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하트의 Prison Time] ⑤ 혁명의 시간

이 글은 예일대출판부에서 정기 발행하는 저널 『Yale French Studies』 1997년(No. 91)에 실린 마이클 하트의 「감옥의 시간(Prison Time)」에 대한 번역이다. 총 5회로 나누어 연재되었으며, 이번이 마지막 회이다.

1966년 일본에는 전학련(全學連)[전일본학생자치회총연합]이,
중국에는 홍위병이, 버클리에서의 학생 소요가, 블랙팬서단이,
파리에는 1968년 5월이,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있었다.

『사랑의 수인』

주네의 문학 작품은 글 바깥의 그의 삶과 결코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 작품의 경계들은 자서전과 르포로 흐려진다. 우리는 예술이 삶과 분리된 영역으로 넘겨졌다[감옥에 들어갔다]는 사실로 인해 주네가 더 큰 영역에서 자신의 기획을 추구하려고 그의 생애의 여러 시기에 글쓰기를 포기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추적했던 구성의 시간이 예술 작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삶의 시간으로 확장된다는 점, 즉 구성의 시간이 역사로 들어가거나 역사를 구성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역사는 종종 그렇게 생각되듯이 동질적이고 공허한 감옥 시간의 결정체(crystallization)처럼 보일 뿐이다. 기나긴 시간 계열은, 우리가 감옥에서 경험하는 것과 같은 아코디언 효과와 더불어, 하나의 움직이지 않는 운명, 하나의 생각, 하나의 동질적인 진보의 흐름이 지닌 고정성 하에서 무너진다. 그러한 역사관에는 역설적으로 어떠한 운동이나 시간도 없이, 구성된 정체성‧민족‧주권권력의 경직된 만신전(pantheon)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건에 기초한 역사관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이 역사의 시간은 늘 되기이고, 늘 예견이 불가능하며, 우연에 열려있고, 계속해서 우리의 욕망과 우리의 기쁜 마주침에 의해 형성된다.1 모든 주권관은 이러한 영구적이고 예측불가능한 운동으로 인해 불안정해진다. 따라서 역사는 다양한 욕망의 카오스가 구성적인 집단‧패턴‧운동 속에서, 연이은 마주침 속에서 일시적으로 일관적인 것이 된다고 인식된다. 구성된 역사와는 대조적으로, 이러한 구성적 역사는 주네가 쓴 글의 시간에 활기를 불어넣는 의례들의 확장된 정교화이다.

모든 혁명은 역사의 연속체를 터트리는 사건으로 다가온다.2 혁명적 사건은 늘 시간 밖에서(“천분의 1초 동안 위태로웠다”3) 역사 안으로 들어와 폭발한다. 그렇지만 혁명운동은 반복된 일련의 몸짓과 마주침으로 그러한 사건을 제때에 접합시켜야 한다. 주네는 특정한 혁명집단에 끌리는데, 이는 일정부분 그들의 연극성 때문이다. 가령 그는 블랙팬서단의 머리 스타일과 의상에서 일종의 살아있는 극장을 발견했다. 실제로 주네는 혁명운동에서 그가 자신의 소설과 극에서 만들려 애썼던 것과 동일한 의례적 구성이 더 큰 규모로 펼쳐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 집단들은 다양한 지속기간 동안 개방적인 구성적 역사를 집단적으로 체험하려 했다.

페다인들은 자신들의 가상 카드 게임에서 완전히 노출되었고, 그들의 실존은 완전하게 우연에, 혁명의 사건에 개방되었다. 
사진 출처: Liza Pooor
페다인들은 자신들의 가상 카드 게임에서 완전히 노출되었고, 그들의 실존은 완전하게 우연에, 혁명의 사건에 개방되었다.
사진 출처: Liza Pooor

주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 동안 그가 목격했던 카드 게임에 매료되었다. 페다인[팔레스타인 무장조직원-옮긴이]들은 그들의 지도자에게 카드놀이를 금지 당했는데, 도박이 다른 악덕을 초래하고 외부인들이 이 전사들의 도덕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다인들은 자기 손에 상상의 카드를 들고 포커를 쳤다. 그들은 자신의 빈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지도 않은 카드를 바닥에 떨어뜨리거나 태연하게 집어든 뒤, 사치스러운 느림과 엄숙함으로 자신들의 승리패를 의기양양하게 제시했다. 그들은 평온한 차분함으로 자신들의 게임 혹은 의례를 실행했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왕‧여왕‧조커를, 권력의 모든 상징들을 다루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의 손에는 권력도, 주권도, 고정된 영토나 정체성도 없었다. 실물카드는, 주권권력의 상징에 불과할지라도, 권력의 노출을 경감시켰을지 모른다. 그 대신 페다인들은 자신들의 가상 카드 게임에서 완전히 노출되었고, 그들의 실존은 완전하게 우연에, 혁명의 사건에 개방되었다.4 페다인들은 광활한 사막 바닥에 던져진 살아있는 주사위와 같았다. “팔레스타인의 경우 수많은 전투원들—카드없이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은 유럽에서 흔하게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 어떠한 실재하는 정체성도, 공인된 국가와의 합법적 연결도, 무엇보다 그들에게 속해 있거나 그들이 속한 영토도 없는 추방당한 자들로 간주되었다.”5 주네는 팔레스타인 운동을 주권‧정체성‧고정된 영토 없이 완전히 열려있는 것으로, 즉 혁명적 욕망의 끊임없는 흐름으로 보았다.

혁명의 시간은 우리의 감옥 시간에서 탈출해, 예측이 불가능하고 노출되었으며 욕망에 열려있는 충만한 생활양식으로 나타난다. 
사진 출처: Latrach Med Jamil
혁명의 시간은 우리의 감옥 시간에서 탈출해, 예측이 불가능하고 노출되었으며 욕망에 열려있는 충만한 생활양식으로 나타난다.
사진 출처: Latrach Med Jamil

혁명은 구성 권력의 연속운동으로 규정된다. 혁명과정이 구성된 권력, 즉 주권적 정체성, 국가, 민족국가로 종결될 때마다 혁명은 소멸한다.6 같은 방식으로 혁명의 시간은 주권권력의 동질적이고 텅 빈 구성된 시간과는 대비되는 구성적 시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결국 혁명의 시간은 우리의 감옥 시간에서 탈출해, 예측이 불가능하고 노출되었으며 욕망에 열려있는 충만한 생활양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생활양식은 우리의 새로운 혁명적 시간을 구성하는 모든 시간들에 있다.7 그러나 감옥의 시간은 늘 혁명의 시간이 종결되자마자, 반란군이 봉기를 응결시키자마자, 구성된 권력이 세워지자마자 곧바로 되돌아올 것이다. 우리가 감옥을 한 번 벗어난다고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대안적 실존은 영구적인 움직임 안에서의 연속 기획이어야 한다. 혁명의 시간은 결코 끝나지 않는 목적 없는 수단이다. 모든 종결이 그것을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네는 오로지 이 새로운 구성적 시간만을 용인할 것이다. “팔레스타인이 제도화되는 날, 나는 더 이상 그들 곁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이 다른 국가와 동일한 국가가 되는 날, 나는 더 이상 거기에 없을 것입니다.”8 주네는 새로운 주권에 불과한 것으로 혁명의 시간이 종결되면, 팔레스타인을 배신할 것이다. 그가 모든 정체성을 배반했던 것처럼 말이다. 다른 모든 나라들처럼 하나의 국가가 된다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혁명적 힘을 부정하는 것이리라.9 주네는 구성된 국가를 배신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가 사물의 혁명적 힘을 부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어떠한 정체성도 배신하겠지만(실제로 그는 기꺼이 모든 정체성들을 배신할 것이다), 그는 틀림없이 늘 열려있고 노출된 채 구성의 시간에, 의례의 시간에, 혁명의 시간에 계속해서 스스로를 내던질 것이다. 이 혁명의 시간이 곧 사랑의 시간이다.

※ 이 글의 원문은 온라인으로 다운로드 가능하다. Michael Hardt, 「Prison Time」, Yale French Studies, No. 91, Yale University Press, 1997, pp. 64-79.


  1. “역사는 한 구조의 주체로, 이 구조의 장소는 동질적이고 텅 빈 시간이 아니라 지금 현재[Jetztzeit]로 채워진 시간이다.” Walter Benjamin, “Theses on the Philosophy of History”, in Illuminations, trans. Harry Zohn, New York: Schocken Books, 1968, p. 261. [한글본]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 선집 5: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외』, 최성만 옮김, 도서출판 길, 2008, 345쪽.

  2. “역사의 연속체를 폭파한다는 의식은 행동을 하는 순간에 있는 혁명 계급들의 특징이다.” Benjamin, Ibid, p. 261. [한글본] 벤야민, 같은 책, 346쪽.

  3. Genet, Prisoner of Love, p. 239.

  4. “[팔레스타인들의] 카드 게임은 … 하나의 스타일, 하나의 탈영토화 원리…이다.” Guattari, “Genet retrouvé”, Cartographies schizoanalytiques, Paris: Galilee, 1989, p. 283.

  5. Genet, Prisoner of Love, p. 204.

  6. 이에 대해서는 Antonio Negri, Constituent Power, trans. Maurizia Boscagli,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99를 보라.

  7. “해방된 시간이 구성의 기계이다.” “유물론적이고 집단적이며 역동적인 시간관 밖에서 혁명을 생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Negri, Macchina tempo, Milan: Feltrinelli, 1982, p. 330 and 253.

  8. Genet, “Interview with Wischenbart”, in Oeuvres complètes, vol. 6, p. 282.

  9.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하나의 정부, 하나의 수도를 갖게 될 어떤 영토가 제아무리 작더라도 받아들일 거라는 생각 … 그러한 생각은 너무나 이단적이어서 그것을 하나의 가설로 품고 있는 것조차 대역죄이자 혁명에 대한 배신이었다.” Genet, Prisoner of Love, p. 266.

박성진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전공분야인 영문학에서는 낭만주의에, 비전공분야인 철학에서는 맑스주의와, 탈구조주의에 관심이 많다. 문학과 철학의 접목에 관심이 많다. 특히, 자연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 빗발쳤던 낭만주의 시대에 쓰인 시들을 좋아하고,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와 상상력을 좋아한다.

이승준

형식적으로는 시간강사이자 독립연구자이며, 맑스주의자, 페미니스트, 자율주의 활동가 등등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특이체이자 공통체이면서, 풀과 바다이고, 동물이면서 기계이고, 괴물이고 마녀이며, 그래서 분노하면서도 사랑하고, 투쟁하고 기뻐하며 계속해서 모든 것으로 변신하는 생명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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