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구조주의 철학에서의 기후정의] 서론 : 생태철학을 통한 기후정의 재창안을 위하여

이 글은 2019년 환경정책평가원에서 발주된 기후정의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포스트구조주의에서의 기후정의 - 가타리의 ‘구성적 기후정의’ 개념의 구도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이다. 이 글에서는 국제사회에 닥친 ‘기후정의’(Climate Justice)라는 시급한 과제를 접근하는 방법론으로 펠릭스 가타리의 구성주의, 도표주의, 제도적 정신요법, 분열분석, 배치와 미시정치, 소수자되기, 생태민주주의, 볼 수 없는 것의 윤리와 미학 등을 적용해 본다. 기후정의의 문제는 기후위기에 책임이 거의 없는 제 3세계 민중, 탄소빈곤층, 소수자, 생명, 미래세대 등이 최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대응과 적응 방법을 찾고자하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에 적용되는 펠릭스 가타리의 철학 개념은, 이에 대한 해법을 찾고자 하는 필사의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이 기후변화의 상황을 심각하게 느끼게 된 것은 2018년 여름 폭염이 한국사회에 급습했을 때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북극이 녹고, 서남아프리카에 가뭄이 드는 것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했지만, 바야흐로 기후변화 시대는 우리의 인류문명과 한국사회를 뒤흔드는 핵심변수로 다가온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온실가스를 줄이고 탄소배출량을 감축하려는 시도는 탄소거래제도 등으로 제도적으로 시도되고는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탄소를 배출하지 않더라도 1.5℃ 상승은 피할 수 없다는 절박한 국제사회의 호소와는 거리가 있었다. 2020년 출범한 신기후체제는 ‘역사적 책임’(Historical Responsibility)과 ‘공동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간의 이중구속(Double bind)와 갈등에 대한 해결책으로 등장했지만, ‘국가결정기여’(NDC)라는 자발적 책임의 영역으로 탄소감축의 가능성을 설정하고 있어서 강제력이 없다시피 한 국제협약이라는 아킬레스건을 갖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의 환경난민의 유입과 극우파시즘의 융성, 그리고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의 신기후체제의 탈퇴는 인류사회의 미래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인류는 신기후체제를 완성할 수 있을까?

시리아에서의 2005년부터 2009년까지의 기록적인 가뭄과 식량가격 상승은 전쟁과 내전, 결국 주권체제의 붕괴로 나타나, 800만 명의 난민이 유럽으로 향하게 되었던 원인이 되었다. by Freedom House  출처: www.flickr.com/photos/syriafreedom/21076582618/
시리아에서의 2005년부터 2009년까지의 기록적인 가뭄과 식량가격 상승은 전쟁과 내전, 결국 주권체제의 붕괴로 나타나, 800만 명의 난민이 유럽으로 향하게 되었던 원인이 되었다.
사진출처 : Freedom House

이런 가운데, 대규모 기후난민의 발생은 이제 시작되고 있는 상황이다. 시리아에서의 2005년부터 2009년까지의 기록적인 가뭄과 식량가격 상승은 전쟁과 내전, 결국 주권체제의 붕괴로 나타나, 800만 명의 난민이 유럽으로 향하게 되었던 원인이 되었다. 더더군다나 기후위기의 상황에서 제대로 된 라이프라인과 에어컨, 식량 등이 부재한 제 3세계의 상황은 기후난민의 발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 상황은 기후정의의 문제가 급부상할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정의는 일국적인 차원의 문제를 벗어나서 기후변화에 큰 책임이 없는 제 3세계 국가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있는 냉혹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로 볼 때 탄소빈곤층이 직면하게 될 폭염, 열대야, 자연재해, 가뭄, 식량위기 등의 기후부정의와 불평등의 상황 역시도 이러한 맥락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결국 기후정의는 기후변화는 모두의 책임이라는 논리를 통해서,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는 기업과 시장, 생활방식 등에 면죄부를 주는 방식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기후정의를 통해서, 기후변화와 빈곤과 가난, 불평등의 한꺼번에 탄소빈곤층으로 다가오는 상황에 대해서 정면 대응하는 방법론을 탐색하고자 한다. 그런데 기후정의를 하나의 모델에만 수렴시켜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델을 넘나들어 적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포스트구조주의 사상, 그중에서도 펠릭스 가타리의 생태철학을 기후정의의 방법론으로 적용시켜 보려고 한다. 이는 일종의 기후정의를 둘러싼 다양한 맥락과 탈맥락, 초맥락을 살펴보기 위한 하나의 창을 설립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기후정의 수립을 위한 방법론 : 생태철학

철학자이자 프랑스 녹색당 창당멤버인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는 『세 가지 생태학』(2003, 동문선)에서, 안개와 독가스로 가득 찬 사회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주체성 생산(the production of subjectivity)’, 즉 ‘우선 그 일을 해낼 사람을 만들 전략’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여기서 주체성(subjectivity)는, 근대적인 주체(subject)처럼 믿음, 당위, 의무, 책임. 직분, 역할이 아니라, 너와 나 사이에서 너일 수도 나일 수도 있는 ‘우리 어느 누군가’라는 자율성에 따르는 인물이다. 주체성 개념은 여러 철학자들에 의해 사이주체성(inter-subjectivity), 서로주체성, 간주관성 등으로도 불렸으며, 주로 공유지와 커먼즈(commons)에서 활동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주체성은 공동체의 판 위에 강렬도가 높아지면 아나운서가 아닌 데 사회를 보고, 댄서가 아닌 데 춤을 추고, 가수가 아닌 데 노래를 부르는 양상으로도 드러난다. 즉, 정체성(Identity)으로서가 아니라 특이성(singularity)으로서 출현하는 것이 주체성이다.

더 나아가 가타리는 이러한 주체성을 생산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주체성 생산은 사회도 인륜적 공동체도 인간도 미리 주어진 선험적인(a priori) 전제조건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나가고 구성해야 할 과제임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선험적인 주체를 가정하는 근대적인 인식론과 존재론, 논리학은 파산선고를 받은 상황이다. 이러한 주체성 생산이라는 과제의 영역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로서의 ‘자연생태학’, 사회적 관계로서의 ‘사회생태학’, 생태적 지혜의 마음과 관련된 ‘정신생태학’이라는 ‘세 가지 생태학’에서도 정신생태학의 분야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세 가지 생태학은 인간, 자연, 사회의 신진대사로 이루어진 거대한 연결망 전반을 그려냄으로써, 기후변화가 초래한 생명위기 시대라는 거대한 문제설정에 대한 대면적인 감수성과 지각작용, 인지양식 등을 재발명하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즉, 우리는 기후변화의 이유와 원인을 규명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결망이라는 배치의 판 위에서 궁리하고 창안하고 실천할 수 있는 주체성과 제도의 작동과 양상을 구상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점에서 ‘왜’(why)라는 질문보다 ‘어떻게’(How)라는 질문이 기후위기의 극복에서 중요해진 상황이다. 여기서 우리는 가타리가 사회, 자연, 마음의 판 위에 그려낸 전환사회를 향한 전략지도 중에서, 기후정의를 구현할 아이디어와 단상을 찾고자 한다.

왜(why) 보다 돌파를 위한 어떻게(How) : 주체성 생산

가타리는 개념을 신비화하는 방향이 아니라, 실천 활동과 제도 생산의 과정에서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있는 연장통(toolbox)으로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그러가 그가 제시한 구성주의, 도표주의, 제도적 정신요법, 분열분석, 배치, 소수자되기, 생태민주주의, 볼 수 없는 것의 윤리와 미학 등의 개념들이 너무 난해하여 연장으로서의 기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리지 못하는 불운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특히 그가 제시하는 전략적 지도제작의 방법론의 핵심은 구성주의와 도표주의라고 할 수 있다. 가타리는 들뢰즈와 함께 쓴 『천개의 고원』(2001, 새물결)의 「13. 기원전 7.000년 포획장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구성주의, 도표주의는 어떤 경우건 문제의 조건들의 결정과 문제들 간의 횡단적 결합에 따라 기능한다

『천개의 고원』(2001, 새물결)의 「13. 기원전 7.000년 포획장치」, 309p
가타리가 제시한 구성주의와 도표주의는 어떻게 기후정의라는 문제설정에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지에 대한 색다른 사유를 제시해 준다. 사진은 벽화 형태로 그려진 펠릭스 가타리의 초상화. by thierry ehrmann 출처: www.flickr.com/photos/home_of_chaos/14354773071/
가타리가 제시한 구성주의와 도표주의는 어떻게 기후정의라는 문제설정에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지에 대한 색다른 사유를 제시해 준다. 사진은 벽화 형태로 그려진 펠릭스 가타리의 초상화.
사진출처: thierry ehrmann

구성주의(constructivism)와 도표주의(diagrammatisme)는 어떻게 기후정의라는 문제설정에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지에 대한 색다른 사유를 제시해 준다. 여기서 도표주의는 지도그리기의 방법으로 불리면서 문제제기와 대답, 질료와 정의, 원인과 결과가 입구와 출구를 이루어 딱 맞아떨어지는 일대일 대응의 근대적인 이분법이 아니라, 그것의 분열과 어긋남, 배리(背理)에 기반하는 것, 즉 입구로서의 문제제기에 대한 출구로서의 대답이 분열되어 있거나 다른 곳에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구성주의의 경우에는 뻔한 질문과 뻔한 대답을 던지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에 대답이 없거나, 모두가 대답이거나, 대답이 여럿임을 의미한다. 이 두 방법론은 동시에 “기후정의는 무릇 이런 것이다”라고 단정내리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정의라는 문제설정에 직면한 여러 가지 전략적 지도제작을 통해서 이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설명해보려고 시도를 해보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가 기후정의라는 문제설정과 끊임없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혁명적 상황임을 직시하여야 한다. 동시에 이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여러 가지의 제도, 정책, 프로그램, 시스템, 실천 활동 등의 지도를 그려내는 것이 요청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기후정의 수립의 색다른 사유 : 구성주의와 도표주의

본 연구는 이러한 방법론들과 개념들을 이용하여 기후정의 개념을 보다 전위적이고 적극적인 개념의 뾰족한 첨단점으로 만들기 위한 연구라고 할 수 있겠다. 기후정의에 대해서 정의(definition)부터 내리는 연역적인 방법론들은 미리 주어진 사회 현상에 대한 왜(Why)라는 대답만을 던지지만, 사실상 어떻게(How) 그것을 극복할지에 대한 전략적인 지도제작에는 취약한 면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본 연구는 가타리의 전략적 지도제작의 방법론에 따라 제도 생산, 관계망 창발, 거대계획, 거대프로그램의 창안에 적용될 수 있는 수준의 ‘어떻게’로서의 지혜를 제공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이를 통해 기후정의 개념이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현실에 대해서 그저 진단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후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주체성 생산으로 나아갈 경로와 방향성을 정립하려 한다.

– 다음 편에 계속.

본 연구는 2019년 환경정책평가원의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정책 개선방안 연구〉라는 연구과제에 제출된 연구보고서입니다.

신승철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