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주의

근대 권리주의의 구도는 시민의 권한과 범위를 넓혀나가고 인권의 확장을 도모했지만, 사실은 자율성을 질식시키고 초월적인 제도 내부로 끌어들이는 구심력으로도 작동했다. 그동안 미시세계, 생활세계가 가진 자율성을 누락한 채 딱딱한 책임주체로서 사고되어 왔던 시민의 권리주의도,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점점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는 『공통체』(2014, 사월의책)라는 책에서, 사실상 독일철학자 칸트의 구상이 책임주체로서의 시민, 정체성, 권리주의, 주권질서, 세계정부 등 근대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었다고 말한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칸트는 초월적인 신의 창조능력보다 인간의 인식구성능력을 강조함으로써 지극히 인류문명의 구성과 재건이라는 긍정적인 입장에 서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칸트는 ‘권리=권력’의 구도가 갖는 근대 인간사회의 초월적 질서의 모태를 구성하였을 뿐이다. 근대 권리주의의 구도는 시민의 권한과 범위를 넓혀나가고 인권의 확장을 도모했지만, 사실은 자율성을 질식시키고 초월적인 제도 내부로 끌어들이는 구심력으로도 작동했다는 점에서 탈구조주의자들의 대대적인 반격을 받게 된다. 문제는 권리주의는 미시세계, 생활세계, 생명, 생태, 생활의 자율성을 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책임주체로서의 시민의 권리주의도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점점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 맨 처음 ① 엘리트, 부르주아, 책임주체로서의 프랑스혁명 이후의 시민성, ② 맑스의 사회적 시민성, ③ 민주주의 장으로 진출한 여성의 시민성, ④ 68혁명 직후 소수자(minority)의 시민성 대두, ⑤ 인권에서 생명권으로의 이행, ➅ 지속가능한 발전의 제기 이후 아직 태어나지 않는 미래세대의 권리, ⑦ 주권을 넘어선 이주민, 다문화가정 등장으로 인한 다중(Multitude)논의, ⑧ 마을공동체의 형성과 시민에서 주민으로의 이행 등의 역사적 변화와 부침을 겪는다. 그러나 미시세계의 자율성이 시민의 권리주의로 번역되는 것은 여전히 한계를 가진다. 그 문제점은 사랑, 욕망, 정동, 표현의 자율성이 극도로 낮아지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권리로서 제도화된 것 이외의 자율의 영역을 공동체가 스스로 가지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응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욕망의 미시정치의 가능성이 아니라, ‘딱딱한 권리간의 충돌’과 ‘권리의 권력화’만이 남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를 테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삶이 갖고 있는 사랑과 정동, 욕망의 구성작용보다는 권리의 제도화만이 만능열쇠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삶은 권리보다 풍부하고 다채롭다.

신승철 저, 『탄소자본주의』(2018, 한살림)중에 실린 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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