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스웻 홈(Home, Sweat Home)

모래시계의 하얀 모래가 아래로 서서히 빠져나간다. 모래시계를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주거의 유효 기간이 정해진, 집인 것 같다. 시간에 쫓기는 순간, 불안은 밀려온다. 내 안의 불안은 나를 삼킨다. 불안함은 땀방울이 되어 집마다 가득 채운다. 불안과 희망의 분열 그 사이에서 내 집이 아닌, 모두의 집은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그 물음을 독자에게 던진다.

오늘과 내일을 찾아서

어둠일까. 짙은 색의 파도가 저 멀리 멀리서 밀려들어 온다.
시리도록 차가운 물이 나를 감싸 안는다. 온몸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다.
나에게는 아가미가 없어. 나는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어.
누군가 귀에 대고 속삭인다. 아니, 아가미가 없을 뿐. 숨 쉴 수 있어.
아니야.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걸. 난 말조차 할 수 없어.
누군가 귀에 대고 속삭인다. 아니, 넌 할 수 있어.
더 깊숙이 가라앉는 나를 느낀다.
나에게는 미래시제조차 없는걸.
누군가 귀에 대고 속삭인다.
아니, 네가 만들면 돼.
아니, 불가능해.
아니, 가능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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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lll
하얀 포말 사이,
빛이 반사되어 반짝인다.
반짝이는 빛의 틈새로 오늘과 내일이 만난다.
우리 함께 꿈을 꾸자. 함께라면 가능해.
나와 네가 만나 우리가 만들어낸, 그리고 맞이할 새로운 세상을 말이야.

전화벨이 방 안 가득 울린다.

응~ 엄마. 밥 먹었지. 백수가 되니까 밥 먹을 시간은 많아서 더 잘 챙겨 먹어. 엄마도 잘 알다시피 내가 또 어디 가서 굶을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내 밥걱정은 하덜덜 말아요~

왜 한 직장에서 오래 있지를 못하는 거냐고~ 글쎄. 다니는 곳마다 터가 안 좋아서 그런가. 풍수지리적으로 위치가 좋은 직장을 찾아보도록 노력할게. 아빠도 계속 나한테 ‘정상적’인 직장을 다니라느니 공무원이 되라느니 사회생활이 원래 그런 거니까 참을 땐 참아야 하는 거라며 자꾸 잔소리야.

사회생활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그럼 술 마시기 싫어도 마시고, 혐오발언에도 참고 성희롱이며 성추행도 그러려니 다 이해하면 되는 거겠네.

내가 만만하게 구니까 그런 거라고? 그럼 검은색의 스모키 화장에 검정 자켓에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 만만하게 보지 않으려나. 다들 그렇게 참고 참아서 지금의 이 아름다운 세상이 열린 거구나. “기쁘다 구주 오셨네.” 불러야 할 판이야. 엄마는 이 노래 모르지? 그러고 보니까 어릴 때 우리 집 다 무교이면서 난 왜 억지로 교회를 보낸 거야? 정말 미스테리야.

그랬지~ 집에서는 못 사줄 미술용품을 선물로 많이 받았었지. 먹을 것도 많이 얻어먹고. 그데 목사님의 충격적인 설교는 아직도 머릿속에서 안 사라져. 찢어지게 가난했는데 신을 믿고 목사가 된 후로 집이 생기고 차가 생기고 부자가 됐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신을 믿는 게 아니고 돈을 믿는 게 아닌가 싶은 거지. 신이 자본주의를 응원하나? 그러고 보니까 엄마가 교회를 다녀야겠네. 엄마, 집에 대한 열망이 엄청나게 크잖아. 입에 집이라는 단어가 달라붙어 있잖아. 누가 알아? 신을 믿으면 그 목사처럼 집이 생길지.

알았어~ 집이 있어야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은 죽을 때까지 안 까먹을 것 같아. 하도 들어서.

모르지는 않지. 집이 없어서 딸로서 며느리로서 어떤 설움을 겪으며 살아왔는지 다 보고 자랐으니까. 얹혀산다는 게 아무리 가족 관계라 할지라도 ‘함께’ 사는 건 아니긴 하더라고. 유달리 외할머니가 좀 그렇긴 했지만. 외할머니가 나도 싫어했었어. 아들이 아니라고. 마지막에 그 집에서 쫓겨날 때의 장면들이 선명하게 기억나. 돈뭉치가 사려졌다면서 엄마를 도둑년으로 몰아갈 때 나는 쳐다보면서 눈물만 글썽이고 있었어. 그때 내가 5살인가. 6살이었어. 이사하고 나서 좀 평화로워지나 했더니만 또 찾아왔지. 그날도 기억이 선명해. 나한테는 인사도 안 하고서는 잠자고 있는 동생 쓰다듬고 그러다가 부엌 가서 칼 들고 나와서는 엄마랑 아빠가 안방 들어가서 문 잠그니까 칼로 문 찍고, 그때도 나는 상황을 쳐다보기만 했어. 뭐 어찌할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이후로 그 돈뭉치 다시 찾았다고 했지?. 사과도 안 하고 정말. 뭐 그랬지. 돌아가신 날 그렇게 밉더라고. 죽음에 대한 분노도 있었어. 그 당시에는.

기후위기시대에 자기 소유의 집이 필요할까? 우리에게 미래는 없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사진출처: Markus Spiske
기후위기시대에 자기 소유의 집이 필요할까? 우리에게 미래는 없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사진출처: Markus Spiske

그러니까. 내가 기억력이 좋은 건지. 그때 기억이 다 남아있어. 그 집에 대한 기억은 별로 좋은 건 없는 것 같아. 돈 문제 때문에 허구한 날 둘이 싸운 기억밖에는 없지.

집 없으면 그런 설움을 겪는 거라고? 엄마가 그걸 경험했다고 나도 그걸 경험할 일은 없어. 결혼을 할 일이 없어서 엄마처럼 시아버지한테 남편 잡아먹는다느니 이런 말을 들을 일이 없어요. 생각해보면 웃긴 게 아빠는 살아있는데 왜 맨날 남편을 잡아먹었다는 거야? 그건 아빠도 책임이 있어. 아빠를 보면서 아 효자랑 살면 저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지. 내 아들만 힘들게 일하고 며느리는 집에서 놀고먹는다고 발상 정말 그것도 하도 들어서 징그러워 죽겠어. 그때 내가 초등학생 때였는데 교회 가면 기도하는 내용이 그거였어. 할아버지 제발 좀 데리고 가달라고.

또 있네. 외삼촌도 엄마 집도 없고 가난하다고 무시 많이 했잖아.

맞아. 그 집도 오래 살지는 못했지. 집주인이 갑자기 본인이 다시 거주할 거라고, 급히 방 빼달라고 해서 신문지 펴놓고 집 구하던 기억이 난다. 진짜 아날로그다. 지금이면 직방이니 어플 하나면 찾기 쉬운데. 추억 돋는구먼.

그래도 이사할 곳 잘 구한 것 같아. 그땐 그 집에서 산다는 게 되게 쪽팔렸거든. 같은 학교 다니는 동갑이 그 위층 집주인 딸이었잖아. 그것도 그거지만 층간소음 때문에, 진짜 괴로웠는데. 2층에 세 들어 살던 우리랑 옆집이랑 층간소음 때문에 집주인한테 그렇게 신경 써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결국, 우리가 포기하고 살았잖아. 그것도 집주인의 유세이려나? 1층에 있는 가게랑 2층 두 집 세받는 것만으로도 먹고살 만하긴 했을 거야. 그 집 외제 차 몰고 다녔잖아. 돈 많으면 삶의 태도에도 여유가 많은 거구나를 그 집 보며 느낀 바도 있어. 그냥 표정부터가 여유로워 보인달까. 그냥 느낌일 수도 있고. 그러고 보면 엄마도 결혼하고 독립한 이후로는 자기 소유의 집이 단 한 번도 없었긴 하네.

엄마가 집에 대한 집착이 높은 이유도 왜인지는 알아. 근데 지금은 다르다니까. 그리고 이 기후위기시대에 자기 소유의 집이 왜 필요해. 이젠 딱히 미래라고 하는 개념이 없어. 이 지구에 언제까지 생존할 수 있을까가 고민인데 집은 무슨. 집 살 돈 생기면 나 말고 엄마 해줄게. 평생소원 풀고는 가야지.

어느 세월에 그게 가능하냐고? 스페인드라마 “종이의 집”처럼 은행이라도 털까?

실없는 소리 그만하라고? 그래. 이젠 정말 공공주택문제를 가시화해야 해. 계속 주거불평등을 양산하는 방식으로 주거 문제를 바라보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그치?

나랑 통화하니까 피곤하다고? 알았어. 밥 많이 먹어.

살찐다고? 나 그만 먹으라고? 노력은 해볼게. 다만 보장은 못 해. 그럼 안녕~ 뿅!

몇 년도인지는 기억이 선명하지 않으나 201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한창 막장드라마가 활개를 치던 그때 나도 TV를 보며 막장드라마 내용에 빠져들었다. 드라마가 끝나고 모 건설회사의 아파트 광고가 이어졌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던 그 광고 멘트는 아파트 로고와 함께 눈길을 끌었다. 막장 뒤에 막장이라니. 편성국의 의도적인 편성이었을까. 그렇게 주거 공간은 신분과 위치를 보여주는 부의 상징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때도 “너는 어디 살아?”라는 선생님의 그리고 친구 부모님의 그리고 친구의 질문이 부의 척도를 확인하는 질문이었다. 이렇듯 주거 문제는 굉장히 오래된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 또한 충분히 있었다. 문제의식은 늘 있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주거형태 등으로 발생하는 주거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기후위기로 폭염, 한파 등의 이상기온이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 어떤 집에 살고 있느냐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가 된다. 온도 변화가 커질수록 집에 곰팡이, 갈라짐의 문제가 자주 생기는 집, 에어컨이 없는 집, 보일러가 없는 집, 전기세와 가스비, 기름값이 무서워 겨울철 온수도 틀 수 없고 전기장판도 선풍기도 켤 수 없는 이 모든 상황을 참아야만 하는 그리고 전기세며 가스비가 밀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우리의 삶. 쫓기듯 살아야 하는, 우리의 흩어진 공간마다 남은 기억이 불안일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이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외쳐야 한다. 집은 돈벌이의 수단이 되어서도 부의 상징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그저 집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난설헌

안녕하세요. 지구의 방랑자 난설헌입니다. 중학생 때 허난설헌을 좋아해서 활동명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허난설헌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이름으로 인해 웃지 못할 상황도 생기는데요. 아이돌 그룹 AOA 설현과 이름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종종 설현으로 잘못 보고 부르기도 합니다. 처음에 당황스러웠지만 그런 분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고는 그러려니 하고 있습니다. 식혜와 좀비를 좋아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즐겁게 살고 싶은 지구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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