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찐 소파에 앉은 인류 – 『의자의 배신』을 읽고

『의자의 배신』은 인류가 편리함을 위해 발전시킨 문명과 기술이 역설적으로 인류에게 해로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타고난 인간의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 환경에서 우리의 몸은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 새로운 산업혁명의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해야 할 시기이다.

바이바 크레건리드 저 『의자의 배신 (편리함은 어떻게 인류를 망가뜨리는가)』(아르테, 2020)
바이바 크레건리드 저 『의자의 배신 (편리함은 어떻게 인류를 망가뜨리는가)』(아르테, 2020)

현대인들은 일상 속에서 대부분 의자에 앉아서 일하고, 앉아서 공부하고, 의자에 앉아서 TV를 보고 게임을 즐긴다. 그런데 5억년에 이르는 인류의 긴 역사에 비해 의자를 본격적으로 애용하게 된 기간은 불과 200년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 이전 시기의 인간은 앉아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다. 일하는 것도 놀며 쉬는 것도 의자에 앉아서 하는 습관, 즉 의자로 상징되는 편리함이 과연 인류의 몸과 건강을 위협하지 않는 것인가?

인류는 편리함을 위해 기술과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그 결과가 우리의 몸과 건강에 이롭게 작용했을 것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또한 문명과 기술의 발전 속도는 너무 빨라서 타고난 인류의 몸은 그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 정도이다. 인류세의 인간의 몸은 많은 질병들에 노출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의자에 ‘앉아있기’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지금 우리가 직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고생대 척추동물의 진화부터 신생대 플리오세와 플라이스토세의 호미닌에 이르는 동안 인류는 두 발로 걷게 되고 손은 자유로워져서 진정한 인류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자유로운 두 손과 강한 발을 이용하여 대륙을 횡단하거나 다른 대륙으로 이동도 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인간의 발은 긴 시간을 걷기에도 최적화되어 생활 범위를 넓혀나가는 것에도 효과적이었다. 이 시기에 인간의 몸과 뇌는 사냥과 채집에 맞게 최적화되어 왔다.

인간의 발은 그 모양과 기능, 모든 면에서 움직임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도록 되어 있다. 모든 발가락이 앞쪽으로 뻗어 있기 때문에 보행 주기의 전반부 동안 발의 아치에 저장된 에너지가 반환되어서 보행 후반부에 필요한 추진력을 보강해줄 수 있다. 앞쪽으로 뻗은 엄지발가락은 인간이 걷거나 뛸 때 생기는 여분의 에너지를 남김없이 반환하는 작은 용수철 역할을 한다. 몸의 운동량과 무게를 이용해 이동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기막히게 기발한 메커니즘이다. -P.68 본문 중에서

인간의 몸에 대한 보다 큰 변화는 농업혁명의 시대를 거치면서 나타나게 되었다. 3만 년 전부터 기원후 1700년까지의 이 시기에 인간의 몸은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문제는 이 시기의 우리 몸의 변화는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변화시킨 환경에 적응한 결과라는 것이다. 하루종일 걷고 뛰고 움직이던 신체를 덜 움직이게 만들고, 그로 인해 골밀도는 저하되었다. 평균 신장이 급격히 줄어들고 뼈도 얇아지기 시작했다. 농경을 통한 곡물의 생산으로 씹는 능력이 퇴화하여 턱이 작아지고, 늘어난 치아의 수로 인해 부정교합이 발생했다. 탄수화물이 많은 곡물 섭취는 각종 박테리아와 세균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수많은 치아질환을 발생시켰다. 수렵과 채집을 멈추고 농경 생활로 먹을 것을 얻게 되고 걷기를 멈추면서 인간의 몸은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된 것이다.

인류세의 인간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갇힌 존재가 아닐까? 호모 사피엔스 이넵투스, 똑똑하지만 풍부한 지식이나 음식 그리고 환경의 편안함과 잘 어울리지 않는 인간. by picryl 출처 : https://picryl.com/media/the-story-of-the-three-little-pigs-14
인류세의 인간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갇힌 존재가 아닐까? 호모 사피엔스 이넵투스, 똑똑하지만 풍부한 지식이나 음식 그리고 환경의 편안함과 잘 어울리지 않는 인간.
사진 출처 : picryl

산업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인류의 몸은 또 한 번의 변화를 겪게 된다. 현재의 우리의 모습의 상당 부분은 노동 생태계가 특화되던 산업혁명 기간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가난한 공장 노동자들은 노동으로 인한 부상과 장애를 겪었고, 비타민D의 부족과 과잉 노동, 운동 부족으로 인한 골다공증, 골관절염, 안짱다리 등과 같은 신체 손상을 겪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산업혁명이 최고조에 이르고 새로운 물질들이 발견됨에 따라서 19세기 이전에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던 의자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고, 19세기 의자의 대중화는 산업사회의 새로운 규율을 학교와 공장에 내면화하는 역할을 했다. 공장과 학교는 산업사회의 규칙과 규율을 효율적이고 균일하게 주입하기 위한 통치 전략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공간이 인간의 신체의 건강성을 향상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태양광의 노출을 차단하고 자율적 움직임이 불가능한 상태, 즉 긴 시간을 의자에 앉아있는 상태에서 노동자와 학생들은 자신을 더 확실하게 기계화하는 방법을 습득했다.

산업혁명 시기의 노동 환경의 변화는 현재에도 유효하다. 현재의 우리의 몸과 생활 방식은 그 시기의 결과물이다. 단지 변화된 것은 이전 시기 공장 노동자들은 수많은 산업 재해에 노출되어 장애와 부상을 겪었다면 지금은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무직 노동자라는 개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들의 환경도 그 이전 시대 노동자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한다. 사무실에 출근하여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유해 환경 속에 노출된 상태로 장시간 의자에 앉아 노동하는 것이 우리 몸에 더 나은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중 하나가 염증 반응인데, 이것은 인류세의 인간이 자기 면역체계의 조절 능력을 변화시켜 만성 염증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외에도 우울증, 심장질환, 유방암, 대장암, 제2형 당뇨병, 고혈압, 비만, 골다공증, 관절염, 요통 등 인간이 만든 환경 때문에 인류의 진화 초기에는 겪지 않았던 각종 질병 들로 고통받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자본주의 시대에 ‘시간은 돈’이고 이는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을 때 나타난 부의 극대화 전략으로 나쁜 개념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게으름을 적당한 방종 수준이 아니라 반역죄 수준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몸이 절실하게 원하는 활동은 악의적이고 반동적인 것이고, ‘시간의 낭비’라고 한다. 자본주의 프로젝트인 노동 윤리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일하는 데 쓰는 시간이 우리를 죽이고 있다. 오늘날 ‘9시에서 5시’ 근무라는 말은 정상적인 근무, 즉 표준 노동이라는 말과 동의어이다. 또한, 현재의 사무실 환경은 19세기 공장만큼 유해한 환경이고, 사무실 노동자들의 자율권은 19세기 공장 노동자들이 가졌던 자율권밖에 가지지 못한다.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이 혁명은 우리의 삶을 기술과 로봇으로 채울 것이다. 기술이 진보하면 우리의 가장 큰 문제들이 풀릴 것이라 믿고 싶겠지만, 일부 철학자들은 현재 문제의 뿌리가 기술에 대한 믿음이라 주장하고 있다. 기술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자동화된 기기들은 움직이는 존재로서 우리를 천천히 정지시켜 가고 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움직임은 전반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인류세의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 이넵투스(똑똑하지만 풍부한 지식이나 음식 그리고 환경의 편안함과 잘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라고 말한다. 즉 인류는 기술과 문명을 발전시키고 그 환경의 편리함을 효율적으로 이용해 왔지만, 타고난 인간의 몸과는 맞지 않는 환경에서 우리는 수많은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편리하고자 만든 환경이 결국은 스스로에게 독이 되는 역설적 상황이다.

나무늘보264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어린 시절 친한 사람들이 ‘늘팽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늘보와 달팽이의 줄임말인 듯. 어릴 때 1년에 10번 정도 제사가 있었는데, 큰집에 가면 큰집 서재에 콕 박혀서 책 보는 것을 좋아해서 사촌 오빠가 놀리려고 지어준 별명입니다. 264는 제가 시인 이육사를 좋아해서 붙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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