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는 왜 인류의 1위 발명품인가? – 세탁기를 통한 가사노동의 해방과 허리다침의 과정을 반추해보기

세탁이라는 큰 노동이 사라지면 여가시간이 늘 거라 기대하지만 인간은 더 낳은 삶의 질을 누리기 위해 또 다른 가사노동을 만들어냈고, 결과적으로 세탁기는 제 역할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사노동의 해방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기술의 발전이 무엇으로부터의 무조건적인 해방이나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고민하던 것들이 해결되면 또다른 무언가로 고민하고 또다른 무언가가 갖고 싶고, 인류는 늘 발전해 왔지만 발전한 만큼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예전보다 많은 수입을 얻고 더 많은 일들에 둘러 싸여 있으면서 여전히 부족하다 생각하고 만족스럽지는 않다고 느끼는 현대인들의 삶에 대해 반추해본다.

나는 60㎏이 채 되지 않는 몸무게를 가지고 있는 성인 남성이다.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려서부터 ‘말랐다’, ‘그래가지고 힘을 쓰겠냐’ 하는 등의 말을 원체 많이 들어와서 나는 내 몸이 크게 달갑지는 않았다.

그러한 말들에 부정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몸 쓰는 일에 더 나서서 하고 나는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생각보다 건강해서 잘 아프거나 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바로 얼마 전 손빨래를 하던 중 빨랫감을 주우려 몸을 숙이다 허리를 삐끗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삐끗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아졌고 힘든 일을 하다 다친 것도 아닌 고작 빨랫감 하나 때문에 벌어진 일에 허탈했다.

이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하기도 했는데, 내가 참여하는 수업의 교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세탁기를 왜 인류의 1위 발명품으로 보는가? 세탁기를 통한 가사노동의 해방과 허리다침의 과정을 반추해보자” 라는 제안을 하셨다.

세탁이라는 큰 노동이 사라지면 여가시간이 늘 거라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더 낳은 삶의 질을 누리기 위해 또 다른 가사 노동을 만들어 냈다. by Brittney Weng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Ibm57lIQKdQ
세탁이라는 큰 노동이 사라지면 여가시간이 늘 거라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기 위해 또 다른 가사 노동을 만들어 냈다.
사진 출처 : Brittney Weng

처음에는 세탁기가 인류 1위 발명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갸우뚱 하였다. 언뜻 아주 고도의 기술을 담은 것이 “인류 1위의 발명품” 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을까 생각한 듯하다. 물론 선정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탁기가 그러한 타이틀을 차지한다는 것은 흥미로웠다. 시간을 더 가지고 생각해보니 애초에 나는 가사노동에 관심이 없고 거의 하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내가 기억하는 범위에서는 세탁기는 늘 집에 있어 왔고 그 편리함이 나에게는 당연한 기본으로 존재해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쓰고 나니 세탁기가 좀 생소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인터넷을 이용해 조금 알아보았다. 잠시의 서핑을 통해 얻은 정보는 가사노동의 해방, 그리고 해방의 부정이었다.

과거 세탁기기의 발명은 주부들이 일과 중 해야 하는 가장 큰 노동중 하나를 획기적으로 정말 아주 획기적으로 줄여준 듯하다. 이는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나, 세탁의 해방이 가사노동의 해방으로 이어진 것은 아닌 듯하다.

세탁이라는 큰 노동이 사라지면 여가시간이 늘 거라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리기 위해 또 다른 가사 노동을 만들어 냈고(더 맛있는 요리 혹은 패션) 거기에 더해 슬그머니 남자들은 가사노동에서 한발 빼는 방향으로 상황이 진행 되었다. 물론 이는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보다 전문화 되고 분업화 되어 생기는 사회 현상이기도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세탁기는 제역할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사노동의 해방을 만들어 주지는 못한 사물이 되었다.

그런 것 같다. 기술의 발전이 무조건적인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이나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고민하던 것들이 해결 되면 또다른 무언가로 고민하고 또다른 무언가가 갖고 싶고 인류는 늘 발전해 왔지만 발전한 만큼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나또한 다르지 않아서 이러한 굴레 안에서 돌고 있다. 예전보다 많은 수입을 얻고 있고 많은 일들에 둘러 싸여 있으며 함께하는 많은 주변인들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하다 생각하고 만족스럽지는 않다. 그래서 또 다른 것들을 생각해 내고 나를 거기에 밀어 넣고 또 힘들어 한다.

결국 세탁기를 쓰지 않고 손빨래를 하려다가 허리를 다친 사건이 이 이야기의 발단이다. 당시엔 별다른 사전 징조도 없이 갑자기 일어난 사건에 많은 불편함과 위기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늘 그러하듯 걱정했던 아주 커다란 일들은 벌어지지 않고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발전을 거듭한다면 분명 많은 점이 나아지겠지만 무조건적인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 것처럼, 걷다 삐끗하면 조금의 불편함은 가져오겠지만 또 별다르지 않게 삶은 흘러가는 것 같다.

이석희

안녕하세요. 문래동에서 피스오브피스로 활동 중인 이석희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인테리어 또한 겸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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