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주의와 탈자본주의

가속주의는 편협한 상상력으로 일관하며 스스로의 모순 이상의 문제들을 만들어낸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하여,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동력을 자본주의 안에서 추출해내며 그 동력들의 변화 양상을 포착하고 그를 위한 새로운 계급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가속주의를 실행하는 동력학적 요소들과 작동형태를 짚어낸다.

※ 글의 소재가 된 「가속주의자 정치를 위한 선언」 원문은 Accelerate: Manifesto for an Accelerationist Politics에서 읽을 수 있다. 이 글의 한글 번역은 Daum 블로그 〈사물의 풍경〉을 참고했다.

가속의 함의

가속주의라는 용어는 로저 젤라니스(Roger Zelazny)가 1967년에 쓴 SF소설 『빛의 주인』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벤야민 노이스(Benjamin Noys)에 의해 『부정의 지속(The Persistence of the Negative, 2010)』에서 비판적 용어로 채택되었다. 언뜻 보면 가속은 ‘이미 진행 중인 방향으로 더 속도를 내어 달려가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가속의 방향은 결코 직선적이거나 단선적이지 않다. 이런 점에서 가속주의자들의 가속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역사관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벤야민은 진보의 한계를 직시하고 진보를 ‘중단, 혹은 자주 실패했지만 끝내 이루어낸 중단’으로 인식하면서 역사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길로 달려 나가는 기차가 아니라 관찰자의 시점에 따라 특정한 역사적 사건들로 ‘구성’되는 것1이라고 했다. 이처럼 가속은 자본주의가 스스로 규정한 가능성들의 공간 안에서의 종과 횡으로 얽혀 있는 동력장치의 역할을 한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브레이크를 잡는 일‘, 즉 감속(減速)도 가속주의를 위한 하나의 동력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혁명이 세계 역사의 기관차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달리 봐야 할 것이다. 인류가 기차를 타고 가면서 비상 브레이크를 잡는 일이 혁명일지도 모른다.

발터 벤야민
가속의 방향은 결코 직선적이거나 단선적이지 않다. ‘브레이크를 잡는 일‘, 즉 감속(減速)도 가속주의를 위한 하나의 동력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 by Erik Nielsen
가속의 방향은 결코 직선적이거나 단선적이지 않다. ‘브레이크를 잡는 일‘, 즉 감속(減速)도 가속주의를 위한 하나의 동력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
by Erik Nielsen

발견 및 창조라는 실험과정의 모든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가속은 ‘강도’적 의미와도 닿아 있다. 구조적 변환으로 항해하는, 차이로서의 존재인 ‘강도’를 통해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는 불안정성과 욕망의 피드백인 자본주의의 본성에 대해 기존의 흐름과 욕망을 탈영토화하여 그것을 가속하라는 전개로 나아간다.

어떤 혁명적 길이 있을까? 하나라도 있을까? – 중략- 시장의 운동, 탈코드화와 탈영토화 운동 속에서 더욱더 멀리 가는 것? 왜냐하면 아마도 고도로 분열적인 흐름들의 이론과 실천의 관점에서 보면, 흐름들은 아직 충분히 탈영토화되지도, 탈코드화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경과에서 퇴각하지 않고, 더 멀리 가야 한다. 니체가 말했듯이 <경과(과정)를 가속하라>. 사실 이 문제에 관해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안티 오이디푸스2

이처럼 곡선적인 리듬의 변주일 수도 있고 감속을 통한 역량의 강화일 수도 있는 가속은, 자본주의 바깥이 아니라 자본주의 안에서 변용하는 내재성과 잠재성을 포함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과 진보, 그리고 가속주의

자본주의의 무한성장주의 모토는 산업 전반뿐 아니라 과학, 문화, 인식의 측면 등 곳곳에서 경쟁과 성장의 무제한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성장의 원재료는 유한한 자원과 노동력, 그리고 기술의 발전 등이다. 기술의 발전도 인적 자원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가 그려내는 무한성의 이미지는 철저한 유한성을 담보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석탄, 석유 등 탄소발생 자원의 무차별적 채굴로 가동된 산업혁명의 출현은 공장식 대량생산을 위한 노동력의 확보와 맞물려 있다. 이 두 축의 투여로 인해 생산된 성과는 가속화되어가는 편파적 자본 축적과 점진적이면서도 급박한 생태계 파괴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는, 한계가 드러나는 성장 곡선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전지구적이고 더 규제없는 경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더군다나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둔화되어가는 성장의 전개에 활력을 줄 것이라고 부가했다. 자본주의의 원천들이 불균형한 한계를 보이는 가운데 과연 (과학)기술의 발전이 무한성장의 핵심적인 지렛대가 될 수 있을지,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진정으로 이 기술의 발전 영역에서 성역 없는 가속을 추진하고 있는지? 자본주의적 성장으로 인해 인류의 삶이 진보의 길을 걷고 있는지? 가속주의자들의 질문은 여기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진보를 가로막는 성장의 환상

가속주의는 자본주의가 경제성장이라는 기치 아래 낡은 요소들을 재조합한, 어찌 보면 보수적이고 권위(권력)적이며 퇴보적이기까지 한 체제라고 전제한다. 그들은 노동으로 일구어낸 산업의 발전이 노동의 감소나 스트레스의 감소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본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더 많은 노동, 혹은 더 세분화되고 다양화된 감정노동의 상황에 처해 있다. 주택과 같은 필수재뿐 아니라 소비재에 이르기까지 더 많은 필요가 생산되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더 많은 자본의 요구가 안정적인 삶을 위한 노동의 마지노선을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특히, 가속주의자들은 기술의 발달에 관해 자본주의에 의해 해방되었던 만큼이나 억제되고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는 기술의 생산력들을 제약하거나, 또는 그것들이 최소한 불필요하게 협소한 목적들을 지향하도록 지시하기 시작했다. 특허 전쟁과 아이디어 독점화는 경쟁을 넘어설 자본의 필요성과 기술에 대한 자본의 점점 심화되는 퇴행적 접근방식 둘 다를 가리키는 현대적 현상이다.

가속주의자 정치를 위한 선언3

자본주의가 기술에 가하는 제약은 기술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런 관점에서 기술의 발전이 이제까지의 갈등과 불균형을 해소할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의 기술 유토피아는 스스로의 모순에 빠진다. 가속주의자들에게 기술은 핵심적 도구의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축인 사회정치적 요소는 어떻게 구성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둘이 어떤 방식으로 연계됨으로써 탈자본주의를 위한 가속을 진행할 수 있는가?

가속주의적 기획

가속주의 정치 선언문은, 21세기 지구 문명이 직면한 위험들 중 가장 심각한 것을 지구 기후체계의 붕괴라고 지적하며 시작한다. 미래 그 자체를 복구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서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조직적 전망의 부재가 신자유주의 같은 편협한 상상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신자유주의의 물질적 플랫폼을 파괴하지 않으면서(사실상 파괴될 필요 없이) 그것이 공동 목적을 지향하도록 재정향시킬 수 있을까?

1. 수량화와 인지전문적 기술

가속주의자들에게 수량화는 경제적 모형 구성을 위한 도구로 이용된다.

가속주의자들에게 수량화는 경제적 모형 구성을 위한 도구로 이용된다.
by Markus Spiske

가속주의자들에게 수량화는 경제적 모형 구성을 위한 도구로 이용된다. 사회적 연결망 분석, 행위자 기반 모델링, 빅데이터 분석학, 비평형 경제 모형들에서 발견될 수 있는 도구들을 현대 경제 같은 복잡한 체계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인지적 매개물들로 규정하는데, 이는 네그리(Antonio Negri)의 분석처럼 ‘물질적 노동에서 비물질적 노동으로의 헤게모니 이행’의 포착을 의미한다. 그럼으로써 기술에 대한 점점 더 늘어나는 자본의 퇴행적 접근을 공격하는 전략을 취한다.

2. 물질적 플랫폼과 관념의 영역에서의 지속적인 실험

가속주의자들은 물질적 기반이 되는 플랫폼들의 하부구조와 경제적 사회적인 이념들이 상호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축의 헤게모니를 동시에 발전시켜야 한다고 한다. 이는 물질적인 생산, 금융, 수송, 소비의 플랫폼들을 사회적 관계의 문제로 보는 시각으로, 가속주의적 발전을 위해 필요한 지속적인 실험에 정치적 행동의 의미를 부여한다.

3. 생태계 다원성의 전술

위와 같은 정치적 행동의 벡터들을 구현하기 위한 이상적인 수단으로 그 어떤 특수한 조직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속주의의 또 다른 특이성을 찾을 수 있다. 각각의 실험들은 강점들에 공명하고 되먹임하는 조직들의 생태계, 세력들의 다원성을 우선으로 한다. 이러한 다원성은 수평성과 수직성의 교합, 즉 비선형적이고 이질적인 것들의 교합이라는 점에서 기술적 대상들이 개체 횡단적 관계를 맺는 능력이기도 하다.

4. 세 가지 중기적 전술

첫째, 지적인 하부구조를 구축하여야 하는데, 새로운 헤게모니로 나아가기 위해서 먼저 인지노동의 모든 생산적 잠재력들의 복합체를 성숙시켜야 한다.

둘째, 대규모의 매체 혁신이 필요한데, 스스로도 고백하고 있듯이 이는 전통적인 매체에 대한 권리가 자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이를 위한 자원과 자금 확보가 우선적이다.

셋째, 계급권력을 재구성해야 하는데, 이는 계급권력의 가능한 모든 형태들의 재배치와 다양성 측면에서의 활성화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구성되는 미래와 새로운 계급

다양한 계급권력들이 서로 공명하면서 일체의 분파주의를 넘어서는 정치 강령을 위해서 가속주의는 자기비판과 자기 지배라는 계몽주의적 기획을 끌어들인다. 이는 네그리의 말처럼 미래주의를 위한 전혀 미래적이지 않은 기획이기도 하다. 도래하지 않은 미래적 구성의 바탕이 되는 것은 수평적 다양성과 수직적 흐름의 복잡계이고 이들의 관계는 새로운 혹은 다른 구성의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기반이 된다. 어디서부터 시작할지가 정해져 있지 않고, 어느 지점에서 변혁이 일어나는지 가늠하기 힘들며, 때로 그것이 퇴보하기도 한다.

도래하지 않은 미래적 구성의 바탕이 되는 것은 수평적 다양성과 수직적 흐름의 복잡계이고 이들의 관계는 새로운 혹은 다른 구성의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기반이 된다. by Jacob Campbell
도래하지 않은 미래적 구성의 바탕이 되는 것은 수평적 다양성과 수직적 흐름의 복잡계이고 이들의 관계는 새로운 혹은 다른 구성의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기반이 된다.
by Jacob Campbell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공장의 기계라는 기술이 소프트웨어적인 기술로 전환, 발전되면서 자동화가 아닌 정보화라는 잠재성의 발현 기회가 주어졌지만 이 정보화는 다시 자본주의 사회적 관계로 인해 자동화를 위한 정보화에 종속되었다. 이러한 고정자본의 퇴행적 재전유를 재전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노동과 그 계급권력인 인지노동과 인지노동자의 중요성이 부각되는데, 이 인지노동자에게는 인지노동적 지식을 겸비하는 것과 동시에 계몽주의적 발상으로 집단적 자기 지배를 완수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이러한 자기조직화는 임의적 상호연결구조를 지닌 사이버네틱스 인지과학의 기술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는 사회적 맥락에서 보면 새로운 형태의 주체성이기도 하다. 여기서 노동자 혹은 자본가라는 주체와 기술이라는 대상, 그리고 사회적 관계라는 지정은 의미를 잃는다. 이들은 주체, 대상, 관계의 삼원항이 아니라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의 의미를 발휘하고 잠재성을 드러내고 혹은 퇴보하기도 하는 기관으로서 작용한다. 또한, 가속주의적 역능을 발현하기 위한 관념적 근거, 혹은 행동의 준거도 존재하지 않으며 원인/결과의 순차적이고 단선적인 인과관계도 없다. 가속주의는 어쩌면 잠재성 그 자체를 가리키고 있는 지도 모른다.

과정으로서의 가속주의

인지적 지식에 영향을 준 인지과학은 자체의 고유한 학문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보다는 여러 학문들이 다소 느슨하게 연결된 연합체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인지활동의 특성과도 일치한다. 사이버네틱스적 인지활동은 비영속성, 비선형적, 창발적 복합체의 상호공조체계라 일컬어진다. 이렇듯 인지과학에서는 인지활동의 접근방식이 정확한 계산에 의한 접근이 아니라 대략적 접근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는 가속주의의 행동적 실험형식과도 상통한다.

우리는 우리 행동들의 정확한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확률적으로 가능한 결과의 범위는 결정할 수 있다. 그런 복잡계 분석에 결합되어야 하는 것은 새로운 형식의 행동―행동 과정에서만, 지리사회학적 수완과 영리한 합리성의 정치 속에서만 발견되는 우연적인 것들로 작업하는 실천을 통해 설계를 시행할 수 있는 즉흥적인 행동―이다. 복잡한 세계 속에서 최선의 행동 수단을 추구하는 귀추적 실험 형식.

가속주의자 정치를 위한 선언4

가속주의 정치를 위한 선언문은 「공산당 선언」이 그러하듯이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다. 편협한 상상력으로 일관하며 스스로의 모순 이상의 문제들을 만들어낸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출발하여,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동력을 자본주의 안에서 추출해 내며, 그 동력들의 변화 양상을 포착하고, 그를 위한 새로운 계급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가속주의를 실행하는 동력학적 요소들과 작동형태를 짚어낸다. 인지노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이념적 토대 구축과 고정자본으로서의 물질적 기술의 재전유, 그리고 계급권력의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행동-행동과정이 그것이다. 이러한 행동-행동과정은 스스로의 문제점을 반복되는 실험을 통해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완하는 자기조직화의 형식임과 동시에 강력한 자기-가치화를 조직하는 과정으로서의 가속주의적 특성이기도 하다.


※참조

  • 『A Politics of Intensity : Some Aspects of Acceleration in Simondon and Deleuze』 – Yuk Hui, Louice Morelle
  • 『몸의 인지과학』 – 프란시스코 바렐라
  • 『발터 벤야민 선집5』 – 발터 벤야민
  • 「가속주의적 정치를 위한 선언(Manifesto for an Accelerationist Politics)」 Daum 블로그 〈사물의 풍경〉 (http://blog.daum.net/nanomat/520)
  1.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U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 발터 벤야민

  2. Gilles Deleuze, Felix Guattari

  3. Manifesto for an Accelerationist Politics – 알렉스 윌리엄스(Alex Williams) & 닉 스르니체크(Nick Srnicek) 2013. (번역 출처 : http://blog.daum.net/nanomat/520)

  4. Manifesto for an Accelerationist Politics – 알렉스 윌리엄스(Alex Williams) & 닉 스르니체크(Nick Srnicek) 2013. (번역 출처 : http://blog.daum.net/nanomat/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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