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용기가 되어] ② 손잡고 싶었던 신승철 선생님

신승철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1주기가 되는 날, 손을 잡아보지 못한 선생님께 밥상 한 번을 차려드렸다. 그것이 내가 선생님과 손을 잡는 방식이었다.

선생님에 대한 나의 기억은 단편적이다. 생전에 남기신 책은 단 한 권도 읽은 적이 없었다. 가끔 온라인에 올라오는 글을 읽었을 뿐이었다. 그때마다 느낀 감정은 따뜻함, 보드라움이었다. 생태적인 분이라 그런 걸까? 그런데 내가 아는 최초의 생태적인 분이었던 김종철 선생님의 글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각이었다.

생전에 뵌 적은 없었다. 같은 길을 가고 있으니 언젠가 기회가 닿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그리고 꼭 만나고 싶었다.

2023년 7월 3일, 페이스북 타임라인이 난리가 났다. 한 생태철학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 넘쳐나고 있었다. 부고를 알리는 소식을 보는 나조차 믿기 어려웠으니, 고인과 생전에 인연을 쌓은 사람들의 충격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때는 선생님의 장례식장에 가볼 생각을 못 했다. 아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사람들의 슬픔을 마주할 용기와 선생님을 보고 싶었던 나의 소망이 장례식장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다.

신승철 1주기 추모제 포스터. 2024년 6월 29일. 포스터 제작: 노랑(연우)

그러던 어느 날, 페이스북 타임라인이 다시 신승철이라는 이름으로 덮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1주기가 되는 날, 선생님을 추억하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단어가 있었다. 추모식 자리의 식사가 채식으로 준비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내 작고 소박한 꿈 중 하나는, 단체 모임의 식사가 채식이 기본이 되는 밥상이었다. 모두가 먹을 수 있는 밥상이 기본이 되는 사회를 꿈꾸며 우리농업기반 채식문화운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추모제가 열리는 영등포산업선교회의 규모를 알고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생태적지혜연구소에서 선생님의 일주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채식이 기본이 되는 식사를 준비한다는 것이 아닌가. 마침 준비위원회에 내가 잘 알고, 좋아하는 윤석이 들어 있었다. 나는 바로 윤석님에게 연락해 채식 식사를 어떻게 준비하려고 하는지 물었다. 식사의 방향은 채식으로 잡아두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할지는 아직 내부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곧바로 식사 준비를 함께 돕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며칠 후 윤석님에게 온 전화는 식사를 맡아서 해 줄 수 있냐는 질문이었다. 그렇게 채식 식사 준비의 모든 권한이 내게 주어졌다. 나는 단 일 초의 고민도 없이 좋다고 말했다. 식사를 맡았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메뉴 고민에 들어갔다.

내가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만났더라면, 음식에 대해 이야기했더라면, 함께 먹고 마시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상상을 수없이 해 보았다.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어떤 음식을 내어주어야 할까. 그날부터 내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멈춘 곳이 있었다. 나는 선생님께 어떤 식사를 해드리고 싶었을까. 만약 선생님이 살아 계셨다면, 당연히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만들어 드리지 않았을까. 그 생각에 미치자 선생님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셨는지 알아야만 했다. 생태적지혜연구소를 함께 만들고 가꾼 선생님의 옆지기, 윤경 선생님께 여쭤봐 달라고 윤석님에게 부탁했다.

윤경 선생님으로부터 온 답이었다.

여름엔 냉면을 끼고 살았어요. 동치미 냉면. 제가 음식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계절 음식을 제대로 먹은 적이 없어요. 그때그때 구하기 쉬운 채소를 쪄서 쌈장과 함께 먹었구요, 해파리냉채도 좋아해서 맨날 코 뻥 뚫리는 경험을…. 계절에 상관없이 잡채라면 사족을 못 썼고, 완전히 채식을 고집하지 못하고 본인을 덩어리 고기를 막지 않는 “비덩”이라 얘기했던 가장 큰 원인이었던 ‘만두’가 신샘 최애 음식이었지요. 나중엔 채식만두도 많이 나와서 좋아하셨어요. ^^

선생님을 추모하는 첫 자리에 선생님이 좋아하셨던 음식으로 밥상을 차리고,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나눠야겠다 생각했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포럼 형식의 추모식이었기에 전체 일정표에 들어갈 식사의 제목을 알려달라고 했다. 메뉴 짜기도 시간이 모자란데 이름을 붙여야하다니 처음엔 좀 난감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말은 그리움이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 마음에 남아있던 감정이 아쉬움보다는 그리움이었음을 그때 알았다. 그렇게 탄생한 식사 시간이다.

점심 그리움을 담은 한 그릇 밥

점심은 식사의 간결함을 살려 ‘지금 여기 가까이, 그리움을 담은 한 그릇 밥’이라는 주제를 담기로 했다. 평소 선생님은 채소를 쪄서 쌈장에 드시는 것을 즐기셨다고 했다. 여름이면 냉채를 드시며 코가 뻥 뚫리는 경험을 즐기셨다는 말도 기억에 남았다.

  • 치자밥 — 한여름 열기를 식혀주는 밥. 뜨거운 여름을 잘 나기 위해 먹어두면 좋은 밥을 준비했다.
  • 오이소박이 — 여름의 대표 채소인 오이로 담근 김치. 성질이 시원하고 비타민이 풍부해 여름철 지치기 쉬운 피부와 몸에 해독 작용을 한다.
  • 채소찜과 두부쌈장 — 평소 선생님이 채소를 쪄서 쌈장에 드시는 것을 즐기셨다고 한다. 여름에 나는 갖가지 채소를 알맞게 쪄서 한국의 대표 발효식품인 된장으로 쌈장을 만들고,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씨앗을 곁들여 한여름의 혈관 건강을 챙겼다.
  • 냉채 — 선생님이 좋아하신 냉채. 톡 쏘는 양념과 다양한 찬 음식의 조화가 담긴 음식이다. 무더운 여름, 탈 나지 않으시라고 냉채에 청포묵을 넣었다.

저녁은 선생님이 남기신 책 『식탁 위의 철학』에서 길어 올린 뷔페식 밥상이다.
사진 제공 : 성미선

저녁 철학자의 식탁

저녁은 선생님이 남기신 책 『식탁 위의 철학』에서 길어 올린 뷔페식 밥상이다. 선생님이 써 내려간 사유들을 음식의 이름으로 불러, 식탁 위에 철학을 담고 싶었다.

  • 김치와 리토르넬로 — 김치, 차이의 반복을 말하다. 오이김치, 얼갈이보리물김치, 적채·양배추 절임김치
  • 잡채와 다양성 — 차이와 다양성의 향연. 잡채
  • 된장과 변용 — 콩, 사랑과 혁명의 다른 이름. 콩 후무스와 채소 스틱
  • 두부김치와 이질생성 — 창조와 생성의 돌연변이. 두부김치
  • 비빔밥과 카오스모제 — 혼돈 속에서 피어난 맛. 비빔밥
  • 짜장과 시뮬라크르 — 진본보다 더 진본 같은 복제품. 채식 짜장
  • 라면과 속도 문명 — 더 빨리, 더 간편하게. 즉석조리로 개인이 냄비에 끓여 먹기
  • 빵과 가상성 — 색다른 영토를 만들어내는 아름다움. 통밀빵 타파스
  • 고추장과 배치 — 콤플렉스에 반기를 들다. 고추장 기름떡볶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채식 짜장과 라면 끓여 먹기는 하지 못했다. 재료 준비는 했는데 시간 안배에 실패하여 두 메뉴를 진행하지 못했다. 사람이 너무 욕심을 부리면 일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최애 음식 — 만두 – 애호박, 표고만두

추모제 참여자들과 함께 만두를 빚었다. 사진 제공 : 성미선

만두는 선생님이 끝내 완전한 채식을 고집하지 못하게 했던 최애 음식이었다. 그 만두를 이 자리에서 채식으로 빚었다. 만두의 신이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안남옥 언니가 이 자리를 위해 만두피를 준비하고 한 땀 한 땀 만두를 빚어주었다. 그리고 김현주, 아침 일찍 짐을 잔뜩 싣고 가평에서 달려온 친구. 그 마음과 수고가 없었다면 이 만두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손끝에서 선생님의 최애 음식인 만두가 다시 태어났다.

내가 꿈꿨던 식사는 발우공양이었다. 중앙에 차려진 밥상에서 자신이 먹을 만큼의 음식을 그릇에 담는다. 밥을 다 먹고 나면 준비된 떡으로 밥그릇을 깨끗이 닦아 먹는다. 준비된 물을 부어 그릇을 헹궈 마시고, 마지막으로 깨끗한 물에 한 번 더 그릇을 헹궈 주변 화분에 부어준다. 밥의 시작과 끝, 불교의 발우공양에서 모티브를 빌려 이 자리에서 선생님을 기억하며 밥과 세상, 비인간과 인간을 연결시켜 보고 싶었다. 그러나 식사 자리에서 이동하여 외부로 나가려면 계단을 따라 이동해서 외부 현관으로 나가야지 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여러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가기가 만만치 않았기에 이 일은 나만의 상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상상만으로도 기쁜 시간이어서 아쉬움은 없었다. 그렇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해보고 싶은 퍼포먼스이긴 하다.

밥상을 다 치우고 나서야 비로소 선생님이 가까이 계셨다는 느낌이 들었다. 생전에 한 번도 뵙지 못한 분인데, 밥을 준비하는 내내 선생님 곁에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채소를 쪄야 할지, 냉채에 무엇을 넣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사실은 선생님과 나누는 대화였는지 모르겠다.

손을 잡아보지 못한 선생님께 밥상 한 번을 차려드렸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그날 밥을 먹으며 조용히 생각했다.

언젠가 기회가 닿을 거라 막연히 믿었던 만남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밥을 했다. 선생님이 좋아하셨던 것들로. 그것이 내가 선생님과 손을 잡는 방식이었다.

행사 당일 참가자들과 함께 나눈 밥상. 필자가 집 앞에서 들꽃을 한 아름 공수해와서 식탁을 장식했다. 사진 제공 : 성미선 / 현장 촬영 : 한승욱

■ 추억의 레시피 : 애호박・표고버섯 만두

사진 촬영: 한승욱

재료: 애호박 2개, 표고버섯 10개, 소금 1/2작은술, 간장1작은술, 들기름1큰술, 깨소금 1큰술, 만두피 30장

초간장: 간장 1큰술, 현미식초 1/2큰술, 깨소금 1작은술, 고춧가루 1/2작은술

사전 준비

  1. 애호박은 깨끗이 씻어 둔다.
  2. 표고버섯은 젖은 행주로 깨끗이 닦아둔다.
애호박・표고버섯 만두. 사진 제공 : 성미선

조리 순서

  1. 애호박은 채썰어 소금에 절여둔다.
  2. 표고버섯은 얇게 모양대로 썰어 소금을 살짝 뿌리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찜기에 찐다. (3분)
  3. 절인 애호박은 10분후 물기를 꼭 짜준다.
  4. 찐 표고버섯의 물기를 꼭 짠다.
  5. 애호박과 표고버섯을 섞은 후 간장, 넣고 볶아준다.
  6. 볶아진 재료를 한 김 식혀 깨소금, 들기름을 넣고 잘 치대준다.
  7. 만두피에 소름 듬뿍 올려 만두를 빚는다.
  8. 김 오른 찜통에 젖은 면보자기를 깔고 만두를 올려 5분 강불에서 찐다.
  9. 만두를 꺼내 접시에 담고 초간장과 곁들여 먹는다.

성미선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먹을 것을 만든 일도 좋아합니다. 함께 먹는 일은 더 좋아합니다.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먹는 일로 맛있고 재미나게 전환을 꿈꾸며 〈지구여행자의 레시피학교〉를 운영하고 있어요. 우리 농업 기반의 채식문화 운동을 꿈꾸며 땅과 농부에 매일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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