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댁 이야기] ⑭ 그래도 죽을 병 아니고 입덧인께 다행이요

셋째 딸네 손녀가 성장하여 혼인하게 되고 보성댁은 자식들과 함께 결혼식에 참석한다. 결혼식 끝나고 딸은 이바지 음식 들어온 것을 친정어머니인 보성댁에게 나눠준다. 받아 온 이바지 음식에는 한우 소고기가 들어 있고 식구들과 고기를 나눠 먹으며 막둥이 아들을 가졌을 때를 회고한다.

보성댁의 셋째 딸이 사위를 보게 되었다. 셋째 딸은 삼남매를 두었는데 둘째 아이가 딸이었고 위아래로 아들을 두었다. 셋째 딸이 둘째를 낳았을 때 딸은 엄마에게 와서 몸조리를 하고 싶어 했다.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는 시어머니가 몸조리를 해주었다. 첫째 아이를 돌봐줄 시어머니가 있으니 안심하고 맡기고 갓난아이를 데리고 와 친정에서 몸조리를 했다. 갓난아이 때부터 돌봐와서 그런지 보성댁은 그 많은 손주 중에서 셋째 딸네 손녀가 은근히 마음이 쓰이고 은근히 정이 갔다. 그 손녀가 성장하여 혼인을 하게 된 것이다. 결혼식에 관한 일이야 당사자와 혼주인 셋째 딸이 알아서 하는 일이었고 그저 보성댁은 아들딸 가족들을 거느리고 결혼식에 참가하여 손녀의 앞날을 축복하면 되는 거였다.

결혼식이 끝나고 뒷정리를 한 후 혼주인 셋째 딸이 보성댁을 태우고 온 큰아들 차의 트렁크에 무언가를 주섬주섬 넣고 있었다.

“아이, 그거이 멋이다냐?”

“아, 이거? 이바지 들어 온 건데, 내가 다 갖고 가 봐야 식구도 없어서 언제 다 먹도 못 한께 엄마 갖고 가셔서 오빠들이랑 이모네랑 나눠 드시라고요.”

예단이며 혼수며 생략하고 하는 결혼이었지만, 사돈 측에서 결혼식 날 이바지는 교환하기를 원해서 딸도 그쪽으로 보내는 이바지에 제법 돈을 들인 눈치였는데 그쪽에서도 제법 신경을 쓴 모양이었다. 기다란 술병에 인삼인지 뭣인지 들어 있는 술도 보성댁 몫이었고 생선이 들어 있는 듯싶은 스티로폼 상자도 함께 실렸다. 예쁜 보자기로 싼 떡도 두 상자가 들어 있어 한 상자는 딸이 가져가고 한 상자는 보성댁에게 보내졌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아들네며 동생들이며 함께 이바지를 풀어 보다 보성댁은 뜻밖의 선물을 발견했다. 스티로폼 상자에 들어 있는 게 생선인가 했는데 열어보니 소고기가 제법 들어 있었다. 한우인 듯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보성댁은 눈이 번쩍 뜨였다.

“아이 다른 거 놔두고 이거부터 묵자. 아이가, 숙희 그것이 이거이 생선인 줄 알고 준 것 같은디 한우가 다 들었다 와. 이거 알믄 숙희가 속이 안 쓰릴랑가 모르겄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소고기를 구워 먹고 있노라니 보성댁은 문득 막내를 가졌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나가 안돌이 저것을 가졌을 때 입덧이 얼마나 심했는지 통 묵지도 못하고 누워 있응께 다 죽어 간다고 소문이 안 났냐.”

보성댁네 막내아들 성식이의 세례명은 안드레아였는데 그것 때문에 ‘안돌’이라고 불리며 자랐고 어른이 된 지금 ‘성식이’를 주로 사용하지만, 종종 ‘안돌이’로 불렸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보성댁을 보며 큰딸은 ‘엄마는 저 이야기를 몇 번을 흐신지 모르겄네.’ 하며 들었다.

보성댁은 아들 셋, 딸 셋을 두 살 터울로 연달아 낳았다. 여섯째인 셋째 딸을 낳고 난 후 한 삼 년 별일 없이 지나 이제는 아이가 그만 생길라나 하고 있을 때 일곱째가 들어섰다. 처음 아들 셋을 연달아 낳을 때는 입덧이라고 할 것도 없이 지나갔는데, 넷째부터는 아이를 가질 때마다 입덧이 심해 고생을 많이 했다. 먹은 것을 토하기도 하고 밥을 먹고 난 뒤 울렁거리는 속을 막걸리로 달래기도 했다. 그렇게 입덧하는 중에는 고기를 많이 먹고 싶어 했다. 셋째 딸을 가졌을 때는 고기를 너무나 먹고 싶어 환장하겠단 생각까지 했다. 입덧이 너무 심할 때는 그저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곱째를 낳을 때는 아이가 유난히 커서 힘들게 낳았다. 산파인 작은 어머니가 아기를 받았는데 출산을 마친 보성댁이 잘못될 것 같은 생각에 다급하게 신부님에게 종부성사를 청하기도 했다. 일곱째는 아이가 크게 나와서인지 갓난아이 같지 않게 얼굴이 하얗고 예뻤다. 그렇게 일곱째를 낳고 네 해 동안 소식이 없어 이제 끝났나 보다 했는데 보성댁이 마흔이 되던 해에 막내가 또 생긴 것이다.

일곱째를 낳고 네 해 동안 소식이 없어 이제 끝났나 보다 할 때 즈음, 보성댁이 마흔 되던 해 막내를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다. 사진출처 : ai아아 포토샵 베타를 통해 생성
일곱째를 낳고 네 해 동안 소식이 없어 이제 끝났나 보다 할 때 즈음, 보성댁이 마흔 되던 해 막내를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다.
사진출처 : ai아아 포토샵 베타를 통해 생성

아이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보성댁은 마음이 좀 심란했다. 없는 살림에 아이가 일곱인 것도 힘든데 여덟째라니, 저것들을 데리고 어찌 살아야 흘끄나.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미 생긴 아이에게 이게 무슨 생각인가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는 중에 입덧이 몰려왔다. 나이 들어서 한 임신이어서 그러는 건지 가장 힘든 임신 시기였다. 밥을 넘길 수가 없었고 어쩌다 한 숟갈 넘기고 나면 먹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토해냈다. 먹은 것마다 토해내고 있으니, 운신할 수가 없었고 집안일을 살필 수가 없었다. 가까이 사시는 친정어머니가 날마다 와서 집안일을 해주셨다. 아이가 일곱이나 되는 집이고 보니 날마다 밥이며 빨래며 청소며 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어머니는 갱신을 못 하는 딸에게 뭐라도 챙겨 먹이려고 신경을 썼다.

“아이, 요새 유채 나물 많이 나와서 나가 좀 무쳤다. 이거에다 밥 좀 비벼 묵어봐라 이. 나도 옛날에 입덧할 때 암껏도 못 묵다가 요거에다 밥 좀 묵었다.”

참기름 냄새가 역하게 느껴져서 그것도 먹기 힘들었다. 그렇게 몸을 추스르지 못하는 판이니 날마다 가던 성당에도 못 가고 있었다. 매일 미사를 하러 나오던 보성댁이 여러 날 보이지 않자, 사람들은 남편인 상덕 씨에게 물어 왔다.

“예, 회장님. 어째서 안나 씨가 요새 통 안 보인다요?”

“아, 거 어디가 아픈가 아파서 다 죽어 가요 요새.”

상덕 씨는 임신해서 입덧한다고 말하기가 민망해서 그렇게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이미 아이를 일곱이나 낳은 보성댁이 또 아이를 가졌으리라 생각하지 못한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하며 보성댁을 염려했다. 그중에서도 유 선생의 부인인 소피아 씨는 문병을 왔다. 아픈 사람이 잘 먹어야지 하는 생각에 소고기를 제법 넉넉하게 사서 들고 보성댁네에 찾아왔다.

“아이고, 엄니가 와 계시네. 많이 안 좋은갑네요. 엄니까지 와 계신 것이.”

“오매 소피아 씨 아니요. 여까정 이라고 오고. 언능 들어오씨요.”

“아니, 근디 어디가 그라고 아프당가요. 뭐 죽을 병이다요?”

근심을 담아 하는 질문에 어머니가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병은 무슨, 애기 가졌다요.”

“옴마! 아이가! 염병흐네!”

소피아 씨가 박장대소하며 말했다.

“아이고! 난 그것도 모르고……, 요새 통 성당에 안 보여서 회장님한테 물어봉께 어디가 많이 아파 다 죽어간다 그래서 요로고 왔드만 입덧 하느라 그런 거여?”

보성댁은 소피아 씨의 말을 들으며 기운이 없는 와중에도 민망해 마주 보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아픈 줄 알고 이렇게 찾아와 준 소피아 씨가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아이고, 그나저나 아그들 일곱이 작아서 애기를 또 가졌다요.”

민망스러워 소피아 씨를 마주 보지 못하는 중에도 보성댁은 대답하였다.

“뭐 어쩌겄어요. 하느님이 주신 애긴께 낳아서 키와 봐야지요.”

“그래요 그래. 그래도 죽을병 아니고 입덧인께 다행이요. 저 아그들 일곱이 놔두고 안나 씨 죽어불믄 어째야쓰까 걱정하면서 왔는디.”

소피아 씨는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보성댁이 모르는 새로운 소식들을 이야기해 주다가 돌아갔다. 어머니는 소피아 씨가 사 온 소고기를 일부는 볶아서 보성댁 먹게 하고 일부는 무를 넣고 국을 끓여 식구들 먹게 하였다. 사 온 고기가 많아서 온 가족이 맛있게 밥을 먹었다. 보성댁도 소고기를 먹으니 토하지 않고 속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유채나물에 고추장만 넣어 비빈 밥이 조금씩 넘어가기 시작했다.

보성댁이 한참 입덧하느라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남편 상덕 씨는 남에게 말 못 할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저 사람이 저리 묵도 못 흐고 기운을 못 차리고 있으니 어째야 쓰까. 저러다가 덜컥 죽기라도 흐믄 나 혼자 저 아그들 일곱을 어찌 거천하고 살아야 할까? 그러믄 나고 아그들이고 거지 신세를 못 면흘 것인디. 어째야쓰까 잉.’

혼자 그렇게 고민하던 끝에 상덕 씨는 어떤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 저 목숨도 소중한 목숨이지만 저거 살리자고 하다가 이미 있는 아그들 일곱이 불쌍한 신세가 되는 것도 문제여. 나가 혼자서 에미 없는 아그들 일곱을 어찌 키울 것이여? 저 사람한테 한번 이야기해 봐야겄그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상덕 씨는 저녁밥을 먹고 보성댁과 마주 앉았다. 아이들은 큰방에서 어우러져 노느라 시끌시끌했다. 형제가 많으니 어린 동생들도 위에 아이들이 데리고 놀아주니 그런 건 좋았다.

“어이, 오늘도 통 뭘 못 먹었제?”

“긍께요. 얼렁 입덧이 끝나야 사람이 살 것는디, 인자 곧 끝날 거이요.”

“저기, 나가 생각을 좀 해봤는디……”

여기까지 말하고 상덕 씨는 잠시 망설였다.

“뭘요?”

“이, 거 말이시, 자네 그냥 수술흐믄 어쩌겄능가.”

“예? 수술이요? 뭘요? 애기요?”

“이, 이러다가 당신 어떻게 되어 버릴까 봐 걱정된단 말이시.”

남편의 말을 듣고 보성댁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신부님이 강론할 때 낙태는 살인죄라 했는디, 근디 야를? 아이고 아녀. 그러믄 안 되제. 하느님이 주신 생명인디 어찌케든 낳아서 키와야제.

“느그 아부지가 그런 말을 흔디 나가 딱 생각을 해봉께 그 전에 경향잡지에서 읽은 이야기가 생각나드라. 미국에 어떤 엄마가…….”

잠시 숨을 몰아쉬고 그다음 말을 이어갔다.

“이미 아그들이 열이나 되고 그 배에 든 아그 땜에 힘들게 되었는갑드만. 의사가 딱 요로곰 말을 해. 당신 그 애기 낳으면 당신이 죽고 애기를 안 낳으면 사요. 그러는 거여. 그래도 이 엄마는 딱 결심했어. 나가 죽더라도 죄는 안 지을랑께, 이 애기를 기어이 나야겄소. 그래가꼬 애를 딱 낳고 그 엄마는 죽었단다. 그래도 애기는 산 거제. 그 이야기가 생각이 나가꼬 나도 그랬제. 안 되겄소. 하느님이 주신 아기인데 나 기원치 나야 쓰겄소. 그래 가꼬 나가 겔국에는 성식이를 났제. 힘들기는 했어도 그래도 어찌어찌 이렇게 살아왔냐 안.”

보성댁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나는가 했더니 더 할 이야기가 있는지 입을 열었다.

“그래가꼬 나가 아리께 이 이야기를 했드니 그때게 성식이 가가 나를 꽉 끌어 안드란 말이다. ‘엄니, 낳아 줘서 고맙습니다.’ 이럼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보성댁은 자신 매우 잘 결정했다는 자부심으로 그 젊었던 날의 젊은 엄마의 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최은숙

35년의 교직생활을 명퇴로 마감하고 제 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로 쓰고 있습니다. 올해 91세인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글로 남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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