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 평범한 식자(食者)의 식탁

요즘 SNS에 뜨는 맛집들의 음식의 키워드는 자극과 이슈이다. 보기만 해도 매콤하고 짜고 달아 보이는 음식들이 입맛을 돋운다. 이 자극성은 무의식적으로 감각의 역치를 상승시킨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식문화 관점에서 이는 일상의 음식에 무관심과 비인식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이다. 우리의 식탁은 사진 속 음식과 동일하지 않다. 일상과 비일상의 식탁이 교묘하게 엮여 있던 우리 삶에 지금의 식문화는 일상의 의의를 상실하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절대 음감과 상대 음감이란 단어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개념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먼저 절대 음감은 음의 기준점이 없어도 외부의 소리를 음계로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소리의 음정이 피아노의 어느 건반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반면 상대 음감은 절대 음감처럼 머릿속에 절대적 기준 감각이 있지 않아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음정을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기억해두었다가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음과 음의 높이 차이를 파악해서 바닥에 끌리는 소리의 음정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절대 음감의 경우 타고나야 하지만 상대 음감은 훈련을 통해 어느 수준의 절대 음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와 비슷하게 식문화에서도 절대 미각이라는 관념이 존재한다. 절대 음감은 개념이면서 절대 미각은 관념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절대 미각이란 단어가 종종 쓰긴 하지만 절대 미각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밈 중 하나인 드라마 대장금의 홍시 사건을 떠올려보자. 죽순채를 먹고 양념이 무엇이 들어갔는지 묻는 정상궁에게 유일하게 서장금만이 홍시라고 대답했다. 이유는 단순한다. 음식을 씹을 때 홍시맛이 났을 뿐이다. 그러나 이는 서장금이 갖고 있는 절대적 감각이 아니다. 먼저 홍시를 먹어봐야 홍시맛을 알고, 홍시맛과 비교되는 단맛의 식재료를 먹어본 경험이 있어야지 단맛의 높이차를 파악할 수 있다. 백종원 요리연구가 역시 미각은 데이터 싸움이라고 했듯, 그런 면에서 절대 미각은 존재할 수 없고 경험 많고 예민한 상대 미각만이 존재할 뿐이다.

미각 훈련의 핵심이 많은 종류의 음식을 먹어보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건 요리연구가나 요리사를 위한 방법이지 나와 같은 평범한 식자(食者)를 위한 방법은 아닐 것이다. 대중에게 미각은 맛있다와 맛없다를 결정지을 수준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이 맛있다와 맛없다의 간극이 개인의 취향에 의해서 정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 대부분은 달거나, 짜거나, 맵거나, 감치다. 밀키트 판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판매량 순으로 정렬했다. 닭가슴살을 제외한 상위 제품들의 나트륨 첨가량을 비교했다. 제일 적은 나트륨 첨가량이 일일섭취권장량의 50%, 최대 83%였다. 같이 먹을 반찬까지 생각한다면 한 끼에 나트륨 일일섭취권량을 채울 수 있다.

조미료 과다 섭취는 나트륨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2020년, 보건복지부는 ‘2020 한국인 영양소 섭취기준’을 배포했다. 이 자료에서 비만·당뇨·심혈관계질환 등 만성질환 위험감소를 위한 새로운 영양소 섭취기준인 ‘만성질환 위험감소를 위한 섭취량’을 제시했는데, 한국인 성인 기준(19~64세) 나트륨 만성질환위험감소섭취량은 2,300mg/일이었다. 그러나 2018년도 기준 한국인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3,255mg/일로 ‘만성질환 위험감소를 위한 섭취량’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단맛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당뇨병과 비만에, 짠맛을 잘 못 느끼는 사람은 고혈압에 취약하다. 미각은 건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소스를 조금 덜 넣고, 야채를 조금 더 넣자. 슴슴하다고 느껴지면 적당하다. 생태적인 식습관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사진출처: Calum Lewis

이는 단순 건강의 적신호를 의미할 뿐 아니라, 우리의 입맛이 이미 과한 맛에 길들여졌음을 의미한다. 우리의 ‘맛있다’는 과한 조미료에 맞춰줬다. 저 정도로 짜지 않으면, 달지 않으면 맛없거나 싱겁다라고 여긴다. 맵기도 마찬가지다. 배달 음식 앱을 훑어보면 맵기 정도를 고르는 문항을 볼 수 있다. 요즘 붉은색 음식을 취급하는 모든 음식점은 맵기를 묻는다. 김치찌개, 닭도리탕, 떡볶이, 닭발, 마라탕 등등 붉다 싶으면 맵기를 묻는다. 맵찔이인 나는 맵기에 예민하다. 한 번은 보통맛을 시켰는데 너무 매워서 음식점에 문의하니 보통맛이 신라면 정도라고 했다. 내 기억에 신라면의 신은 매울 신(辛)이었는데, 어쩌다 신라면이 보통의 기준이 되었을까. 오늘도 지인들과 식사 메뉴를 할 때 외쳤다. “매운 음식 제외!”

개인 미각의 상실은 이제 낯선 일이 아니다. 과거 식품의약품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2007년 국민 1인당 1일 평균 당류 섭취량은 59.6g이었다. 그로부터 10년도 되지 않은 2013년에는 72.1g으로 약 21% 증가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얼마나 올랐을까. 오늘날 우리는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배달앱을 이용해 배달문화를 형성했고 밀키트 문화와 디저트 문화를 즐기고 있다. 참고로 세계보건기구(WHO)는 1일 당류 권장 섭취량을 25g으로 정했다.

요즘 SNS에 뜨는 맛집들의 음식의 키워드는 자극과 이슈이다. 보기만 해도 매콤하고 짜고 달아 보이는 음식들이 그릇에 넘치게 담겨 있어 보는 사람의 입맛을 돋운다. 이 자극성은 무의식적으로 감각의 역치를 상승시킨다. SNS의 사진은 홍보의 역할이기에 사람들의 시선을 머물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홍보자의 입장에선 아주 좋은 콘텐츠일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빼앗고, 발길을 옮기고, 지갑을 열게 만든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식문화 관점에서 이는 일상의 음식에 무관심과 비인식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이다. 우리의 식탁은 사진 속 음식과 동일하지 않다. 부모님이 차려준 밥상은 항상 소박하다. 몇 가지 반찬에 콩나물국, 쇠고기뭇국, 시래기된장국이 놓여있다. 붉은 요리보다 식재료 본연의 색이 돋보이고 기름도 적어 반짝임이 덜하다. 일상과 비일상의 식탁이 교묘하게 엮여 있던 우리 삶에 지금의 식문화는 일상의 의의를 상실하게 만든다. ‘오늘은 대충 때워야지, 맛있는 것은 내일 친구들과 먹어야지.’ 나 역시 현대인으로서 약간의 변명을 덧붙이자면 바쁜 현대인에게 개인의 식탁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일주일을 돌이켜보자. 직접 해먹는 식사와 외부의 도움(밀키트, 배달, 외식)으로 해결하는 식사의 수를 비교해보자.

더 이상 현실의 식문화에 대한 지적은 과한 논설이다. 중요한 것은 내일의 식사다. 식문화의 가장 큰 장점은 식사가 매일 있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식문화를 도전할 기회가 매일 생긴다. 이 글을 읽는 도전자들을 위해 몇 가지 실천사항을 제시했다. 먼저는 ‘자신의 입맛’보다 싱거운 음식을 먹는 훈련이다. 2018년 6월 학술지 네이처에서 맛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건 미각 피질이지만 그 가치를 판단하는 건 편도체라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즉 미각은 혀가 받아들이지만 기억은 뇌가 한다는 것이다. 슴슴한 음식을 먹는 훈련은 뇌의 기억을 재정립한다. 운동 유튜버들이 종종 탄수화물을 끊고 단백질만 먹으며 체중감량 정도를 실험하는 콘텐츠를 제작할 때가 있다. 실험이 후에 탄수화물을 먹을 때 엄청난 자극을 느끼는 것을 볼 수 있다. 미각을 초기화하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외식할 때는 음식점에 소스를 조금 덜 넣거나, 싱겁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두 번째로 충분히 씹어 먹기(저작훈련)이다. 충분한 씹기는 식재료의 맛을 풍부하게 한다. 밥을 오래 씹어보면 느끼지 못했던 단맛을 인식할 수 있다. 또 오래 씹힌 음식은 장기에 내려가서 소화작용을 원활하게 하고 인슐린 분비를 줄여 당에 대한 욕구를 줄여준다. 세 번째는 신선한 식재료와 제철 식재료 먹기이다. 신선한 식재료와 제철 식재료는 본연의 맛을 농축하고 있다. 특정 시기에만 맛볼 수 있기에 추가 조미료 없이도 풍부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 이는 조미료 섭취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식재료 먹기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서장금이 죽순채에서 홍시 맛을 느낀 것은 홍시를 먹어봤기 때문이다. 내가 먹는 음식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분별하는 능력은 이 음식이 조미료 덩어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지표가 되어준다. 우리의 몸을 병들게 하는 조미료 덩어리를 굳이 먹어야 할까. 과감하게 끊고 좋음 음식을 먹자.

미각 훈련의 과정을 찬찬히 톺아보면 원물에 가까운 상태의 음식을 먹는 것이 특징이다. 즉 가공품에서 멀어지는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분명 원물 자체를 가까이한다는 관점에서 현대 사회의 식문화보다 생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기초적으로 원물은 가공품에 비해 탄소발자국이 적다. 가공품은 여러 원료가 공장에 모이기까지 많은 탄소 걸음을 쌓아야 한다. 반면 원물은 빠르게는 직배송 느리게는 유통을 통해서 우리의 부엌으로 온다. 원물을 가까이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이라도 더 생태적인 식습관을 구축할 수 있다. 한두 사람의 큰 걸음보다 전체의 작은 걸음이 사회를 더 크게 변화시킬 때도 있다.

오늘 점심 메뉴를 돌이켜보자. 이 글을 읽고 나의 식탁을 차지하고 있는 원물과 가공품을 구분하자.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은 대체하고 대체할 수 없다면 조미료의 사용량을 줄여서 먹자. 소스를 조금 덜 넣고, 야채를 조금 더 넣자. 슴슴하다고 느껴지면 적당하다. 뻔하다고 느껴지는 방법이 정확한 법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생태적인 식습관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오히려 너무 가깝게 있기에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이다.

김정모

지속가능한 삶을 꿈꾸는 매거진 ‘Sustain-Eats’ 편집자.
다양한 경험과 가치있는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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