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르넬로 시리즈] ③ 모티프와 대위법의 영토화

리듬이나 선율의 고유한 질이 나타나며 표현-되기가 이루어지고 그 리듬과 선율이 자신의 영토를 확보한다. 그리고 이 리듬과 선율이 표현되기 시작하는 영토화과정에서 영토적 모티브와 대위법 개념으로 발전해 나갈 때 우리는 이것을 리토르넬로라 일컫는다.

지난번 리토르넬로 시리즈에서는, 카오스에서 생성된 하나의 음이 주기적 반복을 통한 코드화로 하나의 환경을 만들고 다른 코드의 조각들을 받아들이며 코드변환을 일으켜 리듬을 발생, 다른 환경의 판을 생성하면서 다른 환경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이는 마치 진동이 있으나 차이를 생성하지 못하는, 굳건한 박자는 있으나 리듬이 없는 우리의 지루한 일상에 다소 새로운 환경의 이행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리듬이나 선율의 표현-되기의 예를 통해 고유한 질이 나타나는 과정을 찾아보고 그 리듬과 선율이 어떻게 자신의 고유의 땅을 갖는 (영토화) 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리듬과 선율이 표현되기 시작하는 영토화과정에서 영토적 모티브와 대위법 개념이 나오고 우리는 리토르넬로로 나아갑니다.

표현이 질료가 모여 영토를 성립하고 영토적 모티브와 대위법으로 발전해 갈 때 우리는 이것을 리토르넬로라고 일컫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토화라는 단어가 조금은 기계적인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인데, 어둠 속을 걸어갈 때 치켜드는 횃불은 환히 비추는 만큼 영토화가 된다고 가정하시면서 그 횃불을 소리로 상상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그럼 실제 음악에서 밤의 횃불 소리를 찾아보도록 하죠.

저번 시간의 마지막은 어떤 코드화된 환경에서 리듬의 개입으로 다른 환경으로 이행할 수 있으며 그 예로 조 바뀜현상(Modulation)을 들었습니다. 그 코드화된 환경에 멜로디를 얹어보겠습니다. 이는 리듬이나 (과) 선율이 표현-되기(표현성을 갖게 되면)를 통하여 영토화하는 과정을 보여드리기 위함입니다.

리듬의 표현-되기. 단순한 리듬을 가지고 있는 음들은 리듬을 내적 질서로 받아들이며 리듬을 표현의 질로 획득한다.
리듬의 표현-되기. 단순한 리듬을 가지고 있는 음들은 리듬을 내적 질서로 받아들이며 리듬을 표현의 질로 획득한다.

1-8마디까지는 지난 번 연재에서 봤던 조 바뀜의 과정(물론 13마디와 마지막 마디에서도 조 바뀜이 있습니다)입니다. 다장조(C major Key)에서 Eb 장조(Eb major key)로 조 바뀜이 되었죠. 여기에 단순하게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순서로 멜로디를 얹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9마디 조 바뀜 마디에서부터 단순한 멜로디에 리듬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순서는 같습니다. 리듬을 주자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제 느낌은, 뭔가 강조되는 듯하면서 어떤 것을 어필을 하는 것 같군요. 저는 이것을 리듬의 성격 중 표현의 질로 보려 합니다. 아무튼 1-8마디의 단순한 멜로디의 나열에서 시작하여 9마디부터 리듬이 바뀌면서 무언가 표현하는 것 같군요. 이제 단순한 멜로디는 리듬의 표현성을 획득하며 본격적으로 자신의 영토를 가지려 합니다. 좀 더 적극적인 표현 예술로 나아갈 준비를 합니다.

자, 이제는 선율(멜로디)의 모티프를 제 감정을 담아 만들어 보겠습니다. 천상과의 교감으로 잘 만들어야 할 텐데요. 모티프는 박자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위치나 고정된 어떠한 것도 가지지 않는다고 들뢰즈와 가타리는 말하고 있습니다. 전 그런 모티프가 천상과의 교감이 잘 된 모티프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럼 천상과의 교감에 다소 실패한 저의 모티프를 얹어 보겠습니다.

선율의 표현-되기. 선율의 모티프는 반복과 변화를 통하여 그 표현의 질을 가지게 된다.
선율의 표현-되기. 선율의 모티프는 반복과 변화를 통하여 그 표현의 질을 가지게 된다.

앞서 보았듯이 리듬도 표현성을 가지는 동시에 자신의 영토를 확보한다고 하였는데, 선율 또한 자신의 모티프의 반복과 변화를 통하여 영토화에 나섭니다. 이제 리듬과 선율이 자체적인 표현의 질을 획득하였다고 봐야겠네요. 앞서 말했던 박자와 위치를 가지고 있지 않은 (아마 본질적인 속성을 말하는 듯합니다) 모티프의 속성상 실제로는 더 많은 가변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리듬의 표현-되기의 실제 한 예를 들려고 하는데요. 리듬의 표현의 질은 민속 리듬 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실제 전통적인 쓰임새 또한 리듬의 표현-되기에 걸맞은 리듬들이죠. 국악의 리듬을 생각하시면 편하겠네요. 이 글에서 제가 선택한 리듬은 브라질의 보사노바 리듬입니다. 원래 보사노바 리듬의 기본은 ‘쿠웅짝 쿵쿵짝 쿵쿵짝 쿠웅짝’ 인데, 여기에서는 다소 변형된 리듬을 사용하는군요. 하지만 보사노바 리듬감은 살아 있습니다. 이 리듬은 0:33에서 기타로부터 시작되어 드럼리듬이 추가되면서 본격적으로 ‘이 곡은 보사노바 리듬을 가지고 있는 곡’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선 이 노래의 영토를 적극적으로 차지하죠. 피아노 솔로가 아주 멋진 곡이네요. 감상해 보시죠.

“Meditaçao” – ANDREA MOTIS JOAN CHAMORRO QUINTET & SCOTT HAMILTON
보사노바 리듬이 등장하며 순식간에 리듬은 표현성을 획득, 자기의 영토를 확보한다.

다음은 선율의 표현-되기의 실제 예를 찾아보겠습니다. 아래의 곡은 드뷔시와 함께 프랑스 현대음악의 양대 거장 중의 한명인 작곡가 라벨의 “볼레로”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이죠. 어릴 적 봤던 영화에서도 삽입됐던 기억이 나네요. 이곡은 단 두 개의 모티프와 하나의 리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두 가지의 모티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만을 합니다. 반복은 표현-되기의 요소이기는 하나 반복만으로는 가변성을 갖지 못하여 모티프의 자기 영토화는 어려워지죠. 하지만 이 곡은 그 지점을 넘었다고 보입니다. 물론 작곡자 본인은 이렇게 이야기 하였고 합니다. “나는 단 하나의 걸작을 썼다. 그것이 [볼레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곡에는 음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곡은 춤을 위한 곡으로 쓰여집니다. 그래서 아래의 영상도 이 곡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을 준비하였습니다.

이 곡은 형식적으로는 같은 리듬과 선율의 반복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변화가 있습니다.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분이 아니고 전체적으로) 크레센도(점점 크게)로 연주됩니다. 총 연주시간 16분 동안 말이죠. 그리고 멜로디를 연주하는 악기가 계속 바뀝니다. 마치 크레센도와 같이 초반부를 지나면 함께 연주하는 악기가 계속 추가가 되어 마지막에서 모든 악기가 연주하며 끝을 맺죠. 제가 보기에는 이런 크레센도와 악기의 구성으로 선율은 그 표현의 질을 충분히 획득한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이 곡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속성을 지닌 유럽 클래식의 문법을 따르지 않아 “음악”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나, 그 강약의 표현의 질은 자기 영역을 구축하기에, 영토화를 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아래 영상에서 보듯이 연주하는 악기 수가 증가할수록 무희들의 수와 춤의 강도도 “크레센도” 됩니다.

“Bolero” Maurice Ravel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리듬과 선율은 크레센도를 가지며 독립적인 영토를 구축한다.

이제 리듬과 선율을 통하여 영토적 모티프를 확보하였습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 영토적 모티프를 리듬적 얼굴, 인물로 비유하였습니다. 그리고 얼굴 및 인물 뒤로 보이는 풍경 (선율적 풍경) 즉, 외적 상황, 다른 다수의 모티프와의 외적 관계를 영토적 대위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예를 각각의 모티프라고 가정하고 서로간의 관계, 대위법을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서로와의 관계는, 쉽게 이야기하여 합쳐본다는 의미입니다. 영토적 대위법은 각각의 모티프가 만나 각자의 선율에 화성(두 가지 이상의 음들을 함께)이 되어 더욱 풍성하고 독립적인 풍경들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니까요. 그러기 위하여 첫 번째 예(리듬 표현-되기)를 한마디 늦게 시작해 보겠습니다.

영토적 대위법. 각각의 영토적 모티프는 서로 외적관계를 맺을 때 풍성한 선율적 풍경을 제공한다.

대위법과 관련된 재밌는 영상을 보시죠. 아시다시피, 작곡가 바하는 대위법에 능한 분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바하의 대위법 선율들을 보면 서로 각자의 내부 배치물(리듬, 선율, 화성 등)이 비슷한 불변성과 함께 서로를 품을 수 있는 가변성의 요인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이 짧은 캐논곡은 절반의 선율들이 연속되기도 하고, 같이 가기도 하고, 거꾸로 가기도 하고, 뒤집어서 가기도 하여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네요.

Bach’s Crab Canon

위에서 보았듯이 우리 환경에서도 각각의 영역에서 표현의 질을 획득할 때 외적 상황과의 관계인 대위법의 영토를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위협하고 배척하지요. 다들 아시겠지만 인간들의 구조적인 폭력적 요인들과 환경파괴 요소들 등일 것입니다. 이것들은 각각의 리토르넬로에서 코스모스적인 힘에 합류함을 방해하여서 결국에는 세계와 혼연일체가 되는 힘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현재 음악에서도 자본의 방향으로 향하고만 있는 관성화된 음악들로 인하여 음악자체의 고유의 성질인 변화를 가두어 버리고 더 나아가 폭력적인 단순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다양한 표현의 질을 억압하고 있죠.

이번 연재에서는 리듬과 선율의 표현-되기를 통한 영토화와 영토적 모티프, 대위법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영토화의 의미를 조금 더 알아보면서 리토르넬로에 한층 다가가도록 하겠습니다.

신동석

음악에 관심이 있다 본격적으로 음악 만드는 공부를 하고 있다. 재즈를 전공하고 있지만 모든 음악에도 관심이 있다. 환경과 관련된 일반적인 관심이 있지만 일반 이상의 관심을 가지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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