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야생’을 어떻게 사유해야 하는가?

생태적지혜연구소는 지난 2019년 10월 8일 코막 컬리넌의 『야생의 법-지구법 선언』을 가지고 제1회 콜로키움을 가졌다. 콜로키움은 임지연 님이 발제를 하였고 박종무 님과 이승준 님이 논평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글은 그날 있었던 발제와 논평을 간략히 정리한 글이다.

오늘날 생태적 위기는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인정하듯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로 인하여 다양한 영역에서 현재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생태적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제안들이 나오고 있다. 『야생의 법-지구법 선언』의 저자인 코막 컬리넌은 환경법 전문 변호사로, 현재의 생태 위기를 야기한 근원의 한 부분으로 현재의 법률 체계가 있으며 따라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법률 체계가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발제] 임지연_미학 박사

인간으로서 나는 누구인가?

데카르트 이후 더욱 강화된 인간중심적 ‘발전’, ‘개발’, ‘성장’, ‘진보’의 개념은 자연을 대상화하면서 오늘날 생태적 위기를 심화시켰다. 콜리넌이 보기에 인간뿐만 아니라 여타 생물종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현재의 생태적 위기 상황은 인간 거버넌스 시스템이 지구 시스템의 근본 규칙에 맞지 않게 설계, 운영된 결과이다. 따라서 지구 공동체의 건강은 어긋나 있는 지구 시스템과 인간 시스템 간의 관계를 재조정, 재통합함으로써 회복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한 현실적 방법으로 컬리넌은 ‘지구법학’, ‘야생의 법’을 창안한다.

‘야생의 법’은 현행 법체계 내에서 그동안 망각되어 온 생명력, 즉 생태계의 생명체 각자에게 고유한 “야생적이고 창의적인 에너지”에 주목하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나아가 현생 법을 구성하는 각각의 권리를 ‘사물’이 아닌 ‘존재’ 측면에서 보아야 한다고 인식하고, 지구 공동체 내 구성원들이 자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인간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관계성의 회복’, ‘자유의 창출’, ‘인간 행위의 규제’를 전제로 현행 거버넌스 구조와 법 체계, 권리 개념을 상세히 검토해 간다. 그의 주장의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우리 인간은 지구 시스템의 분리 불가능한 구성 부분이다.
  2. 이러한 본질적 통합은 인간과 우리 사회 시스템이 더 큰 지구 공동체의 맥락 속에서 불가분적으로 결합돼 있고,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3.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를 규율하는 방식은 지구 공동체의 맥락에 부합해야 하며, 인간의 안녕 추구로 인해 인간 안녕의 원천인 지구의 통합성을 침식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을 인간의 자기 규율의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4. 인간의 성취는 지구 위 더 넓은 생명 공동체의 건강한 관계망을 벗어나서는 달성될 수 없다.
  5. 인간 사회가 더 넓은 지구 공동체의 일부분이라는 현실을 반영하고, 어떤 보편 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그런 법학을 창안함으로써 우리는 사회와 법체계의 포괄적 변환을 시작 할 수 있다.
  6. 우리의 거버넌스 시스템을 이러한 지구법학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재정향하려면, 법의 핵심이 창의성과 인간과 자연과의 유대를 (…) 육성하는 의미에서 ‘야생의 법’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7. 야생의 법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지구를 존중하는 개인적, 사회적 관행과 공동체에 기반한 사회구조, 그리고 자연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공동체들의 공동체를 배양할 필요가 있다.

발제자는 당연시되어 온 기존 법체계에 대해 생태위기 시대를 야기한 현 인류의 사유와 행동, 삶의 양식을 구조적으로 재조정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컬리넌의 작업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발제자는 저자의 문제의식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그의 사유에 깔린 일종의 ‘낭만적’ 성격에 대한 사유는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한다.

발제자는, 저자가 현장 법률가로서 법학이라는 현실적 체계에 무릇 존재들의 우주적 관계성이라는 형이상학적 논리가 개입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의식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우주론적 형이상학은 실제로 철저히 ‘낭만적’이다. 다시 말해 지구법학의 근간이 되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그의 사유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로인해 저자가 구현하고자 하는 야생의 법이 오히려 야생성을 상실해 버릴 우려가 있다고 발제자는 지적한다. 이러한 낭만성은 야생의 법이 궁극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근대의 이분법적, 인간중심적 사유를 더욱 고착시킬 수 있다.

또 발제자는 ‘근원’에 대한 저자의 사유 또한 근대 관념론과 낭만주의의 핵심 주제였다고 지적한다. 관념론 속에서 경험한 분리 경험으로 인해 유한한 삶 속에서 고립과 고통을 겪은 개별자들은 자신의 완전성이 담보되었다고 상정한 과거로 돌아가길 동경하며, 그러한 근원과의 재통일을 통해 훼손되었던 완전성이 회복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하는 완전성은 결국엔 서양의 전통적 사유 내용인 ‘단일성’과 ‘순수성’에 고착되어 있다는 점을 다시 성찰할 부분이라고 말한다. 발제자는 다양성이 보장되고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법체계를 고안하기 위해서는 순수하고 훼손되지 않은 완전성에 대한 이념에서 벗어나 존재의 이질이고 혼종적인 특성을 인정하고 이를 ‘근원’으로 삼아 체계 구성을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논평1] 박종무_생명윤리학 박사

생명에는 내재적 권리가 있는가?

논평자는 기본적인 저자의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논평자는 저자가 제시하는 문제 해결 방안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컬리넌은 현재 생태 위기의 근본 원인을 인간만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인간에게만 과도한 권리가 부여되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이 인간중심주의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자연도 권리의 주체로 삼는 지구법을 제안한다. 이러한 제안은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자는 제안 같지만 저자 또한 인간중심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논평자는 주장한다.

인간중심적 시각은 이원론을 바탕으로 하여 각 유기체를 구분하고 그중에서 인간만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고체계이다. 권리론은 이러한 이원론적 사고체계를 바탕으로 각 유기체를 개별적인 존재로 간주하며 그 각각에 침해할 수 없는 권리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자연 생태계의 유기체는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다층적인 관계망 속에서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자연의 유기체는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개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분리될 수 없는 존재를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데카르트 이후의 서양의 패러다임일 뿐 그것이 자연 생명체의 온전한 관계도 아니며 또 그들을 온전히 할 수 있는 방법도 아닌 것이다.

권리론은 근대 이후 특정 계급이나 고위 성직자의 권력 독점과 탐욕과 부정부패에 의해 민중의 이익이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1689년 영국의 권리장전이나 1789년 프랑스 혁명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아우슈비츠의 대학살 등을 계기로 각 개인에게는 누구로부터도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관념을 바탕으로 공고화되었다. 이러한 사고 체계는 공동체적 사고의 틀이 아닌 개인주의적 토대에서 형성된 서양만의 또 하나의 가치 체계이다. 이러한 가치 체계는 기본적인 인권 개념을 확립함으로써 개별적 인간 존중이라는 가치를 함양하는 데 이바지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존재를 개별적인 존재로 파악함으로써 공동체성을 저해한 측면 또한 존재한다. 특히 생태적 관계를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관계성 속에서 이해하기 보다는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인간 우월적 사고를 심화시켰다.

이하라(Craig K. Ihara)는 개인, 개인의 합리성과 자율성 그리고 개인이 주장할 수 있는 요구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지극히 서양의 특유한 관심사이며, 그에 비해 유교에 기반을 둔 동양의 전통적인 사회 그리고 계몽 시대 이전의 서구 사회에서조차 명백하게 인간을 다른 의미로 이해했다고 말한다. 그는 “많은 공동체들은 개인의 권리에 대한 주장 없이도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과 조화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하였다. 한편 공동체가 개인을 보호하지 못 한다면 개인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각자는 개인적인 안전망이나 권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인권에 대해서 학습했고 또 개인을 중시하는 사회에 살다보니 권리 의 패러다임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개념을 다른 영역으로 확장하려고 한다. 하지만 자연의 생명체는 결코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한다. 오늘날 생태계의 문제는 상호의존적 관계 속에 존재하는 생태계를 인간의 당장의 편익을 위해 파괴함으로 인해 발생하였다. 따라서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관계를 상호 배타적인 이익을 주장하는 권리론을 바탕으로 이해하고 관계 맺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관계가 아닌 관계망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논평자는 주장한다.

[논평2] 이승준_광운대 강사

생태운동과 사회운동의 새로운 연합이 필요

논평자는 저자의 주장을 지구와 생태라는 공통적인 것과, 생각・지・코드・정동・사회적 관계와 같은 인간노동의 산물로서의 공통적인 것 중에서 전자의 ‘공통성’을 지키고 방어하자는 취지에서 이해했다. 전자는 오늘날의 반산업주의적인 생태운동이, 후자는 오늘날의 반자본주의적인 사회운동이 제기하는 주제일 것이다. 문제는 두 가지의 공통적인 것의 운동이 현실에서는 서로 상충하고 대립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 있다. 한쪽에서는 지구와 그 상호작용하는 생명 형태들의 보존을 위해 현재의 자본 및 생산의 발전을 중단하고 제한할 것을, 다른 한쪽에서는 인류의 이익을 중심에 두면서 개방적이고 무제한적인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해 무제한적인 생산의 발전을 촉진하고 가속화하기를 제안하기 때문이다.

논평자는 이 두 입장이 대립하기만 하는 것인가를 반문한다. 두 입장의 연합, 두 입장의 공통화가 없이 『야생의 법』이 제안한 ‘지구 민주주의’와 ‘생태 민주주의’는 요원한 일이 되지 않은지, 생태운동과 사회운동의 새로운 연합이 없이 어떻게 오늘날 ‘민주주의’는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 점에서 논평자는 『야생의 법』의 주장을 손상시키지 않고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그것이 다른 사회운동과의 연합이 가능한 새로운 개념틀, 인식적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박종무

지구 생명의 근원은 해님이라고 믿는 생태주의자. 해님의 에너지를 받는 지구 모든 생태 구성원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희망한다. 특히 동물들이 생태구성원으로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아픈 동물을 치료하고 동물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