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통신] ⑲ 온 마을이 아이를 키웁니다

비조마을 논아이스링크장에서 노는 아이들. 아이들의 얼음놀이터를 만들어준 마을어른, 썰매를 만들어준 농막아저씨, 썰매 만들 나무를 제공해준 어쩌다이웃 김반장 모두 감사합니다.

비조마을 논아이스링크장 (2022.1.1.) by 김진희
비조마을 논아이스링크장 (2022.1.1.)
사진 출처 : 김진희

새해 첫날입니다. 찬 바람이 쌩쌩 불던 추위가 조금 누그러졌습니다. 썰매를 손에 든 아이들과 당산나무 아래 논으로 갑니다. 비조마을 논아이스링크장입니다.

논에 물 대놨거든. 멋지게 얼었더라. 애들 누구든지 와서 놀아라 해라.

지난해가 끝나갈 무렵 마을어르신께 전화가 왔습니다. 당산나무 아래 논에 물을 대놨는데 얼면 아이들 데리고 가서 썰매 타고 놀라고 하셨습니다. 며칠 뒤 아침 일찍 다시 전화가 와서, 오늘 아침에 가보니 멋지게 얼었다고 가서 놀면 되겠더라 하셨습니다.

예전 같으면 12월 20일쯤엔 겨울방학을 했지만 이번에는 1월에 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2월까지 방학) 학교수업과 방과후를 마치고 집에 오면 4:30, 곧 해가 지니 밖에서 놀 시간이 없어 못 가봤는데 1월 1일이 되어서야 갔습니다. 썰매가 없었다는 핑계도 있습니다.

썰매는 키트를 사자. 아니다. 목재상에 가서 나무를 사자. 목재상 갈 거 뭐 있나? 어쩌다 이웃이 건축하는데 나무 없겠나 그리로 가자, 스케이트날은 철물점에 가서 앵글을 사면 된다… 아빠들은 의논을 하고 썰매를 만들러 애지골로 갔습니다.

썰매 만드는 중. 허리숙여 작업하시는 분이 지나가던 농막아저씨. (2022.1.1.) by 서상범
썰매 만드는 중. 허리숙여 작업하시는 분이 지나가던 농막아저씨. (2022.1.1.)
사진 출처 : 서상범

손재주가 좋은 아빠가 나무를 자르고 전동드릴로 나사못을 박고 있을 때였다고 합니다. 지나가던 근처 농막아저씨가 아빠들이 모여서 썰매 만드는 걸 보며 코치를 하다가 결국,

“에헤이! 뭐가 그래 어설프노? 나와보소. 나무를 착착 붙여가 안 움직이게 해가 고정을 해야될 꺼 아이가. 요래! 날은 뭐를 쓸라 하는데? 철사로 감는다고? 그래가 얼음에서 나가겠나? 내 농막에 앵글 있으이 가꼬 오께요. 앵글 자를끼 없네. 것도 갖고 와야 되겠네.”

하며 가을걷이가 끝나고 한참만에 농막에 오신 아저씨가 소싯적에 썰매 만들어 타본 솜씨로 척척 만들어 주셨답니다. 알고 보니 아빠들은 어릴 때 동네형들이 만들어준 썰매만 타봤다더군요.

보기에도 튼튼한 썰매와 얼음을 지칠 스틱을 가지고 논아이스링크장앞에 선 아이들은,

“우와! 넓다!!”

하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나무에 가려 그늘진 곳은 얼음이 꽁꽁 얼었고 햇빛을 많이 받는 곳은 살짝 녹았습니다. 그래도 논이어서 물이 깊지 않아 위험하지 않습니다.

썰매를 탈 때 다리는 어떻게 해야할지 잠깐 논쟁이 있었지만 각자 편한 대로 책상다리, 꿇어 앉은 다리, 쪼그려 앉은 다리, 쭉 뻗은 다리로 탑니다. 쭉 뻗은 다리는 앞에서 다른 사람이 밧줄을 끌어줘야 합니다.

추운데 안 추워 ^^

썰매 타고 신나게 놀고 아이들은 집에 와서 게임을 하고 놉니다. 저는 아이들 그림을 좋아해서 가끔, 자주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왜요? 라고 물었지만 요즘은 네 하며 슥슥 그립니다. 어차피 그릴 거 빨리 해야 게임할 시간이 늘어난다는 걸 알아버린 거죠.

아이들의 그림은 늘 놀랍습니다. 그때의 기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햇살이 좋았지요. 친구가 와서 좋았고 썰매가 튼튼하니 예뻤고 모두가 모인 풍경을 위에서 드론으로 찍듯이 그린 그림도 있습니다. 얼음이 꽁꽁 얼었으니 날씨는 추웠습니다. 그래도 안 추웠어요. 왜 그런지 추운 날 신나게 놀아본 사람들은 다 알죠.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

일부러 논에 물을 대주신 마을어른이 있었고, 썰매기술자 농막 아저씨는 마침 그때 지나가다 그냥 지나가지 않았고, 어쩌다 이웃엔 썰매 만들기 좋은 나무가 있었지요. 아이들은 마을사람들의 관심과 정성으로 신나게 새해를 맞았습니다.

김진희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며 만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댓글 2

  1. 우와~~너무 살고 싶은 동네에요
    자연 친화적인 스케이트장과 썰매
    어릴때 생각도 나고 이런 경험 울 애들에게도 시켜주고 싶네요 비조마을 찾다가 작가님 글 쭉~보고 있어요

    1. 감사합니다^^ 울산에 사시는 분이신가보네요. 두동에는 유치원, 초등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귀촌한 학부모가 많습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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