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발명] ⑥ 지역을 발견하는 관찰

최근 지역조사나 마케팅조사에서 관찰조사가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보편적 욕구를 알아보는 설문조사나 인터뷰와 달리 관찰조사는 지역의 특이성을 발견할 수 있는 조사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관찰조사 방법과 사례를 간단하게 소개한다.

‘자기 주변을 걷는 것부터 시작한다. 매일 지나다녀 익숙한 길도 있는 하면 가끔 쇼핑을 하거나 친구 집에 놀러 가기 위해 걷는 길, 영화나 전시회, 또는 새로 지어진 건물을 보러 가는 길 등 다양한 길이 있다. 그런 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걷지 말고, 걸으며 눈에 띄는 것, 관심이 가는 것을 주시해 보자. 또는 자신이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 지, 무엇에 눈길을 돌리는지도 확인해 보자. 걷다가 마음에 드는 장소나 건물을 발견하면 멈춰 서서 관찰하고, 사진을 찍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궁금한 이야기를 물어 보기도 하고, 메모도 하고, 참고 자료를 확인해 보자. 거리로 나가 마음에 드는 것, 신경을 자극하는 것을 보자. 목욕탕이 있으면 들어가 보자. 목욕탕은 거리와 동네의 광장 같은 곳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하루의 피로를 풀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그 곳에서 사람들의 얘기에 귀 기울여 보자. 거리 관찰에는 이런 생활감각이 필요하다.

그러나 본다고 해서 바로 어디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 신경을 자극하는 것에 몰두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어딘가 마음에 걸린다는 것은, 보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 그것에 반영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고, 또는 생각지도 않은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니 당장 깨달음이 없더라고 계속 보자.

줄자를 가지고 다니면서 거리의 길이를 재어 보는 방법도 있다. 혼잡한 길과 광장이 있다면, 먼저 그 길과 광장의 크기를 재어보자 이와 마찬가지로 아름답다고 느낀 것, 기분 좋다고 느낀 것, 위험하다고 느낀 것, 편안하다고 느낀 것, 오르기 쉽다고 느낀 계단, 넘어지기 쉬운 계단, 눈에 띄는 표지 등 모든 것의 크기를 재어볼 수 있다.

무엇이든 촬영한다. 촬영을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는 일단 찍어 놓고 본다. 그때그때 마음을 움직이는 내용이 있으면 메모를 한다. 노트에 기록을 하다 보면 보는 것만으로는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까지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거리에는 다양한 소리도 있다. 공장의 기계 소리,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소리, 어린 아이들 노는 소리 등 이처럼 살아 있는 소리에서 배워야 한다. 이렇게 관찰한 자료들에게 대화를 나누어보자 그러면 자신에게 거리가 무엇이었는지, 자신이 거리에서 어떤 것에 관심을 가졌는지, 거리에서 무엇을 배웠는지가 분명해진다. 본다는 것은 매우 창조적인 행위이다. 그러니 거리로 나가 관찰해보자.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중에서 〈거리로 나가 디자인을 배우다〉를 쓴 오오다케 마코토 교수가 디자인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안내하는 관찰의 방법을 간추린 내용이다. 이 글처럼 관찰한다는 것은 생활감각을 익히는 일이고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일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렇게 주민들이 생활하는 지역공동체를 방문해서 지역을 경험하며 감각적으로 느끼고 발견하는 관찰조사는 다른 지역의 문화를 연구할 때 해당 공동체에 들어가 현장에서 문화를 관찰하며 연구하는 민속지학(Ethnography)이라는, 인류학에서 사용하는 문화비교조사의 한 방법에서 비롯되었다.

설문이나 인터뷰와 같은 일반적인 조사방법은 아니지만 지역조사나 마케팅조사에서 최근 들어 관찰조사가 중요하게 사용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현재의 보편성을 기준으로 하는 조사의 한계이다. 지금까지 과학적이라고 부르는 조사방법은 대중의 공통된 욕구와 요구를 파악하는 것에 익숙해서 특이성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양한 개성과 다르다는 것을 매력으로 느끼는 새로운 경향에 의해 특이성은 오히려 발명의 중요한 재료가 되고 있다. 지역 관찰조사는 일반적인 내용보다는 지역만의 특이성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사람들이 조사에서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증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만한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내용을 자신의 의견으로 말한다. 또 지역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도 한다.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지역설문조사와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지원금과 시설개선을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관찰조사는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회를 발견하고 평범한 것 같은 지역에서 다른 지역과 다른 특이성을 찾아낸다.

조사자의 입장에서도 낯선 곳에서의 긴장감과 불확실성은 감정과 감각을 증폭시킨다. 모든 것 이 특별해 지고 새롭게 읽혀진다. 지역을 발명할 수 있는 영감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진화해 오면서 주변 환경에 반사적으로 적응하고 반응하는 방법을 익혀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찰나의 순간에 뇌는 주변을 읽고 해석한다. 그 짧은 시간에 그 정보를 이용해 이상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뇌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흥미로운 공간들을 마주하면 새로운 체험을 담을 신경세포를 수천 개씩 만들어낸다고 한다.

관찰조사 방법

지역 관찰을 위해서는 관찰조사팀을 구성해야 하는데 관찰조사팀은 일반적으로 외부인으로 구성한다. 때에 따라서 내부 주민들로 구성된 팀이 관찰조사를 할 수도 있는데, 주민들이 관찰조사를 하는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놀이터, 쓰레기, 1인 가구, 플라스틱, 산책 등 특정 지역문제에 집중해서 관찰을 할 수 있게 하는 게 좋다. 주민들은 지역의 생활환경과 생활여정에 익숙하기 때문에 특이점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아 일부러 관찰을 제한해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관찰조사팀이 구성되면 먼저 워크숍을 개최한다. 워크숍에서는 지역의 범위와 기초자료 등을 설명하고 관찰방법을 안내한다. 지역기초자료는 지역의 인구, 산업, 미래전략, 문화 등의 행정자료와 지역조사자료, 국내외의 관찰조사 성공사례를 참고해서 준비한다. 인구는 지역에 살고 있는 분들의 연령별 구성과 가구구성(1인 가구, 2인 가구 등)에 주목한다. 산업은 지역대표산업과 전통산업, 자영업 업종분포를 조사한다. 지역미래전략을 조사하는 이유는 지역이 중장기적으로 어떠한 지속가능한 계획을 갖고 있는지를 검토하고 관찰조사와 연관시켜 통합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지역문화특성과 문화예술자원, 지역축제, 역사 등의 관련된 자료를 조사한다.

관찰조사 과정
관찰조사 과정

관찰방법은 크게 (1)관찰과정과 (2)관찰자태도로 구성된다. (1)관찰과정은(그림 참조) 관찰목적, 관찰대상, 조편성, 조별 지역선정, 관찰 동선, 관찰보고서 작성 요령 등을 안내한다. 관찰목적은 ‘관찰조사를 왜 하는지?’‘무엇을 알고 싶고, 해결하고 싶은지’ 등의 관찰조사를 하는 이유가 된다.

관찰대상은 목적에 따라 주민생활 관찰과 지역환경 관찰로 나눌 수도 있다. 주민생활 관찰은 주민들의 일상을 특정한 한 장소에 머무르면서 관찰하거나 생활여정을 따라가며 관찰하고, 지역환경 관찰은 자연환경과 사회환경을 걸어 다니면서 관찰한다. 관찰조사를 위한 조편성은 한 조당 2~3인 정도로 구성하고 조 편성이 끝나면 관찰할 지역을 구분해서 조별로 나누어 맡게 된다. 지역은 한 조가 한 지역을 맡아 담당할 수 있고 조별로 구역을 순회하며 관찰조사 할 수도 있다. 지역담당 관찰조사는 깊이있게 주민생활을 관찰 조사할 수 있어서 주민생활관찰에 적당하고, 조별순회 관찰조사는 여러 조의 시선으로 지역을 다양하게 관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관찰조사지역이 정해지면 본격적으로 관찰을 시작한다. 관찰시간은 최소 4시간에서부터 며칠 동안 할 수 있는데 프로젝트의 규모에 따라 정해진다. 지역에서 관찰을 할 때는 우선 자신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들을 계속해서 촬영, 메모하고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를 방문해서 인터뷰를 진행하거나, 관찰 도중에 만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관찰을 마치고는 조사된 자료를 항목별로 정리하고 관찰조사 한 것 중에서 조별로 3~5개 매력적인 관찰내용을 정하고 선정한 이유를 정리한다.

이렇게 정리된 내용을 가지고 관찰조사기간에 매일 조별로 발표와 회의를 진행한다. 발표는 브레인 트러스트(Brain Trust) 워크숍을 활용하는데, 관찰조사에 참여한 전원이 발표된 내용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브레인트러스트는 애니메이션 영화사 픽사(Pixar)의 창의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회의방법으로 모두에게 발언권은 있지만 감정적인 비난과 아이디어를 죽이기 위한 “안돼”, “틀렸어” 등의 비판은 제한되는 회의방법이다. 대신에 개선, 발전시킬 수 있는 의견을 더해주는 플러싱 룰(Plussing Rule)이 있어서 “그리고”, “그래서”를 사용해 아이디어의 성공을 이끌기 위한 의견을 덧붙일 수 있다. 각 조는 발표와 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듣고 자신들이 발견한 지역관찰조사 결과를 다시 정리한다. 이렇게 관찰조사가 최종적으로 끝나면 지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과 지역을 매력적으로 발명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 보고서를 작성한다.

관찰과정보다 더 중요한 게 관찰자의 태도이다. 만나는 주민들에게 인사를 잘하는 게 첫 번째다. 호감의 법칙이다. 그리고 지역을 다니며 세상에는 당연한 게 없다는 생각으로 익숙한 것들을 자세히 보면서 자신만의 이유를 찾아보아야 한다. 모든 것에 호기심을 적극 작동시켜 항상 “왜?”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특이한 행동과 환경을 지나치는 대신에 오히려 흥미롭게 다가가야 하고 골목길에서 미로를 떠올리듯 한 가지 사물에서 다른 사물들을 연상시켜 보기도 해야 한다. 관찰하는 동안에 내 앞에 있는 것들을 만지고, 듣고, 냄새 맡고, 맛도 보아야 한다. 관찰도중에는 만난 주민들에게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소개하고 관찰 도중에 생긴 궁금한 것들이나 지역에 관련된 내용을 물어볼 수 있다. 이러한 관찰과정이 지역에서 기회를 발견하는 동시에 아이디어가 발명되는 순간이 된다.

관찰조사 사례

쇼도시마 커뮤니티 아트

쇼도시마는 간장으로 유명했던 섬 지역이다. 간장산업과 함께 지역이 쇠퇴하면서 지역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커뮤니티디자인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프로젝트 팀이 섬을 관찰하기 위해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다가 눈에 띈 것 중에 하나가 공장마다 쌓여있는 도시락용 간장을 담는 작은 플라스틱통이었다. 또 주민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주민들이 간장을 먹기 전 간장병을 형광등에 비춰보는 모습을 보았다. 주민들만이 알고 있는 맛있게 숙성된 간장을 찾는 방법이었다. 이 두 가지의 발견으로 마을을 대표할 아이디어를 발명하고 주민들과 함께 오래된 마을공판장에서 간장과 플라스틱 병을 사용해 전시하는 간장아트작품을 준비했다.

간장아트로 만들어낸 쇼도시마 커뮤니티 디자인 프로젝트.
간장아트로 만들어낸 쇼도시마 커뮤니티 디자인 프로젝트.

아이부터 노인까지 주민들이 모두 함께 간장병을 채우는 작업을 하는 도중에 주민들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지고, 관계는 마을을 위해 주민들이 또 다른 일을 벌이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커뮤니티 아트 이후에 마을 간장회가 다시 부활하고 공판장이 마을 산업과 새로운 작품을 전시하는 문화공간이 되었다.

무인양품 옵저베이션observation

무인양품 제품들
무인양품 제품들

‘무인양품은 현장 속에 들어가 관찰한다.’는 주제로 상품을 개발하기 전 가장 중요한 조사방법으로 관찰, 무인양품의 표현으로는 옵저베이션(observation)을 시작한다. 옵저베이션팀은 현재 무인양품 제품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다양한 시각으로 생활을 관찰하기 위해 제품 기획담당자, 디자이너, 영업부 등 보통 3명으로 구성된 옵저베이션팀은 고객의 집을 직접 방문해 실제로 제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관찰한다. 그들은 주방 주변이나, 씽크대 안, 현관주변과 신발장, 욕실 안 등 주제를 정해 제품이 어떤 식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관찰을 하면서 눈에 띄는 점이나 의문 사항이 있으면 거주자에게 직접 질문을 하기도 한다. 주의할 것은 정리정돈을 하지 않은 일상생활 그대로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옵저베이션을 보완하기 위해 무인양품은 ‘사례 사진 모집 제도’를 운영하기도 하는데 무인양품 가맹점주들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사용 중인 제품 사진, 예를 들어 멀티탭 사진을 모집해서 모아진 약 100여 건의 사진을 토대로 멀티탭의 사용상의 문제와 새로운 욕구를 발견하고 스마트한 멀티탭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이제 사진기, 수첩, 스케치북, 사인펜, 볼펜, 참고자료, 줄자, 물통, 비옷, 수건 등을 준비해서 거리로 나가보자.

이 글은 2021년 발행예정인 책 『지역의 발명(가제)』(착한책가게)에 대한 출간 전 연재 시리즈입니다.

이무열

지역브랜딩 디자이너. (사)밝은마을_전환스튜디오 와월당·臥月堂 대표로 달에 누워 구름을 보는 삶을 꿈꾼다. 『지역의 발명』, 『예술로 지역활력』 책을 내고는 근대산업문명이 일으킨 기후변화와 불평등시대에 ‘지역이 답이다’라는 생각으로 지역발명을 위한 연구와 실천을 하며 곧 지역브랜딩학교 ‘윤슬’을 시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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