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슬픔을 넘어 전환의 축복으로

날로 심각해져가는 기후위기는 지구의 파괴만을 가져온 것이 아니다. 무기력, 불안, 우울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생태 슬픔 또는 기후 우울은 심리적, 정신적 차원의 병리적 현상이기만 한 것일까? 모든 생명과 긴밀하게 연결된 우리의 존재에 대해 멈추어 바라보자고 초대하고 싶다.

“2019년 호주에서 발생한 산불이 몇 달간 꺼지지 않고 계속 타고 있었다.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갔고 호주 내 전체 숲의 20%가 불에 타 사라졌다. TV에서 연일 중계되는 산불을 보며 나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죄책감에 휩싸였다.
호주의 산불을 내가 지른 것 같은 죄책감과 함께 마치 오래된 친구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듯한 슬픔을 느꼈다. 후에야 혼란스러운 이 감정의 소용돌이가 상실로 인한 생태 슬픔(ecological grief)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20년 2월, 필자의 글 中

생태 슬픔이란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생태 슬픔’ 또는 ‘기후 슬픔’(기후 우울/불안)이란 말을 처음 듣는 분이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날로 더해가는 지구의 파괴와 오염의 소식을 들으며 몇 년 전부터 불편하고 힘든 마음을 조금씩 느껴오고는 있었지만 호주의 산불이 그 정점이었다. 시뻘겋게 타오르는 산불을 바라보는데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무기력했고, 저 불을 지른 사람들 속에 나 역시 있다는 죄책감에 가슴이 답답했다. 나중에는 우울감에 빠져 산불의 소식조차 듣는 것이 두려웠다. 후에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솔직하게 마음을 나눈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만 이런 감정들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란 사실에 놀랐고 한편 안도감이 느껴졌다. 이런 마음들이 이전부터 있어왔으며, 생태 슬픔이라 불려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생태 슬픔은 호주의 산불처럼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내가 직접 겪지 않았어도 지금의 기후위기 현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

아마존 열대 우림의 파괴나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생물들의 대량 멸종 소식을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절망스럽거나, 혼란스러운가요?

나의 삶의 터전에서 숲과 공원이 사라져가고, 친숙한 식물과 동물과 식물들이 사라지고, 늘어나는 산불을 보면서 환경 변화에 대해 상실감, 우울감 또는 무력감을 느끼나요?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면 마음이 어떤가요? 절망스럽거나 두려우신지요?
내 아이, 우리 가족, 모든 미래 세대가 살아갈 앞으로를 생각하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생태 슬픔은 우리가 경험한 적 없는 실존적 위협(기후위기) 앞에서의 자연스럽고 건강한 반응이다. by Marcus Ganahl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V1XfjTMZZQY
생태 슬픔은 우리가 경험한 적 없는 실존적 위협(기후위기) 앞에서의 자연스럽고 건강한 반응이다.
사진 출처 : Marcus Ganahl

황폐해지는 지구에 대해 듣는 것이 점점 더 우리의 일상이 되고 있다. 혹시 위의 내용 중에 동감되는 것이 있다면 어쩌면 당신도 생태 슬픔을 경험하였거나 경험 중일 수도 있다. 생태 슬픔을 뜻하는 영어표현 ‘ecological grief’는 여러 의미들이 겹쳐져 있어 우리말로 번역하기 쉽지 않은 개념이다. 그러나 곰곰이 머물러 본다면 복잡한 말 대신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풀어보자면, ‘grief’라는 단어는 우리말로 비탄, 비통(큰 슬픔)이라고도 번역되는데, 단순히 슬픈 감정(sadness or sorrow)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상실로 인한 깊은 슬픔을 의미하며 보통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사별)과 같은 상실이나 애도의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슬픔이다. 여기에는 죄책감, 분노, 우울과 무기력 등의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함께 포함된다. 생태 슬픔이라고 부를 때 슬픔의 감정을 대표로 하여 표현하기는 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 마음 안의 여러 감정과 느낌들이 복잡하게 얽혀져 있다.

캐나다와 호주에서 생태 슬픔에 대해 연구하는 Consolo and Ellis(2018)는 생태 슬픔의 경로를 다음의 세 가지로 정의하기도 한다. 첫째, 기후변화와 생태위기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생태계, 생물 종(種), 장소 등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삶, 문화, 정체성의 상실로 인해 경험하게 되는 슬픔, 둘째, 파괴로 인한 생태적 상실을 지속적으로 목격 또는 관찰함으로써 경험하는 슬픔.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으로 예상되는 파괴에 의해 슬픔을 느끼거나 불안을 겪는 정신적인 고통이나 심리 반응이다.

이 슬픔은 미래의 불안감에서 오는 슬픔이며(=예기 슬픔), 앞으로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에 대한 현재의 애도의 결과이다. 미국 심리학협회 APA(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는 2017년에 기후변화로 인한 정신건강과 자연재해로 인해 야기되는 심리적 트라우마를 요약한 ‘정신건강과 변화하는 기후’라는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여기에서 앞으로도 파괴되는 생태계와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로 인해 생태 슬픔(기후 우울)과 관련되는 불안과 우울 등의 감정의 유행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였다. 마치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 안에 코로나 블루가 유행했던 것처럼 말이다. 특히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더욱 취약하다.

그러나 생태 슬픔은 기후위기, 생태파괴와 같이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현상과 관련되기에 어느 범위까지를 생태 슬픔으로 봐야할지 명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많은 사람들, 과학자 그리고 활동가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슬픔(또는 불안)이란 단어를 써서 설명한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대지 윤리(land ethic)’에 대해 주장했던 알도 레오폴드도 생태적 상실로 인한 정서적 피해에 대해 최초로 묘사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Cunsolo, 2018)1. 최근 발행된 『탄소사회의 종말』(조효제, 2020)에서도 기후변화에 대한 기후전문가들의 슬픔, 분노, 두려움과 같은 솔직한 마음2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까지는 생태 슬픔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거나 간과해 왔지만 기후 위기가 심각해짐에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어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기후 슬픔(기후 우울)은 생태 슬픔

전에는 생태 슬픔과 기후 슬픔(climate grief, 기후 우울)을 구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우리 현실 속으로 깊이 파고들면서 점차 그 경계가 흐려지게 되었다. 요즘은 두 용어를 교차하여 사용하고 있는 추세이다. 기후위기의 맥락 안에서도 넓은 범위의 상실과 관련되면 기후 슬픔(climate grief)이라 부르고, 불안이 주가 되면 기후 불안(climate anxiety) 구분하기도 한다. 슬픔의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감정들이 잠재되어 있을 때 불안으로 드러날 수 있다(Pihkala, 2020).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기후 슬픔(우울)을 호소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어, 이에 대한 언급이 많아지고 있다. 용어적으로는 생태 슬픔(ecological grief), 기후 슬픔(climate grief)보다는 기후 우울(climate grief)이라고 용어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기후 슬픔(우울)의 의미를 포괄한 ‘생태 슬픔’을 사용하고자 한다.

생태 슬픔은 우리들에게 기후변화가 단지 추상적인 과학 개념이나 외부적 환경의 변화만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자연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실과 죽음이 개인적인 감정이나 심리적 상실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우리의 전반적인 육체적 및 정신적 건강, 웰빙, 문화적 정체성 등은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나 생태계 안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파괴될 때 우리 또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 예를 들어, 캐나다 누나벗주에 사는 이누이트족들에게 녹고 있는 빙하는 단지 얼음이 아니다. 그들 존재의 일부이며 정체성이 담겨있다. 빙하가 사라질 때 그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문화와 자아 정체성도 함께 잃고 있는 것이다. 우리 자신과 관련된 대상을 상실할 때는 그 죽음에서 나의 무엇인가도 함께 죽는다. 상실한 대상은 우리 존재의 한 부분으로 내면 깊숙이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 했던 호주의 산불은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지구의 울음소리가 내 삶 안으로 깊이 들어온 것 같았다. 숲의 불길과 함께 나의 무언가도 함께 탔고, 함께 죽었다. 그러나 고통스런 울음은 숲과 생명에 대한 사랑을 품고 있었고, 내 안의 또 다른 내 자신과 세상을 만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사람마다 경험과 인식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기후위기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점점 개인적 상실을 넘어 지구적 차원의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 지구의 고통이 생태 슬픔이나 불안이란 모습으로 우리 삶 안에 스며들고 있다. 불편하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진실을 바라봐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전히 기후 위기와 생태적 상실에 대한 외면과 집단부정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 안에 생태 슬픔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고통을 함께 나눌 때 우리 자신과 지구를 위한 치유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by Liza Summer 출처 : https://www.pexels.com/ko-kr/photo/6382530/
우리 안에 생태 슬픔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고통을 함께 나눌 때 우리 자신과 지구를 위한 치유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 Liza Summer

기후위기와 같은 현실이 일상 안으로 들어올 때 그 동안 추구해온 편안하고 익숙한 또는 열망하는 삶의 방식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은 위협이 된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런 깨달음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해 온 삶의 방식과 가치가 도전받을 때 자아 정체성 또한 위협받는다고 느끼는데(Heath, 2004), 이는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경험이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Thomashow, 1995). 더구나 기후 위기와 관련된 우리의 감정은 대부분 부정적(상실, 죄책감, 불안, 수치심, 절망)이라고 느껴지는 것들이다. 이런 감정들을 솔직히 직면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옳다고 믿어왔던 가치와 신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에서의 고통스러운 깨어남의 과정, 깨어남 증후군(waking up syndrome)이 수반될 수 있기 때문이다(Buzzell and Chalquist, 2010). 깨어남의 과정은 확장된 차원에서 보자면 의식의 전환과정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인 해체과정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를 겪어내야 하는 당사자로서 유쾌하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정상적인 감정적 반응을 직면하지 않고 억제할 때, 그것들은 우리의 건강, 관계, 삶의 많은 측면들에 스며드는 독성 있는 고통의 주머니로 변모될 수 있다. 육체의 고통이 우리가 돌볼 때까지 계속되듯, 감정적인 고통도 우리가 관심을 귀 기울일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면 이런 생태슬픔의 치유과정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태적 애도와 치유

생태적 상실로 인한 슬픔은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의 슬픔과 달리 조금은 특별한 형태의 슬픔이다. 이런 슬픔과 불안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역설적이게도 상실과 슬픔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상실의 본질과 정도에 관계없이, 서로 연결된 것의 끊어짐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이 아플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사랑하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스스로 우월한 종(種)이 되길 선택한 인류는 인간을 생명의 그물에서 분리시켰고, 자연을 자원이란 이름으로 통제하고 착취하였다. 무한한 발전과 성장에 대한 환상이 결국 지금의 피폐한 지구를 만들었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 존재 밖에 있는 대상이나 자원이 아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은 공동의 집에서 같은 숨을 쉬며 같은 물을 마신다.

생태 슬픔은 개인에 따라 그 깊이나 너비가 다르게 경험될 수 있겠지만 단지 심리적, 정신적 측면의 병(리)적 현상만은 아니다. 만약 그렇게만 접근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치료 외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슬픔은 우리가 경험한 적 없는 실존적 위협(기후위기) 앞에서의 자연스럽고 건강한 반응이다. 눈을 들어 더 큰 시선으로 보자고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다. 우리들은 세상에서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보다 큰 몸체의 세포처럼 세상을 이루는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몸체가 엄청난 충격을 받으면 우리 또한 그 충격을 고스란히 느낀다(매이시 &브라운, 2020). 지구가 이토록 아프니 우리 역시 아픈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우리는 모든 생명과 긴밀하게 깊이 이어져 있다. 누군가 생태 슬픔으로 인해 고통스럽다면 그 사람은 지구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때로 고통은 어디가 아픈지 알려주어 우리들을 깨워주는 가장 효과적인 자명종이 된다. 고통 앞에 두려운 마음을 잠시 내려두고 그 소리를 따라 한 걸음 내딛어 보는 것은 어떨까? 본래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생명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태 슬픔의 여정이 ‘귀향(homecoming)’의 여정이 될 수 있길 바라본다.

이제는 그 동안 무관심하고 회피해 온 마음의 소리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를 멈추어 들어야 한다. 생태 슬픔이라 이름을 붙여주고 지구와 우리들의 치유를 위해 애도가 필요하다. 애도는 단지 감정의 표출로만 이루어지는 아니라 인지, 신체감각, 행동에 이르기까지 넓은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전체론적이고 존재론적인 응답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느끼는 비탄(grief-슬픔)과 불안을 인식해야하며 모순, 양가감정, 상실, 애도와 같은 감정을 인정(마셜, 2018)”할 필요가 있다. 상실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파괴한 것들에 대해서도 애도하고, 우리가 꿈꾸어 온 무한 성장의 환상도 애도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애도하며, 우리가 다른 존재들을 이용하고 착취해도 된다는 잘못된 믿음도 애도해야 한다. 애도작업은 다시 찾을 수 없는 것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슬픔을 받아들이고 상실한 대상을 우리 마음 안에서 떠나보낼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좀 더 건강하고 새로운 방식의 생태적 애도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들 각자는 모두 고유한 여정을 걸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슬픔을 경험하고 표현하기에 서로의 여정을 존중해야 한다.

생태 슬픔이 더 잘 인지될 수 있도록 이름이 붙여지고 각자의 고유한 생태적 애도의 내러티브들이 나누어지길 바란다. 우리 안에 생태 슬픔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고통을 함께 나눌 때 우리 자신과 지구를 위한 치유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지구의 고통을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존재로 느끼는 그때 우리의 고통은 다시 하나의 생명으로 연결되기 위한 전환의 여정의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석탄을 태우기 위해 발가벗겨지는 애팔래치아 산맥이나 불타는 아마존을 보며 눈물 흘리는 당신을 부끄러워하지 말아라. 지금 당신이 느끼는 커다란 상실, 슬픔, 분노는 인간성, 진화적 성숙함의 척도이다. 우리의 마음이 부서지고 열리는 만큼 세상이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조안나 메이시(Spiritual Ecology, 2013)

  1. 그의 저서 『모래군의 열두 달(A Sand County Almanac)』에서 “생태교육의 형벌 중에 하나는 상처받은 이 세상에서 홀로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2. “기후변화 생각만 하면 슬픔이 밀려옵니다. 무서움도 밀려옵니다. 그 어떤 것보다 더 두렵습니다. 강에서 사람들이 보트를 타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행복하게 손을 흔들며 사진을 찍습니다. 보트가 조금 뒤에 천 길 낭떠러지 폭포로 떨어져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데 아무도 눈치 못 채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조효제, 『탄소사회의 종말』, 21세기 북스, p.296.

※참고문헌

  • 조애나 메이시, 몰리 영 브라운, 『생명으로 돌아가기』, 모과나무, 2020, p.71.
  • 조지 마셜, 『기후변화의 심리학』, 갈마바람, 2018, p.338.
  • Cunsolo, A. and Ellis, N., 2018. Ecological grief as a mental health response to climate change-related loss. Nature Climate Change, 8(4), pp.275-281
  • Edwards, S. and Buzzell, L., 2010. ‘The Waking Up Syndrome’ in Buzzell,L and Chalquist, C (eds.). Ecotherapy. San Francisco: Sierra Club Books, pp.102-109.
  • Macy, J., 2013. ‘The Greening of the self’ in Vaghan-Lee, L (Eds.) Spiritual Ecology. California: The Golden Sufi Center. p.151: 155
  • Heath, G., 2004. Belief and Identity. [Blog] Bowlandpress, Available at:
  • <http://www.bowlandpress.com/seminar_docs/Beliefs_and_Identity.pdf>
  • Pihkala, P., 2020. Climate Grief: How We Mourn A Changing Planet. https://www.bbc.com/future/article/20200402-climate-grief-mourning-loss-due-to-climate-change
  • Thomashow, M., 1995. Ecological Identity. Cambridge, Mass.: MIT Press. p.3.

이나경

온 생명과 함께 하느님의 꿈을 꾸고 싶은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소속의 수녀입니다.

댓글 11

  1. 고맙습니다. 여러 사람들 같이 읽을게요.

    오래전 심한 생태 슬픔에 빠졌다 나왔어요.
    지금은 생태 슬픔 면역력이 생겨서 슬픔없이 문제를 해결하는 실천할 수 있어요.

    1. 생태 슬픔을 겪으셨군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생태 슬픔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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