내달릴 준비를 끝내고 출발 부저가 울리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 기후활동단 ‘워칼리스’의 기후학교. 워칼리스는 목소리를 내다’라는 뜻의 라틴어,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 기후활동단의 이름이다.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 제공.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 기후활동단 ‘워칼리스’의 기후학교. 워칼리스는 목소리를 내다’라는 뜻의 라틴어,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 기후활동단의 이름이다.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 제공.

불안하다. 전 세계를 멈추게 한 사상 초유의 팬데믹은 인류에게 공포의 시대를 경험하게 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한 해 전보다 7%가 줄어 1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는 유의미한 기록을 얻게 했다. 이는 2030년까지 지켜내야 하는 온실가스 감축 계획에 견주어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체감의 척도가 되는 직접적인 예시이자 교훈이 되었다. 말 그대로 위기가 기회가 된 셈이다. 그런데 불안하다. 사람들의 억눌린 욕구는 소비로 치환되고 있고 언론은 이를 보복소비라 부추기며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산업의 빠른 재개와 보상, 지원책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핵심을 흐리는 단선적 진단은 당장의 결핍과 갈증만 드러내고 결정적 문제를 주변화하기 마련이다. 최근 경기가 다시 살아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은 코로나19와 무관하게 증폭되었다는 분석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빼앗긴 들에 부르는 성급한 봄은 결국 돌이키기 어려운 더 큰 재앙을 부르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두렵다.

이해한다. 자유롭게 만나고 여행하며 소비할 수 있었던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울감을. 장기전에 돌입한 코로나 시국이 누구라도 갑갑하기만 노릇은 매한가지일 것이다. 최근 부산의 해수욕장들이 재개하면서 영업제한 시간 이후 울타리를 뛰어넘어 새벽까지 술판을 벌이는 등 쇼생크탈출을 방불케 하는 통제 불가능한 사람들에 대한 뉴스가 있었다. 만남을 즐기고 흥을 아는 민족에게 밤문화는 다시 태어나는 장미와도 같을진대, 저당 잡힌 사람들의 애타는 심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 이 역시 웃프기만 하다.

그러나 다시 멈추고 생각해 보자. 지난 1년 반 동안의 사건을. 지금도 400만 명을 육박하는 사망자에 확진자는 곧 2억 명을 채울 기세로 날마다 늘어가고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누가 누구에게 보복을 한단 말인가. 내일이 없이 오늘만 사는 우리는 이러다 영영 다음 세대들에게 낯짝조차 들 수 없는 기후 빌런이 될 공산이 크다. 그간 무단으로 사용하고 훼손시킨 지구의 부름에 이제 인간이 응답해야 할 때가 아닌가. 다시 생각하고 돌이키며 혹하는 마음에 장바구니에 넣어둔 물건을 덜어내고 가진 것을 나누는 플렉스로 인싸가 되는 상상, 아니 현실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재난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특히 다음 세대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이 사회적 응집력이다. 사회적 응집력은 기본적인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힘과 공정함이라는 토대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과 공정함이 있는 자유, 다양성과의 공존, 인간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경각심, 개인으로서 그리고 공동체로서 현재와 미래에 자율성을 유지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가 사회적 응집력의 핵심이라고 유럽평의회는 밝히고 있다.1 고로 사회적 응집도가 높을수록 기후 대응과 기후행동의 동력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식의 단순 논리도, ‘닥치고 기후’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기후 액션에 대비하여 기후송을 만들고 있는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 기후활동단 워칼리스 멤버들.
기후 액션에 대비하여 기후송을 만들고 있는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 기후활동단 워칼리스 멤버들.

민은 민대로, 관은 관대로, 민관이 협력하는 거버넌스로, 개인으로도 사회적 응집력은 발현될 수 있고 다양하게 공존하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 기초 위에 공동체적 기후 행동의 동력이 마련되고 기후위기라는 절체절명의 문제를 해결하는 상상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응집력의 좋은 사례들을 이제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공동체의 합심으로 건물을 매입하여 지역자산화를 추진하고 공공 공간을 만들어 지속가능한 공공재로서의 씨앗을 심은 협동조합들이 등장했고, 커뮤니티 내에서 교육, 문화, 경제활동이 모두 가능한 생활권을 성공시킨 공공임대주택과 사회주택 사례들도 안착했다. 선거철 정치인들의 공약으로만 떠올랐던 20분 이내 생활권이 현실이 된 것이다. 관이 협력하고 사회적 응집력으로 모아낸 시민사회 힘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교육에 있어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난해 6월, 서울시 교육청은 생태전환교육을 위한 중장기발전계획(2020~2024)을 내놓았다.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전환적 삶을 실천하는 생태시민을 육성하고 생태적 감수성과 전환의 방향을 중점적으로 교육하는 생태전환학교 운영,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채식 선택제 도입과 햇빛발전소를 통한 탄소배출제로학교 운영 등이 주요 골자다. 시행 1년이 지난 지금, 환경전문교사 양성과 생태교육, 학교환경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예산은 전년 대비 얼마만큼 확충되었는지 등 여기저기서 실책 기사들이 더 쏟아져 나오기 전에 중간 점검이 필요하다.

이 와중에 올해 초 SNS를 통해 기후위기전문가 자격증 과정이라는 광고를 우연히 접하고 뜨아했다. 내용을 보니 스타강사로 유명한 김모씨가 운영하는 온라인 강의 플랫폼 회사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후 관련 전문가들을 섭외하여 교육상품을 내놓은 것이다. 한 회당 20분 내외의 20개 강좌로 구성된 총 6시간 정도의 교육과정으로 기후위기전문가가 되어 그린인플루언서도 되고 환경관련 시민단체에 취직할 수도 있도록 업체 자체 자격증을 발급한다는 것이다. 교육불가능의 시대에 매우 발 빠르다 못해 잽싸기까지 한, 자격증 지상주의 한국형 자본주의에 딱 맞는 단기 속성 상품이 아닐 수 없다. 현재까지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수강했다고 하니 이나마도 기후문제에 무관심한 대중에게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순기능으로 여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머릿속에선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질문이 계속해서 맴도는 걸까.

“생태전환에 주력하는 교사 1000명이 있다면 서울 학교가 완전히 바뀌고 100만 학생이 생태 시민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조희연 교육감의 말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생태적 상상력이 자본주의에 잠식되기 전에 공공에서 보다 더 서둘러 환경전문교사를 대거 양성하고 생태전환교육을 의무교육화 하는 등의 급진적인 방안이 나오길 바란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 1,000명의 시민위원을 모집했다. 이름하여 ‘서울시민회의’. 2021년 서울시민회의의 상반기 주요 의제는 ‘기후위기 대응 시민주도 사회문제 해결’이다.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에서 기후활동단으로 활약하고 있는 청소년 두 명이 서울시민위원이 되었다. 이들이 ‘최연소 시민위원’이라는 타이틀에 소비되지 않고 청소년의 관점에서 목소리를 내고 정책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경청하며 협력하는 일 또한 사회적 응집력을 모으는 일이라 여기고 한 걸음 더 진보하는 서울시민회의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때는 바야흐로 춘추기후시대다. 생태적 감수성과 환경 마인드 장착이 국룰인 세상이 되고, 안데스산맥 지역의 케추아족 원주민들이 애용한다는 용어 ‘수막 카우사이’2 정신과 같이 다양성 속에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좋은 삶의 길 위에서 우리의 미래세대들이 인디언 춤을 추고 뛰어노는 상상이 현실이 되길!


  1. 조효제. 『탄소 사회의 종말』(21세기북스, 2021)

  2. 수막 카우사이(Sumak Kawsay): 에콰도르 2008년 신헌법에 등장한 수막 카우사이는 에콰도르 원주민 운동에서 유래되었다. 키추아(Kichwa) 어로 수막은 충만, 위대함, 존엄 등을 의미하고, 카우사이는 역동적인 삶을 의미한다. 따라서 수막 카우사이를 축자적으로 ‘좋은 삶(Buen Vivir)으로 옮겨질 수 있지만 둘이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수막 카우사이는 공동체적 체계로서 공생의 집단적 구성을 의미하며 다른 존재방식으로서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공동체 사이에 조화로운 조건을 구성하는 공간으로서 공생을 담고 있다. (출처: 김달관, 에콰도르의 원주민 운동 (라틴아메리카 이슈-2012 라틴아메리카, 정치안정과 경제회복), 2012)

한영미

굴러 굴러 영등포청소년문화의집에 있습니다.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13 − 1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