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구조주의 철학에서의 기후정의] ⑥ 소수자되기와 기후정의

이 글은 2019년 환경정책평가원에서 발주된 기후정의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포스트구조주의에서의 기후정의 - 가타리의 ‘구성적 기후정의’ 개념의 구도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이다. 이 글에서는 국제사회에 닥친 ‘기후정의’(Climate Justice)라는 시급한 과제를 접근하는 방법론으로 펠릭스 가타리의 구성주의, 도표주의, 제도적 정신요법, 분열분석, 배치와 미시정치, 소수자되기, 생태민주주의, 볼 수 없는 것의 윤리와 미학 등을 적용해 본다. 기후정의의 문제는 기후위기에 책임이 거의 없는 제 3세계 민중, 탄소빈곤층, 소수자, 생명, 미래세대 등이 최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대응과 적응 방법을 찾고자하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에 적용되는 펠릭스 가타리의 철학 개념은, 이에 대한 해법을 찾고자 하는 필사의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가타리는 들뢰즈와 함께 소수자되기라는 색다른 공동체와 사회, 문명의 핵심과제를 밝힌다. 이는 사회, 인륜적 공동체, 인간이 미리 전제된 조건이 아니라, 인류가 모든 안간힘을 써서 구성하고 창안해야 하는 과제임을 의미한다. 즉, 헤겔과 같이 인륜적 공동체가 미리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모순, 갈등, 대립이 있다 하더라도 변증법적인 과정에 따라 사회의 성숙으로 향할 것이라는 논점에 대해서 의문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사회는 미리 통합된 것도 아니고, 모순, 갈등, 대립이 있던 기후변화의 상황은 주권의 와해와 사회분열로 인해 기후난민을 대량으로 쏟아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되기라는 사랑과 욕망, 정동(affect)의 명제는 미리 주어진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천하고 조성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기후정의는 소수자되기에 부응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흔히 정상인, 성인, 백인, 남성, 오른손잡이 등과 같이 일률적인 가치를 평준화시켜 동질성을 발생시키는 다수자들과 달리, 소수자는 특이성을 생산함으로써 공동체와 사회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든다. 즉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를 풍부하게 만드는 존재를 의미한다. by Marcus Aurelius
흔히 정상인, 성인, 백인, 남성, 오른손잡이 등과 같이 일률적인 가치를 평준화시켜 동질성을 발생시키는 다수자들과 달리, 소수자는 특이성을 생산함으로써 공동체와 사회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든다. 즉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를 풍부하게 만드는 존재를 의미한다.
사진 출처 : Marcus Aurelius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것은 결국 보이지 않게 사회정의를 훼손하고 인간과 사회를 좀 먹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지만 소수자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논리이며, 또한 공리주의는 사랑, 욕망, 정동을 이익과 이해, 이득으로 번역하고 수렴시킴으로써 성장주의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주입하는 논리며, 제도의 영역내의 우애, 환대, 연대성 등을 잠식해 왔던 통속적인 문명의 작동방식이기도 했다. 소수자되기는 최말단과 낮은 곳에 있는 소수자와 생명, 자연을 파괴할 때, 그 자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사회에 영향을 주어 사회생태계를 파괴하고 공동선(公同善)과 공공영역을 기능정지 시킨다는 점을 정확히 응시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와 공동체의 재건에 나서려고 한다면 우선적으로 소수자되기의 실천으로 향해야 함을 분명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수자(minority)는 양적 소수, 사회적 약자, 주변인(minor)과는 차이를 갖는다. 흔히 정상인, 성인, 백인, 남성, 오른손잡이 등과 같이 일률적인 가치를 평준화시켜 동질성을 발생시키는 다수자들과 달리, 소수자는 특이성을 생산함으로써 공동체와 사회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든다. 즉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를 풍부하게 만드는 존재를 의미한다.

소수자되기는 “사랑할수록 달라지는 것” 즉 “점점 특이해지는 사랑”이라고 압축해서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공감과 같이 닮아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화음과 같이 선율과 리듬, 박자의 차이와 주름을 미세하고 다양하게 만들어 우아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 사랑할수록 달라지는 소수자되기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소수자인 아이, 동물, 광인, 이주민, 여성, 성소수자 등으로 되기(becoming)의 사랑과 정동의 흐름을 향하는 것은 결국 공동체가 다양해지고 풍부해지는 길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비평형적 진화’라는 개념을 통해서 서로 같아지거나 닮아질 수 없는 말벌과 오르키데 난초의 사랑으로 소수자되기를 설명했다. 이는 우주적 합일이 즉각적이고 감각적으로 가능하다는 동일성, 통일성, 상식(common sense)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기후정의 중 인정적 정의에서 소수자되기는 배제, 분리, 혐오, 차별의 미시파시즘에 맞서서 사랑의 용기 있는 행동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소수자되기는 약자에 대한 배려를 넘어서, 소수자, 생명, 이주민, 난민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이 사회가 풍부해지고 다양해질 수 있는 방법과 증오와 차별의 미시파시즘에 대한 해독제를 찾는다. 결국 소수자되기야말로 민주주의와 정의를 구현하는 핵심적인 사랑과 정동의 논법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정의의 차원에서 소수자되기는 기후난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불식시키고, 난민을 포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야 한다. 이는 재정적인 수준에서 ODA에 필적할 수준의 기후펀드의 조성과 난민에 대한 포용적인 정책을 필요로 한다. 더불어 대규모 기후보험을 범시민적으로 조성하여 기후난민에 대한 지원에 나서야 함도 필요로 한다. 2019년 현재 난민은 6,700만 명의 수준이나 2030년에는 1억 3000만 명으로 늘어나고, 기후변화가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2100년에는 기후난민이 10억에 육박할 것이 예상된다. 난민에 대한 정부와 시민의 준비와 대비가 지금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일국적인 차원에서 탄소빈곤층에 대한 기후정의의 구현도 필요하나, 주권체제가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후난민은 이미 우리 내부에 들어와 있는 기후위기의 절박한 현실이기도 하다. 또한 기후정의 차원의 제도적인 노력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 증오와 혐오, 분리에 대한 대책이다. 혐오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돌봄, 정동에 따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시민들 스스로가 각성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적인 프로그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더불어 탄소빈곤층, 소수자, 난민과 분리된 채 살아가는 도시 시민들에게 그들의 삶과 연대하고 연결될 수 있는 제도와 프로그램, 계획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는 그저 규제로서의 제도의 의미를 넘어서 정동과 돌봄의 관계망으로서의 제도로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소수자되기에 기반한 기후정의의 제도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을 수 있다.

(1) 기후난민에 대한 제도적인 노력과 기후펀드

기후난민의 상황은 우리 역시도 자유롭지 않은 기후변화의 현실이다. 이러한 기후난민을 사랑, 욕망, 정동, 돌봄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시민사회의 노력과 제도 창안을 요구한다. by Julie Ricard
기후난민의 상황은 우리 역시도 자유롭지 않은 기후변화의 현실이다. 이러한 기후난민을 사랑, 욕망, 정동, 돌봄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시민사회의 노력과 제도 창안을 요구한다.
사진 출처 : Julie Ricard

“당신의 아파트 주차장에 노숙인이 서성거린다면?”이라는 난처한 질문처럼, 기후난민의 상황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현실이다. 기후변화의 현실은 증오와 폭력, 내전, 전쟁으로 나타나며, 결국 어떤 이유가 되었건 주권질서로부터 튕겨져 나오는 기후난민의 상황으로 드러난다. 소수자되기는 이러한 기후난민을 사랑, 욕망, 정동, 돌봄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시민사회의 노력과 제도 창안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기후난민의 상황은 우리 역시도 자유롭지 않은 기후변화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래에 대한 투자는 기후펀드를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성장주의 시대에서의 보험, 펀드, 연금의 역할은 이제 기후펀드로 점차 그 자리를 이전시켜야 할 것이다.

(2) 난민국제기구를 위한 연방주의적 노력을 위한 지역사회의 제도적인 실천

UN과 같은 연방주의적인 국제기구의 기능정지는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왜냐하면 그 역시도 주권질서의 연합의 성격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권질서의 기능정지 상황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생명위기 시대의 개막에 있다. 기후난민의 문제가 지역사회의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처럼 연방주의의 판과 구도는 새롭게 조성하기 위해서 지역사회의 아젠다와 문제의식을 열린 지구인의 관점으로 바꾸는 색다른 노력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지구(Global)가 바로 지구(Local)이기 때문이다.

(3) 탄소빈곤층으로서의 도시빈민을 위한 구체적인 폭염대책으로서의 냉난방기 보급

일본의 경우와 같이 엄청난 열대야와 폭염이라는 상황에서 탄소빈곤층에 대한 에어컨 보급은 탄소복지와 적응의 차원에서 피할 수 없다. 오히려 전기세나 에너지 사용의 문제를 재생에너지의 확대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이와 동시에 탄소빈곤층에 대한 공공차원에서의 에어컨 보급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연은 이제 예전과 같은 자연이 아니다. 그대로 방치한다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리는 현실에서 자연(自然)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할 시점이다.

(4) 폭염 시의 죄수, 시설 장애인, 시설 노인, 시설 아동 등에 대한 대책

폭염 동안의 시설과 감옥, 군대 등에 대한 탄소복지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곳에 우선적으로 재생에너지 보급과 설비 보강 등을 통해서 에너지전환의 노력을 하면서, 동시에 탄소복지적인 차원에서 에어컨 사용이 공식화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극심한 폭염의 상황에서 죄수의 열악한 상황이 죄수를 죽음으로 내몰지 않도록 만드는 생명권적인 시각도 필요하다. 시설, 감옥, 병원, 군대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지침은 탄소복지의 차원에서 반드시 제도화되어야 한다.

(5) 푸드플랜을 보완하여 식량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와 프로그램

푸드플랜은 로컬푸드와 지역사회와 급식시설 등을 연결하는 혁신적인 제도이다. 기후정의의 차원에서 끊임없이 위험성이 제기되어 왔던 바가 바로 식량위기이며, 이에 대한 대처와 대응의 제도로서 푸드플랜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식량위기는 탄소빈곤층, 도시빈민, 소수자 등에게 가장 먼저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후정의는 반드시 식량위기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 먹거리와 관련된 제도와 정책,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소수자들이 처하게 될 막대한 상황에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특히 노인의 경우에는 의무적인 급식시설을 통해서 식량위기로부터 생명을 보존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6) 기후적응과 관련된 인프라와 시설, 녹색기술 등을 제 3세계에 보급하기 위한 제도 확충

물, 전기, 가스, 통신시설, 교통 등 기본적인 라이프라인이 보급되지 않은 제 3세계가 겪을 기후변화의 상황은 매우 혹독할 것이다. 이에 따라 제 3세계가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결국 이에 대한 범정부적인 지원이 없다면, 기후난민들의 유입은 피할 길이 없다. 제 3세계의 주권체제의 기능정지가 찾아오면, 결국 더 많은 비용과 열악한 상황들이 초래되는 결과를 낳는다. 지금부터 기후적응과 관련된 다양한 기술과 제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7) 환경재난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제 3섹터 육성

환경재난의 상황에서 주목되는 것은, 시장과 국가의 기능정지가 아주 쉽게 찾아온다는 점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 관계망을 자체를 갖고 있는 제 3섹터가 최후의 마지노선으로 작동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을 할 수 있는 골간조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나 공공영역은 기후재난의 상황에서의 대처의 노하우와 방법론을 미리 제 3섹터에게 제공해주어, 공공영역의 기능정지 상황에서 재건의 판과 배치로써 작동할 수 있는 제도적인 여지를 주어야 할 것이다.

– 다음 편에 계속

본 연구는 2019년 환경정책평가원의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정책 개선방안 연구〉라는 연구과제에 제출된 연구보고서입니다.

신승철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