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성과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준 세계 – 『마그나카르타 선언』을 읽고②

사람들이 모두 다른 존재들이라면, 똑같은 글을 읽은 결과도 다를 가능성이 크고, 다른 결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세계의 다른 면들을 엿볼 수 있게 하여줄 것이다. 〈마그나카르타〉와 〈삼림헌장〉은 그 자체로 ‘불완전성과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준 세계’일 수 있다. 〈마그나카르타〉와 〈삼림헌장〉 속의 온갖 멋진 말들은, 문서 속에서부터 갖가지 조건에 걸려, 현실 세계에 던져졌을 때는 슬며시 힘을 잃게 될 것만 같아 보였다. 그러나 그 말이 던져진 세계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 말에 담긴 미약한 가능성을 지켜내고자 노력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하나의 글, 여러 읽기, 여러 세계

피터 라인보우 저 『마그나카르타 선언』(갈무리, 2012)
피터 라인보우 저 『마그나카르타 선언』(갈무리, 2012)

피터 라인보우의 『마그나카르타 선언』(갈무리, 2012)에는 〈마그나카르타〉와 〈삼림헌장〉이 부록(附錄)되어 있다. 필자는 『마그나카르타 선언』이 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하지만, 〈마그나카르타〉와 〈삼림헌장〉을 읽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20여 년 전 〈마그나카르타〉를 처음 읽어 본 후,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 옛 문서를 읽어볼 것을 권하였으나,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는 못하였다. 〈삼림헌장〉은 『마그나카르타 선언』를 읽게 된 것을 계기로 처음 알게 된 문서였다. 이번에는 그냥 필자 자신의 만족을 위하여 〈마그나카르타〉 그리고 〈삼림헌장〉을 읽어볼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다른 존재들이라면, 똑같은 글을 읽은 결과도 다를 가능성이 크고, 다른 결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세계의 다른 면들을 엿볼 수 있게 하여줄 것이다.

【〈마그나카르타읽기

1215년에 처음 만들어진 〈마그나카르타〉는 인사말과 63개 조항–이후 각 조항을 “[1]”과 같은 방식으로 표시할 것임-으로 나눠 읽을 수 있다. 1225년, 제7조에 상부(喪夫)한1 여성의 에스토버스2에 관한 부분이 추가되었다고 한다. [323쪽 참조]

인사말 부분에서, 잉글랜드 왕이며 아일랜드의 영주이고 노르망디와 아깽뗀의 공작이며 앙주의 백작인 존은 대주교들로부터 신하들까지를 대상으로 인사를 한다. 이어 그는 캔터베리 대주교로부터 기타 충성스런 신하들까지를 포함하는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62개 조항을 알린다. 여기에서 이름이 열거된 사람은 추기경 1인, 대주교 8인, 차부제(次副祭)이자 교황실의 일원인 팬덜프 선생, 잉글랜드 템플기사단장, 백작 4인, 스코틀랜드 보안무관장(保安武官長) 3인, 뽜뚜의 집사 9인 등 27명이다. [324쪽 참조]

[1]에서 존은 자신과 후손 대대로 “잉글랜드의 교회를 자유롭게 할 것이며 그 권리가 감소되지 않고 그 자유권들이 손상받지 않게 할 것” [325쪽]임을 공언한다. 이어 존은 2장 이후에 쓰인 모든 자유권들을 자신의 왕국의 모든 자유민들이 가지는 것을 자신과 후손 대대로 지켜갈 것을 공언한다.

[2]~[59]를 필자는 다음과 같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리하여볼 수 있었다.

[2]~[11] 상속 : 지배집단 구성원들이 상속을 통하여 권세를 안정적으로 계승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왕의 간섭을 최소화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 약속이 왕권을 지속 강화시키는 효과를 발생시켰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상속의 과정에서 왕이 상속 조건의 준수를 감시한다거나 모종의 중재를 해야만 하는 것을 명시하였기 때문이다. 감시와 중재의 역할에 권력이 수반된다면 그에 따라 왕의 권력 또한 지속 강화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였다. 이 부분에 상부한 여성에게 에스토버스를 보장하는 내용, 상속의 과정에서 경작자와 수렵인에게 경작도구와 사냥터를 보장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12]~[15] 조세 : 왕이 아무렇게나 세금을 걷지 않을 것을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16] 노예적 노동 : 왕이 아무렇게나 노력 동원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마그나카르타는, 아무리 왕이라 할지라도 자유민의 사적소유를 침해하지 않을 것을 명시하고 있다. by. Rafael Rex Felisilda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U_Kz2RnfFAk
마그나카르타는, 아무리 왕이라 할지라도 자유민의 사적소유를 침해하지 않을 것을 명시하고 있다.
사진 출처 : Rafael Rex Felisilda

[17]~[24] 재판 : 왕이 자유민 / 자유보유자를 아무렇게나 처벌하지 않을 것 즉 재판에 의거하여 처벌 / 보상할 것을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자유민 자유보유자라는 존재가 강조되긴 하는데 그가 어떤 존재인가에 관한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문서에 서명하거나 서명을 참관한 사람들만이 자유민이거나, 그들이 대개 자유민의 개념을 공유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5]~[34] 사적 소유 : 왕이 아무렇게나 사적 소유를 침해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 존재는 곧 그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과 관련하여 주목해볼 만한 부분이다.

[35] 도량형 : 통일적으로 적용할 도량형을 왕이 제시하였다. 잉글랜드 정치사와 경제사의 전개 양상을 추정하여볼 수 있는 단서일 듯하다.

[36]~[46] 인신 구속 / 통행 / 상행위 : 왕이 아무렇게나 사람을 잡아 가두거나 죽이지 않을 것을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47]・[48] 폐림 : 왕이 숲에 쳤던 울타리를 걷어낼 것을 약속함으로써 사람들이 숲에서 생활 필수 자원을 필요에 따라 채취할 수 있도록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50]・[59] 조건부 유보(留保) : 존이 재산권 침해와 인신(人身)의 구속 즉 왕이 사람들을 아무렇게나 잡아두는 것 등 청산되지 않은 관행을 “평화가 회복되자마자”,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오자마자” 즉시 철폐하겠다는 약속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보인다. 자유권의 조건부 유보(留保)라 할 수 있겠다. 만약 평화 회복의 시점, 십자군 활동 종료의 시점 등의 기준을 왕이 정할 영향력 달리 말하자면 기준 설정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 문서에 써 놓은 자유권은 명목 상의 것에 계속 머물 수 있는 것이 된다. 이 부분에서 존은 프랑스식 이름을 가진 무장세력을 추방하는 것, 웨일즈와 스코틀랜드에서 자유권을 확대하는 것을 약속하였으나, 이 또한 조건부 유보가 걸려있는 약속이었다.

[60] 의지의 재확인 : 이 부분에서 존은 자유권 보장의 의지를 재확인하였다.

[61] “평화의 보장과 관련된 조항” : [52]에서 존은 평화의 보장과 관련된 조항이 있다고 언급하였는데, 여기에 보이는 그 내용은 지배집단 구성원들에서 권력집단 내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 스물다섯 명으로 왕을 견제하는 기구를 만들어 항구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62] 사면과 용서 : 이 부분에서 존은 자유권 보장의 의지를 개봉칙허장 즉 문서에 담아 공지할 의지를 표명하였다.

[63] 자유와 자유권의 유지 : 존은 여기에서 자신의 왕조가 유지되는 한 자자손손 자유권을 유지할 것을 후손에게 명령하면서 자유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하였다.

[2]~[59] 그리고 [60]~[63]을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리하여보았으나, 실제로는 폭발력을 가지는 다양한 주장들이 문서 속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필자는, 문서 자체와 관련하여 세 가지에 주목하였다.

첫째, 존은 자유민・자유보유자에게 자유권을 보장한다고 거듭 공언하였는데, 정작 ‘자유민’과 ‘자유보유자’ 개념을 정의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13세기 문서와 18세기 문서 사이의 두드러진 차이들 가운데 하나다. 18세기의 〈프랑스혁명선언〉과 〈미국독립선언〉에서는 각각 나름의 자유 개념 정의를 제시하였다. 13세기 존의 〈마그나카르타〉 그리고 18세기의 두 혁명 사이의 간극을 이해하다보면 서구 왕권과 민권 등 여러 권력의 변화 과정 그리고 변화의 동력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권력에 관하여 더 다양하게 상상하여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존의 문서 곳곳에는 기준을 설정하는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 각종 자유권 허용에 있어서도 허용의 기준이 따르고, 그 기준을 정하는 데 왕의 영향이 작지 않은 것 같다는 것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이는 은폐되어있으면서도 실제로 가장 결정적 영향을 행사하는 현실을 연상시킨다. ‘지금, 여기’에서 숨어있는 권력이 공식적인 권력보다 큰 힘을 행사하는 것에 비하면 존의 권력 행사는 소박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권력 은폐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반면교사’이지 않을까.

셋째, 문서의 말미에서 존이 슬며시 제시하고 있는 조건부 유보에도 주목할 만하다. 앞서 쓴 바와 같이 그것은 온갖 달콤한 것들을 헛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 조건부 유보는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이어서, 존이 조건부 유보를 구사하였다 할지라도 영어권 사람들은 그 방면의 문해력이 뛰어나서 존이 그들을 기만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조건적 유보는 “~ 하겠다. 단, ~을 조건으로.” 와 같은 문장으로 표현되는데, 이 문장은 “만일 ~ 한다면, ~ 하겠다.” 와 같은 문장과 유사하다. 그런데, 『마그나카르타 선언』에서 라인보우도 인용한 바와 같이,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는 “만일 ~ 한다면, ~ 하겠다.” 와 같은 문장을 많이 볼 수 있다. 라인보우는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이, 〈마그나카르타〉 속에서 볼 수 있는 개인의 소유의 자유는 보여주면서도, 역시 〈마그나카르타〉 속에서 볼 수 있는 커먼스는 전혀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필자는 라인보우의 이러한 주장을 셰익스피어를 포함한 영어권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한 조건 문장과 결부시켜 검토하면 라인보우의 주장과 〈마그나카르타〉 자체를 더 섬세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잉글랜드 사람들은 존이 조건문장을 사용하여 조건부 유보를 문서에 표현하였다고 해서 그것을 기만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조건적 유보라는 상황을 곧바로 이해했을 것이라고 추측해보았다. 한편 한국어 사용자들은 같은 문서를 두고도 조건적 유보를 발견하였을 때 존을 사기꾼으로 평가하며 격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조건 문장과 그것을 사용하여 표현한 조건적 유보는 영어 사용자들에게는 친숙하지만, 한국어 사용자들에게는 그리 친숙하지 않은 듯하기 때문이다. 두 집단 사이에 문해력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조건 문장에 대한 친숙도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필자는 추측하여 보았다.

【〈삼림헌장읽기

1299년 에드워드 1세가 확인한, 1225년의 삼림대헌장을 1680년에 영어로 옮긴 잉글랜드의 〈삼림대헌장〉 혹은 〈삼림헌장〉은 인사말, 16개 조항, 다짐 – 이후 각 조항을 “[1]”과 같은 방식으로 표시할 것임 – 으로 나눠 읽을 수 있다.

인사말에서 잉글랜드의 왕이며 아일랜드의 영주이고 노르망디와 기양Guyan의 공작이며 앙주의 백작인 헨리 – 헨리 3세 – 는 모든 대주교들, 주교들, 대수도원장들, 소수도원장들, 백작들, 국왕봉신들, 판사들, 임정관들, 주장관들, 궁정집사들, 종복들 그리고 모든 관리들과 충성스런 신하들에게 신의 인사를 하고, 모든 대주교들, 주교들, 백작들 봉신들 그리고 나라의 모든 자유민들에게 자신의 자발적인 선의로 다음의 자유권들을 부여하였고, 이것들이 잉글랜드 왕국에서 영원히 지켜지도록 할 것임을 공언한다. [342쪽 참조] ‘모든 자유민들’은 헨리의 인사를 받지는 못했으나 자유권의 수혜자에는 포함된 셈이다.

[1]에서 헨리 3세는 조부인 헨리 2세가 어떤 숲을 독점 즉 전림하였는데, 그것이 피해를 입혔다면, 조사한 후 독점을 폐지 즉 폐림하겠다고 한다. 굳이 지적하자면 여기에서 누가 피해자인지는 특정되어있지 않다.

[9]에서 헨리 3세는 자유민이 왕의 숲을 통과할 때 통과세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부수적으로 눈이 뜨이는 것은, 모든 자유민은 왕의 삼림에 있는 자신의 숲을 마음대로 개방하여 방목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한 대목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방목료는 내는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것이 궁금해졌으나, 해답을 구하기는 어려웠다.

[12]・[13]・[14]에서 헨리 3세는 자유민이 숲에서 에스토버스 등 생활 필수 원료를 가져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공언하였다. 아마도 이런 것이 〈삼림헌장〉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하는 것인 듯하다.

여기에 “이웃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조건에서” 라는 말이 들어있다. 이 말을 응용하여 자유라는 개념을 정의하여 본다면, 자유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상태”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영국인들에게 이러한 정의를 제시한다면 그들은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필자는 추측하여 보았다. 왜냐하면, 〈마그나카르타〉와 〈삼림헌장〉 곳곳이 위의 자유 개념 정의와 유사한 조건 문장으로 가득 차 있어서 영어 사용자들에게 친숙하기는 하겠지만, 〈마그나카르타〉와 〈삼림헌장〉은 “~ (으)로부터의 해방”을 촘촘 열거한 문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영어권 사용자들 특히 영국인들에게 자유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상태”일까? 아니면 “~ (으)로부터의 해방”일까? 13세기에서 지금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영어 사용자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영국인들은 하나하나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조금씩 실현시키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상태”에 근접해 가고 있는 것 같다.

[15]에서 헨리 3세는 헌장 공표 이전 삼림 관련 범법자들과의 화해를 공언한다. 일종의 역사 청산 같아 보인다.

헨리3세는 〈삼림헌장〉을 통해서 자유민들이 숲에서 생계를 추구할 권리를 인정했다. 〈삼림헌장〉은 재산 없는 사람들의 권리, 커머너의 권리 및 커먼즈의 가치를 인정한 최초의 문서인 것이다.  by Rovert Hrovat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1UltDVgjI-Q
헨리3세는 〈삼림헌장〉을 통해서 자유민들이 숲에서 생계를 추구할 권리를 인정했다. 〈삼림헌장〉은 재산 없는 사람들의 권리, 커머너의 권리 및 커먼즈의 가치를 인정한 최초의 문서인 것이다.
사진 출처 : Rovert Hrovat

[16]에서 헨리 3세는 초목이나 사슴 고기와 관련된 삼림 소송을 보안무관장이나 지방 행정관이 아닌 세습 임정관과 삼림사법관이 맡도록 한다고 했다. 이에 앞서 [14]에서 헨리 3세는 임정관에게 숲통행료를 내지 않도록 한다고 했다. 이러한 공언은 당대의 상황 속에 놓고 보아야 비로소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스코틀랜드에 여러 명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보안무관장이 왕이 지방에 파견한 무력이라면, 헨리 3세는 〈삼림헌장〉에서 보안무관장을 통한 왕권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조금 허용한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끝으로 헨리 3세는 다음과 같이 다짐한다. “그리고 짐은 이 삼림의 자유권들을 모든 이에게 부여했노라. …… 삼림 안에서만이 아니라 삼림 바깥에서 그리고 야생 조수 사육 특허지 및 기타 그들이 이전에 가지고 있는 다른 곳에서 그들이 누릴 자유권들과 자유로운 관습을 부여했노라. 짐은 …… 대헌장의 끝에서처럼 …… 그리고 거기에도 명시된 것을 그대들이 보듯이 …… 이 자유권 부여를 확인하고 확증하노라 ……” [247쪽]

불완전성과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준 세계

필자에게 〈마그나카르타〉와 〈삼림헌장〉은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기만과 위선으로 가득 찬 문서로 보였다. 온갖 멋진 말들은, 문서 속에서부터 갖가지 조건에 걸려, 현실 세계에 던져졌을 때는 슬며시 힘을 잃게 될 것만 같아 보였다. 그러나 그 말이 던져진 세계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 말에 담긴 미약한 가능성을 지켜내고자 노력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 노력의 결과는 아직도 완전한 자유라고 할 수 있는 궁극의 목표에 가 닿지 못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오늘도 세상은 불완전하며 내일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어떤 작은 억압으로부터의 더 작은 해방을 이루어낼 것이다. 그런 이들은 일찍이 〈마그나카르타〉와 〈삼림헌장〉에서 불완전성과 살아가는 방식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마그나카르타〉와 〈삼림헌장〉이 어떤 세계를 보여주었느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불완전성과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 준 세계’라고 답할 듯하다. 그러니 〈마그나카르타〉와 〈삼림헌장〉을 직접 읽어보시길 권한다.

덧붙임

〈마그나카르타〉와 〈삼림헌장〉 전체를 읽을 여가가 없는 독자들을 위하여, 발췌본을 만들어 보았다. 이 발췌본은 로빈 후드와 나쁜 존 왕이 충돌하는 13세기 잉글랜드를 상상하는 놀이의 도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마그나카르타발췌

“[6] 상속자는 결혼할 수 있지만,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과 결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결혼하기 전에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알려야 한다.” [326~327쪽]

“[7] 남편이 죽으면 부인은 자신의 결혼지참금과 상속재산을 즉시, 그리고 아무런 절차 없이 가질 수 있다. 상부喪夫한 여성은 자신의 상속 몫과 결혼지참금, 혹은 남편이 사망하는 날 남편과 공동으로 소유했던 것 중 물려받은 것 어느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 상부한 여성은 남편의 사망 이후 40일 동안 남편의 집에 머무를 수 있으며, 이 시기 동안에 상부한 여성에게 상속 몫이 할당되고, 그 동안에 상부한 여성은 공유지에서 합당한 양의 에스토버스를 취한다. 상부한 여성의 상속몫으로서 남편이 생애 동안 가졌던 모든 토지의 3분의 1을 할당받는다. [1217년판과 1225년판] 그 어떤 상부한 여성도 남편 없이 살기를 원하는 한 결혼을 강제당하지 않는다. 단, 토지가 짐에게서 분봉된 경우에는 그 영주의 동의 없이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보증을 해 주어야 한다.” [327쪽]

“[16] 그 누구도 기사의 ‘봉토’에 대하여 혹은 기타 토지의 자유보유에 대하여 적절한 정도 이상의 노역을 행하도록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 [329쪽]

“[23] 마을이나 개인은 예부터 법에 의해 다리를 짓도록 정해져 있는 사람들 없이는 강 위에 다리를 짓도록 강요받지 않는다.” [330쪽]

“[24] 그 어떤 주장관이나 보안무관장保安武官長, 왕실재산관리관, 혹은 기타 왕실 관리들도 왕실판사들이 담당해야 할 소송을 대신 담당하지 못한다.” [331쪽]

“[33] 템스 강, 메드웨이 강, 그리고 잉글랜드 전역에서 모든 어살들이 철거된다. 해안은 예외로 한다.” [332쪽]

“[35] 런던쿼터London quarter를 포도주, 맥주, 곡식을 재는 표준 척도로 정한다. 염색한 천, 시쎗천, 하버잭트천의 표준 넓이를 양끝이 마감된 상태에서 2엘ell로 정한다. 무게도 이와 비슷하게 표준화된다.” [332쪽]

“[39] 지위가 동등한 사람들의 합법적인 판단이나 나라의 법에 의한 것 말고는, 그 어떤 자유민도 체포 또는 구금되거나 점유한 것을 박탈당하거나 추방되거나 어떤 식으로든 해르 입어서는 안 되며, 또한 짐도 직접 혹은 누군가를 보내서 그에게 강제로 법을 집행하지 않을 것이다.” [333쪽]

“[47] 짐의 통치기에 만들어진 모든 삼림들은 즉시 폐림된다. 짐의 통치시기에 종획된 모든 강둑들도 마찬가지로 처리될 것이다.” [335쪽]

“[48] 삼림들과 야생 조수 특허지들, 임정관들과 야생조수 사육 특허지의 감독관들, 주관장들 및 그의 관리들, 강둑들 및 그 감독관들과 관련된 모든 악습들은 즉시 모든 주에서 열두명의 맹세한 기사들에 의해서 조사될 것이며, 조사한 지 40일 이내에 악습들은 완전히 그리고 되돌릴 수 없이 폐지될 것이다. 그러나 짐 혹은 짐이 잉글랜드에 없다면 사법총리가 가장 먼저 보고를 받을 것이다.” [335쪽]

“어떤 사람의 사망에 대해서 여성의 호소를 근거로 하여 사람을 체포하거나 구금하지 아니한다. 그 여성의 남편이 사망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337쪽]

“[60] 짐이 윤허한 이 모든 관습들과 자유권들은 짐의 신민들과 짐의 관계에 관한 한 짐의 나라에 지켜질 것이다. 성직자이든 속인이든 짐의 나라의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것들을 지켜야 한다.” [339쪽]

“[61] …… 봉신들은 이 헌장에 의하여 그들에게 윤허되고 확인된 평화와 자유권들을 온 힘을 다해서 지키고 또 지켜지도록 하기 위해서 스물다섯 명을 선출한다. ……” [339쪽]

【〈삼림헌장발췌

“[1] 짐은 조부인 헨리 왕께서 전림한 모든 숲들을 훌륭하고 합법적인 사람들이 조사하기를 바란다. 만일 헨리 왕께서 자신의 영지 이외에 다른 숲을 전림하였고 그럼으로써 피해를 입혔다면 그 숲은 곧 폐림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헨리 왕께서 자신의 숲을 전림하였다면 계속 삼림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숲에 있는 공통의 초본과 기타의 것들은 이전에 그것을 사용했던 사람들이 계속 사용하도록 할 것이다.” [342~343쪽]

“[9] 모든 자유민은 짐의 삼림에 있는 자신의 숲을 마음대로 개방하여 방목료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짐은 돼지들을 자신의 숲에서, 혹은 다른 어떤 곳이든 원하는 곳에서 방목하기 위해서 짐의 숲을 통과하여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몰고 가는 것을 모든 자유민에게 허용한다. 만일 어떤 자유민의 돼지들이 짐의 삼림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더라도 그 때문에 그가 자신이 가진 것을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345쪽]

“[12] 지금부터 모든 자유민은 이웃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조건에서 짐의 삼림 안에 있는 자신의 숲이나 땅에 물방앗간, 샘, 연못, 이회토 채취장, 도랑을 만들거나 둘러막지 않은 경지耕地를 만들어도 짐이 문제로 삼지 않는다.” [346쪽]

“[13] 모든 자유민은 자신의 숲에 있는 매, 새매, 송골매, 독수리, 왜가리의 둥지들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자신의 숲에서 발견되는 꿀을 가질 수 있다.” [346쪽]

“[14] …… 등에 관목, 나무껍질, 숯을 지고 팔러가는 사람들은 그것이 벌이를 위한 것일지라도 임정관에게 숲통행료를 내지 않는다. 짐의 영지에 속한 숲에서 취한 경우는 제외한다.” [346쪽]


  1. 배우자가 죽은.

  2. estovers : 소작인이 자신의 집・산울타리・도구들 등을 고치는 데 필요한 한에서 자신의 영주의 땅에서 가져올 “특권”을 가지는 나무 / “법에 의해 허용되는 생활필수품” [352쪽]

이유진

1979년 이후 정약용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규범과 가치의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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