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위에서 장기 지속하는 인플레이션
2023년에 출판된 글 「인플레이션과 탈성장」1 속에 신승철은 다음과 같은 글귀들을 남겼다.
“인플레이션에 끌려다니는 사람은 의기소침, 결핍, 부족 등에 직면하여 거기서 멈추어 서겠지만, 인플레이션에 탈성장으로 대응하는 사람은 인플레이션을 활력, 돌봄, 살림을 발휘하기 위한 계기이자 특이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국면에서 수축경제를 피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강렬한 돌봄 모듈과 커먼즈 기반 경제, 활력정동에 입각한 가정경제 등 탈성장 전환과 대안에 입각한 대응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탈성장 전환사회의 전망을 시도한다면, 인플레이션 상황이 아무리 수축경제로 이끈다고 하더라도 연대와 협동, 관계의 삶의 이야기 구조를 통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2”
여기에 상세히 설명하여 놓지는 않았지만, 신승철은 회수와 수축이라는 말을 인플레이션을 설명하는 데 반복 사용하였다. 인플레이션을 단순화시켜 물가 상승이라고 본다면, 그것과 이윤의 증대가 맞물려 돌아갈 것이며, 자본가는 나름대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시점에 증대된 이윤을 회수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조치에는 경기의 수축이 따를 것이다. 이렇듯 회수와 수축이 반복되면서 물가 상승과 이윤 증대가 지속되는 상태를 인플레이션을 가지고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디플레이션(Deflation)이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보다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이 세계경제의 역사 전반 특히 최근과 근 미래의 세계경제를 설명하는 데에는 유효한 수단 같아 보인다. 아마도 신승철 역시 이러한 상황에 주목하였던 듯하다. 신승철은, 인플레이션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보면서, 거기에 활력·돌봄·살림으로 대응하자고, 위에 인용한 글귀에서 제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신승철의 제안은 구체적인 실천의 책략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이 제안에 대하여, 그저 구호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는 냉소를 보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이 제안은 성장주의에 정면으로 맞서는 흔치않은 태도를 보여준 것이라는 면에서 가치가 있다. 신승철은, 성장주의라는 말을 빌려 자본주의의 성격을 표현하면서, 글을 쓴 2023년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역사적 전개를, 산업자본주의 – 금융자본주의 – 인지자본주의 – 정동자본주의로 나누면서도, 2023년 이후에는, 앞서 열거한 4단계 자본주의의 의의 한계 오류들이 복합되어있는 세계 경제가 펼쳐질 것으로 보았다. 신승철은 그러한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의 지속 상태일 것으로 예측하였다. 나아가 신승철은 자신이 “인플레이션[세계 경제]에 탈성장으로 대응”하는 상상을 펼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자본주의 – 성장주의 – 인플레이션의 특성을 정리하였다. 지금의 세계 경제를 인플레이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 지구적인 지대 상승 양상을 감안하면,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을 지칭하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말로 21세기 세계 경제를 설명 예측하는 것은 상당한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지대(地代)[rent]는, 문자 그대로의 좁은 의미로는 혹은 땅을 임대하였기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플랫폼 즉 이윤 추구가 가능한 판을 사용한 데 따른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인지자본주의 단계와 정동자본주의 단계에 융성한 사회적 연결망[SN/Social Network]이 플랫폼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처음에 그 플랫폼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플랫폼 사용자가 늘어나고 플랫폼이 일상에서 반드시 필요한 도구가 되면 될수록, 그리고 독점력이 강화될수록, 이윤 추구의 장으로서의 플랫폼의 성격은 다양한 방식으로 ‘유료화’되었으며 부과되는 ‘요금’은 상승하고 있다. 여기에서 플랫폼은 인플레이션이 장기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을 강화시켜주는 조건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기후와 생태계의 위기에 직결된 플랫폼

이렇듯 신승철은 2023년이라는 시점에 세계 경제 즉 인플레이션이 플랫폼을 딛고 그 위에서 장기지속하고 있다고 본 듯하다. 이에 그는 몇 가지 요소를 덧붙인다. 신승철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성장주의의 최대 난제는 기후와 생태계의 위기라는, 현실에서의 직접적인 위기 상황이며, 이는 자본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자본 내적 문제와도 직결되는 것이다. 모든 자원 특히 식량, 원료, 에너지 등은 모두 금융화되어 있기 때문에 조그만 변동 요인에도 기하급수적인 가격 인상으로 드러나게 된다.3” 신승철은 이윤 추구의 조건인 플랫폼에만 주목하여서는 세계 경제를 바로 볼 수 없음을 지적한다. 이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쉽게 생존의 조건인 기후와 생태계의 위기를 망각한다는 외침이라고 볼 수 있다.
2023년 신승철의 글 「인플레이션과 탈성장」이 발표된 시기를 전후하여 신승철이 문제 삼은 인플레이션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장 즉 자본주의는 크고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변화를 대표하는 현상들 가운데 하나가, 2022년 11월, 대화형 인공지능[AI] 즉 챗지피티(ChatGPT)이라는 새로운 조건의 등장이다. 지피티는 방대한 인터넷 데이터를 사전 학습한 생성형 사전 학습 트랜스포머(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의 줄임말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사용하여 이전에 비하여 훨씬 섬세한 정보 검색 · 논문 작성 · 프로그래밍 코드 생성 등을 하였으며, 이것을 도구로 창의적인 글쓰기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사전에 정의된 규칙과 패턴에 기반한 인공 지능4은 1960년대에 이미 등장하였고,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대규모 데이터 학습이 가능해지면서, 사전 정의된 규칙이 아닌 데이터 기반으로 인공 지능이 발전하다가, 이른바 스마트폰의 광범위한 사용과 함께 음성 비서5가 일상의 일부가 되어, 음성 명령을 이해하고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거나 앱을 실행하는 기능을 제공하다가, 단어 단위 번역에서 문장 전체의 맥락을 파악하는 신경망 기반 번역(seq2seq)으로 발전하며 자연어 처리(NLP) 성능이 향상되면서, 문장 내 단어들의 관계 즉 맥락을 병렬적으로 한 번에 이해하고 방대한 인터넷 데이터를 사전 학습할수 있는 생성형 사전 학습 트랜스포머(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즉 지피티 모델이 등장했던 것이다. 2022년 11월에 챗지피티가 등장한 이후, AI의 성능은, 텍스트·이미지·음성·영상의 이해와 생성이 가능한 멀티모달 인공지능(Multimodal AI)과, 인간처럼 스스로 인지하고, 판단하고, 지식을 자율적으로 습득하는 인공 일반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AGI)을 거치고 있는 중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사물과 지능을 융합한 결과인 인공 사물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of Things/AIoT), 그리고 인간의 신체 형태와 구조를 닮은 로봇인 휴머노이드(Humanoid)의 개선과 연결 확산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인간 시점에서 간략하게 설명해보자면, 인간이 사용할만한 고성능 도구가 외부 연산 장치 – 외부 기억 장치 – 외부 인식 장치 단계를 거쳐 외부 사유·감지·판단 장치로까지 정밀화된 후 ‘인격 유사 장치’의 등장을 예고하는 단계에 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도구의 ‘개선’이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사기업들에 의해 이루어지면서, 국경이 무의미해질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까지 생겨남에 따라, 주체적으로 통제 가능한 인공지능(Sovereign AI)이 역량 있는 몇몇 국가에서 국가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주체적으로 통제 가능한 인공지능은 특정 국가나 조직이 외부 해외 빅테크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인 인프라, 데이터, 인력, 기술을 활용해 자국의 문화와 가치관, 규제를 반영한 독립적인 인공지능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역량을 의미한다. 이제 사람들은 증기기관 혹은 전기처럼 사람들의 삶의 질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도구를 손에 쥐기 직전의 시간을 맞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 이전 시기 산업혁명들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그 도구를 어느 특정한 이윤 추구 집단이 독점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경계심을 마음 속에 다지기 시작한 듯하다.
한편, 인공지능이라는 ‘깨끗한’ 도구의 발달은 에너지 사용을 급격히 증가시키고, 그것만으로도 기후와 생태계의 위기를 격화시키고 있다. 인공지능은, 여러 가지 희망적 미래전망과 결부되기도 하지만, 기후와 생태계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2026년의 사람들과 그들의 가까운 조상들은 그 누구보다도 기후와 생태계를 빠른 속도로 변형시킨 주인공들이다. 이들이 지질의 변화에 끼친 영향과 남기는 흔적의 축적이 상당히 커서, 이들 가운데 몇몇은 자신들이 살고있는 시대를 ‘인류세’라는 이름의 지질시대로 규정하기도 한다. 지금의 사람들은 그들 자신과 그들의 가까운 조상들이 기후와 생태계에 끼친 영향을 제대로 살펴보아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기도 하지만, 그들이 죽고 난 이후에 태어나고 살아갈 사람들에게 어떤 기후와 생태계를 남겨줄 것인지도 생각하여보아야 할 것 같다. 또한 2026년의 사람들은, 밝은 미래를 기약할 것만 같은 기술의 비약을 인류가 관리할 때, 그러한 비약이 인류를 기후와 생태계의 위기 정도가 아닌 파국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상상을, 자신들의 생각과 행동과 선택의 바탕에 항상 깔고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듯하다. 만사가 그러하듯, 기후와 생태계와 관련하여 파국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은, 거기에만 매몰되지 않는다면, 대단히 건전한 사고이며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탈성장을 인류세 그리고 초신성폭발과 함께 상상하기

현재 과학자들을 지구가 약 45억 7천만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추정한다. 과학자들은, 생물의 대량 멸종 등 지질학이나 고생물학에서의 주요 사건들을 기준으로, 지질시대6(地質時代)[GTS]라는 것을 만들어, 약 45억 7천만 년의 시간을 여러 마디로 구분하였다. 예컨대, 백악기는 공룡의 멸종과 관련되어 만들어진 시대 구분 과정에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18세기에 지질시대를 구분하기 시작할 때는 지층을 이루고 있는 돌과 흙이 구분의 기준이 되었다고 한다.7 그러다가 인간이 만들어낸 지질시대를 따로 구분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런 주장을 한 사람들은 그 시대에 인류세(Anthropocene Epoch)라는 이름을 붙이자고 하였다. 그들은, 사람들이 화석연료를 사용함에 따라 온실효과가 발생했고, 그것이 환경을 급격하게 변화시켰다고 보았다. 그들은 지구가 다름아닌 사람들의 활동에 의해 새로운 지질시대에 접어들었으니, 그 새로운 지질시대에 따로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인류세가 그 이름이다. 이 인류세라는 이름은 급격한 환경변화와 오염에 대비한 기술 개발과 대책이 필요하다는 경고로 볼 수도 있다. 건조하게 역사학적으로만 설명하자면, 인류는 현재 지질시대 가운데 마지막 시대인 신생대 제4기 홀로세(Holocene Epoch) 또는 ‘현세(現世)’라고 하는 지질시대에 살고 있다. 홀로세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인류 문명이 시작되고 급격하게 발달한 시기인 약 1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말한다. 이와는 별도로, 인류세라는 용어는 폴 크루첸과 유진 스토머가 2000년도에 발표한 기고문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들은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지구의 역사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주장하며, 그 시대에 인류세라는 이름을 붙이자고 제안한 것이다.
길게 보자면 농경과 산림 벌채에서부터, ‘신대륙의 발견’에 따라 이른바 신대륙의 원주민들의 농업이 소멸되고 경작지가 산림화된 현상 등을 거치고, 산업혁명을 거쳐, 20세기 들어 유아 사망률을 극적으로 감소시킨 여러 조건들의 변화에 따른 인구 폭발에 이르기까지의 인류의 활동이 지질에 명확히 각인되어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인류세 연구위원회에서는 최초 원자폭탄 실험을 실시한 1945년 7월 16일이라는 정확한 날짜까지 제안하며 지질시대의 구분을 주장한다. 핵실험 이전의 인간은 지구에 직접적인 큰 영향을 줄 힘이 없었지만 핵실험 이후, 인간이 직접적으로 지구에 미치는 영향이 막강해졌다는 것이 홀로세와 인류세를 구분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생각에서이다. 한편 일부 학자들은 인류가 환경 변화와 오염을 인식하고 본격적으로 환경 복원이 이루어지는 미래 시점을 인류세 시작의 기준으로 삼자고 주장한다. 이는 환경 복원의 필요성 인식과 실천에 대한 전 지구적 변화가 일치하는 시기로서 큰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비록 이런 감소세와 환경복원이 머지않은 미래에 진행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이를 지질학적 단위의 시간으로 본다면 그리 긴 기간이 아닐 것이다. 또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전반에 걸친 노력에 따라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8 그렇지만 이러한 견해는 모든 물질이 그러하듯 사람들과 이 땅이 모두 유한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면을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는 점 때문에, 성찰이 부족한데서 나오는 지나친 낙관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듯하다. 먼 미래의 일이기는 하지만 초신성 폭발을 앞두고 있는 것은 분명한 지구별에서, 그 폭발을 생각해보는 것은 시간이 남아돌 때 하는 호사일 수 없다.
태양은 약 50억 년 후 수소 연료를 모두 소진하면 부피가 거대하게 팽창하는 적색거성(Red Giant) 단계로 접어든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수성과 금성이 삼켜지고 지구 역시 불바다로 변해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때까지 피난처를 구하지 못하면 인류는 이 단계에서 멸종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태양의 외곽 물질은 우주 공간으로 퍼져나가 행성상 성운을 만들고, 중심부의 뜨겁고 작은 핵만 남아 지구만 한 크기의 백색왜성(White Dwarf)으로 변하게 된다고 한다. 홀로 남겨진 백색왜성은 스스로 폭발하지 않지만, 쌍성계[두 개의 별이 서로의 주위를 도는 구조]를 이룰 경우 폭발을 일으킨다고 한다. 백색왜성이 이웃한 동반성[주로 적색왜성]의 수소를 지속해서 빨아들일 때, 표면에 쌓인 물질이 임계점에 달하면 핵융합 열핵폭발을 일으킨다고 하는데 이를 신성(Nova) 폭발이라고 한단다. 백색왜성이 동반성의 물질을 계속 흡수하여 자신의 질량이 태양 질량의 약 1.4배[찬드라세카 한계]에 도달하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켜 별 전체가 산산조각 난다고 하는데 이를 초신성(Supernova) 폭발이라고 한단다.
거의 모두가 성장주의에 암묵적으로나마 동의하는 세상에서, 그 세상을 새삼 인류세라고 정의하고, 그 미래를 상상하는 데 있어서 초신성폭발을 염두에 두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자학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반면에, 초신성폭발이 50억년도 더 넘게 남았기 때문에, 지금 이런 긴장을 품고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은 유익한 지적 유희일 수도 있다. 이런 긴장과 상상은 탈성장을 보다 여유롭게 상상하고 실천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줄런지도 모른다.
‘종시(終始)’라는 관념과 탈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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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고 볼 때, 인류세와 초신성 폭발 또한, 탈성장을 보다 여유롭게 상상하고 실천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기도 하면서도, 그런 상상과 실천을 제약하기도 할 것이다. 지금의 한국인들에게 내면화되어있는 유교적 무의식 또한 그러한 양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정을 유교 경전의 한 구절을 예로 생각해 볼 수 있다.
“物有本末(물유본말) 事有終始(사유종시) 知所先後(지소선후) 則近道矣(즉근도의) [물건에는 본(本)과 말(末)이 있고, 일에는 종(終)과 시(始)가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도(道)에 가까울 것이다.]”
이는 『대학』 앞 부분에 자리한 경문(經文)에서 인용한 글귀이다. 여기에서 본말(本末)·종시(終始)·선후(先後)라는 낱말을 볼 수 있는데, 본말(本末)·선후(先後)와는 달리 종시(終始)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살짝 낯설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꽤 많이 사용하는 시종(始終)이라는 낱말과 같은 듯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낱말이 낯설기는 하지만, 이 문맥에서는 시종(始終)이라고 하지 않고 종시(終始)라고 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이 구절에 대한 주희의 해설을 보면 그러하다.
“명덕(明德)은 본(本)이 되고, 신민(新民)은 말(末)이 되며, 지지(知止)[그침을 앎]는 시(始)가 되고, 능득(能得)은 종(終)이 되니, 본(本)과 시(始)는 먼저 해야 할 것이요, 말(末)과 종(終)은 뒤에 해야 할 것이다.9”
이 국한문혼용체를 다음과 같이 의역할 수 있다.
“[최고의 학문의 목표는, 사람사람의 마음 속 밝은 덕[명덕]을 밝히는 것, 사람들이 인습에서 벗어나 새롭게 되도록 하는 것[신민],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나 칭찬받을 수 있는 삶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지어지선], 이 세 가지인데, 여기에서] 명덕이 줄기이고 뿌리라면 신민은 무성한 가지와 잎과 꽃과 같으며, 먼저[시]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나 칭찬받을 수 있는 삶의 상태에서 그쳐 벗어나지 않고 머무는 것[지지]을 할 수 있고 나서야, 어떤 상황에서이든 끝내[종] 그런 방식의 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몸에 배게 된다[능득]. 그러하므로 본과 시를 먼저 해야 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고, 말과 종을 뒤에 해야 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의역을 보면 주희는 종시(終始)를 시종(始終)과 다를 바 없이 사용하였던 듯하다. 그렇지만 이 경우는 본말(本末)·종시(終始)·선후(先後)를 본·시·선과 말·종·후로 대비시켜 설명하고자한 결과 만들어지게 된 표현일 뿐이고, 오히려 시종(始終)과 종시(終始) 두 낱말이 쓰이는 뉘앙스와 강조점에는 애초부터 차이가 있으며, 주희도 그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시(始)는 시작을, 종(終)은 끝을 의미한다. 두 글자를 차례로 붙여 만든 말 시종(始終)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작과 끝을 서술(敍述)하는 낱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하면 종시(終始)는 유교문화 혹은 한문화(漢文化)를 공유했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순환론적 세계관이 투영된 낱말 같아 보인다. 비유하자면 순환론적 세계관은 겨울이 깊어갈수록 봄이 가깝다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종시를 이러한 뉘앙스를 가진 낱말로 보면, 사유종시(事有終始)는 ‘세상 모든 변화에는 끝이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곧 새로운 시작점이기도 하다’ 정도로 의역할 수 있다. 이러한 순환론적 세계관은 태극기에도 반영되어있는 태극도(太極圖)에 대한 해설인 『태극도설(太極圖說)』10에서도 볼 수 있다.
“최상의 실체[태극]가 있다.
그것이 움직여[동] 세계의 한쪽 극단[양]을 생성한다.
그러한 움직임[동]이 갈 데까지 간 상태는 고요함[정]이다.
이 고요함[정]이 세계의 다른 한쪽 극단[음]을 생성한다.
그러한 고요함[정]이 갈 데까지 간 상태는
또다시 세계의 한쪽 극단[양]을 향한 움직임[동]으로 이어진다.11”
이 텍스트에 담겨있는 주장은 ‘양 극단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는 변화가 세계 속에서 반복된다’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사계절이 뚜렷한 조건에서 농사를 짓는 자들이 농경 경험을 바탕으로 체득한 세계 변화 설명 방식 즉 세계관이라 할 수 있고, 그 특색은 ‘순환론적’이라고 규정될 만하다.
이와 같이 시종이라는 낱말에 투영되어있는 순환론적 세계관은 탈성장을 상상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인류세와 초신성폭발에 비교하여 보았을 때, 이 세계관은 지금 의식의 전면에 부상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한국의 경우 이 세계관은 전통의 일부로 한국사람들의 의식의 저변에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국인이면서 탈성장을 상상하려는 사람이라면 순환론적 세계관이 자신의 상상의 일부가 아닌지 생각해 볼만하다. 이러한 필요성에 부응하기 위하여, 순환론적 세계관을 성찰하여보면, 이 세계관에서 끝은 새로운 시작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탈성장을 상상하는 데 있어서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단점으로 작용할수도 있을 듯하다.
이 세계관에는 끝이라는 것이 상대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할 듯하다. 유교문화를 살펴보더라도, 유교인들은 자신을 닮은 후손을 남김으로 해서 자신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결론적으로 유교인들 혹은 순환론적 세계관을 무의식의 차원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손을 남기는 한 자신들의 문화는 영원히 계승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은 주어진 물적 조건[천지자연]과 정치사회적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자신을 맞추는 데에서 만족을 찾음[안분자족(安分自足)/낙천지명(樂天之命)]을 미덕으로 보는 면 때문에, 조건 혹은 환경 앞에서 겸손한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지만, ‘끝’을 제대로 상상하지 못하는 제약 속에 있는 듯하다. ‘끝’을 상상하지 못하면, 성장주의가 팽배한 세계 속에서 탈성장을 선택하고 상상할만한 동력을 만들어내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을 듯하다.
신승철, 「인플레이션과 탈성장」, 생태적지혜연구소협동조합(기획), 『탈성장을 상상하라: 성장 신화의 종말과 이후 시대』, 서울: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2023-06-05, 69~88쪽. 「인플레이션과 탈성장」은 『문화과학』(2022.10.30.)에 실렸던 글인 듯하다. 위와 같은 책 69쪽 참조.↩
신승철, 「인플레이션과 탈성장」, 88쪽. ↩
신승철, 「인플레이션과 탈성장」, 76~77쪽. ↩
엘리자(ELIZA)[1966] · 패리(PARRY)[1972] 등이 이에 해당하는 사례라고 한다. ↩
시리(Siri)[2011] · 알렉사(Alexa)[2014] · 코타나(Cortana)[2014] 등이 이에 해당하는 사례라고 한다.↩
GTS는 geologic time scale/geological time scale의 약자이다. ↩
『위키백과』, ‘지질시대’ ↩
김승후, 〈인간이 만들어낸 지질시대: 인류세 도입 논쟁〉, 《카이스트신문》, 2017-02-28 참조. ↩
朱熹[撰], 成百曉[譯註], 『懸吐完譯 大學·中庸集註』, 東洋古典國譯叢書 3, 서울 : 社團法人 傳統文化硏究會, 1991, 24쪽. ↩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쓴 글이다. ↩
敦頤, 『太極圖說』, “太極 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