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서 열리는 것이 사이좋은 의사소통 – 생명운동의 관점에서 조직 내의 소통 갈등과 평화

소통은 서로 ‘깊이 통하는 것’이며 ‘원활히 통하는 것’입니다. 소통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몸동작, 말투, 분위기, 얼굴과 표정으로 합니다. 민주적이며 원활한 소통도 훈련되고 익숙해져야 합니다. 좋은 소통은 서로 창조성을 자극하며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요즘 학생들이 수업 중에 떠들지 않고 조용해서 놀랐다는 한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스마트폰과 게임에 익숙해 있는 학생들이 서로 대화를 하고 관계 맺는 데 익숙하지 않은 때문이라고 분석을 하셨습니다. 실제 전철을 타고 가면 10명 중에 9명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습니다. 또 요즘 화장실에 낙서하는 사람이 없답니다. 그곳에서도 스마트폰을 보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IT세계는 서로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그 속의 개인들은 장벽을 쌓고 있습니다. 자연은 본래 중중무진 연기되어 있지만 사람끼리는 갈수록 단절과 관계장애로 고독을 겪고 있습니다. 대화는 하지만 직접적 대화는 못하는 시대, 상대와 관계하거나 사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시대로 변하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소통, 비폭력 대화법

한편으로는 수평적인 쌍방향 소통이 단절되고 일방적인 교시만 이루어지는 불통의 관계가 문제되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적으로 수많은 이해당사자들이 같이 협의하고 결정하며 공동으로 집행에 책임을 갖는 거버넌스[協治]가 사라지고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행정이 다시 복원되고 있습니다.

모든 폭력의 씨앗은 ‘나만이 옳고 당신은 틀리다’는 생각에서 비롯됩니다. 나는 다 알고 있고 상대는 무지하다는 생각입니다. 상대를 계몽하고 계도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그것은 일방적일 수밖에 없고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상명하복의 수직적 위계구조를 만듭니다. 교시와 명령만 있고 복종과 굴복을 요구하게 됩니다. 판단은 상부가 내리고 하부는 생각하지 말고 따르길 요구합니다. 사람의 자발성과 자기주도성을 믿지 않게 됩니다. 결국 그렇게 길들여지면 하부는 책임지지 않고 의존성이 높아집니다. 결국 모두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갈등하게 마련입니다. 갈등 속에 선택은 둘 중 하나입니다. ‘부서져 흩어지느냐’, ‘깨어서 열리느냐’입니다. 깨어서 열리는 것이 사이좋은 의사소통입니다. 고집과 집착이 엷어져 상대를 향해 마음이 열리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연찬문화연구소의 이남곡 소장은 “우리가 아는 것은 각자의 서로 다른 감각기관과 서로 달리 저장된 정보가 만나서 판단하는 것일 뿐, 사실이나 실제와는 다른(별개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내 생각이 틀림없어’의 생각이 아니라 숭산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의 생각, ‘무지를 깨닫는 것’이 기반이 되어야 올바른 소통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연 무엇이 정말로 옳은 일일까를 참구하는 것이 관계 맺는 올바른 자세라는 것입니다.

올바른 소통은 ‘잘 들어주는 것’, ‘끝까지 충분히 들어주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순간순간 상대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주어야 합니다. 잘 듣지 않으면 ‘무시당한다’는 생각 때문에 상대를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대부분의 갈등과 오해는 특별히 풀지 않아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 60~70% 해소가 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평가하지 말고 관찰하기’입니다. 판단이나 평가는 결국 자신의 경험과 관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 기준이 되어 시비를 가리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판단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화로운 소통의 대화법은 오로지 ‘자신의 느낌만 말하기(I talk)’입니다. 비폭력적 대화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아”(판단)라고 말하지 않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느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네가 약속을 두 번이나 어기다니 너는 나빠”(판단)가 아니라 “네가 두 번이나 약속을 어겨서 서운하고 섭섭해”(느낌)라고 자신의 느낌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판단하지 않고 자기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고 자신의 욕구를 가볍게 드러냅니다. 판단은 잘못될 수 있지만, 자신의 느낌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의 성공은 소통과 화합이 관건이다

지난 10월 19일과 20일, 불광사의 중창불사 낙성기념 국제학술포럼이 있었습니다. 제목은 ‘현대사회의 위기와 종교공동체의 역할’이라는 주제였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종교공동체로 틱낫한 스님이 이끄는 프랑스의 불교공동체 ‘플럼빌리지’와 로제수사에 의해 시작된 ‘테제공동체’, 개신교 퀘이커의 ‘팬들힐공동체’, 태국의 ‘아쇼케공동체’와 대만의 ‘불광산사’ 등에서 활동해 오신 중요한 인물들이 참여하셨고, 한국의 실상사와 정토회공동체 등이 소개되었습니다. 여간해서 이렇게 한자리에 모시기 어려운 분들이었습니다. 공동체의 내적인 운영에 대해 듣기 쉽지 않은 밀도 있는 내용이 발표되었고, 저는 하나하나 깊은 감동이 있었습니다.

20년 넘게 공동체를 경험한 저로서는 공동체가 사람끼리 마냥 행복하고 즐겁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적당히 멀리 있으면 아름다울 관계가 코를 맞대고 있어 서로 원수로 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발표 중에 틱낫한 스님이 계시는 플럼빌리지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소통하는 대화의 원칙이 소개되어 있어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플럼빌리지의 대화와 소통

플럼빌리지에는 ‘강물 되어 흐르기’, ‘대지와 접하기’, 그리고 갈등조정과 소통프로그램인 ‘새롭게 시작하기’와 ‘평화조약’이라는 방법이 있다. by wikimedia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Plum_Village_in_Thailand_01.jpg
플럼빌리지에는 ‘강물 되어 흐르기’, ‘대지와 접하기’, 그리고 갈등조정과 소통프로그램인 ‘새롭게 시작하기’와 ‘평화조약’이라는 방법이 있다.
사진 출처 : wikimedia

플럼빌리지에는 ‘강물 되어 흐르기’, ‘대지와 접하기’, 그리고 갈등조정과 소통프로그램인 ‘새롭게 시작하기’와 ‘평화조약’이라는 방법이 있습니다. 한 방울의 물은 혼자여행을 하면 바다까지 흘러갈 확률이 적지만 물이 모여 강물을 이룬다면 바다에 도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강물 되어 흐르기’입니다. 새들이 무리지어 나는 것이 혼자 날 때보다 70% 이상 힘이 덜 드는 것과 같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공동체로 함께 생활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대지와 접하기’는 일종의 절 명상입니다. 대지는 꽃과 향 등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뿐 아니라 온갖 쓰레기와 분비물(오줌, 가래) 등 더럽고 역겨운 것들까지 분별없이 받아들이지만 결국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게 합니다. 스스로 무엇이든 넉넉히 받아내는 대지의 마음을 갖는 것을 뜻합니다. ‘새롭게 시작하기(Beginning Anew)’는 플럼빌리지에서 2주에 한 번씩 하는 수행으로 다음과 같은 순서로 모임을 갖습니다. 1)상대에게 고마운 마음 표현하는 ‘꽃에 물주기’, 2)자신의 잘못이나 부주의한 행위, 말, 생각에 대해 사과하는 ‘후회하기’, 3)내가 다른 수행자와 교류하면서 받았던 상처를 반드시 드러내 이야기하는 ‘다친 마음 표현하기’,4)자신이 그로 인해 괴롭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어 도움을 청하는 ‘어려움 이야기하고 도움 청하기’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이렇게 서로 갈등을 풀고 덜어내는 대화를 합니다.

또한 공동체의 갈등에 대해 모든 성원들이 ‘평화협약(The Peace Treaty)’을 맺습니다. 그 내용은 “화가 난 나는 1)더이상 상대방을 화나게 하거나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는다. 2)내 화를 억누르지 않는다. 3)호흡명상을 통해 화를 다스리기 위해 내 안의 섬으로 대피한다. 4)24시간 안에 나를 화나게 한 사람에게 내가 당신으로 인해 고통받는다는 것을 말이나 평화쪽지(Peace Note)를 통해 전달한다. 5)그 이야기를 위해 주중 하루 서로 약속을 잡는다. 6)여기서 ‘나는 화나지 않았어. 괜찮아. 고통스럽지 않아. 화낼 일이 뭐가 있어.’라고 절대 말하지 않는다. 7)걸을 때, 앉을 때, 숨 쉴 때 자신을 깊이 들여다본다.”입니다.

그러면서 다음 사항을 되새겨 봅니다. ‘서투르고 조심스럽지 못한 자신의 모습과 무분별한 습관이 타인을 어떻게 해치는가. 내 안에 자리 잡은 강한 화의 씨앗이 분노의 주원인이며, 다른 사람의 행위는 2차적인 것이 아닐까? 내가 상대에게 원망을 돌려 고통을 줄이려는 건 아닌지 살피고, 타인이 고통을 받는 한 나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부주의함이나 잘못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기다리지 말고 즉시 사과합니다. 그래도 상대와 침착하게 대화할 수 없다면 이야기 약속을 다음으로 연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화나게 한 사람도 타인의 장점을 존중하고 비웃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즉각 대화하자고 서두르지 않으며 상대가 구두나 편지로 만나자고 하면 흔쾌히 받아들이도록 평화협약을 맺습니다. 그러면서 그 순간에도 호흡명상을 통해 내 안을 깊이 들여다보고 자신의 분노와 불친절이 남을 불행하게 한 것이 아닌지 살핍니다. 자신의 부주의함과 서투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약속까지 기다리지 않고 즉시 사과하며, 사과할 때는 어떠한 변명이나 합리화도 하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소통은 서로 ‘깊이 통하는 것’이며 ‘원활히 통하는 것’입니다. 소통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몸동작, 말투, 분위기, 얼굴과 표정으로 합니다. 민주적이며 원활한 소통도 훈련되고 익숙해져야 합니다. 좋은 소통은 서로 창조성을 자극하며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이 글은 『월간 불광』 2014. 02. 07.에 실린 글입니다.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이자 녹색불교연구소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행공동체 정토회에서 25년 살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개발협력활동을, 평화재단에서남북문제를 위한 활동을, 고양시에서 지혜공유협동조합을 만들어 활동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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