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하는 고양이

살림: 피동사 ‘살리다’ + 명사형 어미 ‘-ㅁ’. 고양이를 통해 정동을 배우다.

1.

세 달 전부터 한 고양이와 같이 살게 되었다. 그 고양이를 나는 ‘짱아’라고 부른다.

2.

지난 학기 과로를 한 것 같다. 가을부터 스스로 돌보는 게 너무 어렵다.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고 해야 할 일을 처리하는 데 급급했다. 15학점을 수강하며 멘토링 2개, 알바 2개, 텃밭 농사를 ‘견뎌 냈다’. 그리고 종강을 했다. 방학이 되어 좀 쉬어야지, 하고 하던 일들을 꽤 정리했는데 일정 하나도 버겁게 느껴진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기까지 많은 힘이 든다. 종일 누워만 있고 싶다. 배가 고파도 밥을 지어 먹고 싶지 않다. 집이 어질러져도 치울 힘이 없다.

무언가를 해야겠다거나 해야 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만 맴돈다. 밥 먹기, 씻기, 외출하기… 일상을 시작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에너지가 소진된다. 나의 경우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은 천성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꼼짝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꼼짝 못 하는 것이다. 몸이 버티다 못해 파업을 선언한 것 같다.

3.

지나가는 시간 말고는 모든 것이 멈춰 있는 요즘이다. 그중 그나마 ‘사건’이라 부를 만한 상황은 ‘짱아가 있다는 사실’이다. 짱아와 가족이 되기로 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짱아가 옆에 있어서 그나마 몸을 움직인다. 밥과 물을 챙겨주고 화장실 청소를 해 준다. 아침저녁으로 낚싯대를 열심히 흔들어준다. 내가 밥을 굶는 것은 내 선택이지만, 짱아가 밥을 먹느냐 굶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다. 그러니 일어나기 힘들어도 힘을 내 짱아와 짱아의 화장실과 밥그릇 물그릇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집사로서 짱아를 돌봐야 하는 의무를 제외하더라도, 이 작은 생명의 존재는 하루를 살게 하는 동기이다. 나른한 햇빛 아래 같이 낮잠을 잘 때면 살맛이 난다. 짱아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지다. 게다가 짱아는 자기를 아주 잘 돌본다. 우선 밥을 아주 잘 챙겨 먹고 밥을 먹은 후에는 야무지게 그루밍을 한다. 고양이 세수도 하고 발도 닦고 털을 항상 윤기 나게 유지한다. 다음으로 잘 싼다. 소위 감자와 맛동산을 매일 일정량 생산한다. 냄새에 활기가 넘친다(^^). 무엇보다 짱아는 본인의 욕망이 중요하다. 원하는 것은 요구하고, 원하지 않는 것은 거부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돌볼 줄 안다.

4.

살림의 뜻은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누군가를 살게 함’이라는 피동의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짱아는 자기 살림을 잘 꾸림으로써 옆에 있는 나를 살게 한다. 너도 살고 나도 산다.

신승철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동은 ‘보살피고 아끼고 행동하고 이행하고 움직일 때의 생각’이다. 혹은 반대로 정동은 보살핌, 사랑, 돌봄으로부터 나오는 움직임이다. 동물들은 분명 정동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나보다 잘 알 것이다. 짱아를 보며 내가 정동을, 살림을 배우기 때문이다. 살림하는 고양이가 있어 무력한 나날을 겨우 탈 없이 넘긴다.

보배

꼼지락거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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