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욕망을 공유합니다』] ⑤커뮤니티와 생활양식을 닮은 공간 만들기

『우리의 욕망을 공유합니다』(2020, 도서출판 한살림)에 담긴 특이점청년 이야기를 여러 편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이든 공동체운동이든 공간을 얻어야만 한다. 하지만 쉽게 손댈 수 없는 자산과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청년들은 나름의 전략으로 공간을 얻고 활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공동체와 그것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은 무엇일까?

우더 님과 오창민 님은 ‘공동체’라는 단어를 각각 집과 일터라는 공간에서 찾는다. 빈집은 기존 주거공동체와 무엇이 비슷하며 다른지, 성북신나의 일 공동체라는 낯선 개념은 어떻게 탄생한 건지, 빈집과 성북신나를 만나보자.

일 공동체

오창민: 우리 윗세대에서는 공동육아를 기반으로 한, 특히 성미산이나 삼각산마을 같은 공동체들을 꾸려왔잖아요. 그 실험들, 시도들이 너무나 위대하고 어떻게 했을까 싶지만, 저희 세대는 더 이상 육아나 결혼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세대거든요. 그러면 ‘비혼이나 딩크(Dink)1들은 공동체가 불가능한가?’라는 생각을 한 거죠.

성북신나는 본인들이 ‘도시’에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1인 혹은 2인 주거, 어느 정도는 분리되는 사적 영역, 익명성을 원하지만 고비용 사회에서 집을 갖지 못한 세대. 그리고 결혼과 육아에 변화된 인식을 가진 세대. 오창민 님은 도시에 사는 이 세대를 보며 “비혼이나 딩크는 육아라는 공통점이 없다고 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공동체를 해야돼?”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주거 기반보다는 일 기반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전통적 주거공동체에서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본업’이었다고 오창민 님은 표현한다. 일은 그저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성북신나 구성원들에게는 일이 자신의 주 정체성이 된다. 이럴 수 있는 이유는 성북신나가 업무와 성과에만 집중했던 기존의 수직적 조직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만들어가는 문화를 중요시하는, 공동체라 불릴 만한 일터가 되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 회식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 외 시간은 온전히 개인에게 맡겨진 시간이다.

청년들이 안정적 주거가 불가능해 정주성이 떨어지고, 생활양식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주거공동체 대신 일 공동체를 상상한다는 건 의미 있는 시도다. 돈 버는 일은 억지로 참고하는 것이라는 인식에 도전한다는 점이나,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어보겠다는 점도, 우리 사회의 노동 정의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해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주거공동체

우더 님에게 공동체는 관심과 마주침이 있는 곳이다. 꼭 밀접한 주거 방식으로만 마주침을 만들 필요는 없지만 마음먹고 움직이지 않아도 물리적 만남이 빈번한 곳, 바로 집이야말로 공동체 형성을 가장 잘 부추길 수 있는 공간인 건 사실이다. 물론 일하는 시간, 잠자는 시간, 노는 시간 다 다르다 보니 생각보다 자주 모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특정 활동을 같이하고 싶다면 아예 모임을 만든다. 우더 님은 보드게임 모임에 참여 중이다. 멀리 사는 사람끼리는 한 번 모이기도 힘든데 같은 건물, 적어도 같은 동네라면 뭐든 같이하기가 얼마나 편할까.

빈집은 모여 삶으로써 비용을 낮추기 위해 뭉쳐진 공동체이긴 하나, 사람들이 단순히 주거비용을 아끼고 싶고 자신만의 공간을 보장받고 싶다면 굳이 빈집이 아니라 민달팽이 유니온이나 관에서 지원하는 청년주택으로 갔을 거라고 한다. 빈집을 찾아오는 청년들이 있는 이유를 우더 님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더: 처음에는 호기심에 방문하거나, 저렴한 주거비용 때문에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집이라는 건 본래 배타적 공간인데,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써 사고하는 것 자체가 엄청 진보적 실험이고, 많은 딜레마와 고민을 유발하거든요. 원래는 관심 없던 사람들도 함께 지내기 위해 페미니즘, 아나키즘을 공부해보고, 환경문제를 함께 실천해보기도 하면서 실험에 동참하게 되는 거죠. 채식주의자라면 다른 구성원들에게 “나 채식주의자라서 고기 안 먹어, 회비로 고기는 안 사먹는 게 어떨까?”라고 얘기하는 게 어렵지 않기 때문에 그런 점이 빈집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빈집은 어떤 특정한 사상을 가진 공동체는 아니라고 한다. “수많은 사상에 대한 생각들, 그걸 실험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다녀간 공간이고 그런 영향이 계속 남아있는” 곳이다.

빈집은 각자가 일을 마친 후 집에서 모일 가능성을 높이려 했고 한집살이 문화를 만들어간다. 성북신나는 일터 밖에서 모일 가능성을 높이려 하지 않고, 일터 조직문화를 만들어간다. 이 두 문화는 다른 공간에서 만들어지고 있지만 ‘관심과 마주침, 존중’이라는 원리를 똑같이 가지고 있다. 형태는 다르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세팅을 어떻게 할 것인가?

주거와 일터라는 공간에 각각 집중했을 뿐, 성북신나와 빈집 모두 어떻게 하면 도시에서 공동체성을 살릴 수 있을까를 질문한다는 점은 같다. 갈숲은 이 질문과 관계망을 잘 조합하면, 도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한계 요인으로 지적되는 집값 상승과 1인 가구 증가 현상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말한다.

권희중: 서울지역 집값은 계속 올라가고, 1인 가구 증가를 생각하면, 이제는 도시에서 마을공동체 운동이 한계에 부딪친 거라고 볼 수 있는 건가요?

갈숲: 한계가 뭐가 있겠어요? 도시 사람들이 성미산마을과 같은 거주자 중심의 관계망만 생각하지 말고 관계망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면, 1인 가구들끼리의 관계망, 이렇게 폭을 확 넓혀버리면 그 관계망에 어떻게 결합할 건지, 접속할 건지, 방법이 나오겠죠.

거주 중심의 사고만 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사람들이 모일 공간은 필요하다. 같은 물리적 공간에 있다는 사실은 꽤나 큰 힘을 가져서, 온라인에서 갖는 만남은 서로 얼굴을 보며 만나는 것만큼의 소통과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대화가 직접 만남에서 전화, 문자로 이뤄질수록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기 어려워진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원활한 소통을 넘어, 이태영 님에게 물리적 장소는 공동체와 정치를 만드는 힘이다. 내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친구들과 점령했던 놀이터, 문방구, 합기도장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도 공간에 추억이 담겨 있어서일 것이다. 이태영 님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경험을 주는 장소, 욕망과 기억이 축적되는 ‘관계의 장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공동체를 만드는 시작이라고 한다.

이태영: 굉장히 위험한 부분은 ‘관계의 장소’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우리에게 없어지면 안 될 장소적 경험이 있는 기억의 장소가 있는가? 그런 장소가 있을 때 공동체도 가능하고, 정치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장소를 둘러싼 욕망이 정치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장소적 경험이나 기억의 장소가 없으면 장소를 둘러싼 욕망도 없어져요. 그런 장소적 경험이 축적될 수 있는 기억의 공간들을 어떻게 만들 건가…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카림은 오늘날 개인들은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감소된 자아’들이라고 얘기한다. 이들은 ‘참여의 주관적 순간’을 이룰 수 있을 때에만 참여 의지가 생기며 공적 무대로 입장할 수 있다. 즉 오늘날 개인들은 ‘자신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개체성을 지닌 채 참여하기를 원한다.’2 이태영 님이 말한 장소적 경험은 이런 개인들이 참여하고픈 장소가 있을 때 비로소 축적 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기를 바라는가? 자신의 성향을 무시당하는 권력 관계도, 그렇다고 자신의 성향만을 고집하며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갈등 관계도 우리는 원하지 않는다. 하나의 정체성이 아닌 그저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관계 맺기가 가능할 때, 그 장소는 관계의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관계의 장소는 ‘다양한 존재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중립 지역’, ‘다름이 동등할 수 있는 다름의 공간’3이 된다.

성북신나의 공유자산 프로젝트의 하나인 무중력지대 모습. 출처: 무중력지대 성북
성북신나의 공유자산 프로젝트의 하나인 무중력지대 모습.
사진 출처 : 무중력지대 성북

우리가 해보려는 건

특이점청년들은 공간과 공동체를 만드는 실험을 저마다 다르게 하고 있다. 벌써 세팅은 시작됐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공간과 공동체를 인식하는 다양한 시선을 만날 수 있다.

마고: 이름을 ‘들락날락’이라고 지은 이유가 있어요. 이제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진 것처럼, 청년들이 ‘평생 어디서 살 거야’ 이러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지역에 한정하지 않고 청년들의 경계를 넓게 보고 있어요. 물론 아쉽긴 하지만 저희도 이곳을 거쳐 가는 친구들 막 잡진 않거든요. 그냥 어디서든 잘 살 수 있는 힘을 길러주자, 그런 모토예요.

오창민: 무중력지대처럼 시민들과 조합원들이 주도해서 함께 적정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나눠 쓸 수 있는 좋은 공유자산들을 늘려가는 실험들을 해보고 싶어요.

박푸른들: 그래서 논밭상점을 만들었거든요. 사람들이 자기가 짓고 싶은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돕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관계들을 만들고 싶거든요. 또 논밭상점은 그런 농산물을 먹고 싶은 사람들,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들락날락은 청년들에게 정착을 강요하지 않는, 말 그대로 자유롭게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되려 한다. 다른 곳에서 올 수 있는,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채 같이 재밌게 살아보자고 외치고 있다. 성북신나와 빈집도 같은 맥락이다. 빈집은 집이라는 밀접한 환경이 만들어주는 만남을 통해 같이 무언가를 해보자고 얘기한다. 성북신나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을 꾸리길, 더 나아가 그 공간이 ‘나의 자산’이라고 인식되길 바라고 있다. 내 일을 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고 싶다는 점은 논밭상점과도 통한다. 논밭상점은 자신의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들과 이들의 농산물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

해주는 관계의 일터로 향해 가고 있다.

이들의 아이디어와 시도, 계획을 보면 저마다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사람들이 만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는 것. 이것이 특이점청년들이 하고 있는 공동체운동이 아닐까?

권희중, 이호찬, 신승철 공저 『우리의 욕망을 공유합니다』(2020, 도서출판 한살림) 중 일부 발췌한 글입니다.

심순

타고난 과격한 성격을 고치고 착하게 살아보고자 심순(心淳)이라는 별명을 지었다. 하지만 아직도 수시로 버럭과 반성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호찬

미안해하지 말고 고마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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