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통신] 지금 여긴, 거기보다 조금 위험해 보입니다

현재 미국 보스턴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필자는, 최근에 겪은 미국 현지 상황을 개인 체험기 형식으로 정리했다. 그동안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상황을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던 미국인들이 최근 달라졌다. 뉴욕의 확진자가 폭증하고 모든 주에 COVID-19가 확산되면서, 거리에서 사람들이 사라지고 마트의 생필품 코너가 텅 비었다. 미국에서의 생활에 점점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최근 한국에 귀국한 유학생 감염자들 문제가 떠오르면서 혹여 귀국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나날이다.

강 건너 불 구경… 하지만 많이 퍼져 있을 거야…

제가 한국에서 겨울 방학을 보내고 올해 1월 19일에 다시 미국 보스턴으로 입국할 때만 해도 중국에서만 집중적으로 COVID-19 확진자가 발생하여 대란을 겪을 때였죠. 아마도 우리나라는 확진환자가 몇 십 명 정도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아시아의 상황을 말 그대로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식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 상황에 대하여 그다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성향도 있거니와, 이런 COVID-19의 대유행이 그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 미국인들의 개인주의적인 성향이나 후진적인 공공시스템 등을 생각하면서, 그 당시 룸메이트에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미국 국민들은 스스로 잘 알지 못하지만 실제로는 많이 퍼져있을 수도 있어.”

대유행, 그리고 급격한 사회적 거리두기

워싱턴주와 서부 도시들을 중심으로 COVID-19 확진자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강 건너 불은 이곳 보스턴까지 번져왔습니다. 그리고 세계의 중심이라 하는 뉴욕주(뉴욕시를 끼고 있는)에서 본격적으로 확진자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현재는 미국의 우한과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뉴욕의 확진자가 폭증하고 모든 주에서 확진자가 확산되면서 제 예상은 대충 맞아 보입니다. 미국인들은 단지 검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COVID-19의 확산을 알지 못했을 뿐이라는 걸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다소 놀라운 것은 COVID-19 폭증상황이 시작되자 연방정부든 주정부든 위로부터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제가 있는 보스턴의 모든 학교수업은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됩니다. 모든 학교가 폐쇄된 거죠. 대략 3월 13일 정도에 모든 대학과 초중등학교가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런 빠른 대처는 잠시 저를 큰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바로 닫는다고? 엊그제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던 일상을?’ ‘이런 일을 많이 겪었나? 이 나라는?’

사재기

Star Market 안의 경고문. 구매자당 2개씩의 생필품을 제한한다는 내용 by 신동석
Star Market 안의 경고문. 구매자당 2개씩의 생필품을 제한한다는 내용
사진 출처 : 신동석

사재기 소문이 들린 건 그즈음입니다. 모든 학교와 회사들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그 시점. 한인마트에 쌀이 없다, 화장지가 동이 났다 등등 수상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저도 한인마트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한인마트로 장을 보러 갔는데 다행히 쌀이나 김치 등 다른 필수품들은 살 수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이용하는 한인마트는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라 사재기가 덜 했고, 일반 가족들이 이용하는 외곽의 한인마트는 사재기로 몸살을 앓았던 것 같습니다. 이곳의 한인마트는 한국분들만 이용하는 건 아니고 아시안 분들이 주로 이용합니다. 한인마트에서만 살 수 있는 김치나 식재료 외에는 가까운 마트 (Star Market, Target)를 이용하는데, 설마해서 가 본 마트에는 소문으로 듣던 대로 화장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내게 남아있는 두루마리 화장지는 단지 하나 반. 아뿔싸, 급한 대로 제 숙소 일층에 있는 소매점 CVS를 갔지만 거기도 텅텅 비어 있더군요. 사재기 열풍이 사그라들면 살 수 있으리란 희망을 걸고 거의 매일 마트와 소매점을 방문하고 있지만, 허탕입니다. 오늘까지 남아있는 두루마리 화장지는 화장실에 걸려있는 2/3 정도… 아껴쓰고 있습니다.

어제는 아침에 먹을 빵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일층 소매점에 내려갔습니다. 이 소매점은 공장에서 만드는 저렴한 빵이 많은 곳이죠. 저는 준비성 부족일 때 항상 저질의 빵을 먹곤 합니다. 그런데 이 소매점에서 빵코너가 아예 없어지고 그 자리는 대신 에너지바 코너로 바뀌었더군요. 이 말은 당분간 빵 공급은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겠지요. 다행히 빵은 가까운 마트에 가서 살 수 있었지만, 사재기가 피부로 다가오면서 잠시 심장이 덜컥 했습니다.

거리엔 사람들이 없고, 마스크 사용이 늘고 있다

제가 사는 지역은 Medical Area로 병원과 의학관련 연구소가 밀집된 곳입니다. 보통 5시 이후 퇴근길이나 보통 시간대의 거리에는 간호사와 의사들 차림의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지만, 최근에는 마치 설날 도심같이 변하였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마스크를 쓰는 사람들이 좀 생겨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마스크=환자’라고 꺼려하는 경향이 있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시안들만 썼던 마스크를요.

인종차별이 아닐지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마스크=환자'라고 꺼리는 경향이 있어서 얼마 전까지 아시안들만 마스크를 썼지만, 최근에는 백인들 중에도 마스크를 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by Anastasiia Chepinska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eGjHhmC_3ww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마스크=환자’라고 꺼리는 경향이 있어서 얼마 전까지 아시안들만 마스크를 썼지만, 최근에는 백인들 중에도 마스크를 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 출처 : Anastasiia Chepinska

이곳 사람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저는 던킨 도너츠 매장에 배를 채우러 갔었는데, 백인 50~60대 부부가 제가 들어오는 걸 보더니 평소와 같지 않게 절 계속 힐끔힐끔 보더군요. 속으로 저 사람들이 왜 저러나 생각했죠. 아, 근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좀 기분 나쁜 생각이 들더군요. 여기 사람들이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기로 유명한 편인데 계속 쳐다본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곤 싶습니다. 얼마 전에는 제 룸메이트와 마트를 다녀오는데, 맞은편에서 백인 여성이 퇴근 중인지 걸어오고 있었죠. 마주쳐 지나갈 때쯤 제 룸메이트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어, 좀 이상한데…’ 아니나 다를까, 우린 비슷하게 느꼈던 것이죠. 그 백인여성이 우리와 마주치면서 너무 티나게 비껴갔다는 것을, 정확히 안전거리 2미터를 지키면서 돌아갔다는 것을, 그 거리는 실제로는 피해갔다고 하는 게 나을 정도의 거리였다는 것을. 이곳 보스턴은 워낙 인터내셔널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겉으로 드러나는 인종차별이 거의 없는 곳이라서요. 저의 기우일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제주도로 간 19세 미국 유학생

모든 학교가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되면서 여기 동부지역의 한국 유학생들은 슬금슬금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대거 귀국하고 있는 거죠. 아니나 다를까 뉴스에 나오기 시작하네요. 유럽과 미국에서 서둘러 귀국중인 유학생들. 그리고 그들 중에 섞여있을 많은 확진자들. 앞서 말씀드렸던 여기 상황에 대한 ‘추정’을 또 언급되어야 할 것 같군요. 단지 검사 미비로 확진만 받지 못했을 거라는 미국 내 거주민들, 아마 학생들도 예외가 아니었을 겁니다. 다들 젊은 편이라 증상이 심하지 않았겠지만, 유학생들 중 많은 수가 COVID-19에 감염되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정합니다. 그 학생들이 대거 귀국을 하면서 확진자가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언론 상에서 거론되고 있는 제주도 여행간 19세 여학생 또한 그들 중 한 명이라 생각됩니다.

Train to Busan

해외로부터 유입되는 확진자 증가로 인하여 요즘 해외입국자들에 대한 입국금지 여론이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이번 학기가 마지막 학기라 5월 말 완전 귀국해야 하는데, 만일의 경우에는 한국에 맘대로 들어가지 못 할 수도 있겠네요.

영화 ‘부산행’이 생각납니다. 어렵게 사람들을 구해 좀비로 가득 찬 몇 개의 열차칸을 뚫고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지만, 정작 그 사람들은 문을 열어주지 않죠. 제가 공유나 마동석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이 남 일 같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지금 여긴, 거기보다 조금 위험해 보입니다

미국의 부실한 공공의료나 비싼 보험료 등으로 인하여 사회적인 약자와 소수자(저소득층 및 불법 이민자, 홈리스 등)들은 이번 상황에 직접적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비록, 저는 공식적으로 학생 신분이라 상황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바이러스 검사 절차와 관련된 안내 등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긴 정말 여러모로 한국보다 좀 위험해 보입니다.

신동석

음악에 관심이 있다 본격적으로 음악 만드는 공부를 하고 있다. 재즈를 전공하고 있지만 모든 음악에도 관심이 있다. 환경과 관련된 일반적인 관심이 있지만 일반 이상의 관심을 가지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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