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 쓰레기, 주운 쓰레기

우리는 흔히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양심을 버리는 것으로 표현한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무심코 혹은 일부러 버린 쓰레기, 내 양심 중에 몇 번은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버려진 쓰레기를 줍지 않고 지나친 것은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내가 무심코 지나친 쓰레기는 내 양심일까? 버린 사람의 양심일까?

불편함과 죄책감

아이를 데려다주는 등굣길, 출근하는 길, 집에 걸어오는 길 등 매일 같이 걷는 풍경은 그날의 기분과 날씨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아이와 함께 걸어올 때면 항상 기분이 좋지만, 길에서 쓰레기를 발견할 때면 우리의 고민이 시작된다. ‘저 쓰레기를 주울까, 말까?’, ‘아이가 보고 있으니 주워야겠지?’, ‘어차피 누군가가 또 버릴 텐데’, ‘엄마, 저 쓰레기 주워서 코로나 걸리면 어떡해요?’ 어떤 날은 줍고, 어떤 날은 지나친다. 늘 항상 어디든지 쓰레기가 있으니 아이가 없을 때도 나는 늘 항상 이 고민을 한다.

‘생태적 전환’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내 일상은 늘 고민과 죄책감에 쌓여있다. 쓰레기에 대한 고민부터 배달음식을 주문할 때, 세탁기를 돌릴 때, 너무 더워 에어컨을 켜면서도 마음은 늘 불편하다. 우리에게 닥친 기후위기를 알고 있지만 내가 지구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무엇인가 의무적인 게 필요했다. 고민하지 않고 죄책감도 줄일 수 있는 활동 같은 것. 마침 동작구마을자치센터에서 마을공동체를 모집하고 있어 같이 생태전환교육을 들었던 학부모 세 명과 뜻을 같이하게 되었다.

생태전환 인플루언서가 되자

파워 플로거를 함께 시작한 셋 - 같은 동네에 살아서 그나마 틈틈이 만날 수 있었다. by 김은제
파워 플로거를 함께 시작한 셋 – 같은 동네에 살아서 그나마 틈틈이 만날 수 있었다.
사진 출처 : 파워플로거

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미래를 바꿔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다. 또한, 이렇게라도 활동을 시작하지 않으면 우리가 배웠던 것을 각자 실천하다가 결국 흐지부지될 것으로 생각했다. 쉽지 않겠지만 우리가 사는 흑석동부터 바꿔가다 보면 동네와 지구의 미래도 바꿀 만큼 영향력이 있는 팀이 되고 싶어 이름도 ‘파워플로거’로 정했다. 70만원으로 여러 가지 사업도 구상했다.

무포장 장보기를 실천하는 ‘용기 낼 용기’를 주사업으로 기후위기에 대해 알리고 생태적 전환 삶을 실천하는 방법을 나누는 ‘용기내, 까망돌’ 수업 시리즈, 동네를 돌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1, 먹거리 전환을 위한 ‘비건 샌드위치 만들기’, 무포장 장보기에 동참하는 가게를 표기하는 ‘생태전환 마을지도’까지. 사업을 처음 시작했지만 모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코앞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보고 싶었다.

시작이 반, 사람이 전부

예상했던 대로 제일 큰 변수는 코로나19였다. 작년보다 상황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주3회 혹은 격주로 학교에 가게 되었고 대면으로 행사를 하기에도 여러 제약이 있었다. 애초 기획했던 사업 중에 비대면으로 가능한 ‘플로깅’ 행사를 시작으로 우리를 알리기로 했다. 플로깅 행사 자체 취지는 좋았지만, 우리 셋으로는 부족했다. 다단계처럼 주변 지인들을 이용해서 참여한다고 해도 ‘마을 이웃과 함께’, ‘주민들이 참여’라는 원래 취지와 맞지 않았고 앞으로 남은 사업에 뜻을 같이할 사람이 더 필요했다.

고심하던 중에 세제 리필 자판기를 만드는 ‘지구자판기’라는 중앙대학교 창업팀이 떠올랐다. 내가 활동 중인 흑석동 주민자치회에 있는 중앙대 캠퍼스타운 관계자에게 부탁해서 ‘지구자판기’팀을 무작정 만나게 되었다. 우리가 염려했던 것보다 대학생들이 우리 사업에 관심을 보였고 그쪽에서도 지역주민과의 접점을 찾고 있다고 했다. 마침 흑석동 주민자치회에서도 어린이 공원에서 플리마켓을 계획 중이어서 지역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며 행사장 한 곳을 내어주기로 해서 모두가 함께하는 ‘흑석동 플로깅’을 위한 계획이 완성되었다.

제발 쓰레기가 많기를

A4용지에 인쇄한 전단지이지만 이마저도 죄책감이 들었다. by 김은제
A4용지에 인쇄한 전단지이지만 이마저도 죄책감이 들었다.
사진 출처 : 파워플로거

그때부터 모든 게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우리는 예산을 아끼기 위해 직접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동네 버스정류장부터 길가 전봇대에 홍보물을 붙이고, 지구자판기는 참가자들에게 나눠줄 세제를 준비했다. 혹시 참가자들이 주울 쓰레기가 없을까 봐 동네를 돌아다니며 어디에 쓰레기가 많이 버려져 있는지 점검하고 주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할 천연수세미, 대나무칫솔도 주문했다. 비닐봉지와 비닐장갑을 나눠주려고 하니 또 쓰레기를 만드는 것 같아 참가자들에게 준비해오라고 하는 등 비만 안 온다면 모든 게 완벽할 정도로 준비를 마쳤다.

2021년 6월 12일, 토요일이 되었다. 행사는 오전 11시에 시작이지만, 나는 주민자치회 위원이라 플리마켓 준비를 위해 9시에 집을 나섰다. 하늘은 맑고 해가 떠 있다. 여느 아침보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쬔다. 지구자판기 팀들은 아침 일찍부터 나와 4리터짜리 무거운 세제통을 여러 개 가져다 놓았다. 문득 걱정이 든다. ‘사람들이 많이 안오면 어떡하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플로깅과 파워플로거, 지구자판기를 조금이라도 알릴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했지만, 아무도 참여하지 않는다면 이 행사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 동네와 기후위기는 절망으로 끝날 것 같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믿음

오전 11시가 되기 전부터 사람들이 도착했다. 플로깅이 아니라 플리마켓 판매자와 물건을 구경하러 나온 주민들이었다. 플리마켓을 구경하면서 커다란 세제통과 행사 안내판이 놓여진 우리 테이블을 구경하고 지나가기도 하고 무료로 세제를 나눠준다고 하니 하나둘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전에 행사 참여를 위해 오픈채팅방에 참가했던 사람들도 도착했다. 더운 날씨에 아이들을 데리고 쓰레기를 주워온 가족, 직장 동료와 함께 참여하러 온 생활 주민도 있었다. 내 머리 위에는 그늘 하나 없이 뙤약볕이 내리쬐었지만, 점점 흥이 났다. 생각보다 많은 주민이 직접 이런 행사를 참여하는 건 처음인 듯했다. 지구자판기 청년들은 이런 주민들의 호기심을 놓치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웃으면서 기후위기와 플라스틱 포장재 문제에 대해 주민들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플리마켓 이모저모. by 김은제
플리마켓 이모저모.
사진 출처 : 파워플로거

동네 어르신 분들은 천연수세미를 보며 한마디씩 하셨다. “아니 이거 수세미 아냐?”, “요새도 이런 거 쓰나?”, “젊은 사람들이 이런 걸 쓴다고?” 예전에는 지금 우리가 쓰는 합성섬유로 된 수세미가 없어 수세미 열매나 짚으로 설거지를 했기 때문에 다시 천연 수세미를 사용한다는 것에 놀라는 눈치셨다. “요즘 수세미들에서 나온 플라스틱들이 다 바다로, 저희에게로 다시 온대요.”라는 나의 말에도 왜 불편함을 감수하냐는 눈빛이시길래 천연수세미를 하나씩 선물로 드렸다. 수세미 선물 때문인지 “젊은 사람들이 다 열심이야. 너무 이뻐.”라는 말씀을 남기고 떠나셨지만, 그분들에게 평생 살아온 삶을 바꾼다는 게 쉽지 않은 걸 잘 알고 있다. 겨우 그분 인생의 반을 지나는 나도 쉽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그 수세미를 그냥 버릴 분들이 아닌 것도 안다. 우리 세대보다 자원 절약에 더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버려진 쓰레기를 줍자

모두가 돌아가고 난 자리에는 쓰레기봉투만 가득 남아있었다. 누군가 보면 행사에서 쓰고 버린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누군가가 주워온 버려진 쓰레기들이다. 그 순간 쓰레기는 다 같은 쓰레기가 아니었다. 나는 비닐장갑도 없는 맨손으로 쓰레기봉투를 정리했다. 더럽지도 불쾌하지도 않았다. 한 개 한 개 주워 고이 담아온 버려지지 않은 주워진 쓰레기니까. 삶을 바꾼다는 것, 삶의 생태적 전환이란 쓰레기를 줍는 것과 같다. 내가 손을 닿는 과정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그 과정에는 발견하고,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하고, 제자리에 돌려놓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고민하지 말고 쓰레기를 주워보자. 우리에게는 지구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갖게 된 의무와 책임이라는 기회가 있으므로.


  1. 플로깅(Plogging)이라는 단어는 스웨덴어로 ‘줍다’라는 뜻의 Plocka upp과 ‘달리다’라는 jogga가 합쳐진 plogga에서 왔다.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은 2016년 스웨덴에서 시작해서 전 세계로 확산되어 국내 곳곳에서도 진행하고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지구온난화를 느끼며 플로깅을 같이 준비한 파워플로거팀과 지구자판기, 쓰레기를 주워 오시고 응원을 보내주신 주민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드립니다.

김은제

세상의 오만 가지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살다가 뒤늦게 생태 전환적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필요한 곳에 쓰임을 감사하며 동네 사람들과 잡지도 만들고, 아이들에게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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