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통신] ⑯ 계속 이어지는 공부가 즐거운 마을학교

노자 필사를 시작으로 한자공부, 한글서예, 도덕경 강의 그리고 다른 필사로 공부가 이어집니다. 혼자하면 다 읽기 어려웠을 텐데 같이 해서 즐겁습니다.

시작은 작았습니다. 온라인 줌 회의 끝에 어떻게 지내는지 짧은 이야기를 하며 김ㅇㅇ님이 요즘 도덕경을 읽고 있는데 좋아서 필사를 할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같이 해요! 라며 몇 명이 모였고 6월 25일 카톡방을 개설하고 필사한 것을 사진 찍어 올리기로 했습니다.

자유로운 필사를 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도덕경 원문을 필경하는 것이군요.

자유로운 필사를 하는 것인데 한문 원문과 한글 번역문을 같이 필사한 것을 본 새로운 참가자는 한문을 꼭 써야 한다고 생각해 카톡방을 나간 일이 있었습니다. 다시 취지를 전달하고 초대했습니다. 참가자가 늘어날 때마다 한번씩 확인하는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루 1장이든 1주 1장이든 한문이든 한글이든 마음대로, 한 글자든 한 구절이든 마음가는대로. 각자 쓴걸 공유하고 계속 써가도록 서로 응원하면 좋겠어요. 어떤 형식이어도 좋습니다. 교재를 선정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도덕경책이면 됩니다.

한자를 그리지 말고 쓰면 좋겠어요.

필사한 사진을 공유하는 카톡방에는 사진뿐만 아니라 글씨가 멋지다. 차분하다. 아니다. 내 글씨는 글씨가 아니라 그림이다. ㅎㅎ 그래도 모두모두 파이팅! 이라는 응원의 메시지까지 감상도 넘칩니다. 아는 글자와 모르는 글자들 속에서 헤매다 보니 한자를 알고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좌) 2021.8.5. 한자특강 / (우) 부수카드 만들기. by 김진희
(좌) 2021.8.5. 한자특강 / (우) 부수카드 만들기. by 김진희

부수로 한자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초빙해 한자를 배웠습니다. 마침 여름방학이어서 초등학생, 중학생도 어른과 같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부수카드를 만들어 부수의 이름을 익힙니다. 한자사전(=옥편=자전)을 보며 처음 나오는 부수부터 글자를 살펴봅니다. 한 일(一)입니다. 일곱 칠(七), 석 삼(三), 윗 상(上), 아래 하(下), 아니 불(不)… 중에서 마음에 드는 글자를 몇 개 골라 10번씩 세로로 연달아 씁니다. 아이들은 이거 나 아는 글자야 하며 반가워서 쓰고 어른들은 이 글자 부수가 이거였구나 하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신기해하며 씁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모두 진도가 다릅니다. 배움에는 자기의 속도가 가장 알맞은 속도입니다.

글씨를 잘 쓰고 싶다

2021.9.6. 한글서예. by 김진희
2021.9.6. 한글서예. by 김진희

한자를 그리지 않고 쓰는 법을 익혀가던 어느 날 카톡방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럼 글씨를 써볼까요? 주민자치센터에서 강의중인 서예가를 모시고 한글서예를 배워봅니다. ㄱㄴㄷ… ㅏㅑㅓㅕ… 당연히 알고 있는 한글인데 붓글씨를 써보니 새롭습니다. 한 획 한 획 정성들여 쓰면서 보니 한글이 아름답고 신비롭다고 참가소감을 말씀해주셨습니다.

황홀한 도덕경

노자 21장을 읽으며 ‘황하고도 홀하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황, 홀’에 대해 황홀한 느낌은 있는데 잘 모르겠으니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울산에는 오래전부터 노자, 장자 공부모임을 지도해오신 장태원 선생님이 계세요. 2018년에는 『노자와 촌로』라는 책도 내셨답니다.

2021.8.26. 장태원 선생님. by 김진희
2021.8.26. 장태원 선생님. by 김진희

여름이 한창인 8월 26일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노자의 철학은 낮아지는 것, 어려지는 것, 부드러워지는 것, 다투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진리는 칼날 같은 곳에 순간적으로 존재한다고도 하셨어요. 아주 깊이 천착하지 않으면 내가 배운 것, 아는 것만 진리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하셨어요. 진리는 항상 뚜렷하게 있는데 모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잠깐 멍했답니다. ‘저 사람들이 이상해요. 이게 맞는 건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더랬죠. 정곡을 콕 찔렸습니다.

시인과 나누는 노자이야기

가을이 되면서 노자 81장까지 필사를 마치고 한명두명 두 번째 필사를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읽어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번은 다 읽었으니 이즈음에 또 선생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이번에는 창원에서 삶예술연구소를 운영하시며 동양고전을 비롯해 인문학 공부 모임을 하시는 김유철 시인을 모셨습니다. 시인은 노자를 어떻게 읽으셨을지 아주 궁금했거든요.

2021.10.20. 김유철 시인. by 김진희
2021.10.20. 김유철 시인. by 김진희

10월 20일 만났는데 시인이 노자를 읽다 아하! 했던 노자 20장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우연히 두 번째 필사를 하고 있는 한 참가자는 아침에 20장을 쓰고 왔다며 놀라워했고 다른 참가자는 아침에 올려준 것을 읽고 왔다고 했고 또 다른 참가자는 20장을 읽으며 울컥했다고 했습니다.

전문이 길어 옮기지는 않겠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찾아 읽어보며 감흥이 있다면 필사를 해보실 것을 권합니다.

김유철 시인은 노자를 음악, 미술, 역사로 풀어주셔서 한편의 대서사시로 와닿게 해주셔서 이제 도덕경의 ㄷ 정도는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소감을 말해준 참가자가 있었으니 공부하는 즐거움이 읽힙니다.

계속 이어지는 공부

도덕경 필사를 시작으로 공부를 했는데 필사를 다 마치고 도덕경 필사를 한번더 하고 천자문을 쓰기도 하고 한시를 쓰기도 합니다. 게다가 2,000쪽이 넘는 책이 6권이나 되는 동의보감 쓰기를 시작합니다. 같이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엄두가 안 나는 사람은 아낌없이 응원합니다. 한편 마음에 드는 새 공책을 못 사서 도덕경 두 번째 필사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저 같은 사람도 있지요. 5명이 시작한 자유로운 필사반은 현재 13명이 되어 계속 공부를 이어갑니다.

김진희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며 만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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