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만다라, 사죄와 축복의 생태예술

티벳 만다라는 바다를 통해 온 생명에게 축복을 보낸다는 의미가 있지만, 〈플라스틱 만다라〉는 우리가 뿌린 고통을 거두어드린다는 의미가 있다. 모래밭을 기어 다니며 온 바다를 떠돌아다니다가 제주 바닷가로 밀려온 플라스틱 조각을 하나하나 줍는다. 그 행위는 자연 앞에 낮게 엎드리는 일이며, 나 자신과 바다의 직접적인 연결을 아프게 경험하는 일이다. 이렇게 모은 플라스틱으로 만다라를 만든다.

[표제사진] by 심건

플라스틱 만다라는 모래에 섞여있는 5mm 이하의 1차 미세 플라스틱(플라스틱 팔렛[pallet] 또는 너들[nurdle]이라고 불리는, 공장에서 일정한 크기로 만들어진 플라스틱 구슬. 이것을 가공해서 플라스틱 제품들을 만든다)과 2차 미세 플라스틱(바다에서 쪼개져서 작아진 플라스틱)을 재료로 하는 ‘줍기’와 ‘배치’로 이루어진 작업이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플라스틱 알갱이를 찾기 위해서 모래 위를 네 발로 기어 다니며 모래를 손으로 쓰다듬고 체로 치는 작업을 반복한다. 작년 전시에 이어서, 이렇게 주운 플라스틱 조각들을 가지고 올해 11월에 약 5미터 크기의 생명의 순환을 상징하는 만다라 문양 설치물로 만들 계획이다.

사진: 이혜영, 심건, 정은혜
사진: 이혜영, 심건, 정은혜

원래 불교 용어인 ‘만다라’는 온 우주의 완벽한 조화와 순환이 내포된 상징이다. 대칭적인 원형의 문양과 티벳 불교의 상징들로 이루어져 있다. 더 확장된 의미로는 자연의 순환을 나타내는 원형의 이미지를 총칭하기도 한다. 자연에는 만다라 형태가 가득하다. 꽃이나, 거미줄이나, 소라에도 만다라가 있다. 또한 만다라는 치유적인 이미지다. 심리학자 칼 융 이후, 심리 치료적인 도구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실제로 만다라를 그리면 집중이 되고, 통증완화에 효과가 있고, 불안이나 우울감을 감소하는 데 효과가 있다. 삶을 만다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만다라는 삶의 여러 단계의 모습들이 각각의 고유의 고통과 결핍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완벽한 원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티베트 스님들은 며칠 또는 몇 주에 걸쳐 색 모래로 정교한 문양의 만다라를 만들고, 완성되자마자 만다라를 파괴하고 모래를 쓸어 모은다. 그리고 모래를 가까운 강이나 바다로 가서 흘려보낸다. by Random Sky  https://unsplash.com/photos/3fDGwShA1sE
티베트 스님들은 며칠 또는 몇 주에 걸쳐 색 모래로 정교한 문양의 만다라를 만들고, 완성되자마자 만다라를 파괴하고 모래를 쓸어 모은다. 그리고 모래를 가까운 강이나 바다로 가서 흘려보낸다.
사진 출처 : Random Sky

플라스틱 만다라의 의식(ritual)은 티베트 불교의 모래 만다라에서 영감을 받았다. 티베트 스님들은 며칠 또는 몇 주에 걸쳐 색 모래로 정교한 문양의 만다라를 만들고, 완성되자마자 만다라를 파괴하고 모래를 쓸어 모은다. 그리고 모래를 가까운 강이나 바다로 가서 흘려보낸다. 만다라를 만들면서 읊조린 축복의 메시지가 모래에 담겨 지구의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닿기를 바라는 기도다. 플라스틱 만다라는 그 과정을 거슬러 바다를 떠다니는 죽음의 플라스틱을 제주도 바닷가에서 거둬들인다. 작은 플라스틱을 찾는 내내 바다 앞에 낮게 엎드린다. 바다와 바다생명에게 애도와 사죄를 보내는 행동하는 기도이고 의식이다.

이 작업은 바다와 플라스틱에 대한 작업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초래한 자연의 파괴 앞에서 느끼게 되는 여러 감정에 대한 작업이기도 하다. 우리 인간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복잡하고 불편한 감정이 들면 그 감정을 억누르거나 그 감정을 촉발한 사람을 탓하거나 회피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처리하려 하는데 (물론 잘 되지는 않는다), 나는 이 작업을 통해서 불편한 감정을 오롯이 경험하고자 한다. 작업을 하는 내내 복잡하고 불편한 감정이 마음속에 가득하다. 내 불편함의 원인은 플라스틱이 생명을 죽이는 것을 알기 때문만은 아니다. 유난히 알록달록하고 반짝반짝한 플라스틱을 발견하면 예쁘다고 느끼고, 심지어 기쁠 때도 있어서 그런 내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다. 어쩌면 플라스틱이 세상을 점령하게 된 큰 이유는 어떤 악덕세력 때문이 아니라, 플라스틱이 예뻐서일지도 모르겠다.

사진 정은혜
사진 정은혜

플라스틱이 바다 생명을 죽인다는 것은 이미지로 많이 접하고 알고 있다. 하지만, 아는 것과 별개로 손의 촉감으로 플라스틱을 발견하는 경험은 너무나 다르다. 집에 와서도 온통 옷과 발과 소매 안에 모래가 있어서, 온몸으로 모래를 비비다 온 것 같다. “이게 바다의 몸이고 피부네!” 숲으로 바다로 같이 다니는 친구 그린씨가 모래사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바다의 위장에 붙은, 또는 고래나 나의 뱃속에 있는 플라스틱을 만지는 것 같아서 속이 울렁일 때가 있다. 이 작업은 어떤 면에서 시각적인 작업보다 촉각작업에 가깝다. 촉각과 청각은 뱃속의 태아에게 연결된 감각이라고 하던데, 반복적으로 쏴~쏴~ 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모래를 쓰다듬고 있으면, 이 경험이 내 뇌가 아니라 더 깊은 어디엔가 새겨지는 듯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단순한 줍기의 작업을 한 번이라도 했던 친구들은 그 묘한 몸의 감각을 잊지 못하겠다고 한다.

정은혜 <플라스틱 만다라>  Ocean-New Messenger 국제생태미술전, 제주현대미술관 2019(사진: 조재무, 관객참여: 바다에게 사과문 쓰기)
정은혜 <플라스틱 만다라> Ocean-New Messenger 국제생태미술전, 제주현대미술관 2019
(사진: 조재무, 관객참여: 바다에게 사과문 쓰기)

이 작업의 마지막 과정으로는, 주운 알갱이들을 만다라 문양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배치 외에는 다른 조형적인 작업은 하지 않는다. 않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거대한 바다에서 한 알 한 알의 플라스틱을 줍는 답답함과 지루함, 줍는다고 하더라도 사라지게 할 수도 없는 무기력, 그리고 만다라를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나의 덧없는 욕망, 그리고 배치한 것들을 쓸어버림으로써 과정은 있되 결과물 형태의 작업을 없애버리는 허무함을 온전히 다 겪고자 한다. 감정을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불편해 하기, 그것이 우리 때문에 죽어간 많은 생명들에 대한 최소한 애도의 방식이라고 느낀다. 또한 눈앞에 놓인 수많은 기후변화의 증거 앞에서 눈을 돌리는 대신,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꾸려면 불편함을 쳐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심리치료사인 내가 고통에 휩싸여 괴로워하는 내담자에게 안내하는 길이기도 하다. 눈을 뜨고 고통의 터널을 바라보기, 걸어 들어가기, 통과하기, 그리고 변화하기.

이 작업은 끝내 무엇이 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태어나고 소멸 되는 원, 만다라, 그 진리 속에 놓이는데, 플라스틱은 생성되었으나 사라지지도, 사라지게도 할 수도 없다. 나는 끝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이 작업을 통해서, 우리가 초래한 고통을 직시하고, 마음의 불편함을 감당하여, 모래사장을 기어 다니며 주운 플라스틱 몇 줌만큼의 축복은 바다로 보내고 싶다.

사진: 심건
사진: 심건

* 프로젝트 인스타그램 @plasticmandala

이 프로젝트는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우수기획착장활동지원을 받았습니다.

정은혜

예술가이자 치료사이다. 가족과 이민 간 캐나다에서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냈으며, 그곳의 광활한 자연에서 한없이 작아지면서 동시에 한없이 커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였다. 캐나다에서 미술과 미술사를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뉴미디어 전문 미술관에서 기획자로 일하다가, 최첨단 기술과 예술을 이용한 소통이 아니라 좀더 근원적인 치유와 소통의 길을 걷고 싶어서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치료를 공부하였다. 시카고의 정신병원과 청소년치료센터에서 미술 치료사로 일하였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그림을 그리고 책을 쓰고, 예술·치유·자연을 키워드로 한 다양한 작업을 한다. 지구를 무대 삼아 대범하게 살라는 부모님의 뜻을 뒤로하고, 제주 중 산간에 있는 작은 마을에 10년째 살고 있다. 그동안 쓴 책에 ⟪치유적이고 창조적인 순간⟫⟪변화를 위한 그림일기⟫⟪싸움의 기술: 모든 싸움은 사랑이야기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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