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기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 『가상계』 제6장 「시각적 “전체장”의 카오스」 독후기

짧은 인류사 속에서도 인류가 이성의 합리성을 그런대로 공통적으로 승인한 듯한 기간은 그야말로 번갯불이 번쩍하는 순간만큼이나 더 짧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필 ‘우리’는 그 짧은 순간 속에 살고 있기에, 이성의 합리성과 그것이 세계를 설명하는 틀로 제시한 형식논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무척 힘겨워한다. 그러는 사이, 이성의 합리성 위에 세워진 세계는 치유 불가능할 것 같은 질병에 빠져들어 버린 느낌이다. 다른 세계관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시각적 “전체장”의 카오스」는 그 다른 세계관을 여태까지와는 다른 어법으로 설명하는 글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과 가상계를 나눌 수 있는가? – 『가상계』 제5장 「아날로그의 우월성에 관하여」 독후기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세계를 인식하고 기록하는 방식 혹은 도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의 제1속성 혹은 중요한 특성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20세기를 거쳐오면서 과학자들은 디지털이 아날로그보다 우위에 서기 시작했다는 판단과 아날로그가 디지털보다 세계 자체를 더 생생하게 대변한다는 느낌을 동시에 가지는 듯하다. 브라이언 마수미 『가상계』 제5장 「아날로그의 우월성에 관하여」에서도 그런 ‘판단’과 ‘느낌’의 마찰이 느껴진다.

‘자유의지 대 필연성’의 우화 – 『가상계』 4장 「이성의 진화론적 연금술- 스텔락」 독후기

『가상계』 4장 「이성의 진화론적 연금술- 스텔락」은, 베르그송·시몽동·들뢰즈·가따리 등이 창안한 세계관과 개념어들로부터 받은 영향을 전면에 드러내면서, 스텔락의 행위 예술을 해설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 글에서 행위 예술은 세계관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우화 같아 보인다. 자유의지 대 필연성 문제가 이 글 전반에 잠복하여 있다.

하나일 수 없는 자본주의 – 『가상계』 3장 「소속의 정치경제」 파생문(派生文)

세계 설명들이 기반할 수 있는 논리는 하나여야 한다거나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믿음은 무뎌진 듯하다. 여러 논리들이 동시에 세계의 설명에 적용되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그 적용을 관리 통제한다고 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관리 통제를 받아들이면서도 상대적 독립성을 유지하고 나아가 자본주의가 자유의 지평을 확대하리라 기대하고 있다. 그러한 기대는 자본주의와 세계 자체에 대한 생각을 얽히고 꼬이게 만든다. 그 얽힘과 꼬임의 양상과 거리를 두면서, 인류가 하나의 논리 즉 형식논리로부터 한 발 벗어나던 단계를 반추해 본다.

레이건스럽게 이미지-장착된 미국의 대통령들 – 브라이언 마수미 『가상계』 2장 「출혈」 독후기

과학적 사고를 통하여 실체(實體)[substance]의 존재(存在)[being]를 증명하였다고 확신하면서, 실체성에 기반하여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말의 지적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도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관과 현실 사이의 충돌을 경험하며 살아갈 것이다, 20세기말에서 21세기초에 걸쳐, 미국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실체성 기반 세계 이해와 레이건스럽게 이미지-장착된 대통령직의 충돌은 그 사례 가운데 하나다.

집은 어디에 있는가? – 〈황우양씨 막막부인〉 독후기

무가(巫歌)인 성주풀이는 수렵이동 문화에서 농경정주 문화로 바뀌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는 지금 여기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는 데 도움이 되며, 농경정주 문화와 지금 여기의 문화 사이의 불연속성 또한 드러내고 있다. 황우양씨 유형 성주풀이와 그것의 요약본인 〈황우양씨 막막부인〉 읽기는 텍스트로부터 문화 변동 자체를 재구성해내는 것 뿐만 아니라 그 불연속성을 소화해내는 것을 체험하고 훈련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상상을 제약하는 관성적 사고를 들춰보다 -〈하늘못 백장군〉 독후기

세상을 바꾸려는 운동이나 대안 추구에 있어서 방향을 정하여 줄 이념과 가치는 소중하다. 이에 더하여, 전체 비전에 비하면 지극히 사소하고 주변적인 것으로 보이는 단순한 정보가, 운동의 방향에 미세한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운동 과정에 끼어든 그 미세한 영향 때문에 운동의 결과가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백두산 설화 읽기를 통하여 그와 같은 경우를 들여다보자.

천지를 창조한 다음 법을 세우다-〈창세신화 천지왕본풀이〉 독후기

제주의 무가인 〈천지왕본풀이〉는 함흥의 무가인 〈창세가〉 뒷부분을 잘라 주인공 이름 만 바꾼 느낌을 주는 노래다. 이 두 노래 속의 이야기들을 겹침 없도록 잘 다듬어 읽다보면, 개벽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인과응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한 번 더 읽다 보면, 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상태에 이르는 과정을 정리하여 보았다.

축제를 혼자 미완성으로 만들고 온 사람의 보고서- 故 신승철 소장 1주기 추모축제 참여 후기

꽤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에게 장례가 축제로 치러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빈소에서 술을 마시며 화투를 쳤고, 고인의 넋을 달래서 잘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행하여지는 굿은 다양한 연희의 조합이었다. 그렇다면 제사는 어떠하였을까? 가까워야 하나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모처럼 모여서 가까움을 확인하고 즐기는 날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집안의 제사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동제도 떠들썩한 축제였다. 그러니, 신승철 1주기가 축제로 치러진 것은, 제사의 그런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이상할 것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작지만 중요한 것을 속삭이기 – 〈자청비와 문도령(세경본풀이)〉 독후기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다. 예컨대, 반복을 한다든가, 크게 외친다든가 하는 방식들이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는 흔한 방식이다. 그렇지만 속삭임을 통하여 중요한 것이 전하여지고 보존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 또한 이야기꾼들은 알고 있을 것 같다. 옛 이야기를 읽으며 그러한 속삭임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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